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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삶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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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Nov 11. 2023

몸과 마음이 통째로 고향인 사람

― 당신에게 보냅니다 배진성 꿈삶글 9

다음 그림에서 총 몇마리의 동물이 보이시나요?


총 몇마리의 동물이 보이시나요?

늑대

앵무새

토끼

고양이

금붕어

나비


정답은 모두 9마리입니다





이어도공화국 07

당신에게 보냅니다

배진성 꿈삶글



앞표지

1. 당신에게 보냅니다

2. 너에게 나를 보낸다

3. 정방폭포

4.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배진성 프로필

서른 살까지 사는 것이 꿈이었다 왼쪽 가슴이 아팠다 남몰래 가슴을 안고 쓰러지는 들풀이었다 내려다보는 별들의 눈빛도 함께 붉어졌다 어머니는 보름달을 이고 징검다리 건너오셨고, 아버지는 평생 구들장만 짊어지셨다 달맞이꽃을 따라 가출을 하였다 선천성 심장병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나의 비밀은 첫 시집이 나오고서야 들통이 났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비후성 심근증, 선천성 심장병과 25년 만에 이별을 하였으나,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바다는 나를 이어도까지 실어다 주었다 30년 넘게 섬에서 이어도가 되어 홀로 깊이 살았다 나는 이제 겨우 돌아왔다 섬에서 꿈꾼 것들을 풀어놓는다 꿈속의 삶을 이 지상으로 옮겨놓는다 나에게는 꿈도 삶이고 삶도 꿈이다 <꿈삶글>은 하나다 덤으로 사는 인생 하나 당신에게 보낸다


사과꽃망울

사과꽃망울



득음을 위한 독공이 한창이다

     
사과나무속에서
고려청자 굽는 소리 들린다
조선백자 깨뜨리는 소리 들린다
수없이 많은 사금파리들이 쌓인다
     
사과나무속에서
사과를 미리 빚어보고 구워보고 깎아본다
     
벚꽃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성질 급한 봄꽃들이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와도
사과나무는
진득하니 사과나무속에서 사과만을 만들고 있다
     
울컥, 울혈을 토해내고 있다


제1부 너에게 나를 보낸다

강아지 배추 뜯어먹는 소리

강아지 배추 뜯어먹는 소리



사람들은 가끔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강아지가 배추를 뜯어먹는 소리가 좋다 내가 밭에서 일을 하면 강아지는 열심히 배추를 뜯어먹고 풀도 뜯어먹는다 때로는 꽃밭에서 놀다가 꽃에 콧구멍을 들이대고 향기에 취하기도 한다 또한 예쁜 꽃을 입으로 따서 다른 강아지에게 건네주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소나무재선충 때문에 소나무가 많이 죽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속으로 웃기도 한다 주로 산의 주인들이 많이 웃는다 뿐만 아니라 겨우 남아 있는 멀쩡한 소나무까지 마구 베어낸다 알고 보니, 산에 소나무가 없으면 밭으로 개간하기가 쉽다고 한다 소나무가 많은 숲은 밭으로 만들기도 어렵고 주택지로 용도를 변경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땅값을 올리기 위해서는 산에 소나무가 없어져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달리 비싼 밭에 소나무를 심는다 비싼 밭을 싼 숲으로 만들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아픈 몸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나는 아픈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아픈 사람들의 보폭은 건강한 사람들의 보폭과 다르다 나란히 손 잡고 걸을 수 없다 함께 같은 속도로 걷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나의 속도에 맞추어서 산다 나의 시는 나의 삶이어서 마침표가 없다 나의 시의 마침표는 나의 무덤이 될 것이다 또한 나의 시에는 숨표가 많다 나의 쉼표는 나의 헐떡이는 숨이다 숨이 차기 때문에 자주 쉬어 주어야만 한다 시는 시인의 발걸음을 닮아야만 한다 시는 시인의 숨결이 느껴져야만 한다


나는 평생 숲을 가꾸는 것이 꿈인데, 숲이 아직은 나를 품어주지 못한다 참나무가 많은 정읍의 종석산이  좋아서 가려고 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 종석산에서 산양삼을 재배하는 친구가 있다 그곳으로 가려고 작은 임야를 구하고 교육을 받아서 임업후계자가 되었다 하지만 함께할 친구는 나와는 생각이 많이 다른 듯하다 나는 참나무 숲을 가꾸고 많은 사람들이 참나무로 부활하기를 꿈꾸는데, 친구는 참나무를 베어내고 산양삼을 대규모로 재배하여 큰 소득을 올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물론, 약초 재배에 좋은 여건이니 어느 정도의 재배는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숲이 목적이 아니고 돈이 목적이라면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숲을 원한다


