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쉼터 일기 9
정방폭포를 쓰기 시작한다. 정방폭포 이전과 이후를 쓰기 시작한다. 보이는 것들의 이전과 이후를 쓰기 시작한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 오래도록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오래도록 바라보고 메모를 하고 여러 각도에서 다시 바라보고 메모를 수정하고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드디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같은 것도 보는 시간에 따라서 달라진다. 기후 조건과 날씨 상태에 따라서 달라진다. 나는 결코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곳에서만 바라보지 않는다. 이번에 쓰기 시작하는 정방폭포도 그렇다. 나는 우선 정방폭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제주 4.3 당시에 정방폭포 절벽 위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해 보았다. 지금은 서복불로초공원이 근사하게 만들어져 있지만 그 당시에는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전분공장과 창고들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 내가 정방폭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서복 일행이 지나가면서 썼다는 서복과지 혹은 서복과차라는 글자를 찾아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정방폭포에 대하여 메모를 쓰기 시작한 것은 올해부터였다. 서귀포지역 최대 학살터였던 정방폭포에 올해 5월에 겨우 희생자 위령공간이 우여곡절 끝에 조성되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그 실체가 밝혀지기 위해서는 한 10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드디어 정방폭포를 쓰기 시작한다.
정방폭포는 천제연폭포, 천지연폭포와 더불어 제주도 3대 폭포라고 불린다. 높이 23m, 너비 8m에 깊이 5m에 달하며, 국내에선 유일한 뭍에서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다. 서귀포 시내에서 버스로 15분 거리에 있다. 입구의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하고 소나무가 있는 계단을 따라 5분 정도 내려오면, 햇빛이 비쳐 은하수 빛깔로 변하는 정방 폭포를 볼 수 있다. 멀리서도 시원한 폭포 소리가 들리고, 폭포 양쪽으로 주상절리가 잘 발달한 수직 암벽도 볼 수 있다. 한라산에서 내려와 서귀포 시내를 관통하고, 바다 앞으로 하얗게 떨지는 정방폭포의 모습은, 외국의 거대 폭포처럼 웅장하진 않지만,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단정하게 떨어지는 모습이 전통 수묵화를 감상하는 느낌을 준다.
1995년 제주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국가 명승 제43호로 승격되었다.
정방폭포의 한쪽 석벽에는 '서불과차'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과 다음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아주 옛날 중국 진시황은 세상을 모두 자기의 손아귀에 넣고 권세를 누리며 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그런데 그 부러울 것 없는 진시황에게도 어쩌지 못하는 고민이 있었으니, 그건 자신의 나이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왕으로서의 위엄이나 왜적을 막아내는 장수로서의 용맹스러움은 나무랄 데 없었으나 점점 늙고 쇠약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은 스스로도 어쩔 수 없음에 늘 진시황은 고민하였다. 늙지 않고 영생을 누리고 싶었던 진시황이 하루는 모든 신하를 불러 놓고 명을 내렸다.
“이 세상에서 불로장생 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자가 없느냐?” 서불이라는 꽤 많은 신하는 진시황의 앞으로 나서서 또박또박 그 물음에 대답을 하였다.
“소인이 듣기로는 저 동쪽 나라 작은 섬 영주라는 곳에는 영산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불로초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그곳에 가서 그 불로초를 캐오겠습니다.”
자신의 큰 소원이 이루어지게 된 진시황은 서불이 원하는 동남동녀 각 500명을 뽑아주고, 큰 배와 먹을 것을 잔뜩 내려주었다. 동쪽의 거친 바다를 건너오던 서불 일행은 깊은 바닷속 큰 용을 만나 큰 위기를 맞으나 서불의 쩌렁쩌렁한 호령으로 금방 물리쳤다. 제주에 도착하자 서불은 데리고 온 동남동녀 500쌍에게 제주의 영산 한라산에 가서 불로초를 캐오라고 명한다. 동남동녀 500쌍은 한라산에서 불로초를 찾아온 산을 헤매었지만 결국 불로초를 찾지 못하고, 한라산의 특이한 식물 시로미를 캔 뒤 정방폭포 서쪽 절벽에 ‘서불과지’라는 마애각을 남기고 서쪽으로 돌아갔다.
정방폭포 ‘소남머리’는 4.3 사건 당시 정보과에서 취조받은 주민들 중, 즉결처형 대상자들 대부분이 희생당한 곳이기도 하다. 흔히 정방폭포에서 희생당했다고 하는 희생자 대부분이 정방폭포 상당과 이어지는 이곳에서 총살당했다. ‘소남머리’는 동산에 소나무가 많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서귀중학교 학생이었던 송세종 씨는 "그때 당시 어디 여자인지는 모르지만, 도망가다가 절벽으로 떨어졌는데 노송에 걸렸어. 그 여자가 임신을 하고 있었지. 떨어지니까 군인들이, 이건 하늘이 도운 사람이라 해가지고 살려줬어. 사람 두 번 죽인다는 것이 없으니까. 나도 직접 눈으로 본 건 아니지만"이라고 회고했다. 서귀리 및 서귀면, 중문면 일대뿐만 아니라 남원면, 안덕면, 대정면, 표선면 주민에 이르기까지, 정방폭포 희생자들은 산남 지역 전체에 이른다.
