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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Nov 14. 2023

향기로운 노동

― 당신에게 보냅니다 2부 배진성 꿈삶글 13



향기로운 노동




문태준 시인의 『나의 첫 문장을 기다렸다』와 현택훈 시인의 『제주어 마음사전』 중에 제주어 마음사전을 먼저 읽었다 문태준 시인은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시인이고 현택훈 시인은 제주도에서 유명한 시인이다 나는 제주도부터 읽었다 나는 아직 제주도를 잘 모른다 제주도에서 30년을 살았지만 제주도를 아직도 잘 모른다 특히 제주어를 잘 모른다 

    

내 책상에는 언제나 『제주어사전』이 있다 1995년 제주도에서 발행한 비매품(非賣品) 사전이다 자주 들추어보지만 여전히 어렵다 제주시 선흘리에는 <불칸낭>이 있다 하지만 나는 ‘불칸낭’이라고 하지 않고 ‘불탄낭’ 이라고 부른다 나의 제주어 실력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낭’이란 말은 지금도 많이 쓴다 ‘나무’를 제주어로 ‘낭’이라고 쓰고 부른다 육지 것인 나도 이제는 낭이라는 말은 쉽게 쓰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카다’라는 제주 말은 익숙한 말이 아니다 그리하여 나에게는 ‘불에 칸 나무’보다 ‘불에 탄 나무’가 더 익숙하다  

   

‘카다’라는 말은 ‘불에 타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니까 ‘불칸낭’은 ‘불에 탄 나무’라는 뜻이다 선흘리 불칸낭은 제주 4·3 때 토벌군이 지른 불에 탔다는 말도 있고, 현지인 중에는 한참 뒤에 담뱃불에 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세히 살펴보니 두 주장이 모두 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의 시련이 아니라 여러 번의 시련을 겪은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십여 년 전에 선흘리 불칸낭 가슴속에서 새롭게 태어나 자라나는 후박나무의 어린 모종을 두 그루 모셔 왔다 이어도서천꽃밭 수문장으로 모셔왔다 지금은 잘 자라서 이어도서천꽃밭을 잘 지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연 많은 후박나무는 번식력도 강하고 성장력도 뛰어나서 벌써 여러 그루의 후박나무 후손들과 함께 잘 살아가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후박나무 곁에서 피어나는 들국화를 조금 땄다 『제주어 마음사전』을 읽고 나오니 무화과나무에서 새가 아침을 먹고 있다 직박구리가 날아가고 무화과나무를 살펴보니 내가 먹을 무화과는 하나 남겨두었다 무화과를 따서 먹고 물외를 따서 먹고 감귤을 따서 먹으니 배가 많이 부르다 그냥 방에 들어가면 졸릴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향기로운 노동을 조금 한다 노랗게 피어나는 들국화 꽃을 조금 딴다 국화차를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들국화를 조금 갈무리한다 우리들의 노동이 이렇게 늘 향기로운 노동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감귤을 따고 들국화를 따면서 생각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감귤을 딴다’라고 말하지 않고 ‘감귤을 탄다’라고 말을 한다 지나가는 동네 사람이 “감귤 많이 타수과~앙?”한다 나도 이제 더욱 친절한 제주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불탄낭’이라고 하지 않고 ‘불칸낭’이라고 해야만 할 것 같다 향기로운 노동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늦잠꾸러기 사랑초가 눈을 비비며 기기재를 켜며 일어난다          







이어도공화국 07

당신에게 보냅니다 

배진성 꿈삶글



제2부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노인성이 유숙하는 섬


노인성이 유숙하는 섬




서귀포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서귀포혁신도시에서 중문관광단지까지

이어도 길을 걷다가 태평양으로 간다

설문대할망의 막내아들을 만나러 간다

남극노인성이 유숙하는 이어도로 간다


바다에서 해(海)를 본다 물이 아프다

인간들의 욕망이 낳은 쓰레기들의 섬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욕망들의 얼굴,


바다 해(海) 글자를 더 자세히 본다

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가 아프다

아픈 어머니에게 방사능 오염수까지 먹인다

태평양의 수평선이 트로이목마를 끌고 온다

북극곰의 신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바다와 하늘이 함께 뜨거워지고 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막내아들이

뜨거운 어머니 이마에 물수건을 올린다

유숙하던 노인성도 곁에서 돕는다

서천꽃밭 꽃감관도 불사화를 가져온다


용궁으로 가는 올레에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노랫소리 들려온다 하늘에는 서천꽃밭이 있고 땅에는 마고성이 있고 바다에는 이어도가 있다


어머니를 살리려고 노인성과 꽃감관도 떠나지 못한다



* 2003년에 태어난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성인이 되었다

* 인간들의 욕망은 바다에 쓰레기섬을 만들고 핵폐기물도 버린다

* 서귀포시 도로명주소에 '이어도로'가 있다


정방폭포 서(序)

https://brunch.co.kr/@yeardo/1585



정방폭포 서()



<4·3과 평화> 2023 여름의 얼굴이 된 정방폭포

상처가 깊을수록 많은 눈물을 쏟아서 더욱 하얗다

새하얀 무명천이 하늘에서 끝없이 내려온다

무명천 할머니께서 수의를 만들고 계시는지

만가(輓歌)처럼 베 짜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얼굴 안쪽에 그늘처럼 흑백사진 한 장이 숨어있다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전분공장과 창고들이 보이고

멀리, 목호(牧胡)들의 범섬까지 뚜렷하게 보인다

물빛과 무명천은 여전히 하얗고

발을 담그고 세수도 하였을 것만 같은 여울물소리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는 노래는 비명(悲鳴)이 된다

길을 잃고 느닷없이 단애(斷崖)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

서귀, 중문, 남원, 안덕, 대정, 표선, 한라산 남쪽 사람들

태평양을 헤매다가 75년 만에 작은 집으로 돌아온다


불로장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아왔던 서복이 머문 곳

지금도 대궐 같은 집에서 불로초를 가꾸고 있는 곳

불로초 공원에 만든 그 작은 공간으로 돌아오는 영혼들

타고난 제 삶도 끝까지 살지 못하고 벼락처럼 떠나버린

그 많은 정방폭포의 사람들

광풍에 느닷없이 길이 끊어져 허공에 발을 딛고 

한꺼번에 바다로 추락해 버린 목숨들, 오늘도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바다에서 길을 찾고 있는 사람들


그중에 한 사람을 따라서 긴 순례를 시작한다



* 정방폭포는 한라산 남쪽 최대의 학살터였다. 75년 만인 2023년 5월에 비로소 작은 4·3 희생자 위령공간이 마련되었다.





앞표지
제1부

https://brunch.co.kr/@yeardo/1658   제1부 너에게 나를 보낸다

제2부
제3부
제4부
제5부
제6부
뒤표지

바다와 나의 숨결이
바다와 나의 숨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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