나는 5년 전에 이미 평생 써야 할 시의  원고료를 선불로 받았다 나의 심장 속 대동맥 판막을 뜯어내고 금속판막으로 교체하였다 깨어나보니 나의 통장에 거금이 입금되어 있었다 내가 수술을 받기 전날 입금을 하고 기도를 하였던 것이다 내가 깨어날 때까지 그는 쉬지 않고 기도를 하였을 것이다 "꼭 살아 돌아와 좋은 시를 써 주세요 응원합니다" 이 응원 메시지와 그의 기도가 나를 부활시킨 것이었다 수술을 받는 동안에 꾸었던 꿈속의 천사가 나를 살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간절한 기도에 보답하기 위하여 지난 5년 동안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출사표를 던지고 시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어도공화국이 들어설 아름다운 숲을 구하지 못하여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를 먼저 쳤다 그곳에 나는 서천꽃밭을 만들고 있다 아름다운 숲에 만들 이어도공화국을 미리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곳에 나와 인연이 닿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나무를 심고 가꾼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직은 함께 살 수 없지만 그들의 나무를 보며 날마다 생각한다 그들의 나무를 가꾸며 그들과 같은 하늘 아래서 함께 숨을 쉰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꿈은 그렇게 천천히 자라고 시나브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서천꽃밭에 자란(紫蘭)이 피어나고 은방울꽃이 피어난다 자란(蘭)의 꽃말은 "서로 잊지 않다" 은방울꽃의 꽃말은 "틀림없이 행복해진다"라고 한다


고구마 꽃



고구마 꽃



고구마꽃이 피었다

고구마꽃이 젖을 물리고 있다

꼬리박각시나방이 젖을 빨고 있다

고구마가 땅 속에서 젖을 준다

땅 속에서 어머니는

아직도 나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어느 시인의 눈썹달과 별 하나


어느 시인의 눈썹달과 별 하나



나는 날마다 바다를 본다 나는 날마다 같은 바다를 본다 같은 바다이지만 날마다 다른 표정의 바다를 본다 삼십 년 넘게 같은 바다를 본다 마라도와 가파도와 형제섬과 송악산이 보인다 그 너머로 이어도가 보인다 나는 그 이어도에서 삼십 년 넘게 살았다 이제 이어도에서 나와 세상 속으로 걸어갈 준비를 한다


화순항에서 서귀포항으로 간다 정방폭포로 간다 나의 삶은 이제 정방폭포에 가까워지고 있다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용 한 마리, 저 빛나는 정방폭포를 지나면, 저 빛나는 허공의 길을 밟으면, 바다가 될 것만 같다 해룡이 될 것만 같다 나도 이제는 하늘로 가는 해룡 한 마리로 부활을 할 것이다


발전소에서 야간근무를 하면서 두 시인을 만났다 별빛을 만들면서 시인을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보고 들었다 <대구문학관에서 문학, 꽃피다> 뒤늦게 유튜브로 만나, 보았다 문태준 시인과 김민정 시인을 연속해서 듣고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이병률 시인과 나희덕 시인에 이어서 두 시인이 내 가슴속으로 걸어서 들어왔다 그런데 아, 김민정 시인이 그만 느닷없이 가슴속에 들어앉고 말았다 


얼핏 잠이 들었는데 꿈속까지 따라서 들어오고 말았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아침은 오고, 발전소의 하늘에 달이 떠 있다 시인의 눈썹 한쪽이 걸려 있다 벌써 아침인데 달은 절반도 가지 못했다 이제 막 월라봉을 벗어나, 산방산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바다의 방에도, 산의 방에도 가려면 서둘러야만 하겠다 화순항에는 아침에도 등대불빛이 반짝이고 있다 눈썹달 오른쪽 아래에는 별 하나 깜박인다 별이 글쎄 아침부터 윙크를 하고 있다


오늘은 아무래도 아침 퇴근길에 한라산 아래 첫 동네로 가야겠다 한라산아래첫마을영농조합법인이 만들어놓은 넓은 메밀밭으로 가야겠다 그 메밀밭의 백비에 달빛이 새겨놓은 비문을 읽어야만 하겠다


화순곶자왈 맹아림에서
화순곶자왈 맹아림에서
화순곶자왈 맹아림에서

사진일기 20231105 (brunch.co.kr)


화순곶자왈 맹아림에서



아침 퇴근시간이 30분 늦추어졌다 3년만 일하고 나오려고 했던 발전소에서 나는 40년 가까이 일을 하고 있다나의 꿈이 40년 가까이 미루어졌다 더 늦기 전에 꿈을 찾아서 시를 써야만 한다 내가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유리한 점도 있다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좋다 누가 청탁을 한 것도 아니고 어디에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도 아니어서 얽매일 필요도 없다 그래서 나는 문법이나 띄어쓰기에도 크게 구속을 받지 않는다 나는 그냥 나의 호흡에 맞추어서 자유롭게 쓴다 일반적인 줄 바꿈도 나의 호흡과는 잘 맞지 않아서 내 방식대로 쓴다


이어도서천꽃밭에 수선화꽃이 피기 시작했다 아직도 수국꽃이 남아있는데 수선화꽃의 계절이 돌아왔다 분꽃이 한창 씨를 만들고 있는데 들국화가 곁에서 노랗게 눈을 뜨고 있다 새깃유홍초와 아직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작은 꽃들이 피고 쑥들도 자라고 있는데 코끼리마늘 싹이 땅을 들고 올라오고 있다 감귤은 조생종은 거의 다 익었고 만감류도 익기 시작했다 수확시기에 물을 너무 많이 먹은 감귤은 감귤나무에서 터져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오늘 아침에 살펴보니 황금향 몇 개가 입술이 터져있었다 요즘에는 수리시설이 좋아서 과일들도 과식해서 문제가 많다


