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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Sep 28. 2023

시를 쓰는 제주 소년과 아버지처럼

당신에게 보냅니다 03



우리도 언젠가는 꼭 만날 수 있으리라



시를 쓰는 제주 소년을 보았다 동시집 <약속>을 발행한 민시우 시인을 보았다 애월에서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하였다 엄마는 몇 년 전에 폐암으로 죽었고 아빠와 함께 시도 쓰고 영화도 만들면서 살고 있다고 하였다 죽은 엄마와 잘 헤어지면서 또한 깊이 그리워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였다 우연히 유튜브로 보았는데 얼마 전에 방영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었다 시 쓰는 제주 소년, 시우와 시우 아빠 이야기, 자연의 감정을 담다, 자연의 철학자들, 다큐멘터리 영화 <약속>, 마음의 스위치를 켜면, 시집 <약속>, 영화 <기적>, 영화감독 민병훈, 방선문, 자연세트장, 민시우 시인, 민병훈 감독, 영화를 찍는 것이 삶이 아니라 절실한 삶이 아름다운 영화가 되길 바란다, 자연을 기록하는 영화, 이런 메모를 하면서 보았다


동시집 '약속'(가쎄)은 엄마를 잃은 아홉 살 소년이 그리움을 모아 묶은 책이라고 한다 현재 제주 장전초 4학년에 재학 중인 민시우 군이 5년 전 갑작스럽게 떠난 엄마에 대하여 쓴 일기이자 시이고 편지라고 한다 아, 애월 장전이로구나 문태준 시인이 살고 있는 바로 그 마을, 내가 며칠 전에 다녀온 바로 그 아름다운 마을....,


인터넷으로 더 찾아보니 11월에 영화 <약속>을 개봉한다고 한다 시네아스트 민병훈의 열한 번째 장편영화 ‘약속’(Promise)이 공식 보도스틸을 공개했다고 한다 ‘약속’은 천국의 엄마에게 보내는 아홉 살 소년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러브레터라고 한다 지난 8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시 쓰는 제주 소년’ 민시우가 주인공인 작품으로, ‘포도나무를 베어라’ ‘터치’ ‘사랑이 이긴다’의 민병훈 감독이 엄마와 헤어지게 된 아들 시우와 자신의 일 년 여의 시간을 꾸밈없이 담은 작품이라고 한다


민병훈 감독은 ‘벌이 날다’로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파노라마 부문에 첫 초청된 이래 ‘괜찮아, 울지 마’ ‘포도나무를 베어라’ ‘터치’ ‘사랑이 이긴다’ ‘황제’까지 여섯 차례 초청받았으며 ‘약속’은 그의 일곱 번째 공식 초청작이라고 한다


공개된 ‘약속’ 보도스틸은 제주의 사계절을 누비는 주인공 민시우와 아빠 민병훈 감독이 다채롭게 담겨 있다고 한다 낮에는 아빠와 함께 숲, 바다, 오름 등 제주 자연 곳곳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추억을 쌓고, 저녁에는 엄마를 회상하며 사랑을 담아 시를 쓰는 민시우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고 한다 특히 엄마와의, 아내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와 영화라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엄마를, 아내를 애도하고 그리워하는 부자의 모습은 소중한 사람의 상실을 통해 아픔을 겪었던 혹은 겪을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느끼게 한다고 한다


천국의 엄마에게 보내는 아홉 살 소년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러브레터이자, 올가을 세상을 안아줄 단 하나의 이터널 힐링시네마 ‘약속’은 11월 극장에서 개봉을 한다고 한다



어느 시인의 눈썹달과 별 하나



발전소에서 야간근무 하면서 두 시인을 만났다 별빛을 만들면서 시인을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보고 들었다 대구문학관에서 개최한 '문학, 꽃피다'를 뒤늦게 유튜브로 만나서 재미있게 보았다 문태준 시인과 김민정 시인을 연속해서 듣고 보았다 그런데 아, 김민정 시인이 그만 느닷없이 가슴속에 들어앉고 말았다 얼핏 잠이 들었는데, 꿈속까지 따라서 들어오고 말았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아침은 오고, 발전소의 하늘에 달이 떠 있다 시인의 눈썹 한쪽이 걸려 있다 벌써 아침인데 반도 가지 못했다 이제 막 월라봉을 벗어나 산방산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바다의 방에도, 산의 방에도 가려면  서둘러야만 하겠다 화순항에는 아침에도 등대불빛이 반짝이고 눈썹달 오른쪽 아래에는 별 하나 깜박인다



