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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Aug 22. 2023

서귀포 서천꽃밭 019

― 산방굴사에서 아침을 켠다





서귀포 서천꽃밭 019

― 산방굴사에서 아침을 켠다




아침 여섯 시 산방굴사에

촛불보다 밝은 해가 켜진다

장좌불와 용맹정진 부처님

잠시 가부좌를 풀고

산방덕이 눈물 한 잔 마신다


오늘도 기도할 것이 많은 사람들

일출처럼 계단을 걸어 올라와서

간절한 마음으로 합장하고 절한다

불전함에 지폐를 넣고 쌀을 올린다

그릇마다 물을 비우고 생수 올린다

향에 불을 붙여 향로에 꽂고 합장

산방덕 눈물에 젖은 계단을 내려와

천선과나무 아래서 선풍기를 켜고

때 묻은 자리를 펴고 절을 시작한다


나는 산방덕이 눈물 세 잔을 마시고

부처님 아래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나의 부처님을 가슴에서 불러내어

눈빛만으로 화두를 주고받는데

한 분은 자신의 부처님께 침묵으로

기도하고 한 분은 내가 모르는 염불을

낭랑하게 하신다 너무 궁금하여 여쭈니

광명진원이라고 말씀하신다


아침 일곱 시 기도는 아직도 멀었는데

을지훈련 통신비상 문자가 나를 부른다






* 광명진언의 의미 / 광명진언의 의미


먼저 광명진언 각 글자 속에 담긴 의미를 풀어봅시다. 

원래 진언의 뜻은 풀이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진언을  매우 중요시했던 밀종에서는

진언의 각 글자들을 풀이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뜻을 잘 알아야 관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요,

관이 잘 되어야 보다 빨리 성취를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 광명진언은 아홉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옴

2. 아모가

3. 바이로차나

4. 마하무드라

5. 마니

6. 파드마

7. 즈바라

8. 프라바릍타야 

9. 훔


이 아홉 단어가 모여 신령한 힘을 발현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 한 단어 한 단어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1. 옴은 대우주의 무한한 생명력, 진리, 불멸의 부처님께 귀명하고 공양한다는 뜻입니다.

원래 '옴'은 'a + u + m +ㅡ'의 결합문자로서, 

아는 창조, 출발, 시작

우는 유지 존립

ㅁ은 끝 소멸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곧 이 세상 모든 것의 시작과 존립과 소멸, 인생의 태어남과 살아감과 죽음 등을

'아 + 우 + 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럼 마지막의 장음표시인 'ㅡ'은 무엇인가?

시작과 유지와 끝을 넘어선 진리 또는 영원한 본체를 뜻합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의 진리

그리고 모든 부처님과 중생들의 근본 체를 나타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예부터 이 '옴'은 매우 신령스러운 주문으로 받들어졌습니다.

생겨나서 유지하다가 소멸되는 세간의 모든 흐름들과 그 흐름들을 넘어선 

영원 완성 조화 통일 성취 등의 성스러운 본체에 귀명 한다는 뜻으로 '옴~'을 외웠던 것입니다.


2. 아모가는 '불공'으로 번역됩니다. 

'공이 아니다, 빈 것이 아니다.'는 뜻입니다. 공 불교에서는 참으로 공을 많이 강조합니다. 

공! 비워라. 무엇을 비우라는 것입니까? '나'를 비우라는 것입니다. 

무아가 되라는 것입니다. 

왜 '나'를 비우라는 것인가?

'나' 때문에, 참된 나를 모르는 어리석음 [아집], 나에 대한 사랑[아애], 나의 교만[아만], 나의 고집[아견] 때문에 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영원 완성 조화 통일 성취가 가득한 '옴~'의 자리와 하나가 되지 못한 채 괴롭고 덧없고 슬프고 비참하게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고무풍선을 예로 들어 조금 더 쉽게 풀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허공처럼 탁 트인 대우주법계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습니까? 허공에 떠 있는 고무풍선처럼 존재하고 있습니다. 자아의 고무풍선이 되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로 삼고 있는 자아! 그 자아는 스스로가 '나'에 대한 사랑으로 정립한 '나'요, 

주관과 망상과 어리석음으로 만든 '나'일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거짓 자아 속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가 불어 만든

특정한 형태의 고무풍선 속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과연 고무풍선 속의 세계가 자유롭습니까? 갇혀 있으니 자유롭지 못할 뿐 아니라 

두렵고도 불안합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상처를 잘 입고, 혼자만의 공상과 망상이 많을 수밖에

하지만 그 풍선 속의 세계를 우리는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풍선에 집착하여 '나'를 지키며 살고, 내 것을 고집하며 삽니다.

