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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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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Dec 02. 2023

반야심경





술가락


  

우리 부부는 인제는 굶을 도리밖에 없엇다.
잡힐 것은 다 잡혀먹고 더 잡힐 것조차 없엇다.
「아- 여보! 어디좀 나가봐요!」
안해는 굶엇것마는 그래도 여자가 특유(特有)한 뾰루퉁한 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
나는 다만 말없이 앉어 잇엇다.
안해는 말없이 앉아 눈만 껌벅이며 한숨만 쉬는 나를 이윽히 바라보더니

말할 나위도 없다는 듯이
얼골을 돌리고 또 눈물을 짜내기 시작한다.
나는 아닌게 아니라 가슴이 아펏다. 그러나 별 수 없었다.
둘 사이에는 다시 침묵이 흘럿다.
「아 여보 조흔수가 생겻소!」얼마동안 말없이 앉아 잇다가 나는 문득 먼저 침묵을 때트렷다.
「뭐요? 조흔수?」무슨 조흔수란 말에 귀가 띠엿는지 나를 돌아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아니 저 우리 결혼할 때… 그 은술가락말이유」
「아니 여보 그래 그것마저 잡혀먹자는 말이요!」
내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안해는 다시 표독스러운 소리로 말하며 또 다시 나를 흘겨본다.
사실 그 술가락을 잡히기도 어려웟다.
우리가 결혼할 때 저- 먼 외국(外國) 가잇는 내 안해의 아버지로부터 선물로 온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 술가락과 함께 써보냇던 글을 나는 생각하여보앗다.
「너히들의 결혼을 축하한다. 머리가 히도록 잘 지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이 술가락을 선물로 보낸다.
이것을 보내는 뜻은

너히가 가정을 이룬뒤에 이술로 쌀죽이라도 떠먹으며 굶지말라는 것이다.

만일 이술에 쌀죽도 띠우지 안흐면

내가 이것을 보내는 뜻은 어글어 지고 만다.」대게 이러한 뜻이엇다.
밥 먹는데 무엇보다도 필요한 안해의 술가락이 없음을 그때서야 깨달앗던 까닭이다 

굶은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없이 「여보 어찌 하겟소 할 수 잇소」
나는 다시 무거운 입을 열고 힘없는 말로 안해를 다시 달래보앗다. 안해의 빰으로 눈물이 굴러 떨어지고 잇다.
「굶으면 굶엇지 그것은 못해요.」 안해는 목메인 소리로 말한다.
「아니 그래 어찌겟소. 곧 찾아내오면 그만이 아니오!」 나는 다시 안해의 동정을 살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없이 풀이 죽어 앉어잇다. 이에 힘을 얻은 나는 다시
 「여보 갖다 잡히기오 발리 찾어내오면 되지 안겟소」 라고 말하엿다.
「글세 맘대로 해요」 안해는 할 수 없다는 듯이 힘없이 말하나 뺨으로 눈물이 더욱더 흘러내려오고잇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전재산인 술가락을 잡히기에는 뼈가 아팟다.
그것이 운수저라 해서보다도 우리의 결혼을 심축하면서 멀리 ××로 망명한 안해의 아버지가
남긴 오직 한 예물이엇기 때문이다. 「자 이건 자네 것 이건 자네 안해 것-세상없어도

이것을 없애서 안되네」 이러케 쓰엿던
 그 편지의 말이 오히려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 숟가락이건만 내것만은 잡힌지가 벌서 여러달이다.
술치 뒤에에는 축(祝)지를 좀 크게 쓰고