<출처: 제주 4·3 연구소, 「4·3 유적 Ⅱ」(2008)>
산은 바다의 지붕 위에 떠 있고
바다는 산에서 내려온 물들의 집
수직은 수평 위에 서 있고
수평은 쓰러진 수직의 잔잔한 잠
산의 고향은 바다
바다의 고향은 산
하늘이 수직으로 떨어져
단애 아래 수평으로 걷는다
산은 바닥에서 다시 출발하고
바다는 또 하늘에서 내려온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목숨들
날아오르지 못하는 날개들
바닥이 너무 깊이 젖어
일어서지 못하는 수평선
허리 굽힌 윤슬이
툭, 어깨를 치며
손을 내민다
<4·3과 평화> 여름의 얼굴이 된 정방폭포
상처가 깊을수록 많은 눈물을 쏟아서 더욱 하얗다
새하얀 무명천이 하늘에서 끝없이 내려온다
무명천 할머니께서 수의를 만들고 계시는지
만가(輓歌)처럼 베 짜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얼굴 안쪽에 그늘처럼 흑백사진 한 장이 숨어있다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전분공장과 창고들이 보이고
멀리, 목호(牧胡)들의 범섬까지 뚜렷하게 보인다
물빛과 무명천은 여전히 하얗고
발을 담그고 세수도 하였을 것만 같은 여울물소리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는 노래는 비명(悲鳴)이 된다
길을 잃고 느닷없이 단애(斷崖)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
서귀, 중문, 남원, 안덕, 대정, 표선, 한라산 남쪽 사람들
태평양을 헤매다가 75년 만에 작은 집으로 돌아온다
불로장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아왔던 서복이 머문 곳
지금도 대궐 같은 집에서 불로초를 가꾸고 있는 곳
불로초 공원에 만든 그 작은 집으로 돌아오는 영혼들
타고난 제 삶도 끝까지 살지 못하고 느닷없이 떠나버린
그 많은 정방폭포의 사람들
광풍에 갑자기 길이 끊어져 허공에 발을 딛고
한꺼번에 바다로 추락해 버린 목숨들, 오늘도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바다에서 길을 찾고 있는 사람들
그중에 한 사람을 따라서 긴 순례를 시작한다
―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오늘은 동광리 무등이왓으로 사람들이 몰려가는 날
3년째 오늘은 정방폭포 수박령(水縛霊)들 고향 가는 날
나도 따라서 육거리 헛묘 지나 무등이왓으로 가는 날
무등 타고 놀던 아이들 대신 지박령(地縛霊)들만 사는 곳
아랫마을 간장리 사람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드는 날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빈 집터에 조를 함께 심는 날
영귀소리에 불려 나온 조릿대밭 영혼들 술 한 잔 받는 날
오메기떡 만들어서 빚은 고소리술 한 잔 하는 날
그때의 사람들처럼 큰넓궤에서 50일 동안 살다 나온 술
3만 명의 영령들이 함께 맛을 본 고소리술 얻어 마시는 날
잃어버린 마을에 사람들이 찾아와서
해원과 상생과 평화의 바람이 되어 스스로 부는 날
75년 동안 한 곳에서만 붙들려 살았던
수박령(水縛霊)과 지박령(地縛霊)이 만나는 날
정방폭포의 물소리도 바람으로 함께 따라서 오는 날
75년 만에 마련한 정방폭포 4.3 위령 공간에 모였던
억울한 영령들이 무등이왓으로 한꺼번에 따라서 몰려오는 날
수박령(水縛霊)의 몸에서는 아직도 너무 많은 비가 내리는 날
안덕을 따라서 대정, 중문, 서귀, 남원, 표선이 따라오는 날
지박령(地縛霊)과 수박령(水縛霊)이 견우직녀처럼 만나는 날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을 만들려면 오늘은 조 모종을 옮겨 심어야만 한다 새벽부터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 지난 5월에 만들어진 정방폭포 4.3 위령 공간 때문이다 물의 영혼으로 살았던 수박령들이 불로초 공원으로 한꺼번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정방폭포 수박령들이 동광리 지박령을 만나려고 한꺼번에 귀향하여 얼싸안고 울기 때문이다
동광리 무등이왓 땅살림 코사를 복지회관 실내에서 지낸다
안개비로 가득한 조 밭으로 가서 영귀소리로 원혼들을 불러 모아 모시고 온다
함박 가득 담긴 생메 위의 청댓잎은 더욱 푸르고
156개의 술잔이 더욱 빛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비는 문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다
조 밭에서 해야 할 땅울림도 안에서 하고 말과 소도 안에서 울고
김매기와 갈치잡이와 멜잡이도 안에서 하고 안개비는 멀뚱하게 쳐다만 본다
사람들은 점심으로 떡과 국수를 먹고 돌아가고
나는 홀로 헛묘와 무등이왓으로 젖으며 걸어간다