10여 년 전에 온몸이 불에 태워져서 겨우 목숨만 남았던 워싱턴야자수가 아픈 상처를 잊고 잘 자라고 있다 또한 서귀포자연휴양림에서 주워온 도토리가 낳은 참나무는 이제 제법 의젓한 자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선흘리 불칸낭 가슴에서 입양해 온 어린 후박나무는 양쪽 문지기로 성장해서 대문을 잘 지키고 있다 아이들이 직접 심은 앵두나무와 하귤나무는 형제처럼 정답게 나란히 잘 자라고 있다 모과나무에서는 잘 익은 모과가 떨어지고 감나무에서는 새들이 날아와서 잘 익은 감을 숟가락도 없이 아침식사로 맛있게 드시고 있다 늦게 익은 무화과를 따서 나도 맛있게 아침으로 먹는다 온주밀감과 황금향 감귤을 한 봉지 따서 제주시로 간다 9시에 산방도서관에 들러 책을 바꾸고 곁에 있는 화순곶자왈로 간다 나는 주로 따로 여행을 하지 않고 중간중간 쉬면서 짧은 여행을 한다 입구 간판에는 화순곶자왈 생태탐방숲길이라고 쓰여 있지만 나는 늘 화순곶자왈 맹아림이라고 부른다


곶자왈(Gotjawal)은 ‘곶’과 ‘자왈’의 합성어로 된 고유 제주어다 곶은 숲을 뜻하며,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수풀 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표준어의 ‘덤불’에 해당한다 곶자왈은 돌무더기로 인해 농사를 짓지 못하고, 방목지로 이용하거나, 땔감을 얻거나, 숯을 만들고, 약초 등의 식물을 채취하던 곳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불모지 혹은 토지이용 측면에서 활용가치가 떨어지고 생산성이 낮은 땅으로 인식되었다


곶자왈에는 대부분 돌들이 많다 흙은 거의 없다 용암이 만들어 낸 요철() 지형은 지하수 함양은 물론 다양한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숲을 이루어, 생태계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내가 자주 다니는 화순곶자왈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아서 쓰러진 나무들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곶자왈 지대는 토양의 발달이 빈약하고 크고 작은 암괴들이 매우 두껍게 쌓여 있어 아무리 많은 비가 올 지라도 빗물이 그대로 지하로 유입되어 맑고 깨끗한 제주의 생명수인 지하수를 함양한다는 점에서 마치 ‘스펀지'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각종 오염물질이 빗물을 통해 유입될 경우 지하수 오염에 매우 취약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를 인식한 제주도 사람들은 곶자왈 지키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한라산뿐만 아니라 제주도의 곶자왈지대를 최애 하고 있다 특히 화순곶자왈지대에는 고사리들과 각종 양치식물들 그리고 각종 이끼류와 콩짜개란이 돌과 나무들에 많이 자라고 있어서 더욱 좋아하는 곳이다


곶자왈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이다 다만 곶자왈은 중간산 지대의 야생숲이 있는 곳을 통칭하는 말이고, 제주도 내의 다양한 장소에 분포되어 있다 곶자왈이 분포하는 지대는 크게 4곳으로 나뉘는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한경-안덕 곶자왈지대, 애월 곶자왈지대, 조천-함덕 곶자왈지대, 계좌-성산 곶자왈지대로 나뉜다 이 중 가장 넓은 곶자왈 지대는 한경-안덕 곶자왈(44.8 km²)이며, 조천-함덕(43 km²), 계좌-성산(7.6 km²), 애월(3.5 km²) 곶자왈이 그 뒤를 잇는다


내가 곶자왈에서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나무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사람들도 저 곶자왈의 나무들처럼 자연스럽게 태어나고 자연스럽게 죽어서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곶자왈에도 큰 상처들이 많다 인간들이 살면서 곶자왈에도 큰 상처를 주었다 4.3 등의 역사적 상처뿐만 아니라 숯을 만들기 위해서 대부분의 나무들은 밑동이 잘려나간 기억이 있다 하지만 곶자왈의 나무들은 그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새싹으로 새롭게 태어나서 새로운 가지들을 내어서 더욱 풍요로운 숲을 이루었다


곶자왈의 나무들은 대부분 기둥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기둥이 모여서 함께 자란다 나무들은 가지가 잘리거나 기둥이 잘리면 더 많은 여러 가지를 만들거나 여러 기둥을 만들어서 새롭게 자라기 시작한다 무의식적으로 위기를 느끼면 살아남기 위해서 더욱 다양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사람도 극심한 위기에 처하면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해서 잘은 모르지만, 사형수들이 죽을 때 사정을 한다는 이야기도 언뜻 들은 것 같다 곶자왈의 나무들은 또한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생명들까지 가슴에 품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흙을 만나지 못하여 


화순곶자왈의 나무들은 대부분 맹아림이다 옛날에 숯을 굽기 위하여 나무들을 베었다고 한다 숯을 굽는 사람들은 아예 숲에 살면서 숯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곶자왈에 살아있는 나무들은 대부분 부모를 잃은 고아들일 것이다 밑동을 잘린 나무에서 어렵게 자라난 고아 형제들이다 흙이 없어서 그렇지 않아도 살기 어려운 환경에서 고아로 자란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었겠는가 흙을 만나지 못하여 바위 위로 뻗어가는 뿌리들을 보면서 마음이 참 아프다