그 아래는 나와 안해의 이름과 결혼이라고 해서(楷書)로 똑똑히 쓰여잇다.
나는 그것을 잡혀 쌀, 나무, 고기, 반찬거리를 사들고 집에 돌아왓다.
안해는 말없이 쌀음 받어 밥을 짓기 시작한다. 밥은 가마에서 소리를 내며 끓고잇다.
구수한 밥내음새가 코를 찌른다. 그럴때마다 나는 위가 꿈틀거림을 느끼며 춤을 삼켯다.
밥은 다되엇다. 김이 뭉게뭉게 떠오르는 밥을 가운데노코 우리 두 부부는 맞우 앉엇다.
밥을 막먹으려던 안해는 나를 똑바로 쏘아본다.
「자, 먹읍시다.」 미안해서 이러케 권해도 안해는 못들은체 하고는 나를 쏘아본다.
급기야 두 줄기 눈물이 천천이 안해의 볼을 흘러 나리엇다.

웨 저러고 잇을고? 생각하던 나는 「앗!」하고 외면하엿다.
밥 먹는데 무엇보다도 필요한 안해의 술가락이 없음을 그때서야 깨달앗던 까닭이다.


(1935년1월1일, 송몽규,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콩트 당선작)



윤동주에게는 송몽규가 있었다. 나에게는 누가 있을까. 윤동주에게 송몽규가 없었다면 과연 오늘날의 윤동주가 있을 수 있었을까. 나에게 과연 그런 사람이 있는가? 가만히 다시 생각하니 나에게도 송몽규 같은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곁에 있었구나!






    https://youtu.be/fg6wGeaXf6M?si=vc6iQ_YO-SzzGKco

https://youtu.be/hJtz7089kSA?si=QhBhsEepnR1wAMGN




정방폭포 윤동주 읽기

1. 정방폭포 윤동주를 읽는다

2. 정방폭포가 윤동주를 읽는다

3. 윤동주가 정방폭포를 읽는다



4·3과 평화가 정방폭포를 찾아간다

정방폭포는 윤동주를 읽고 있다

검은 주상절리의 서랍을 열어본다




정방폭포 서()



새하얀 무명천이 하늘에서 끝없이 내려온다

무명천 할머니께서 수의를 만들고 계시는지

만가(輓歌)처럼 베 짜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주상절리 서랍에서 흑백사진 한 장 꺼낸다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전분공장과 창고들이 보이고

멀리, 목호(牧胡)들의 범섬까지 뚜렷하게 보인다

물빛과 무명천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하얗고

발을 담그고 세수도 하였을 것만 같은 여울물소리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는 노래는 비명(悲鳴)이 된다

길을 잃고 느닷없이 단애(斷崖)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

서귀, 중문, 남원, 안덕, 대정, 표선, 한라산 남쪽 사람들

태평양을 헤매다가 75년 만에 작은 집으로 돌아온다


불로초 공원에 만든 그 작은 공간으로 돌아오는 영혼들

타고난 제 삶도 끝까지 살지 못하고 벼락처럼 떠나버린

그 많은 정방폭포의 사람들

광풍에 느닷없이 길이 끊어져 허공에 발을 딛고 

한꺼번에 바다로 추락해 버린 목숨들, 오늘도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바다에서 길을 찾고 있는 사람들


그중의 한 사람을 따라서 긴 순례를 다시 시작한다

윤동주를 읽던 정방폭포가 젖은 몸으로 따라나선다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11. 20. 윤동주)




정방폭포는 한라산 남쪽 최대의 학살터였다. 75년 만인 2023년 5월에 비로소 서복 불로초 공원 한쪽에 작은 4·3 희생자 위령공간이 마련되었다.


정방폭포에서 베틀소리가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만가(輓歌) 소리도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아우성소리가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자장가소리도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원자폭탄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일본이 항복하는 소리도 들린다.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1945년부터 1955년까지 대한민국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에 윤동주와 송몽규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었다. 그전에 이육사도 감옥에서 죽었다. 해방은 원자폭탄처럼 떨어졌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의 위력은 제주도까지 휘몰아쳤다. 해방에서부터 한국전쟁까지 제주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아니, 어떻게 죽었을까? 산에서 죽고 바다에서 죽고 감옥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을까? 윤동주와 송몽규는 시체라도 돌려받았는데 어찌하여 제주도 사람들은 골령골에 암매장되거나 바다에 수장되고 말았을까.