모르는 당신에게 나는 간다



나는 김민정 시인을 모른다 김민정 시인은 문학동네시인선 총괄 편집자라고 한다 또한 난다 출판사 대표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책 출판에 대한 열정과 능력이 빛나는 누나 같다 아, 우리나라 문학동네는 이렇게 굴러가는구나 자신의 건강도 돌보지 못하면서 시인들을 뒷바라지하는구나 참으로 존경스러운 마당발이 우리 문학을 이렇게 살찌게 하는구나 나도 이제 그에게로 가고 싶다 나도 이제 문학동네에 가서 아름다운 시인이 되고 싶다 나는 이제 겨우 우리들의 문학동네를 읽는다 나는 이제 겨우 김민정 시인을 거꾸로 읽는다 이어도서천꽃밭에서 김민정 시인의 시를 읽는다 창문 밖으로 호박과 호박잎이 보인다 올해는 호박을 많이 심지 못했다 올해는 호박잎을 너무 많이 먹어서 호박이 많이 열리지 않았다 열린 애기 호박도 잎을 잃고 울면서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내년에는 호박을 더욱 잘 심어서 호박잎을 많이 먹어도 호박이 잘 열리고 더욱 잘 자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그의 최근의 시집을 읽고 쪽파를 심는다 대가 끊겼다며 아들 타령을 하는 조선시대를 생각하며 씨를 심는다 방치해 둔 쪽파에서 싹이 돋아나서 나도 샤프란 옆에 심는다 숨어있던 꽃무릇 옆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처럼 파를 심는다 



책 만드는 여자



책 만드는 여자 김민정 시인이 아름답다 그가 인스타그램을 한다기에 나도 가입했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난다 출판사의 홈페이지처럼 운영되는 듯하다 세상은 바뀌고 윤전기도 바뀌고 있는 듯하다 대형 인쇄기가 막 토해놓은 원판을 본다 따뜻한 종이에 들어앉은 글자와 그림을 본다 종이에 숨결을 불어넣는 시인이 아름답다 나무의 죽음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아름답다 죽은 나무에 버섯의 종균이라도 심는 듯, 돋보기를 들이대고 살펴보는 눈빛이 아름답다


<잘 줄은 알고 할 줄을 모르는 어떤 여자에 이르러>를 한 번 더 읽고 그녀의 산문집을 읽는다 폴란드의 화가 빌헬름 사스날의 담배 피우는 소녀(앙카) 그림이 잘 어울린다 <<각설하고,>> 화가는 아내의 그림을 그렸다는데 김민정 시인의 인상과 잘 어울린다 어쩌면 이 그림을 보고 머리 스타일을 맞춘 것처럼 닮았다 김민정 시인이 담배를 피우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인쇄된 원본을 감리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버섯에 대하여 생각한다 버섯은 음지에서 잘 산다 버섯은 그늘을 먹고 산다 버섯은 죽음을 먹고 산다 내 몸에도 내 마음속에도 버섯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나의 죽음은 어떤 버섯을 키울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버섯들을 보면서 이름을 불러본다


양송이, 느타리버섯, 표고, 먹물버섯, 광대버섯, 무당버섯, 치마버섯, 환각성 버섯, 그물버섯,  영지버섯류, 말굽버섯류, 구름버섯류, 구멍장이 버섯, 싸리버섯, 말징버섯, 말불버섯, 방귀버섯, 말뚝버섯, 망태버섯, 찻잔버섯, 붉은알버섯, 목이목, 붉은목이류, 흰목이류,  곰보버섯, 덩이버섯, 들주발버섯, 털작은입술잔버섯, 안장버섯, 팽이버섯, 노루궁뎅이버섯, 잎새버섯, 송이, 덩이버섯, 곰보버섯, 복령, 영지, 상황버섯, 동충하초, 운지버섯, 독우산광대버섯, 알광대버섯, 마귀광대버섯, 광대버섯, 흰땀버섯, 삿갓땀버섯.....,



나도 이제 책을 만들기 시작한다



책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편집자를 잘 만나야만 한다 편집자를 잘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원고가 좋아야 한다 좋은 원고를 쓰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기획이 있어야 한다 의미 있는 기획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신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생활을 단순화해야만 한다 생활을 단순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어떤 것들을 포기하고 어떤 것들에 집중할 것인가 결정해야만 한다 


나는 다시 생각하고 다시 쓴다 나도 이제 책을 만들기 시작한다 좋은 책을 만들려면, 좋은 편집자를 만나야 한다 좋은 편집자를 만나려면 좋은 글을 써야만 한다 좋은 글을 쓰려면 의미 있는 생각을 해야만 한다 의미 있는 생각을 하려면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 의미 있게 살려면 깊은 명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깊은 명상을 하려면 많은 것들을 버려야만 한다 버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수양을 해야만 한다 수양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깊이 보아야 한다 자신을 깊이 보기 위해서는 진실이 배어야 한다 진실하게 살기 위해서는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솔직하게 말을 하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욕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하늘을 자주 봐야 한다 하늘을 보기 위해서는 부끄럽지 않아야만 한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하늘이 되어야만 한다 좋은 책을 만들려면 늘 푸른 하늘이 되어야 한다