'풍선의 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풍선 속에서 계속 고집을 부리고 욕심을 부리며 

자아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풍선이 쪼그라들 때까지 

바둥거리며 살다가 이 생을 하직하고, 업을 따라 다음생에는 또 다른 풍선이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 보십시오.

풍선 안의 공기와 풍선 밖의 공기가 다른 것입니까? 풍선 안의 허공과 풍선 밖의 허공이 다른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풍선을 터트리면 어떻게 되는가?

터뜨리는 그 순간, 풍선 속의 허공은 그냥 그대로 풍선 밖의 허공과 하나가 됩니다. 그 자리에서

곧바로 대우주법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가 되어 본체를 회복하고 영원한 생명력을 얻게 되면, 답답함  없이 자유롭고 

불안감 없이 평안하고 티 없이 맑은 본래의 삶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아모가', 곧

불공의 자리입니다. 

불공은 빈 것이 아니라 꽉 차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꽉 차 있는가?

영원생명(상) 무한행복(락) 무애자재(아) 청정무구(정)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대자비 대지혜 대평화가 꽉 차 있습니다. 

'나'만 비우면, 자아의 고무풍선만 터트리면 '옴~~'의 아모가[불공]가 그대로 펼쳐지는 것이며

그래서 '바이로차나'라 한 것입니다. 


3. 바이로차나는 광명변조 변일체처라고 번역합니다. 법 진리 부처님 불공의 '옴~'은 

어디에나 어느 때에나 있는 것이며, 그 광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발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곧 광명변조의 비로자나부처님은 바로 이러한 법신불을 인격화한 것입니다.


원효대사께서는 대승기신론소에서 법신 그 자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 크나큰 지혜요 광명이며 [대지혜광명]

* 세상 모든 것을 남김없이 비추며 [변조법계]

* 참되게 아는 힘을 간직하고 있으며 [진실 식지]

* 맑고 깨끗한 마음을 본성으로 하고 있으며 [자성청정심]

* 영원하고 행복하고 자재하고 번뇌가 없으며 [상락아정]

* 인연에 따라 변동됨이 없이 스스로 존재한다 [청량불변]

     

  이와 같은 덕성을 갖춘 것이 법신입니다. 광명진언을 외우는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법신 비로자나불의 대지혜광명이 늘 우리를 비추고 있으며, 자아의 고무풍선을 터트린 우리 자체가

  '바이로차나'라는 것을!

  

4. 마하무드라의 마하는 대, 무드라는 '도장 인'이므로 '대인'으로 번역됩니다. 

대인은 대우주의 도장입니다. 진리의 도장입니다. 이 도장은 '아주 결정적인 것'

이어서 '결코 변동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임금의 도장인 옥새가

찍히면 그 문서는 그 나라 어디에서나 통용됩니다. 

그리고 절대적인 권위를 지닙니다. 

그런데 대우주의 도장이요 진리의 도장인 마하무드라가 찍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녕코 영원불변의 효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곧 이제까지 살펴본 영원불멸, 진리, 성취등의 '옴~'과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아모가', 그리고 어디에나 '법신불의 광명이 두루 하다(바이로차나)는 것이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는 것을 '마하무드라'로 다시금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5. 마니는 마니보주로서,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대로 이루어 준다고 하여 여의보주라고도 하며

모든 불행과 재난을 없애주고 탁한 물을 맑힌다고 하여 수청주라고도 합니다. 

이 보주는 무색투명하여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붉은 것이 오면 붉은색을 나타내고

푸른 것이 오면 푸른색을 띱니다. 하지만 그 색들이 가고 나면 조금도 물듦이 없이 

무색투명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6. 파드마는 연화 곧 연꽃입니다. 

진흙탕 속에서 자라나지만 물들지 않은 처염상정의 꽃입니다

잡되고 혼탁한 속세에 있으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청정함을 유지하는

'참된 나'를 상징화하고 있습니다. 


7. 즈바라는 광명입니다. 생사윤회의 원인인 미혹의 어둠을 한 순간에 없애주는 대광명입니다. 