왜 제주도의 폭포는 남쪽에만 있을까? 자세히 살펴보니, 북쪽의 폭포들은 낮은 포복으로 기어 오고 있었다. 윤동주 시인이 요즘 시인이라면 어떤 시를 쓰고 있을까? 나는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며 나의 꿈과 나의 삶과 나의 문학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점검하며 순례를 떠난다. 윤동주의 거울 하나 들고서 순례를 다시 시작한다.


"하늘을 보지 못해서 부끄럼이 너무 많다. 나는 지금껏 죽어가는 것들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나는 지금껏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나는 이제라도, 나한테 주어진 길이 아니라,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걸어가고 싶다. 오늘 밤에도 나의 별들은 잠들지 못하고 추위에 떨고 있다."





노인성이 유숙하는 섬



서귀포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서귀포혁신도시에서 중문관광단지까지

이어도 길을 걷다가 태평양으로 간다

설문대할망의 막내아들을 만나러 간다

남극노인성이 유숙하는 이어도로 간다


바다에서 해(海)를 본다 물이 아프다

인간들의 욕망이 낳은 쓰레기들의 섬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욕망들의 얼굴,


바다 해(海) 글자를 더 자세히 본다

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가 아프다

아픈 어머니에게 방사능 오염수까지 먹인다

태평양의 수평선이 트로이목마를 끌고 온다

북극곰의 신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바다와 하늘이 함께 뜨거워지고 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막내아들이

뜨거운 어머니 이마에 물수건을 올린다

유숙하던 노인성도 곁에서 돕는다

서천꽃밭 꽃감관도 불사화를 가져온다


용궁으로 가는 올레에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노랫소리 들려온다 하늘에는 서천꽃밭이 있고 땅에는 마고성이 있고 바다에는 이어도가 있다


어머니를 살리려고 노인성과 꽃감관도 떠나지 못한다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1940년 12월 윤동주)




2003년에 태어난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성인이 되었다. 인간들의 욕망은 바다에 쓰레기섬을 만들고 핵폐기물도 버린다. 서귀포시 도로명주소에 '이어도로'가 있다.


사실 윤동주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이 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제는 이 시 제목처럼 '병원'이었다고 한다. 윤동주의 사후에 고이 보관해 왔던 시들을 모아 세상에 내놓은 지인 정병욱은 당시의 그의 말을 이렇게 회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 인지 후에 시집의 제목은 우리가 익히 아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되어 출간되었다. (내가 홀로 추측해 보건대, 윤동주 시인은 아마도 처음에는 <병원>이라는 제목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마지막으로 '서시'를 쓰면서 책 제목을 바꾸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다. 책 제목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서시의 핵심 단어들을 나열해 놓은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즉,  책의 제목은 서시의 키워드만 뽑아서 나열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병원이다. 지금은 어디가 가장 아픈 곳일까? 지금은 우리들의 어머니인 지구가 가장 아픈 병원이다. 윤동주 시인이 지금, 우리 시대에 우리들과 함께 살아있다면 아마도 아픈 지구를 먼저 노래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늙은 의사는 아직도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옛날에는 사람만 병들고 자연은 건강했지만 이제는 사람들 때문에 자연까지 병이 들었다. 이제는 사람과 지구를 함께 구해야만 한다."