나에게도 아픈 손가락이 있다 나의 잘못으로 다친 손가락이 있다 조울증과 중독증으로 아픈 청춘이 있다 화순곶자왈에서 아픈 청춘 같은 맹아림을 본다 맹아림 같은 아픈 손가락을 생각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픈 손가락을 후 불어주는 마음으로 이름을 불러본다 아픈 손가락 때문에 나의 마음이 많이 아프다 아픈 손가락이 나에게 말을 한다 "우리 함께 오늘도 힘을 내자"라고 문자를 보내온다 아침은 저녁에게 안부를 묻고 저녁은 아침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청년은 아픔이고 중년은 슬픔이다 아침은 아프고 저녁은 슬프다


문수물과 폐동이왓

문수물과 폐동이왓 (brunch.co.kr)


문수물과 폐동이왓



시월의 가을비가 해변을 식힌다

해변으로 우산과 우비가 지나간다

원담 안에서 솟아 나오는 문수물은

쌍원담과 함께 잠수를 하고 있다

문수보살님의 시원한 숨결과 손길로

깊은 피부병까지 치료해 주는 문수물

나는 지금 폐동이왓 팔각정에 있다

오른쪽 앞에는 말 등대가 깜박이고

왼쪽 하늘에는 비행기 불 켜고 온다

어느 날 모래가 덮쳐서 없어졌다는

폐동이왓은 이제 소나무산이 되었다

나도 이제 머지않아 돌아갈 것이다

내가 돌아간 뒤에 나는 무엇이 될까


등대의 불빛이 바다에 다리를 놓는데

고양이들의 눈빛이 그 다리를 건넌다


시 쓰는 나무

시 쓰는 나무



시 쓰는 나무를 알고 있다

전생에 방랑시인이었다는 

그는

이번 생에는

딱 한 편만 쓰겠다고

어느 깊은 밤 나에게 말했다

봄부터 부지런히 시를 쓰다가

깊은 가슴속에

해마다 

딱 한 줄씩만 남기고 

아낌없이  

낙엽으로 

멀리 날려서 보낸다고 했다




사람들은 '제주 왕따 나무'라고 말한다. '나 홀로 나무'라고 말한다. '독야청청 나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시 쓰는 나무'라고 말한다. 내가 아는 시인들 중에 홀로 사는 시인들이 있다. 그들은 참 아름다운 시인들이 많다. 그 대표적인 시인을 나는 알고 있다. 이병률 시인, 박남준 시인, 김주대 시인을 알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인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내가 아직 모르고 있는 더 많은 시인들이 있을 것이다. 황인숙 시인 등의 여성 시인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자기 관리를 참으로 잘하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이 부럽다. 그들의 순수함과 치열함이 부럽다. 시를 향한 순수한 사랑이 한없이 부러울 때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가 있다. 평화로 중간쯤에 있다. 나는 제주시와 화순을 왕래하며 자주 그 나무를 찾아간다. 주로 제주시에서 화순 가는 길에 들러보곤 한다. 새별오름 들렀다가 만나러 가는 경우가 많다. 제주시에서 화순으로 가는 평화로 오른쪽에 있다. 그리스 신화 박물관과 트릭아이 미술관 입구에서 우회전하여 광산로를 따라가면 5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반대쪽, 평화로 왼쪽에는 금악휴게소와 제주 악어 타운이 있다) 따로 간판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나도 잘 찾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산 쪽이 아니라 바다 쪽으로 가야만 한다. 성이시돌목장 비육사가 있는 초지 안에 있다. 새별오름과 이달오름을 배경으로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시선을 주면서 가야만 보일 것이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기 때문에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를 보고 쉽게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곳은 사유지이며 사료용 풀을 키우는 초지여서, 옛날에는 가시철망을 쳐서 출입을 막았으나 사람들이 워낙 많이 찾아오는 바람에 요즘에는 개방한 상태여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 알려지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요즘에는 그 나무가 많이 시달리고 있다. 워낙 많은 발자국들 때문에 흙이 파여서 뿌리가 많이 드러나서 내 마음이 많이 아프다. 그래도 어쩌랴. 좋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막을 수도 없지 않겠는가? 요즘에는 웨딩촬영뿐만 아니라 드론을 활용한 항공촬영도 많이 하고 있어서 귀까지 따가울 정도가 되었다. 사람들은 무엇 하나라도 그냥 놔두지 않는다. 유명인사가 된 시인들도 어쩌면 저 시 쓰는 나무처럼 이제는 인간들이 귀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늘 조심스럽다.