                   

이제 5.마니  6.파드마 7.즈바라를 함께 묶어 이야기하겠습니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관찰할 때 한 가지 측면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세 가지 측면에서 관찰하고 이야기합니다. 

그 셋이 무엇인가? 체와 상과 용입니다. 


이 중 체는 본질, 본체, 근원, 근본 등을 뜻하며 

상은 나타나 있는 모습을 

용은 작용이나 능력을 가리킵니다. 

                

우리 인간을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반드시 체 상 용이 있습니다. 

체 상 용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연 체 상 용이란 어떤 것인가? 예를 들겠습니다. 


옆에 시계가 있다면 그 시계를 바라보십시오 보이십니까?

'나'의 눈으로 보는 시계의 모습이 바로 상입니다. 

그 시계의 용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시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렇듯 시계의 상과 작용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시계의 체는 무엇인가? 

체는 그와 같은 시계의 모습을 낳게 하고 시간을 알게 하는 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해준 근원이요 

근본입니다. 그렇다면 체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그 시계를 만들어 낸 사람의 '아이디어'입니다. 

시간을 알 수 있게 하는 작용을 표출시키기 위해 여러 부품들을 조합하여 

지금의 시계 모양으로 만들어 낸 발명가의 아이디어가 그 체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이디어는 마음입니다. 발명가의 마음이 시계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볼펜도 마찬가지요 물컵도 안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이런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요러한 모양으로 만들면 되겠다'라고 아이디어 즉 마음

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상과 용은 반드시 체를 따라 이루어집니다. 

체를 떠나서는 상과 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체는 보이지 않습니다. 

상과 용은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지만 체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체는 언제나 상과 용의 밑바닥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5,마니 6.파드마 7.즈바라로 돌아갑시다. 

 우리의 체인 근본마음 깨달음의 마음 참된 마음은 마니보주와 같습니다. 

 이것이 있어 무엇이든 뜻과 같이 이룰 수 있습니다. 또 남자의 업이 다가오면

 남자의 속에 숨고, 여자의 업이 다가오면 여자 속에 숨습니다. 

 그러나 남자도 여자도 가고 나면 원래의 무색투명한 마니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참된 마음, 근본 마음의 모습은 어떠한가?

    연꽃(파드마)과 같습니다. 어떠한 세파 속에 있을지라도 오염되지  않고

    늘 깨끗한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맑디 맑은 본래 마음의 본모습입니다.

    이 마니보주에서는 빛, 곧 광명(즈바라)을 뿜어냅니다. 모든 무명과 미혹을

    밝음과 지혜로 바꾸어놓는 대광명을 발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우리의 참된 마음의 작용입니다. 

    이제 광명진언을 외우는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광명진언을 외우고 있는 내가 바로 여의보주(마니)요 연꽃(파드마)이요 광명(즈바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는 것입니다. 

    나는 모든 것을 뜻과 같이 이룰 수 있는 여의보주를 지니고 있어 능히 맑히고 밝힐 수 있다는 것

    나는 생사의 탁류 속에서도 고요하고 맑은 연꽃과 같은 모습을 갖추고 살겠다는 것

    나는 대광명을 발하여 나와 모든 이의 미혹을 지혜로 바꾸어 놓고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8. 프라바릍타야는 전변 한다는 뜻입니다. 

    나의 본심 보리심 진심 일심을 개발하여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9. 훔은 완성 성취의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미혹과 더러움을 벗어나 청정과 밝음을 이루고 본심 보리심 진심을 회복해 가졌다.'로 해석하면 됩니다. 

이상의 아홉 가지 단어를 하나로 연결시켜 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이 대법계에는 어디에나 어느 때에나 영원 완성 조화 통일 진실 행복 자유 그 자체인 법신불의 결정적인

광명이 가득하며, 나 또한 마니요, 연꽃이요, 광명의 존재이다. 이제 부처님의 대자비 광명 속에서

참된 나의 체 상 용을 개발하여 생사윤회 세계를 벗어나 참다운 깨달음을 성취하노라."

다소 복잡하지만 광명진언의 뜻이 이러하다는 것을 대충이라도 새겨 두실 것을 청합니다.

뜻을 대충이라도 알면 마음이 잘 모여 훨씬 기도의 성취가 빠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 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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