견우와 직녀처럼




오늘은 동광리 무등이왓으로 사람들이 몰려가는 날

3년째 오늘은 정방폭포 수박령(水縛霊)들 고향 가는 날

무등 타고 놀던 아이들 대신 지박령(地縛霊)들만 사는 곳

아랫마을 간장리 사람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드는 날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빈 집터에 조를 함께 심는 날

영귀소리에 불려 나온 조릿대밭 영혼들 술 한 잔 받는 날

오메기떡 만들어서 빚은 고소리술 한 잔 하는 날

그때의 사람들처럼 큰넓궤에서 50일 동안 살다 나온 술

3만 명의 영령들이 함께 맛을 본 고소리술 얻어 마시는 날

잃어버린 마을에 사람들이 찾아와서 

해원과 상생과 평화의 바람이 되어 스스로 부는 날

75년 동안 한 곳에서만 붙들려 살았던 

수박령(水縛霊)과 지박령(地縛霊)이 만나는 날

정방폭포의 물소리도 바람으로 함께 따라서 오는 날

75년 만에 마련한 정방폭포 4·3 위령 공간에 모였던 

억울한 영령들이 무등이왓으로 한꺼번에 따라서 몰려오는 날

수박령(水縛霊)의 몸에서는 아직도 너무 많은 비가 내리는 날

안덕을 따라서 대정, 중문, 서귀, 남원, 표선이 따라오는 날

지박령(地縛霊)과 수박령(水縛霊)이 견우직녀처럼 만나는 날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을 만들려면 오늘은 조 모종을 옮겨 심어야만 한다 새벽부터 비가 너무 많이 내린다 지난 5월에 만들어진 정방폭포 4·3 위령 공간 때문이다 물의 영혼으로 살았던 수박령들이 불로초 공원으로 한꺼번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정방폭포 수박령들이 동광리 지박령을 만나려고 한꺼번에 귀향하여 얼싸안고 울기 때문이다


동광리 무등이왓 땅살림 코사를 복지회관 실내에서 지낸다 

안개비로 가득한 조 밭으로 가서 영귀소리로 원혼들을 불러 모아 모시고 온다

함박 가득 담긴 생메 위의 청댓잎은 더욱 푸르고 

156개의 술잔이 더욱 빛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비는 문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다

조 밭에서 해야 할 땅울림도 안에서 하고 말과 소도 안에서 울고

김매기와 갈치잡이와 멜잡이도 안에서 하고 안개비는 멀뚱하게 쳐다만 본다


사람들은 점심으로 떡과 국수를 먹고 돌아가고 

나는 홀로 헛묘와 무등이왓으로 젖으며 걸어간다


헛묘와 충혼묘지 사이에 있던 검문소는 오래전에 떠났다 출입을 통제하던 검문소는 사라졌다 동광육거리는 이제 세월처럼 돌아간다 회전식 로터리로 바뀌어 차들도 돌아간다 나도 따라서 돌아간다 이제는 이곳도 거치지 않고 평화로를 달릴 수 있다 육신을 찾지 못한 헛묘와 영혼을 찾지 못한 충혼묘지의 배롱나무꽃은 짙은 안개비로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니 발자국소리를 듣고 깨어난다 헛묘에서 깨어난 영혼들은 삼밧구석마을로 집을 찾아가고 나는 홀로 무등이왓으로 간다 양잠단지 가는 길가에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검은 표지석이 있다 무등이왓은 입구부터 조릿대들의 세상이다 강귀봉 우영팟의 최초학살터에는 더덕 덩굴이 가득하다 더덕꽃은 아직 피지 않았고 푸른 조릿대들만 볕뉘라도 건져보려는 듯 뜨물 같은 안개비를 조리질하고 있다 최초 학살터 바로 곁에 광신사숙이 있다  아직도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는 지름길보다 에움길로 간다 말방에(연자방아)터를 지나 잠복학살터로 간다 말방아는 보이지 않고 태양광 패널들만 안개비를 맞고 있다 무너진 돌담과 조릿대들만 길을 비켜준다 아마도 이 오래된 팽나무가 있는 밭에서 마을 이름이 정해졌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 팽나무를 오르며 열매도 따먹고 놀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밭을 매었을 것이다 이 팽나무 그늘에서 자치기 하며 놀았던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 대신 송악덩굴이 올라가 저물도록 내려오질 않는다 별아이비도 뒤늦게 따라서 올라간다 잠복학살터에서 짚더미와 멍석에 쌓여 불태워졌던 사람들은 지금도 뜨거워서 안개비 속에서도 훌떡훌떡 뛰어오르고 있다 뒤늦게라도 불을 끄려는 듯 이곳에는 물탱크가 만들어져 있다 이제는 샘물 대신에 농업용수를 퍼올리고 있다 이 물탱크 뒤쪽에 조밭이 있다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을 파종하고 키우는 오메기밭이 있다 오늘은 오메기밭 가득 안개비가 흘러넘친다 첫해에는 온통 돌밭이었다 오메기를 심을 수 있는 조 밭은 반도 안 되던 밭이 이제는 흙을 돋아서 오메기밭을 두 배로 늘렸다 갈수록 더 늘어날 것만 같다