시 쓰는 이 나무는 머귀나무다. 이달 오름과 새별오름을 배경으로 거느릴 때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나는 겨울나무를 좋아한다. 활엽수인 이 나무는 겨울에 몸을 크게 한 번 바꾼다. 모래시계처럼 제 자신을 크게 한 번 뒤집는다. 그렇게 뿌리를 하늘에 내린다. 하늘의 별빛과 달빛을 빨아들여 땅 속에 피어 있을 잎들에게 젖을 물린다. 가을에 땅 속으로 이사를 간 잎들은 별빛과 달빛을 빨아먹으며 새로운 봄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귀 기울여 자세히 들어보면 잎들이 땅속에서 잠꼬대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젖을 빨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린 어린것들이 젖꼭지를 빨다가 손가락을 빨다가 꿈속에서도 우물우물하면서 잠꼬대인지 숨결소리인지 모르게 낮게 낮게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잎은 가죽나무처럼 작은 잎이 여럿 모인 겹잎이며 잎의 크기가 큰 편에 속한다. 육지에서 어머니의 장례 때 오동나무로 상장대를 사용한 것과 달리 제주에서는 오동나무가 귀해서 머귀나무로 대신 사용했다고 한다. 장례 때 쓰는 지팡이를 육지에서는 상장대라고 하지만 제주에서는 이름도 방장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옛 문헌에 따르면 머귀나무는 오동나무의 옛 이름으로 기록되면서 머귀나무를 사용한 것도 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머귀나무에는 굵은 가시가 박혀 있는데 이런 가시의 고통을 느끼며 어머니를 생각하라는 의미가 있다고도 말한다. 


8월이면 머귀나무도 꽃이 핀다. 황백색 꽃이 원뿔 모양으로 자잘하게 모여서 핀다. 잎자루와 줄기에 난 가시는 자라면서 가시의 날카로움은 없어지고 코르크 부분만 남아있게 된다. 가을이 되면 까만 씨가 익어가는데 산초나무와 마찬가지로 독특한 향기를 가지고 있다. 머귀나무 잎은 감기와 말라리아 처방약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나는 오늘 이병률 시인의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을 다시 읽으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고 있다. 신춘문예에 대하여 생각하고, 문학은 우열을 가리는 운동경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하여 생각하고, 반동(反動)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고, 성장에 대하여 생각하고...., "보통의 사람은 남이 만든 파도에 몸을 싣지만, 특별한 사람은 내가 만든 파도에 다른 많은 사람들을 태운다."라고 말하는 이병률 시인과 그의 문장들을 생각하며 김주대 시인의 방송을 시청한다. 나는 김주대 시인의 시와 문인화를 좋아한다.


다시, 시 쓰는 나무

다시, 시 쓰는 나무 (brunch.co.kr)


다시, 시 쓰는 나무



사람들은 왕따 나무라고 한다

사람들은 홀로 나무라고 한다

나는 시 쓰는 나무라고 말한다

나무는 홀로 날마다 시를 쓴다

나무는 홀로 철마다 시를 쓴다

나무는 해마다 한 줄만 남긴다

시는 가슴속의 나이테가 된다 


그러나 아,

고독 보다 사람들에 더 가까우면

시 쓰는 나무는 결국 죽고 말리라




야간근무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시 쓰는 나무를 만나고 왔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고 왔는데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이제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하는 죽은 시인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 쓰는 나무는 이제 시비처럼 서 있었다. 유고시집처럼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었던 이달오름과 새별오름도 슬퍼 보였다. 아침 7시에 퇴근하여 감귤을 좀 따고 밭에서 일을 좀 하다가 왔다. 우체국과 도서관이 9시에 문을 열어서 그랬다. 서귀포시민의 책 읽기 위원회 위원장님께서 책을 한 권 보내달라고 하셔서 우체국을 들렀고 책두레 책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따라서 도서관에 들러서 시 쓰는 나무를 만나고 제주시로 왔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나는 <느림보 마음>으로 살기로 하였다. 나는 오늘도 나를 돌아보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아름다운 시인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아름다운 시인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아름다운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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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아름다운 시인이다



김용택 선생님의 <김용택의 어머니>를 읽었다 김용택 시인님의 어머님 박덕성(양글이) 여사님을 나도 몇 번 뵌 적이 있다 임실 진뫼마을에서 뵈었다 혼자 사시면서 열심히 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농협 마크가 새겨진 김용택 문패가 있는 집에서 일을 하고 계셨고 정자나무 곁의 밭에서도 일을 하고 계셨다 참깨를 털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김용택 시인과 같은 마을에 사셨던 김도수 시인의 집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함께 요강바위 안에도 들어갔던 추억은 나에게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였다 그리고 김도수 시인이 힘을 써서 복구했다는 징검다리도 건너고 징검다리 건너의 산밭에서 함께 감을 따던 경험은 나에게 오래도록 감동으로 남아있다  

   

 <김용택의 어머니>는 참 잘 만들어진 책이다 특히 황헌만 사진가의 사진들은 내가 진뫼마을에서 보았던 많은 모습들을 아름답게 되살려주어서 더욱 좋았다 이 책은 오리 키우는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나에게도 오리 키우기는 각별한 경험이 많아서 나를 뒤돌아보게 만든 책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같은 섬진강 가에서 살았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또한 박덕성(양글이) 어머님의 고향이 순창군 구림면 통안리인데, 나의 고향 곡성군 삼기면 원등리는 지금의 27번 국도로 연결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어머니의 별명 ‘양글이’는 야물다 야무지다,라는 뜻이다 제주도에서는 이런 사람을 ‘요망 지다’라고 한다 그런 면으로 따지자면 나의 어머니는 어느 누구보다도 ‘양글이’였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야무지고 요망진 사람이 바로 나의 어머니 ‘매산이 댁’ 이셨다 ‘매산’은 어머니 고향인 곡성군 입면 매월리의 동네 이름이어서 사람들은 늘 ‘매산이 떡’이라고 불렀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자신들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현실적인 고민도 해결해 주었다 감을 딸 때 자꾸만 땅에 떨어져서 문제였는데 높은 곳에 있는 감을 혼자서도 안전하게 딸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어머니의 젖>이었다 튼 손에 어머니가 젖을 짜서 발라주었다는 부분에서는 김용택 시인이 한없이 부러웠다 나도 사실은 겨울에 손이 많이 텄다 하지만 나는 김용택 시인처럼 어머니의 젖을 발라보지 못했다 나의 어머니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니 애비가 다 뜯어 묵고 이만큼 남았다”이 말씀이 오래 남을 것 같다 