이어도서천꽃밭에서 마라도와 형제섬을 본다 바다와 산방산을 보면서 무화괴나무 꺾꽂이를 한다 무궁화꽃과 칸나꽃이 한창인데, 봄도 아닌데 꺾꽂이를 한다 분꽃이 여러 가지 색으로 피어나는 가을인데 꺾꽂이를 한다 너무 무성하게 자란 무화과나무 가지를 잘라주면서, 줄기에 뿌리가 난 가지 몇 개를 잘라서 화분에 심는다 무화과나무 가지는 땅에 닿으면 그 가지에 뿌리가 나와 새로운 나무가 된다 이런 번식 방법을 휘묻이라고 하는데 봄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가을에 옮겨서 심는다 이제 살고 죽는 일은 하늘에 달려있다 나는 다만 살아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일만 남았다 나는 이렇게 철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좋은 책을 만들어야만 한다



나는 어떤 책을 먼저 만들까



시집은 일반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다 시가 너무 어려워져서 그런 것도 있다 요즘에는 시인들과 평론가들만 읽는다 물론 몇몇 시인들의 시집은 잘 읽는다 그렇다고 그 시인들처럼 쓰고 싶지 않다 또한 아직은 본격적으로 산문도 아니다 어쩌면 산문으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 바로 그 준비단계일수도 있으리라 형식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만의 형식을 찾아서 써볼 생각이다 나의 꿈과 나의 삶과 나의 글에 대하여 쓸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글을 <꿈삶글>이라고 진작부터 명명하였다 앞으로 내가 쓰는 <꿈삶글>을 독자 여러분들은 자유롭게 읽으면 된다 시로 읽어도 좋고 산문으로 읽어도 좋다 내가 나를 위하여 자유롭게 쓰듯이 독자 여러분들은 자신을 위하여 읽으면 된다 문제는 책 속에 담길 내용이 더욱 중요하다 어떤 내용의 마음을 담아서 책을 만들까 우선은 세상 사람들에게 나를 먼저 소개하자 나를 먼저 소개하고 본격적으로 <꿈삶글>을 쓰자 그것이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듯하다 어떤 경로를 통하여 책이 만들어지는지, 어떤 인연으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지, 작가와 편집자는 어떻게 협력을 하는지, 세상에 나온 책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직은 확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도 아직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모른다 다만, 이번에 낼 책은 소통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 그러려면 좀 쉽게 써야만 하겠다는 큰 다짐, 읽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 내가 쓰는 글들은 먼저 나 자신을 위해서 쓴다 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반성하고 계획한다 그런 나의 모습과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시는 독자 여러분들도 자신의 거울을 볼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들이 함께 사는 우리들의 세상이 좀 더 의미 있고 좀 더 아름다워질 수 있기를, 이런 생각을 하는데 포도잎이 사라지고 없다 이번이 몇 번째인가, 자라면 없어지는 포도잎, 다시 기운을 차리고 겨우 또다시 새 잎을 내는 포도나무, 한 번 더 생각하니 너무 깊은 그늘에 심은 것 같아서 햇빛을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옮긴다 



포도잎을 좋아하는 벌레를 찾아라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잘 자라지 못한다 포도잎이 피어서 햇빛을 먹고 자라려고 하는데 번번이 어느 날 밤에 기습하여 포도잎을 먹는다 아침에 찾아가서 살펴보면 벌써 내빼고 없다 나에게 잡히기만 해 봐라, 가만 두지 않겠다 아, 그러나 어쩌랴 포도의 잎이 많지 않아서, 나처럼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서, 그놈도 지금쯤 쫄쫄 굶어서 침대에 누워 있으리라


어쩌면 이번에 만들 책은 포도 같은, 아니 포도잎 같은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마도 햇빛을 가슴 가득 담아놓은 포도가 달듯이 포도잎도 빛나는 햇빛을 가득 품고 있으리라 그리하여 많은 벌레들이 다디단 포도잎부터 저렇게 싹싹 갉아먹고 있으리라 세상에는 그렇게 달고 맛있는 것들을 좋아하는 벌레와 사람이 있다 나도 어쩌면 눈물주머니보다 햇빛주머니를 더 좋아하는 듯하다