헛묘와 충혼묘지 사이에 있던 검문소는 오래전에 떠났다 출입을 통제하던 검문소는 사라졌다 동광육거리는 이제 세월처럼 돌아간다 회전식 로터리로 바뀌어 차들도 돌아간다 나도 따라서 돌아간다 이제는 이곳도 거치지 않고 평화로를 달릴 수 있다 육신을 찾지 못한 헛묘와 영혼을 찾지 못한 충혼묘지의 배롱나무꽃은 짙은 안개비로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니 발자국소리를 듣고 깨어난다 헛묘에서 깨어난 영혼들은 삼밧구석마을로 집을 찾아가고 나는 홀로 무등이왓으로 간다 양잠단지 가는 길가에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검은 표지석이 있다 무등이왓은 입구부터 조릿대들의 세상이다 강귀봉 우영팟의 최초학살터에는 더덕 덩굴이 가득하다 더덕꽃은 아직 피지 않았고 푸른 조릿대들만 볕뉘라도 건져보려는 듯 뜨물 같은 안개비를 조리질하고 있다 최초 학살터 바로 곁에 광신사숙이 있다 아직도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는 지름길보다 에움길로 간다 말방에(연자방아)터를 지나 잠복학살터로 간다 말방아는 보이지 않고 태양광 패널들만 안개비를 맞고 있다 무너진 돌담과 조릿대들만 길을 비켜준다 아마도 이 오래된 팽나무가 있는 밭에서 마을 이름이 정해졌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 팽나무를 오르며 열매도 따먹고 놀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밭을 매었을 것이다 이 팽나무 그늘에서 자치기 하며 놀았던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 대신 송악덩굴이 올라가 저물도록 내려오질 않는다 별아이비도 뒤늦게 따라서 올라간다 잠복학살터에서 짚더미와 멍석에 쌓여 불태워졌던 사람들은 지금도 뜨거워서 안개비 속에서도 훌떡훌떡 뛰어오르고 있다 뒤늦게라도 불을 끄려는 듯 이곳에는 물탱크가 만들어져 있다 이제는 샘물 대신에 농업용수를 퍼올리고 있다 이 물탱크 뒤쪽에 조밭이 있다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을 파종하고 키우는 오메기밭이 있다 오늘은 오메게밭 가득 안개비가 흘러넘친다 첫해에는 온통 돌밭이었다 오메기를 심을 수 있는 조 밭은 반도 안 되던 밭이 이제는 흙을 돋아서 오메기밭을 두 배로 늘렸다 갈수록 더 늘어날 것만 같다
오래도록 젖으며 홀로 걷다 보니 바람을 조리질하는 무등이왓 조릿대길에 볕뉘가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 제주 4·3 당시 130여 가구가 거주한 무등이왓은 ‘잃어버린 마을’ 122곳 가운데 가장 큰 마을로, 조와 메밀, 콩 등을 재배했다. 1948년 11월 15일 토벌대가 무등이왓 마을을 진입해 주민 10명을 총살했으며, 21일에는 주민 3명을 총살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동광리는 무등이왓(130여 가구)과 조수궤(10여 가구), 시장밧(3 가구), 간장리(10여 가구), 삼밧구석(45 가구) 등 5개 자연마을로 이뤄진 중산간 마을로 4·3 당시 최소한 172명이 희생됐으며, 인근에는 주민들이 피신 생활을 했던 큰넓궤가 있다.
― 반야심경
정방폭포, 화두 하나 붙들고 살다 보니
엘리베이터 속에서도 폭포 소리가 들린다
엘리베이터 속에서도 정방 모습이 보인다
정방폭포 절벽을 기어올라가는 다슬기처럼
한참을 멈췄다가 다시 올라간다
나를 끌어올리는 엘리베이터 로프도 보인다
나를 하늘로 인도하는 것은
하느님의 수염이 아니라
기름이 잔뜩 발라진 검은 쇠줄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계단을 오른다
쇠줄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오른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스스로 올라간다
아파트 옥상에는 하늘타리꽃이 피어난다
별처럼 하얗게 피어나는 하늘타리의 꽃이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독송하고 있다
반야심경(半夜心經)을 염불하고 있다
깊은 밤의 마음을 뚫고 만다라가 핀다
붉게 핀 칸나의 꽃들은 합장을 하고
도라지꽃들은 묵언수행을 하고 있다
푸른 고추들의 얼굴에 붉은빛이 돌고
토란잎에 매달린 취우들의 눈빛이 맑다
흙의 가슴에서는 고구마 순의 상처에서
이제 막 뿌리를 만들며 어둠을 뚫는다
땅속에서도 반야심경(半夜心經) 소리
하늘에서도 반야심경(般若心經) 소리
마음속으로 반야반야(半夜般若) 소리
화두 하나 붙들고 용맹정진 하다 보니
저 멀리 보이는 드림타워에서도
정방폭포 소리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밤을 알아야 낮을 알고
달을 알아야 해를 알고
어둠의 그림자를 알아야 빛이 보인다
나는 이제 반야에서 줄을 타고 내려온다
260자의 눈빛이 마음의 경전으로 빛난다
나도 이제 오도송(悟道頌) 하나 읊어본다
― 큰넓궤에서 도엣궤까지
당신을 안고 하나가 되고 싶은데
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없을까
큰넓궤와 도엣궤가 하나였다는데
왜 우리는 오늘도 만날 수 없을까
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없을까
당신이 보고 싶어서 큰넓궤로 간다
당신을 안고 싶어서 도엣궤로 간다
길이 막혔을까 천장이 무너졌을까
왜 우리는 지금껏 만날 수 없을까
왜 우리는 오늘도 안을 수 없을까
동광 육거리를 돌고 돌아서 찾아간다
삼밧구석에는 삼나무 한그루 안 보이고
넓은 목장 풀밭에 엉겅퀴꽃만 무성하다