    

오늘은 더욱 ‘매산이 떡’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책을 다 읽고 밖으로 나간다

     

오늘이 11월 9일인데 이어도서천꽃밭에는 오이꽃이 피고 호박꽃이 피고 무화과가 익어간다 대책도 없이 호박떡잎이 새롭게 올라오기도 한다 식물들은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온도만 맞으면 언제라도 싹을 내밀고 꽃을 피운다 인간들처럼 계산하지 않고 언제라도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뒤늦게 익어서 벌어진 무화과 두 개를 따서 아침으로 먹는다     


나는 어젯밤에 회식을 하였다 어제는 낮에 근무를 하고 제주시로 나갔다 보쌈을 먹고 홍어회를 먹고 육전을 먹고 냉면을 먹었다 바보처럼 회식을 하면 과식을 한다 그래서 나는 회식이 싫다 버려지는 음식이 많아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이제 그런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 6월 말이면 임금피크에 들어간다 그리고 2년 뒤에는 정년퇴직이다      


올해 12월 말에 임피에 들어가는 동료가 나에게 질문을 한다 내가 혹시 서천화력에서 근무를 하였냐고 묻는다 발전소 사람들은 서천, 하면 서천화력발전소를 떠올린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의 시집 <서천꽃밭>을 읽고 혹시 서천화력에 근무를 했는지 궁금하다고 한다 아, 그렇게 오해를 하는 사람도 있구나! 나는 서천꽃밭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을 한다 서천꽃밭은 제주도 무속에 나오는 ‘이공본풀이’에 나오는 꽃밭이라고 설명을 한다 곁에 있는 동료가 반박을 한다 제주도 토박이가 반박을 한다 제주도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다고 강력하게 반박을 한다 나보다 6개월 뒤에 임피에 들어가는 동갑내기 친구다 나는 다시 사라도령과 원강아미와 할랑궁이 이야기를 한다 서천꽃밭 모티브가 포함된 <신과 함께> 영화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친구는 절대로 제주도 신화도 무속도 아니라고 강력하게 반박한다 제주도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자기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한다 나는 친구의 손에 장을 지질 수 없어서 뒤로 물러난다 나는 언젠가 오해는 풀리지 않을까 생각하며 대화에서 발을 빼고 물러난다 이런 상황까지 오면 나는 나의 주장을 철회하고 물러난다 나는 이렇게 물러터진 사람이다 친구의 손에 장을 지지기보다는 내가 바보가 되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혼자 생각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데 김도수 시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몸과 마음이 통째로 고향인 사람, 김도수
몸과 마음이 통째로 고향인 사람, 김도수

내가 직접 보았던 진뫼마을 (brunch.co.kr)


몸과 마음이 통째로 고향인 사람, 김도수



알면 알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

알면 알수록 더 향기로운 사람이 있다

알면 알수록 더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나는 언제나 사랑스런 당신이 참 좋다 



준비 중인 《이어도공화국 07 - 당신에게 보냅니다》는 김도수 시인의 책들이 조금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만드는 이어도공화국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기존의 고향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고향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지는 미래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시와 산문이 자유롭게 어우러지는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 중이다. 시집도 아니고 산문집도 아닌 책, 시집이면서 산문집인 책, 시적인 것과 산문적인 것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주로 나의 꿈과 나의 삶을 자유롭게 쓰는 글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이번 글을 <배진성 꿈삶글>이라고 스스로 명명하였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다양한 각도에서 자유롭게 읽고 자유롭게 상상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몸과 마음이 통째로 고향인 사람, 김도수

그의 첫 번째 산문집《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를 먼저 읽는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알면 알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 김도수 형님이 있다. 몸과 마음이 통째로 고향인 사람이 있다. 그 형님께서 자신의 책을 보내주셨다. 예전에 진뫼마을 형님댁에서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남도기행을 했던 독서회 사람들과 함께 돌려가며 읽어보라고 보내주셨다. 이것도 다 인연인 듯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첫 번째 산문집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를 먼저 읽는다. 이 책이 발행되기 전부터 나는 그의 찰지고 구수한 글들을 인터넷에서 많이 읽었다. 아마도 전라도닷컴 사장님 가슴도 나의 가슴처럼 따뜻하게 데워준 것 같았다. 전라도닷컴 사장님을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김도수 형님 말씀에 의하면 참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다 인연과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것일 것이다. 


산문집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전라도닷컴)는 2004년 7월 19일 1쇄를 찍었고, 2007년 1월 1일 2쇄를 찍었다. 광주에 있는 작은 지방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 이렇게 인기를 얻은 것은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의 고향을 향한 징글징글한 사랑의 기록이 세상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하여 썼고 또한 이 책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여러 방송에도 출연하고 유명해졌기 때문에 내가 따로 쓰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어쭙잖은 글을 쓰는 것은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함일 것이다.