오래도록 젖으며 홀로 걷다 보니 바람을 조리질하는 무등이왓 조릿대길에 볕뉘가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슬픈 족속(族屬)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1938년 9월, 윤동주) 




제주 4·3 당시 130여 가구가 거주한 무등이왓은 ‘잃어버린 마을’ 122곳 가운데 가장 큰 마을로, 조와 메밀, 콩 등을 재배했다. 1948년 11월 15일 토벌대가 무등이왓 마을로 진입해 주민 10명을 총살했으며, 21일에는 주민 3명을 총살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동광리는 무등이왓(130여 가구)과 조수궤(10여 가구), 시장밧(3 가구), 간장리(10여 가구), 삼밧구석(45 가구) 등 5개 자연마을로 이뤄진 중산간 마을로 4·3 당시 최소한 172명이 희생됐으며, 인근에는 주민들이 피신 생활을 했던 큰넓궤가 있다. 큰넓궤에 피신해 있던 사람들은 50일 만에 발각되어 볼레오름까지 도망을 갔으나 모두 붙잡혀 정방폭포에서 사살되었다.


우리 민족은 슬픈 족속이다. 탐라국의 족속은 더욱 슬픈 족속이다. 탐라국의 예술가들이 슬픈 족속을 위로하기 위하여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에서 봄부터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 하기 위하여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아니, 이미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하여도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탐라국의 윤동주를 위하여, 탐라국의 송몽규를 위하여 의미 있는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시의 씨앗


서랍



바다가 하늘의 서랍을 열었다

하늘의 서랍 안에는

하늘의 눈물이 가득 담겨있다

눈물과 함께 담겨 있을

하늘의 비밀문서를 찾으려고

오늘도 바다는 서랍을 열고 있다

정방폭포 서랍이 끝없이 열린다


하늘도 바다의 서랍을 열었다

바다의 서랍 안에는

바다의 어둠이 가득 담겨있다

어둠과 함께 담겨 있을

바다의 비밀문서를 찾으려고

오늘도 하늘은 서랍을 보고 있다

주상절리 서랍이 여러 곳에 있다


바다는 마래터널 서랍도 열어보고

하늘은 무등산 서랍까지 열어본다



우리는 이제 다 함께 힘을 모아서, 숨어 있는 서랍을 열어야만 한다. 숨어 있는 마지막 서랍을 찾아서, 우리는 이제 태평양을 건너가야만 한다.