큰넓궤 앞에 학생들이 참나리처럼 모여 있다
엊그제 만났던 홍춘호 할머니도 계신다
동굴 입구의 비밀번호 자물쇠를 따고
철문을 열고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나도 당신의 비밀번호를 알고 싶다
나도 당신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안전모를 쓰고 나도 따라서 들어간다
좁고 축축한 길을 기어서 따라 들어간다
들어갈수록 어둠은 짙어지고 공명이 울린다
할머니께서 멈추라고 한다 불도 끄라고 한다
그때 사람들처럼 불빛 없이 살아보라고 한다
학생들은 무서워서 할머니 품에 안겨서 운다
나는, 불을 끄니 당신이 더욱 잘 보인다
큰넓궤를 나와 도엣궤로 간다
입구는 오히려 도엣궤가 더 크다
‘도너리굴’이란 간판도 새로 세워져 있다
용암폭포가 있다 하니 정방폭포 소리가 들린다
큰넓궤에서 5개월을 살았다는 할머니는
이제는 울지 않는다 나도 울지 않는다
― 파랑새를 보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정방폭포 절벽에 파랑새가 살고 있다
절벽 중간쯤 움푹 파인 돌 틈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파랑새 두 마리
나는 보았다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정방폭포 물소리의 커튼을 젖히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파랑새를 보았다
꿈인 듯 생시인 듯
밤하늘을 원 없이 날다가
돌아갈 때에는
물고기도 한 마리씩 물고 가는 파랑새들
집에 숨어있는 새끼들에게 주려는 듯
환하게 미소 지으며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정방폭포의 어둠을 먹고 자란 파랑새를 보았다
오래도록 숨어 살던 파랑새가 이제는
당당하게 새끼를 키우는 것을 비로소 보았다
정방폭포에서 태어난 파랑새는 이제 푸르다
한라산으로 날아간다 파랑새가 푸르게 난다
시로미를 입에 물고 한라산 위로 날아오른다
― 용암수형(熔岩樹型)이 있는 풍경
오늘도 야간근무 마치고 동광리로 간다
복지회관 4.3길 센터에 자귀꽃이 환하다
마당 앞에는 용암수형(熔岩樹型)이 있다
멍석말이처럼 생긴 굴에 폭포소리가 산다
용암이 태워버린 나무의 아우성소리 산다
뻥 뚫린, 긴 동굴 속으로 산방산이 보인다
잠복 학살터의 비명소리도 용암처럼 들린다
(1948년 12월 12일 토벌대에 의해 죽은 사람들을 가족들이 수습하러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잠복해 있던 토벌대는 가족의 시신을 수습하러 온 19명에게, 전날 죽은 가족의 시신 위에 누우라고 한 뒤, 멍석과 지푸라기를 덮고 석유를 뿌려서 생화장을 했다고 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불태워서 죽였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죽창으로 찔러도 죽지 않으니 멍석말이를 해서 불을 붙였다고 한다 그날의 비명소리와 울부짖음이 오늘도 가슴속에 용암수형으로 남아있다)
암수 소철꽃이 하늘을 향해 나란히 피어나고 있다
고구마도 뿌리를 내리고 콩잎 가족도 많이 늘었다
생강보도 훨씬 커버린 양하가 담장아래 모여있다
길가에 유독 봉숭아꽃들이 많고 해바라기도 많다
더덕 많은 밭담에 능소화꽃이 호박꽃에 떨어진다
90년 이상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침을 뽑고 있다
팽나무 아래 연자방아 곁에서 말처럼 일을 한다
할머니유모차 세워두고 풀을 뽑기 시작한다
이만칠천 원 받는데 삼만 원 받으면 원도 없단다
그래도 이렇게 만나서 함께 이야기하니 좋단다
일을 하지 않는 할머니 한 분도 이야기를 보탠다
연자방아 아랫돌은 큰 물그릇 되어 하늘을 품는다
죽은 사람들은 말이 없고 산 사람들은 말로 산다
동광분교 있던 자리에 카페가 들어서고 운동장에는
잔디보다도 토끼풀꽃과 질경이꽃들이 더 많다
당시 작은 마을이었던 간장리는 중심이 되었고
육거리부터 신화역사로를 따라 건물이 늘어난다
크고 멋진 카페들과 고급주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내가 들어가 보았던 무로이 카페는 그야말로 천국이다
무등이왓에도 10년 전에 거대한 교회가 들어섰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훈련하는 꿈의 교회였다
세상은 언제나 머물지 않고 중심이 바뀔 뿐이다
삼밧구석은 유난히 목장들이 많고 트랙터가 많다
삼굿이 있었던 나의 어린 시절이 소환되어 환하다
깨꽃이 서둘러 피고 더덕꽃이 서둘러서 피어난다
빈 밭에는 트랙터가 비료를 뿌리고 로터리를 친다
이 동네는 아침부터 트랙터들이 무섭게 달린다
오늘 나의 목적지는 임 씨 올레와 위령비 부근이다
헛묘를 만들었던 임문숙 씨 집도 보이지 않는다
올레는 이미 온갖 풀들이 점령하여 곶자왈이 되었다
위령비 왼쪽에는 수국과 산수국과 팽나무가 있고
위령비 오른쪽에는 잎과 열매가 풍성한 동백나무가 있다
그 동백나무 가슴에는 사연 많은 리본들이 많이 산다
동백꽃들은 다 지고 동백 열매들은 아직 익지 않았다
나는 오래도록 불구가 되어버린 팽나무를 끌어안고 운다
어느 해 큰 바람과 벼락에 밑동까지 쩍 벌어져서 쓰러졌다
490년을 살았다는 팽나무는 풍치목에서 상징목이 되었다