한때 농사를 짓고 살겠다는 겁도 없는 꿈을 꾸고 있었다는 박남준 시인, 대학을 졸업하고 돈 한 푼 없던 박남준 시인에게, 교편을 잡고 있던 후배가 13만 원을 빌려주어, 그 돈으로 임실의 진뫼마을 빈집 한 채를 사서 일 년을 살았다는 박남준 시인, 그 인연으로 이 책의 추천글을 쓴 박남준 시인은 김도수 시인의 고향 사랑을 두고 "강가의 작은 마을을 지키는 징글징글한 사랑의 이야기가 여기 있네. 여기 불이 꺼진 마을에 다시 들어와 따뜻한 불을 밝힌 사람이 있네"라고 말한다. 김도수 시인은 1959년 생이고 박남준 시인은 1957년 생이다.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에 수록된 글과 사진들은 박남준 시인의 말처럼 징글징글한 사랑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나의 시선을 더욱 오래도록 붙잡아 두는 글과 사진들이 있다. 김도수 시인의 고향 임실의 진뫼마을과 나의 고향 곡성의 연어의 종착역은 참 많이도 닮아 있어서 많은 이야기들이 나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그중에서 나는 <추억의 등굣길>이 가장 좋다. 나에게 가장 많은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한 나로 하여금 가장 많은 반성을 하도록 깨우쳐주고 있다. 이 이야기는 추석 연휴 첫날, 초등학교 다니는 딸과 아들에게 김도수 시인이 다녔던 초등학교 등굣길을 체험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딸 가애와 아들 민성이가 책보 둘러메고 아버지의 어린 시절 등굣길을 체험하는 이 이야기는 나 자신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덕치초등학교로 가던 강변 등굣길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김도수 시인이 다녔던 길과 그의 딸과 아들이 손 꼭 잡고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따라서 걸어가는 모습이 내 눈에는 참으로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리고 그런 딸과 아들 뒤를 따라서 점심 도시락을 싸서 따라가는 김도수 시인과 그의 아내 박은자 형수님도 보인다. 그리고 농사일을 하다가 뒤늦게 운동회가 열리는 학교로 달려가는 김도수 시인의 어머니 월곡떡도 보인다. 그리고 운동장 앞쪽 모서리에 서 있는 쌍벚나무 아래서 점심을 먹는 김도수 시인과 그의 형과 그의 어머니가 함께 점심을 먹는 모습도 보인다. 또한 김도수 시인과 그의 아내 박은자 형수님과 그의 딸 가애와 그의 아들 민성이가 함께 모여서 점심을 먹는 모습도 보인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리고 나는 < 75년 여름 진뫼마을 톱뉴스>에서는 나의 아버지를 보았고 <어머니 사랑비는 언제나 세울까>에서는 나의 어머니 '매산이 댁'을 보았고 <진달래 먹고 놀던 내 친구 현철이>에서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언젠가는 나의 아버지 이야기와 나의 어머니 이야기와 현철이처럼 살았던 나의 이야기는 새롭게 다시 쓰일 날이 있으리라. 그리고 <어서 고치집 좀 짓거라>에서는 누에 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나의 기억과 좀 달라서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 내 기억에는 일 년에 한 번 누에치기를 하였다. 뽕나무가 일 년에 한 번 자리서 나는 일 년에 한 번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봄과 가을 이렇게 두 번 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봄 누에와 가을 누에가 있다고 나온다. 우리 집에서도 누에치기를 많이 하였는데 어머니께서 약 한 달가량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다. 밭에 있는 뽕이 부족해서 산에 들어가 꾸지뽕을 따다가 먹인 기억이 선명하다. 



진뫼마을 진뫼밭에 사랑비를 세운 사람

그의 두 번째 산문집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를 읽으며



처음에 내가 김도수 시인의 산문들을 인터넷에서 읽었을 때에는, 내가 이미 그 10여 년 전에 발표한 <우리들의 고향> 연작시들을 산문으로 풀어놓았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니 나의 시들보다 훨씬 더 좋은 산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편 한 편의 산문들이 모두가 훌륭한 시이며 아름다운 소설이며 완벽한 희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김도수 시인이 풀어놓은 입말들이 참 구성지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김도수 시인의 삶은 그의 글들보다 더욱 진솔하고 정이 많아서 좋다. 김도수 시인이 여는 글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그는 늘 말과 글과 행동이 같은 사람이다. 


"말과 글과 행동이 일치되도록 사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말과 글과 행동이 따로따로 논다면 독자들을 기만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거짓 없이 진솔하게 쓰려했고, 또 내가 쓴 글처럼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내가 쓰고 있는 <꿈삶글> 연작의 정신이며 계승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한 때 김도수 시인을 비롯하여 김인호 시인과 박남준 시인과 이원규 시인이 함께 사는 지리산 가까운 곳으로 가서 살려고 하였다. 내 고향 곡성으로 돌아가 살려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고향에 있는 반월산을 사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다. 가까운 여수에도 좋은 시인들이 많이 있어서 꼭 가까이 가서 함께 살고 싶었다. 고향집이 너무 좁아서 곁에 있는 집터도 더 사려고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있었다. 폐가로 남아있던 고향집도 다시 청소를 하고 수리를 하려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너무나 좀스럽고 편협하고 비뚤어진 마음이 그 길을 스스로 막아버리고 말았다. 지금 다시 찬찬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그때는 너무나 속이 많이 상해서 나의 계획을 스스로 접어버리고 말았다.