줄박각시나방벌레 한 마리 오늘도 포도나무에 숨어서 꿈을 꾸기 시작한다



문태준 시인을 만나 핑크뮬리로 피었다



안덕산방도서관에서 문태준 시인을 만났다 <생명 세계와 나의 시>라는 강의를 들었다 애월에서 살면서 느낀 것들을 주로 말했다 시인 자신의 손바닥만 한 수첩을 보여주었다 시어 모집 수첩을 보여주었다 시인의 재산목록 1호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시를 한 번 쓰면 거의 고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퇴고 없는 시 쓰기에 대하여 다시 생각한다 그만큼 쓰기 전에 오래도록 익혀서 쓴다는 말일 것이다 시어 수집 수첩, 시간 저장 수첩, 기억 저장소, 거기에서 잘 발효되어 맛있는 시가 빚어질 것이다


시에 묻혀 사는 삶, 시에 젖어 사는 삶, 시에 피어 사는 삶, 시가 되어 사는 삶, 나도 이제부터 그렇게 살아야만 할 것이다


나의 뒤통수를 꽝, 때리는 망치가 있다


어느 해 여름방학 때 70권의 시집을 집중적으로 읽고 시의 눈을 뜨게 되었다는 시의 새싹, 선배 박정대 시인이 자신의 시를 태웠다는 죽비, 군대에서 시를 읽기 위하여 몰래 가져간 시집, 시집을 분해하여 낱장으로 온몸에 숨겨갔다는 시에 대한 열정, 이성복 시인의 시집 <그 여름의 끝>은 흙탕물에 젖어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는 사연....,


그리고 육조 혜능 선사의 게송이 자신을 불교방송에 입사하게 만들었고 불교와의 아름다운 인연, 들으면 들을수록 나의 정서와 너무나 닮아있는 그의 추억과 삶에 대한 인식, 하지만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너무나 큰 반성과 새로운 각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네.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오."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라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 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


아, 나는 이렇게 운명적인 문태준 시인을 만나고 핑크뮬리로 피었다

도서관에서 가까운 마노르블랑 카페로 가서 가을 바다를 보며 하늘이 되었다



이어도서천꽃밭에서 외도로, 외도에서 애월로

― 문태준 시인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오롬마르로 간다



이어도서천꽃밭에서 외도로 흘러서 왔다 이어주지 못하고 혼자가 되었다 외도에서 애월의 오롬마르 간다 문태준 시인 보려고 찾아서 간다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에게 간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외도에서 장전리는 십오 분 지척, 걸어서 간다면 한 시간 사십 분, 오늘은 비가 오락가락 바퀴로 간다 외도에서 외도를 찾아서 애월 간다 내도로 다니던 발길이 장전리 간다 제주시 애월읍 장전리 110-5번지, 주차장 화살표 따라가면 언덕이다 낮은 언덕 위에 오롬마르 숨어있다 우산을 쓰고 넓은 잔디밭을 지나서 옥상으로 올라간다 풀향이 뒤따른다 내가 좋아하는 옥상이 여기도 환하다 바다 건너 섬인지 남해안인지 보인다 애월 중산간 옥상에서 저 너머가 보인다 자갈이  깔린 옥상에서 파도소리 들린다 바깥 먼저 둘러보고 안으로 들어간다 깊은 곳까지 참 많은 사람들 찾아왔다 여기서 태어났다는 미인에게 묻는다 문태준 시인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주말에만 있다는 시인은 낮잠을 잔단다 조금 전까지 잔디를 깎고 잠이 들었단다 카페 바로 아래 살림집에서 꿈꾸고 있단다 옥상까지 따라갔던 풀향이 시인의 땀이었구나 시인은 주말에도 저렇게 부지런하구나 나는 시인의 책과 풀향기 입고 돌아온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그래, 나도 이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어야만 하리라 



나도 이제부터 다시 시인으로 살아야만 하리라

― 다시 시인으로 살기 위하여 나는 무엇부터 해야만 할까



나는 너무 이어도에서만 갇혀 살았다 누가 나를 이어도에 가두었던 것일까 왜 나는 스스로 이어도가 되었던 것일까 왜 나는 사랑을 잃고 시인을 포기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길은 시인의 길이다 그래, 이제 다시 시인의 길로 돌아서 가자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에움길로 가자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무릎이 깨져도 내가 가야만 할 나의 길을 회피하지 말자 당당하게 출사표를 다시 한번 던지고 나는 다시 이제부터 시인으로 산다 나는 이제 끝까지 시인으로 살고 싶다 시는 사랑이 없으면 쓸 수 없다 나는 이제 끝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랑하자 세상이 아무리 나를 속일지라도 나는 끝까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자 시는 행과 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는 행해야만 한다 걸어가야만 한다 걸어가서 연을 이루어야만 한다 시는 걸어가서 인연을 쌓아야만 한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다른 시인들은 저렇게 많은 상을 받았는데 나는 지금껏 밥상이나 받으며 살았구나 오랜만에 외도 거실에서 시인을 본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어주니 외도에도 도시가스가 들어온다고 보일러와 계량기를 바꾸고 돌아간다 가스레인지는 인덕션으로 바꾼 지 오래전, 가스레인지 바꾸러 온 사람을 돌려보내고 인덕션을 보며 생각한다 아, 그동안 내가 만든 전기가 밥상을 차렸구나 오늘은 발전소 동료들 생각하며 불을 켠다 지금껏 받아먹기만 했던 밥상을 차려본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상은 밥상이었구나