490년을 산 밑동과 올봄에 태어난 가지가 함께 사는 마을
삼분의 이쯤 없어지고 삼분의 일만 살아남은 팽나무 한 동네
벼락의 큰 칼로 수직으로 밑동까지 잘려버린 나무는 처음 본다
상가리 천년폭낭과 또 다른 모습, 나의 마음까지 쩍 벌어진다
나이테까지 속을 다 잃고도 껍질의 힘으로 자식을 낳아 기른다
우리들은 속을 다 내어주고라도 끝까지 살아남아야만 한다
껍데기라도 살아남아서 끝끝내 마을을 재건하고 꽃을 피운다
시멘트로 잃어버린 속을 채우고 쇠기둥을 지팡이 삼아서라도
우리들은 끝까지 땅과 하늘을 경작하며 푸르게 살아야만 한다
군용 트럭보다 무서운 트랙터가 달려도 나뭇잎은 호미질을 한다
속이 훤히 다 타버린 용암수형들이 마을마다 정자나무로 서 있다
오래된 나무에 귀를 대어 보면 정방폭포 소리가 와글와글 하다
풍치목으로 살지 못하고 반신불수가 되어서라도 꼭 살아야 한다
용암수형의 뻥 뚫린 가슴속으로 하늘의 정방폭포 소리가 관통한다
―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정방폭포 앞에서 태평양을 본다
정방폭포 위에서 태평양을 본다
한라산을 등지고 태평양을 본다
제주도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제주(濟州)라는 말은 너무 슬프다
용불용설처럼 출륙금지령이 오래 지속되면서
1946년 8월 1일,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었다
전라남도 제주군이 제주도(道)로 승격되었다
인디언의 땅을 점령한 미국이 눈독을 들였다
섬은 스스로 문을 열지 않으면 섬에 갇힌다
연대와 환대로 마음을 열어야 섬을 지킬 수 있다
덕판배가 판옥선이 되고 거북선이 되는 동안
제주도 사람들은 테우를 타고 멜잡이만 했다
더 늦기 전에 이제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태평양으로 가야만 한다
저 태평양을 보아라
파도가 파도의 등을 밀어주는 태평양을 보아라
바람이 바람을 안고 함께 가는 태평양을 보아라
토박이들이 먼저 이방인들을 안아주어야만 한다
현지인들이 먼저 이주민들을 품어주어야만 한다
연대하는 마음으로 환대하는 마음으로 대해야만
침략자들까지 감동하여 함께 하나가 될 수 있다
탐라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꼭 그래야만 한다
* 탐라국(현 제주도)은 삼국시대에 이르러 백제, 신라와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탐라국이 육지에 직접 예속되어 행정구역으로 편제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중엽인 1105년(숙종 10)부터다. 1271년(원종 12)에 삼별초(三別抄)가 제주도에 웅거 하면서 몽골에 마지막까지 항쟁을 벌이다가 1273년에 패한 후 제주도는 원나라의 직할지가 되어 목마장(牧馬場)이 설치된다. 원의 직할 지였던 까닭에 다른 곳보다도 몽골의 문화적인 영향이 컸으며, 대규모 목마의 흔적으로 환경에도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그 후 약 1세기 동안 제주도는 고려와 원나라 사이에 소속이 여러 차례 바뀌는 복잡한 과정을 겪다가 1367년(공민왕 16)에 완전히 고려에 복속된다. 조선시대에 들어 1416년(태종 16)에 한라산을 경계로 북쪽에 제주목(濟州牧)을 두고, 남쪽의 동부에는 정의현(旌義縣), 서부에 대정현(大靜縣)을 설치하여 전라도에 소속시켜 조선시대 동안 유지된다. 1864년에 정의현과 대정현을 군으로 승격했으며,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23부제(府制)를 실시함에 따라 1895년에 제주부를 설치하여 정의군, 대정군을 관할하도록 한다. 1896년에 다시 13 도제(道制) 실시로 전라남도 제주군, 정의군, 대정군이 된다. 1914년에 시행된 군면 폐합 때 정의군, 대정군과 완도군 추자면이 제주군에 병합되어 제주군은 제주도 전역을 관할하게 된다. 1915년에 도제(島制)를 실시하여 제주도라 했으며, 1946년에 비로소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제주도(濟州道)로 승격하고 북제주군 및 남제주군을 신설한다.
― 동백꽃이 진다고 너무
정방폭포 감옥에서 책을 읽는다
달빛에 어리는 동백꽃을 읽는다
동백꽃이 진다고 슬퍼하지 마라
꽃 진 자리마다 열매를 낳는다
유채꽃을 노래하던 사람들에게
동백꽃 이름표를 달아주는 4월
동백꽃이 지면 지상에 피었다가
동백의 푸른 열매들로 익어간다
육지 것이었던 나는 30년이 지나
이제 겨우 스며들기 시작한다
정방폭포 물소리에 젖으며
달빛처럼 시나브로 스며든다
나도 이제 동백꽃 이름표를 달고
마음이 몸이 될 때까지 스며든다
달빛이 정방폭포에 스며들고
별빛이 제주바다에 스며든다
깊은 밤 함께 깊어져서 밤이 되면
여울물소리와 함께 깊이 스며들면
감옥도 물과 함께 흘러가고 말리라
태평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 되리라
나는 이제 겨우 육지 것이 아니다
나는 이제 겨우 섬사람도 아니다
나는 이제 겨우 정방폭포가 된다
나도 감옥도 정방폭포로 쏟아진다
― 어느 먼나무 한 그루
그해 겨울 한라산
눈 속에 숨어있던
어느 먼나무 한 그루
총소리에 놀라
부르르 몸을 떠니
눈꽃이 떨어지고 마는구나
전과에 눈이 먼
2 연대 토벌군들
