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낭과 야자수 / 배진성
제주도 팽나무와
워싱턴 야자수가
나란히 서 있다
가지 많은 나무가 허리도 펴지 못하고 그늘을 가꾼다
벌레들에게도 젖을 물리며 숨소리를 어루만지고 있다
가지 하나 없는 나무가 하늘 높이 탑만 쌓아 올린다
우리들의 하늘을 함부로 들쑤시고 있다
붉은 해가 솟는다
워싱턴야자수 그림자가
폭낭 가슴을 관통한다
붉은 해가 기운다
가슴이 넓은 나무가
홀쭉한 나무를 가만히 안아준다
<제주 4.3 72주년 추념 시화전 원고>
* 시화는 짧을수록 좋다. 한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 하나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으면 족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4․3이라 말하지 않고 3․1절 발포사건”이라고 말한다. 우리들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외치던 3․1정신을 향해 발포한 미군정, 그리고 무자년 겨울의 초토화 작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승리를 위해서는 그런 적군까지 용서하고 안아줄 수 있는 가슴 넓은 민족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이고 부처님의 자비가 아니겠는가?
배진성 1988년《문학사상》《동아일보》등단. 시집 『땅의 뿌리 그 깊은 속』, 『잠시 머물다 가는 이 지상에서』,『길 끝에 서 있는 길』, 『꿈섬』.전자우편 : yeard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