서쪽에서 서쪽으로



곽재구 시인을 보다가 늦은 밤 산책을 나간다 월대천 징검다리에서 휴대폰을 잃었다는 사람, 밀려오는 파도를 들여다보는 눈빛이 간절하다 물고기는 누구에게 소식 전하려고 가져갔을까 물고기는 지금 휴대폰으로 어디에 소식을 전하고 있을까


내도 알작지 산책길에 뒤뚱뒤뚱 흰 곰 한 마리, 흰 양 한 마리, 걸어간다 가까이 가서 보니 곰도 아니고 양도 아니고 커다란 흰색 개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썰매를 끄는 사모예드라는 개란다 썰매를 끌던 개가 어찌하여 저렇게 끌려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어찌하여 썰매를 끌지 못하고 세상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는 것일까


시인의 사평역을 생각하며 포구로 간다 이호테우해수욕장 곁에 있는 포구에서 배에 불을 켜놓고 긴 줄을 바닥에서 감는다 삼베 실에 풀을 먹이려고 길게 펼쳐놓은 것처럼 방파제 끝에서 끝으로 왔다 갔다 하며 줄을 감는다 배의 주인인 듯 한 부부와 딸이 밤을 가다듬는다 어디에 쓰는 줄이냐고 물으니 낙하산줄이란다


나는 이호포구와 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전시용 테우에 앉아서 휴대폰 메모장에 받아 적는다 반짝이는 등대 불빛과 수평선 불빛과 방파제 보안등 불빛과 함께 바다새 소리를 받아서 적는다


내 가슴속 해변의 모래밭을 파도가 적신다 토란꽃이 피고 고구마꽃이 피는 계절에 파도가 조용히 와서 물결무늬를 새기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서쪽에서 서쪽으로 간다 와온포구에서 갯벌에 번지는 노을이 나에게 온다 와온포구와 갯벌을 생각하며 곽재구 시인을 다시 생각한다 곽재구 시인은 왜 그렇게 자신의 외모에 대하여 콤플렉스가 갖게 되었을까 어느 독자의 말 한마디에 왜 그렇게 큰 상처를 받고 숨어서 살고 있을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게 훌륭한 시인이 왜 그렇게 사소한 것에 위축되어 있을까 곽재구 시인께서 좀 더 어깨를 활짝 펴고 살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나만의 글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나만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는 나만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어도서천꽃밭에서 피는 꽃부터 호명하기 시작한다



시를 쓰고 시를 발표해야 시인이다



시인은 합격증도 아니고 자격증도 아니다 시인은 시를 쓰고 시를 발표해야만 시인이다 나도 이제는 다시 시인으로 살기 시작한다 물론, 아직은 시인으로 사는 시간이 많지 않다 시인도 생활인이므로 생존과 꿈을 겸해야만 한다 아직은 시만 쓰고는 살 수 없으므로 함께 한다 다만, 시인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많아지기를, 그리고 종내에는 오직 시만 쓸 수 있기를....,


하지만 나는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쉬었다 아니, 처음부터 문단활동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나는 아직 발표할 곳이 많지 않다 발표보다는 우선 새롭고 참신한 작품을 써야 한다 나는 바닥부터 새로 시작할 각오가 되어 있다 기회가 된다면 어디라도 발표를 시작할 것이다 아직은 인적 네트워크가 아주 미약한 상태에 있다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을 작정이다 멀리, 오래, 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천천히 가야 한다


이번에 시산맥사 대표 문정영 시인의 권유로 월간 모던포엠 10월호에 신작 시 2편 발표한다 아마 지금쯤 인쇄가 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아직 모던포엠을 잘 모른다 인연을 믿는다



아침부터 속이 터진다



이어도서천꽃밭 입구에 꿈순이와 꿈돌이가 있다 나는 아직도 함께 잠을 자는 애완견으로 키우지 못하고 집을 지켜주는 문지기로 키우고 있다 개는 개처럼 키우고 싶다 조금만 더 자라면 둘을 결혼시켜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요즘 꿈순이 마음이 뒤숭숭한 듯, 수상하다 언제부터인가 불한당 같은 견공 한 마리 자꾸만 밤낮으로 꿈순이 곁을 맴돌기 시작한다 오늘은 새벽부터 꿈순이를 범하려는 게 아닌가, 아이고 이러다 큰 일 나겠다 안 되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꿈순이와 꿈돌이를 결혼시키기로 한다 