빨갱이 잡았다고 보고를 하는구나
유치장에 갇힌 먼나무 한 그루
자기는 절대 폭도가 아니라고
피를 토하며 말해도 소용이 없구나
정방폭포에 끌고 가서
총살을 시키려니
푸른 새싹 돋아나서 온몸이 푸르구나
푸르름을 온몸으로 증명하려고
해마다 푸른 잎들 내밀어도
겨울이면 어김없이 빨갱이가 되는구나
아이고 이제 겨우
유치장을 빠져나왔는데
언제쯤 내 고향 한라산으로 갈 수 있을까
― 울음의 절창(絕唱)
정방폭포 암벽에 글자가 있었다 세월이 지워버린 화두가 있었다
정방폭포 소리에 울음이 있었다 바람이 지워버린 눈물이 있었다
정방폭포 가슴에 무지개 있었다 득음의 독공소리 끊이지 않았다
서복 일행이 글자를 새기고 있었다 추사선생은 탁본을 하고 있었다
백조 한 마리 날아와 목을 풀었다 흑조 한 마리 날아와 몸을 풀었다
울혈을 토하고 절창을 하는 백조와 살풀이춤으로 길을 터주는 흑조
한라산을 기어서 내려오는 용 한 마리, 바다를 향해 용트림을 한다
정방폭포 위에서 베틀소리 들린다 비단과 무명과 삼베가 흩날린다
무명천 할머니 베틀 노래 부르며, 베를 짜서 수의를 만들어 날린다
정방폭포 아래서 웡이자랑 들린다 비설상 적시는 폭포수 흩날린다
정방폭포 주상절리에서 피아노 소리 들린다 둥둥 북소리도 들린다
삐그덕 탁탁 베틀소리에 깨어나 수의를 입는다 바다가 날개를 편다
저녁노을에 반짝이는 윤슬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하늘 가득 빛난다
온몸에 바느질자국 선명한 선인장 마을 무명천 할머니의 선창 소리와
정방폭포 수박령(水縛霊)들 함께 밤새 부르는 아, 울음의 완창이로다
한라산에서 내려온 용 한 마리, 밤에도 쉬지 않고 베옷 입혀 흩날린다
쏴아아 쏴아아 쏴아아 오늘 밤에도 그날처럼 명령소리는 그치지 않고
으아아 으아아 으아아 오늘 밤에도 그날처럼 비명소리가 나를 울리네
아주 넓고 고요한 바다
평화로운 바다라고 한다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시인이다
시인은 이름을 잘 짓는 사람이다
정방폭포에서 태평양으로 가는
한라산이 묻는다
은하수가 묻는다
일본에게 묻는다 미국에 묻는다
그대들은 평화로운 바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벌였던가
우리들의 태평양에서
평화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던가
제주도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아니다
제주도는 알고 보면
태평양 그 자체의 몸이다
그리하여 태평양에서는
태평가를 함부로 부를 수 없다
사람들의 손자국과 발자국을 보았다
인류세는 이미 지층이 쌓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머니의 가슴에 총을 쏘고 아버지의
머리에 총을 쏘았고 지구의 몸에도 원자폭탄을
새겨놓았다 우리는 우리들의 가슴에 총을 쏘았다
제주도에서 학살이 일어나던 그 시기부터
우리의 지구는 급격하게 뜨거워졌다
지구는 심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가슴에만 울분이 쌓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들의 지구는 죽어가고 있다
우리들은 이제라도 인간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해야만,
자, 이제 우리들의 가슴에도 평화의 나무를 심고 가꾸자
상처 깊은 어머니의 가슴에도 사랑의 나무를 심고 가꾸자
인류세에서 다시 자연의 지질시대로 돌려놓아야만 하리라
원자력발전소에서는 핵 오염수를 방출하고 있다
하와이를 지나 캘리포니아로 가는데
거대한 쓰레기 섬이 나를 붙잡고
제주도의 사연과 어머니의 상처에 대하여 말한다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류세가 환경변화를 가속화시켜서
식물과 동물들이 적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세상은 상생하는 생명들만 살아남는다
나는 이제 누구와 함께 공생할 수 있을까
제비나비와 제주꼬마팔랑나비가 꽃을 찾고 있다
바다에서 글쎄
청띠제비나비와 왕자팔랑나비가 알 낳을 자리를 찾고 있다
우리는 몸속에 바다를 품고 있다
등뼈에서 바다의 파도소리 들린다
우리들의 먼 조상은 바다에서 살았다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왔다
강에는 칼슘도 없었고 망간도 없었고 인도 없었다
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바다가 필요했다
민물고기는 몸속에 바다의 등뼈를 만들었다
지느러미는 네 개의 다리가 되었고
심장과 허파를 보호하려고 갈비뼈를 만들었다
이크티오스테가는 서서히 육지로 올라왔고
바다에서 강으로 강에서 지상으로 상륙했다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 그리고 인간
몸 안에 바다를 품고 있는 인간
태아를 기르는 바다
자궁은 몸 안에 품고 있는 바다가 분명하다
공룡은 멸종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우리들의 숲이 사라지면 사람들도 멸종되고 말리라
꽃이 피는 현화식물의 탄생으로 공룡이 멸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속씨식물들은
