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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l 22. 2023

정방폭포 21

― 그림책을 읽는다




정방폭포 21

― 그림책을 읽는다




풀숲이 되어버린 이어도서천꽃밭에 길을 만든다

저절로 자라난 복숭아나무에 아기 주먹들이 많다

피부가 약해서인지 풍뎅이들이 잔뜩 달라붙어있다

곁에 있는 동백나무에는 벌레들이 하나도 없다

잎도 두껍고 열매도 갑옷처럼 튼튼한 옷을 입었다

안덕산방도서관에서 문자가 왔다 책두레로,

서귀포기적의도서관에서 그림책 한 권이 왔다

책상 위의 책탑,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는다

돼지감자가 침범해서 고생하는 감귤나무 구하고

들어와 그림책을 읽는다 강요배가 그린 제주 4.3   

나는 제주도 입도 30년, 초등학교 저학년생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림책을 읽고 그림일기를 쓴다

책 겉표지에 복숭아처럼 상처가 많다 살짝 들춰보니

양장본에는 황토색 바탕에 검은 제주도가 숨어 있다

다시 <동백꽃 지다>를 보니 왼쪽 상단에 피꽃 피고

중간과 오른쪽 사이 상단에 동백꽃 암술 남아 있다 

나는 떨어지는 동백꽃보다 암술을 더 오래도록 본다 

뒤표지에는 <봉화>가 피어오른다 설문대할망의

등의 허리선 같은 혹은 누워 있거나 엎드려 있는

그 아픈 허리에 혹은 가슴에 쑥뜸을 뜨는 것 같은

검은 한라산 오름마다 새벽 2시의 봉화가 오르는데

나는 조용히 촛불을 켠다 새벽 2시의 촛불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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