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폭포 20
― 정방폭포에 미쳐서
정방폭포에 미쳐서 정방폭포에 살다 보니
서천꽃밭은 풀숲으로 우거지고 말았다
길도 발걸음이 뜸하니 풀들이 점령했다
감귤나무 몇은 풀숲에 묻혀 죽었고
몇 놈은 가시를 내어 탱자나무로 돌아갔다
복숭아는 풍이와 흰점박이 꽃무지가 먼저 먹고
어린 감나무와 어린 무화과나무는 돼지감자와
칡넝쿨에 시달리면서도 아기 몇 명 품고 있다
수국은 장마보다 먼저 떠나고 칸나 꽃 붉다
분꽃은 무지개색으로 저마다 피어나고
키가 너무 큰 해바라기는 쓰러져서 손을 짚고
젖꼭지 나무는 제법 젖꼭지 다운 티가 난다
연꽃은 여전히 합장을 하고 토란잎은 논다
서천꽃밭에서도 자꾸만 정방폭포소리가
나를 부르는데 들어도 못 들은 척 보아도
못 본 척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꾹 참고
우선 곁에 있는 서천꽃밭 식구들부터 돌본다
서천꽃밭 고양이가 새끼들 데리고 외출하고
모과나무는 흐린 하늘을 향해 푸른 주먹을 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