겉씨식물처럼 키가 크지 않아도 된다
꽃으로 곤충을 유혹하여 씨를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곤충과 꽃의 상부상조가 속씨식물을 번식시켰고
키가 큰 겉씨식물이 줄어들어서 공룡들의 식량이 줄었다
포유류들도 식물과 공생관계를 유지하여 살아남았다
하지만 공룡들은 식물들을 뜯어먹기에 바빠서 결국 멸종되고 말았다
사람도 그러하리라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면 결국 죽고 말리라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긴 해바라기는 겨드랑이에도
꽃을 피운다 머리가 무거워진 해바라기는
친구가 없던 해바라기는 스스로 많은 꽃을 피운다
해바라기 줄기는 하나인데 꽃들이 참 많다
머리가 무거워서 땅 가까이 내려가니
봉선화 친구들이 환하게 웃으며 맞이한다
가까이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물 흐르는 소리와 햇빛 흐르는 소리 들린다
해바라기들은 제 머리까지 해를 끌어내려
8월의 햇빛 폭포에 푸르게 샤워를 한다
해바라기 밭에서는 정방폭포 소리 들린다
해바라기들은 햇빛 폭포가 되어 더욱 푸르다
섶섬과 문섬 사이로 용오름이 오르고
더 먼 곳에서 무지개가 떠오른다
발 밑의 절벽이 무서워서 망설이고 있는데
한라산에서 뒤따라온 바람이 등을 힘차게 밀어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드디어 태평양이 되어있다
정방폭포 아래에서 오래도록 꿈을 꾸는
이무기는 언젠가는 승천할 수 있지만
정방폭포 위에서 꿈을 포기한
다슬기는 끝내 떨어져서 죽고 말리라
멀리 보이는 수평선도
건널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하면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되지만
덕판배라도 타고 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태평양을 가슴에 품은 큰 사람이 되리라
관다발을 타고 오르내리는
햇빛과 물이 돌아보면 서귀포는 언제나
문만 열면 태평양의 가슴으로 활짝 열린다
서귀포의 감귤나무들이 태평양의 바람을 품는다
정방폭포에 백발거사가 살고 있다
바람이 분다 하얗게 지퍼를 내린다
수직으로 쏟아지던 폭포가 날아간다
하얀 수직이 푸른 수평으로 날개를 편다
바람은 백발거사를 푸르게 춤추게 한다
정방폭포에서는
너에게 갈 수 있는 길이 보인다
너의 푸른 하늘이 환하게 보인다
식물들은
물과 햇빛만 있으면 살 수 있다
식물들의 과학은
인간보다 훨씬 더 앞서간다
맹물로 가는 자동차를
식물들은 처음부터 타고 다녔다
식물들은 누구라도 광합성을 하는데
인간은 아직까지
광합성 인간으로 진화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스스로
지구를 향하여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다시 한번 정방폭포를 본다
아니,
저 먼 곳에서 정방폭포를 다시 본다
서복(徐福), 또는 서불(徐巿)은 전국시대 진(秦) 나라의 인물. 자는 군방(君房), 서불(徐巿)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제(齊) 나라 사람이다. 기원전 219년, 방사로 진시황에게 중용되었고, 이후 명령을 받아 어린 남녀 수천 명을 데리고 동쪽으로 불로초를 구하러 갔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서복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사마천 사기의 진시황본기뿐만 아니라 사기의 '회남형산열전', 진수의 정사 삼국지, 후한서 등에 나온다. 기록에 따르면 서복은 중국을 떠나 단주(亶洲) 또는 이주(夷洲)에 도달하였다고 나오는데, 중국에서 이주(夷洲)는 지금의 타이완을, 단주(亶洲)는 일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또한 서복은 처음부터 불로초를 찾을 수 없음을 알고 아예 진시황의 손아귀를 벗어나 자기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일부러 용왕의 명을 빙자하여 어린 남녀 수천 명과 각종 기술자들을 요구하여 데리고 떠났으며, 동쪽 어느 섬에 자기의 왕국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동쪽으로 간 이후의 행방에 대한 전설로는 그가 일본, 대만 또는 제주도에 도달하였다는 전설이 있는데, 서복에 관한 전승은 동아시아 해안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베링 해협을 건너 알래스카, 즉 아메리카에 도달했다는 전설도 있다.
서복이 다녀갔다는 의미의 서불과차(徐市過此) 혹은 서불과지(徐巿過之)는 글자가 서귀포시 정방폭포 옆에 새겨져 있다. 이 글자 자체는 2000년대 초에 중국인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주변 정리 사업을 할 때 새긴 것이며 원래는 폭포 절벽 어딘가에 새겨져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2011년에 서귀포에서 글자를 찾아보겠다고 폭포 주변을 정밀 탐색했지만 발견되지 않았다.