고향에는 그 당시 두 명의 친구가 결혼도 않고 총각으로 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에게 참 많이 미안해서 내가 점심을 사고 싶었다. 그래서 미리 연락을 하고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명의 친구들이 올 줄 알았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왔다. 친구들과 같이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선배들과 후배들이라고 말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예상을 못해서 잠시 당황은 했지만 그래도 오히려 더 좋았다. 앞으로 얼굴 보고 지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친해질 수 있어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점식 식사를 함께 했고 즐거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고향집으로 돌아와 집을 대강 치우고 공향집에서 잠을 자려고 했다. 불편하지만 그래도 고향집에서 일찍 자려고 하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와서 생각도 많아지고 불편해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하였다. 점심때 함께 밥을 먹었던 사람들이 나만 빼고 다 함께 술을 먹고 있다고 하였다. 오랜만에 찾아간 집이어서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간단한 부탁을 하였는데 거절을 당했다. 뭐, 그동안 연락도 하지 않다가 불쑥 찾아가서 부탁을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아니, 끊으려고 하였다. 친구는 내가 먼저 전화를 끊은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친구는 아마도 전화기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은 상태에서 술상에 전화기를 내려놓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친구의 전화기가 너무나 생생하게 그 술집 풍경을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점심때, 나를 일부러 바가지를 씌워 골탕 먹이려고 많은 사람들을 불러왔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나의 가장 아픈 부분이었던 나의 어머니 이야기와 나의 아버지 이야기들까지 1시간이 넘도록 나와 나의 가족들은 그들의 술안주가 되고 있었다. 나는 차마 중간에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의 귀향의 꿈은 그렇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아직 나의 깊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나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옹졸했던 나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였고 너무나 큰 절망이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친구들 곁으로는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하면, 술을 먹다 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는 충분히 좋은 술안주가 되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아마도 그날이 그랬을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는 그날 가장 적당한 술안주였을 것이기에 지금은 나도 그러려니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김도수 시인이 태어났다는 작은 방, 월곡산방에서 잠을 잔 적이 있다. 그리고 김도수 시인이랑 김인호 시인과 함께 요강바위에 직접 들어가 보고 그 주위에서 목욕을 함께 한 추억이 있다. 또한 징검다리 건너 밭에서 먹감을 함께 딴 추억이 있다. 또한 제주도에서 독서회 회원들과 함께 남도 기행을 갔을 때 김도수 시인께서 직접 운전을 해주시고 진뫼마을 고향집에서 따뜻한 밥을 얻어먹은 추억이 있다. 김도수 시인과 박은자 형수님께서 제주도에 오셨을 때 함께 재미있게 지냈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또 여수에서 열렸던 전국문학인대회에서 다시 만났던 기억도 있다. 김도수 시인은 만나면 만날수록 더욱 좋아지는 시인이다.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에서 나는 <어머니의 비자금 만들기>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용수네 어매, 존말로 헐 때 나와>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나중에 내게 고백한 이야기지만 그날 저녁 어머니는 강물에 뛰어들어 죽어버리려 했단다. '아이고, 당신도 어린 자식들 데리고 영금 한번 보며 남은 인생 살아 보시오' 하는 심정이었단다." 김도수 시인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는 너무나 많이 닮으셨다. 그리고 김도수 시인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 또한 너무나 많이 닮으셨다. 그런데 나는 김도수 시인이 너무나 부러웠다. 김도수 시인은 그래도 논이 열 마지기나 되는 부자였고 이장일을 오래도록 할 만큼 건강한 아버지가 계셨다. 투망질을 잘하시는 것은 나의 아버지도 같았지만 나의 아버지는 늘 구들장을 짊어지고 살아야만 했던 환자이셨기 때문이다. 김도수 시인 집에는 머슴도 있는 부자였지만 우리 집은 시골에 살면서도 땅 한 평 없는 지지리도 가난했던,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했던 집이었기 때문에 나는 늘 논이 있는 친구들이 가장 부러웠다. 우리 집은 언제나 김도수 시인의 글에 나오는 외딴집 현철이 이거나, 남의 집 아래채에 살다가 3학년인가 4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그 여자친구 집에 가까웠었다. <하필 보리쌀 갈 때 너그 선생님이 와서...>에 나오는 정수형님네 뒷집에 살았다는 그 여자친구가 자꾸만 나의 어린 시절과 겹쳐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내가 보았던 진뫼마을과 김도수 시인



내가 아는 시인들 중에

가슴이 가장 따뜻한 시인은

진뫼마을이 고향인 김도수 시인이고

내가 아는 시인들 중에

삶이 가장 아름다운 시인은

노고단처럼 살아가는 김인호 시인이다

설날을 맞이하여

설날 특집 나의 살던 고향을

유튜브로 보면서

김도수 시인께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우는 장면에서

나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함께 울었다

나는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김도수 시인과 김인호 시인의 삶을 생각하며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따르려고 노력한다

세상에는 아직도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인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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