꿈돌이 목줄을 풀어 꿈순이 방에서 합방을 시킨다 오랫동안 서로를 지켜보았던 둘은 금방 몸이 달아올라 합방에 성공을 한다 나는 결혼기념사진이라도 찍어두려고 심재산방 원두막으로 휴대폰을 가지러 간다 그러나 아, 그 짧은 사이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불한당이 쳐들어와 맹렬하게 짖어대는 바람에 꿈돌이와 꿈순이의 사랑의 고리는 빠지고 말았다 꿈돌이의 경험 부족으로, 너무나 서툰 사랑으로, 사랑하는 마음의 고리가 너무 헐거웠던 것이리라 아, 한반도의 가엾은 운명처럼, 근친상간처럼, 한 번 사랑에 실패한 꿈돌이는 더 이상 사랑에는 관심이 없이 거드름만 피웠다 꿈순이가 다시 사랑의 불씨를 살려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한 번 식어버린 사랑은 깜깜해졌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은 안 되겠다 싶어서 꿈돌이를 다시 개줄에 묶고 방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꿈돌이의 다급하고 슬픈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짧은 순간에 불한당이 맹렬하게 쳐들어와 꿈순이를 범하고 말았다 아마도 그 불한당은 경험이 많았으리라 꿈돌이가 아무리 짖고 난리부르스를 춰도 강력한 힘으로 한 번 불륜으로 결합된 사랑의 고리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지켜보던 분꽃들도 고개를 돌리고 태양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자꾸만 그 불한당이 미국과 일본으로 보이는 것일까 왜 자꾸만 꿈돌이와 꿈순이의 모습이 남한과 북한의 운명과 겹쳐져서 보이는 것일까



이어도문학관 건립을 위하여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가 너무 멀어서 일반인들이 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라도 혹은 서귀포시 이어도로 앞바다에 과학기지 모양의 건물을 지어서 이어도문학관을 만들고, 그 안에 방을 만들어서 이어도창작실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습니다 서귀포시와 이어도문학회에서 힘을 합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의견 많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마라도 남쪽 대한민국 최남단 표지석 앞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최남단은 마라도가 아니라 이어도임을 알릴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중국이 호시탐탐 노리는 이어도는 동해의 독도와 함께 매우 중요한 우리나라의 영토입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나라 국민들이 먼저 알아야만 합니다 이어도문학관은 이어도 국토수호 차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해양문학과 절대 고독을 체험할 수 있는 최적의 문학관과 창작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마라도 남쪽에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모양의 건물이 들어선다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서귀포시에 도로명주소 '이어도로'가 있습니다 서귀포혁신도시에서 중문관광단지까지 꽤 넓고 긴 도로가 바로 '이어도로'입니다 태평양을 비롯하여 많은 바다에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만들어지고 기후 위기 때문에 우리들의 어머니인 지구가 많이 아픕니다 인류의 평화와 공존을 위하여 이어도는 지금도 불철주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2003년 6월에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완공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올해로 딱 20년이 되었습니다 청년이 되었습니다 올 연말에 이어도문학 제4호가 발행될 예정입니다 이곳에 원고를 보냈습니다 지금 많은 원고들이 접수되고 있습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닭은 낮에 낳고 오리는 밤에 낳는다



닭은 낮에 알을 낳고 오리는 밤에 알을 낳는다 새벽에 닭이 울었다 오리는 밤에 알을 낳았고, 하늘은 아침에 알을 낳았다 하늘이 낳은 구름알 속에서 태양이 꿈틀거리고 있다 부리로 알 껍질을 깨고 있다 껍데기가 부서지고, 젖은 날개를 펴고 있다 구름알이 보이지 않게 되니, 닭은 알을 낳으려고 들어가고, 밤에 알을 낳지 않은 오리는, 강가 풀숲에 몰래 숨겨놓은 알을 품으려고 나간다


또 다른 닭 한 마리, 달걀을 품으려고 돌아왔다 오리알을 품으려고 돌아왔다 내가 낳았던 알 하나, 내가 품었던 알 하나, 어미 닭이 되어 돌아왔다


그런데 저 닭 한 마리 수상하다 저 닭이 요즘 어디에 숨어서 알을 낳는 것일까? 오늘 딱 걸렸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내가 매일 앉아 쉬는 원두막 평상 밑에 알을 숨겨놓았다