물보라가 전분가루처럼 흩날린다
햇빛을 받으니 단추처럼 반짝인다
정방폭포는 한라산 남쪽 최대의 사삼 학살터였다
너븐숭이 순이 삼촌 목소리가 여기서도 들린다
순이 삼촌 소설이 창작오페라로 꽃을 피우는 동안
정방폭포 영령들은 이제 겨우 위령 공간 얻었네
절벽이 너무 높아서 아직도 올라오지 못하는 영혼들
아직도 바람처럼 파도처럼 허공을 떠돌고만 있네
사람들은 바다로 떨어지는 절경이라며 환호하지만
단추처럼 뚝, 떨어진 죽은 영혼들은 오늘도 눈물만,
후반부에 만나는 것이 좋을까
흐르기만 하는 물은 폭포를 보지 못한다
떨어지는 물만이 절벽을 볼 수 있다
한라산을 내려오며 보았던
작은 폭포들을 돌아보면서
정방폭포 위에 다다른 물줄기
문섬과 섶섬이 있는 태평양을 본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한 높이를 가늠하며
온 힘을 다하여 날개를 펼치고 뛰어내린다
* 정방폭포를 쓰기 위해서 현지답사, 자료 조사 및 메모를 시작합니다.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 서귀포라 하였는데
또다시 돌아왔으니 무엇이라 해야만 할까
정방폭포가 더 좋아서 또다시 돌아온 서복
정방폭포와 소남머리 사이에 집을 지었다네
전분공장과 단추공장이 있었던 자리에 글쎄
터를 잡고 아예 살림을 차리고 살아간다네
해방이 되고 3.1절 발포 사건이 일어나고
4.3 무장봉기가 일어나고 초토화 작전으로
단추공장과 전분공장으로 끌려간 사람들
정방폭포 아래로 눈물 떨어뜨려 죽일 때
‘서복과지’글씨에 매달린 영혼들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정방폭포로 돌아왔다네
가족들은 무서워서 시체도 찾아가지 못하여
동남동녀들과 영혼들과 함께 살림을 차렸다네
무서운 단추공장과 전분공장의 기억을 지우고
죽은 사람들과 함께 불로초를 기르며 살아가네
용왕님도 가끔 찾아와 머물고 가는 이곳에는
소나무 가지에 용왕님의 그림자가 걸려있고
하늘에는 남극성이 피고 땅에는 황근꽃이 뜨네
뼈아픈 고통도 억울함도 원망도 잘 익으면 저렇게
용 같은 소나무로 자라고 남극성으로 빛나고
노랗게 피어나는 무궁화, 황근꽃으로 떠오르는구나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진다
아스팔트 다리 위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지나가고
내일도 자전거가 지나가고
모레도 자동차가 지나가리라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폭포
바다보다 더 깊은 곳으로 떨어져
다시 한번 높이 솟아오르는 물소리
바다로 가는 물소리가 있다
바다로 가는 발소리가 있다
더 이상 디딜 바닥이 없을 때
우리는 모두 정방폭포가 된다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낮은 곳으로 떨어져서
시체도 찾을 수 없는 영혼들이 있다
늘 낮은 곳에서만 사는 바다는
더 높은 곳을 꿈꾸며
날고 싶어서 날아보고 싶어서
오늘도 파도의 날개를 펼쳐본다
헛묘에 묻혀있는 주인공들의 눈물도 섞여 있으리라
무등이왓에서 큰넓궤로, 볼레오름으로, 단추공장으로
소남머리로, 정방폭포로 걸어갔던 발자국도 있으리라
정방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속에는
어찌하여 그것들 뿐이겠는가
백록담에 잠시 머물렀던 물은
바다에서 하늘로 다시 올라간 구름이었으며
또다시 지상으로 내려온 빗물이 아니었던가
그 속에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당신이 언젠가 흘렸을 눈물도 조금은 섞여 있으리라
아, 그리하여 오늘은 이렇게 정방폭포로 떨어지고
바다의 윤슬로 반짝이며 서로를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우리들은 함께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고 말리라
정방도 아니고 폭포도 아니고 정방폭포라니
차라리 나무라면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언젠가는 자라겠지만
하필 붙잡은 화두가 정방폭포라서
붙잡을수록 자꾸만 아래로 떨어지기만 하는구나
정방에 앉아서 참선이라도 하려 해도
자꾸만 떨어지는 폭포수에 마음까지 젖는구나
그래도 한 번 잡은 화두는 끝까지 잡아야만
무엇인가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나는 오늘도 정방폭포 속에서 살아간다
정방폭포 하나 붙들고 날아오를 꿈에 젖는다
하늘과 바다를 뻥 뚫고 빛 속으로 날개를 편다
너는 어찌하여 나를 만날 수 없을까
너는 어찌하여 나를 만질 수 없을까
너는 어찌하여 나를 안을 수 없을까
나는 어찌하여 너를 만날 수 없을까
나는 어찌하여 너를 만질 수 없을까
나는 어찌하여 너를 안을 수 없을까
너와 나는 언젠가 꼭 만나야만 한다
너와 나는 언젠가 꼭 만져야만 한다
너와 나는 언젠가 꼭 안아야만 한다
너와 나는 우리가 되어야 꽃이 된다
너와 나는 우리가 되어야 밥이 된다
너와 나는 우리가 되어야 삶이 된다
함께 우리가 되기 위하여 내가 먼저
너에게 나를 꿈과 사랑으로 보낸다
행복으로 꽃피는 삶을 위하여 간다
나는 요즘 내 삶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길에서 나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서 찾고 있다. 한라산에서 내려온 물이 서귀포 시내의 복개천 안으로 흐르다가, 이제 잠시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이다가 마지막 다리 아래를 흐르고 있다. 머지않아 이 물은 더 이상 길이 없어질 것이다. 길 끝에서 허공에 발을 내딛어야만 할 것이다. 나의 삶도 이제는 그럴 것이다. 그동안 무난한 길을 걸어왔던 나는 이제 그 길 끝에 도달하고 말았다. 이제는 길 없는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3년만 근무하고 나오려고 했던 발전소에서 나는 벌써 36년 가까이 머뭇거리고 있다. 이제 1년 후면 임금피크에 접어들고 3년 후에는 어쩔 수 없이 나와야만 한다. 나는 그동안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 취해서 살았다. 삶의 의미를 깊이 깨닫지 못하고 월급의 마약에 취해서 정신없이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나의 지금 심정은 정방폭포 위에서 어떻게 날개를 펼쳐야만 바다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과연 나의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과연 사랑하는 당신을 기어이 만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https://youtu.be/EIPDbf7dBys?si=TRRvGmTABLtwNZQD
https://youtu.be/LVgwpV8uJ7Q?si=04EjBoC1um1QCn3s
https://youtu.be/TqFqB58s654?si=7wtRZNyUIMKm0nQ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