송몽규의 술가락



송몽규의 술가락이 윤동주를 먹여 살렸다

이덕구의 술가락이 하늘 한 술 뜬다

하늘의 술가락이 바다 한 술 뜬다

정방폭포가 은빛 술가락으로 빛난다

하늘의 정방폭포 술가락이 크게 한 술 뜬다


요즘에는 술가락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그럼에도 당신의 술가락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 작전명 <화려한 휴가> 공수부대, 광주에서의 열흘이 제주에서의 7년 7개월 계속되었다. <택시운전사> <서울의 봄> <그때그사람들> <남산의부장들>



벽과  그림자



몸이 무겁다

마음이 무겁다

그림자는 더욱 무겁다


벽을 짚고 겨우 일어설 수 있다

그림자는 벽을 많이 만나야

비로소 일어서서 잘 살 수 있다



* 나는 당신이 잃어버린 마을이다. 잃어버린 마을에서 나는, 무너진 돌담을 짚고 일어선다. 흔들리는 조릿대를 붙잡고 일어선다. 바람에 섞여있는 정방폭포 소리에 젖으며 일어선다. 멀리서 들려오는 당신의 향기로운 목소리가 나의 그림자를 일으켜 세운다. 당신의 무지개는 잊지 않고 잃어버린 마을까지 찾아온다.

  


서울의 봄



우리나라 군인들의 적은 누구인가

우리나라 군인들은 먼저

우리나라 시민들에게 총을 쏘았다

우리나라 군인은 계엄군이었다

제주에서 그랬고

여수에서 그랬고

서울에서 그랬다


12월 12일 우리나라 군인들은

우리나라 군인들에게 총을 쏘았다

5월 17일 전국으로 확대하여

5월 18일 광주를 향하여

화려한 휴가를 떠났다

우리나라 군인들은 그렇게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총을 쏘았다


알고 보면 북한도 우리 민족인데

우리 민족은 우리 민족에게 총을 쏘았다


사람들은 자주 사람들에게 총을 쏘았다



시집과 갈치의 가격



윤동주의 시집과 전집과

관련 책들을 읽다 보니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을 사야만 했다

제주도 도서관에는 한 권도 없다

3년이 더 지났으니

희망도서로 신청할 수도 없다


1999년에 발행된 시집이

5만 원이면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고

오후 산책을 나간다


윤동주 시인은 습작노트 2권과

자선 시고집 1권을 남겼다

윤동주는 송몽규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무렵부터

날짜를 명기해 가며 습작품을 보관했다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

『창(窓)』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월대천 징검다리에서 왜가리 한 마리

여울물을 바라보며 추위에 떨고 있다


왜가리의 삶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징검다리 건너지 않고 외도포구 지나

외도교 아래를 지나 대원암 쪽으로 간다


눈이 내리는 바다에는 바람까지 거세다

바다에 누워계신 관세음보살을 씻은 파도가

해안길까지 날아와 적신다

안경과 입술에도 소금맛이 스며든다


파도가 날아오르는 연대포구에서

청해수산 홍보영상을 촬영 중이다

통통한 갈치가 싱싱하게 빛나고 있다

파도처럼 바다로 뛰어들 것 같은 갈치가

한 마리에 5만 원씩이라고 한다

아, 갈치도 참으로 비싸구나!

하며 속으로 생각하며 돌아서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한 생명이 겨우 5만 원 이라니

한 시인의 삶이 겨우 5만 원 이라니



우물과 징검다리



김도수 시인께서 또다시 진메마을

징검다리 보수공사를 하셨구나

덕치면장님께서 징검다리 놓으셨구나


요즘에는 징검다리도

포클레인으로 놓는구나

징검다리 소식 듣고 보니

울력으로 징검다리 보수하던

연어의 종착역 기적소리 들린다


해마다 마을 공동우물 퍼내던

울력하던 날까지 생각이 난다

도르래 돌아가는 소리까지 들린다

그런 날에 언제나 나는 가장 어렸다

누워계신 아버지 대신 나가 울력을 했다

두레박을 타고 내려가

막힌 샘 물길을 새로 뚫어주곤 하였다


아직도 나는 가끔 꿈속에서

깊고 어두운 우물 속으로 내려가

꽉 막혀 있는 물길을 새로 뚫어주곤 한다

어느 때는 두레박 줄이 끊어지고

깊은 우물 벽이 미끄러워 올라가지 못하고

나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만 웅웅 거리고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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