미안하다 닭아, 너도 너의 병아리를 낳고 싶어서, 너도 너의 알을 품고 싶어서 그랬겠지, 너의 허락도 없이 너의 병아리를 너의 알들을 매일 내가 훔쳐서 먹었구나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시인을 알려면 그의 첫 시집부터 읽어야만 한다 문태준 시인을 읽다가 헉, 김민정 시인을 읽는다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를 읽다가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를 읽는다 재미있다 나는 시인들의 다양한 취향을 존중하고 응원한다 시인이 되고 싶은 습작생들은 꼭 읽어야만 할 책이다 신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실험정신과 자기의 목소리를 찾기 위한 여정, 그리하여 나는 앞으로 김민정 시인의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를 강력하게 추천할 것이다 진정으로 그대가 시인이 되고 싶다면, 기존에 시라고 생각했던 시들을 깨부수어야만 한다 철저히 그리고 과감하게 박살내고 새로워져야만 한다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과 엽기적이며 괴상망측한 것들까지, 과감하게 수용하고 자기 검열까지 완전히 해방시켜야만 한다


그래야만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발한 상상력이 발동한다 이러한 시를 쓰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 소모가 뒤따른다 완전히 시에 미치지 않으면 도저히 이런 시들은 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런 시들과 이런 시인들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접신에 이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도한 집중력과 감정의 폭발,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심연에서, 어렵게 그리고 가열차게 건져 올리는 다양한 이미지들의 향연,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인간 본성을 건드리는 예민한 촉수, 우리  인간의 본능과 근본 바탕을 보여주는 신비한 거울 같은 빛들,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혁명, 사실적인 입말의 구체적인 도입, 나도 한 때 이런 시들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체력으로는 끝까지 끌고 갈 수 없어서 포기를 했다 그리하여 나는 끝까지 밀고 갈 수 있는 용기와 담력과 체력을 겸비한 이런 용감한 시인들에게는 무한한 존경과 경의를 표하고 싶다 무당이나 신들린 사람처럼 빙의에 들어가지 못하면 쓸 수 없는 시들, 그리하여 나는 그저 고만고만한 시인들보다, 이런 기발하고 용기 있는 시인들을 더욱 존경하고 응원하는 사람이다 이런 시인들이 더욱 많아져야 우리 한국문단이 더욱 활력적이고, 서로에게 충격과 반응을 줄 수 있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시들은 아무나 쓸 수 없다 나 또한 끝까지 밀고 갈 수 없었다 나는 나의 체력을 잘 알기에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영혼과 추진력이 한없이 부럽다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에 주눅이 들기도 한다 그리하여 나는 문태준 시인도 좋아하지만 김민정 시인을 더욱 좋아한다 폴짝폴짝 뛰고 통통통 똥똥똥 튀어 오르는 감각과 감정이, 우리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더욱 창조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거추장스러운 가식을 걷어내고 맨 얼굴과 맨 마음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자기 검열을 통하여 굴절시키지 않는, 이런 곧은 시들, 앞으로만 무작정 달려가는 무모한 시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이런 시들은 또한 오직 시 자체에만 몰입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시를 위한 시의 순교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뮤즈에게 선택받은 시인만이 쓸 수 있는 시들이다 눈부신 상상력과 상상력의 무지개가 더욱 밝게 빛나야만 한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폭포 같은 입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유유히 흐르는 윤슬 같은 리듬감이 참으로 황홀하다 화산폭발처럼 뜨거운 용암을 뿜어내는 감정의 용솟음, 뜨거운 용암이 흘러내리며 모든 것들을 태워버린다 그렇게 가혹하게 새로운 돌의 길을 만드는 무자비한 폐허와 창조, 허상을 버리고 진실을 찾기 위하여 순교를 각오한 시 쓰기, 그리고 은근히 시인의 순교를 강요하는 일부 평론가들의 부추김, 이런 복잡하고 유기적인 관계에 의해서만 이런 시들은 탄생할 수 있고, 어쩌면 다시 한번 분명하게 말하지만 신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나는 날이 갈수록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와 나나가 좋아지고 있다



돌 속의 당신을 부른다



돌 속에 당신이 있었다

돌 속에 바다가 있었다

오래도록 꿈을 꾼 우리,

돌 밖으로 나와 그립다



돌과 사람



겨울에는 눈사람

봄날에는 꽃사람

여름에는 돌사람

가을에는 잎사랑

지수화풍 내 사랑 

행주좌와어묵동정



나는 이제 서귀포를 노래한다



나는 지금까지 너무 이어도에서만 살았다

너무 좁고 답답한 이어도에 갇혀서 살았다

나는 이제 다시 서서히 세상으로 돌아온다

섬들의 징검다리 건너 오니 서귀포가 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너의 마음 위에 나의 마음을 올린다

나의 마음 위에 너의 마음을 올린다

우리는 한 몸으로 푸른 하늘 오른다



노인성이 유숙하는 섬



서귀포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서귀포혁신도시에서 중문관광단지까지

이어도 길을 걷다가 태평양으로 간다

설문대할망의 막내아들을 만나러 간다

남극노인성이 유숙하는 이어도로 간다 


바다를 본다 바다 해(海) 글자를 본다

인간들의 욕망이 낳은 쓰레기들의 섬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욕망들의 얼굴, 


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가 아프다

아픈 어머니에게 방사능 오염수까지 먹인다

태평양의 수평선이 트로이목마를 끌고 온다

북극곰의 신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바다와 하늘이 함께 뜨거워지고 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막내아들이 

뜨거운 어머니 이마에 물수건을 올린다

유숙하던 노인성도 곁에서 돕는다

서천꽃밭 꽃감관도 불사화를 가져온다 


용궁으로 가는 올레에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노랫소리 들려온다 하늘에는 서천꽃밭이 있고 땅에는 마고성이 있고 바다에는 이어도가 있다


어머니를 살리려고 노인성과 꽃감관도 떠나지 못한다



서귀포 노래



아름다운 서귀포 칠십리를 아시나요

일출봉에서 송악산까지 서귀포의 희망을 아시나요

이중섭이 사랑하는 서귀포 앞바다 섶섬을 아시나요

제주올레가 시작되는 성산포를 아시나요

서귀포 칠십리와 서귀포 백사십리를 당신은 혹시 아시나요

서귀포 앞바다에 떠 있는 범섬 문섬 섶섬 새섬

지귀도 서건도 가파도 마라도 형제섬을 당신은 아시나요

폭포의 고향 서귀포를 아시나요

천지연폭포 천제연폭포 정방폭포 소정방폭포 엉또폭포

돈내코의 원앙폭포까지 당신은 혹시라도 알고 있나요

서귀포의 목마르트르 이중섭거리를 당신은 아시나요

서귀포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들을 당신은 아시나요

맛있는 감귤을 낳는 서귀포의 감귤꽃 향기를 아시나요

바다와 잘 어우러진 서귀포의 아름다운 공원을 아시나요

자구리공원 걸매생태공원 칠십리시공원 정모시공원 

서복불로초공원까지 당신은 서귀포의 공원들을 아시나요

건천이 많은 제주도에 유수천이 많은 서귀포를 아시나요

예례천 중문천 회수천 악근천 연외천 영천 창고천 강정천

천지연폭포를 낳은 솜반천과 정방폭포를 낳은

동흥천과 정모시를 당신은 혹시 아시나요

서귀포의 돌담들을 당신은 아시나요

흑룡만리, 서귀포의 검은 용들을 당신은 아시나요

담장, 돌담, 밭담, 산담, 잣담, 원담을 아시나요

그 돌담에 숭숭 뚫린 바람의 길을 당신은 아시나요

구멍이 숭숭 뚫려 숨을 쉴 수 있는 사람들을 아시나요

빈틈이 많아서 더욱 아름다운 서귀포 사람들을 아시나요

꽃이 더욱 선명하게, 배경이 되어주는 검은 현무암을 아시나요

저 혼자 서쪽 노을 속으로 가지고 가는 사연들을 아시나요

한라산 동쪽 능선에 누워있는 설문대할망을 아시나요

설문대할망의 잠꼬대와 발놀이를 당신은 아시나요

서귀포 앞바다에 떠오르는 노인성을 아시나요

보면 오래 살 수 있다는 남극노인성, 목숨별, 수성(壽星)을 아시나요

용골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라는, 카노프스(Canopus)를 아시나요

사람이 죽었을 때 저승으로 인도하는 별, 북극성을 아시나요

살아있는 사람의 길흉화복과 무병장수를 주관하는 별, 노인성을 아시나요

남성리 마을 삼매봉 정상에 있는 남성정(南星亭)을 혹시 아시나요


서귀포의 사랑을 아시나요 서귀포의 눈물을 아시나요 서귀포의 예술을 아시나요 서귀포의 태평양을 아시나요 서귀포의 수평선을 아시나요 서귀포의 서천꽃밭을 아시나요 서귀포의 이어도를 아시나요 서귀포의 당신을 아시나요 서귀포의 저녁노을을 아시나요 서귀포의 서쪽을 아시나요 서귀포의 항구를 아시나요 서귀포의 시인을 아시나요 서귀포의 화가를 아시나요 서귀포의 음악을 아시나요 서귀포의 노래를 아시나요 서귀포의 그림자를 아시나요 서귀포의 무지개를 아시나요 서귀포의 노지문화를 아시나요 서귀포 105개 마을의 꿈과 희망을 당신은 아시나요


서귀포처럼 아름다운 당신은 혹시라도 이어도서천꽃밭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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