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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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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Dec 02. 2023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슬픈 족속(族屬)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1938년 9월, 윤동주) 




제주 4·3 당시 130여 가구가 거주한 무등이왓은 ‘잃어버린 마을’ 122곳 가운데 가장 큰 마을로, 조와 메밀, 콩 등을 재배했다. 1948년 11월 15일 토벌대가 무등이왓 마을로 진입해 주민 10명을 총살했으며, 21일에는 주민 3명을 총살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동광리는 무등이왓(130여 가구)과 조수궤(10여 가구), 시장밧(3 가구), 간장리(10여 가구), 삼밧구석(45 가구) 등 5개 자연마을로 이뤄진 중산간 마을로 4·3 당시 최소한 172명이 희생됐으며, 인근에는 주민들이 피신 생활을 했던 큰넓궤가 있다. 큰넓궤에 피신해 있던 사람들은 50일 만에 발각되어 볼레오름까지 도망을 갔으나 모두 붙잡혀 정방폭포에서 사살되었다.


우리 민족은 슬픈 족속이다. 탐라국의 족속은 더욱 슬픈 족속이다. 탐라국의 예술가들이 슬픈 족속을 위로하기 위하여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에서 봄부터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 하기 위하여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아니, 이미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하여도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탐라국의 윤동주를 위하여, 탐라국의 송몽규를 위하여 의미 있는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정방폭포 윤동주 읽기

1. 정방폭포 윤동주를 읽는다

2. 정방폭포가 윤동주를 읽는다

3. 윤동주가 정방폭포를 읽는다



4·3과 평화가 정방폭포를 찾아간다

정방폭포는 윤동주를 읽고 있다

검은 주상절리의 서랍을 열어본다




정방폭포 서()



새하얀 무명천이 하늘에서 끝없이 내려온다

무명천 할머니께서 수의를 만들고 계시는지

만가(輓歌)처럼 베 짜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주상절리 서랍에서 흑백사진 한 장 꺼낸다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전분공장과 창고들이 보이고

멀리, 목호(牧胡)들의 범섬까지 뚜렷하게 보인다

물빛과 무명천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하얗고

발을 담그고 세수도 하였을 것만 같은 여울물소리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는 노래는 비명(悲鳴)이 된다

길을 잃고 느닷없이 단애(斷崖)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

서귀, 중문, 남원, 안덕, 대정, 표선, 한라산 남쪽 사람들

태평양을 헤매다가 75년 만에 작은 집으로 돌아온다


불로초 공원에 만든 그 작은 공간으로 돌아오는 영혼들

타고난 제 삶도 끝까지 살지 못하고 벼락처럼 떠나버린

그 많은 정방폭포의 사람들

광풍에 느닷없이 길이 끊어져 허공에 발을 딛고 

한꺼번에 바다로 추락해 버린 목숨들, 오늘도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바다에서 길을 찾고 있는 사람들


그중의 한 사람을 따라서 긴 순례를 다시 시작한다

윤동주를 읽던 정방폭포가 젖은 몸으로 따라나선다




서시(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 11. 20. 윤동주)




정방폭포는 한라산 남쪽 최대의 학살터였다. 75년 만인 2023년 5월에 비로소 서복 불로초 공원 한쪽에 작은 4·3 희생자 위령공간이 마련되었다.


정방폭포에서 베틀소리가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만가(輓歌) 소리도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아우성소리가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자장가소리도 들린다. 정방폭포에서 원자폭탄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일본이 항복하는 소리도 들린다.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1945년부터 1955년까지 대한민국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에 윤동주와 송몽규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었다. 그전에 이육사도 감옥에서 죽었다. 해방은 원자폭탄처럼 떨어졌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의 위력은 제주도까지 휘몰아쳤다. 해방에서부터 한국전쟁까지 제주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아니, 어떻게 죽었을까? 산에서 죽고 바다에서 죽고 감옥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을까? 윤동주와 송몽규는 시체라도 돌려받았는데 어찌하여 제주도 사람들은 골령골에 암매장되거나 바다에 수장되고 말았을까.


왜 제주도의 폭포는 남쪽에만 있을까? 자세히 살펴보니, 북쪽의 폭포들은 낮은 포복으로 기어 오고 있었다. 윤동주 시인이 요즘 시인이라면 어떤 시를 쓰고 있을까? 나는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며 나의 꿈과 나의 삶과 나의 문학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점검하며 순례를 떠난다. 윤동주의 거울 하나 들고서 순례를 다시 시작한다.


"하늘을 보지 못해서 부끄럼이 너무 많다. 나는 지금껏 죽어가는 것들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나는 지금껏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나는 이제라도, 나한테 주어진 길이 아니라,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걸어가고 싶다. 오늘 밤에도 나의 별들은 잠들지 못하고 추위에 떨고 있다."





노인성이 유숙하는 섬



서귀포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


서귀포혁신도시에서 중문관광단지까지

이어도 길을 걷다가 태평양으로 간다

설문대할망의 막내아들을 만나러 간다

남극노인성이 유숙하는 이어도로 간다


바다에서 해(海)를 본다 물이 아프다

인간들의 욕망이 낳은 쓰레기들의 섬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욕망들의 얼굴,


바다 해(海) 글자를 더 자세히 본다

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가 아프다

아픈 어머니에게 방사능 오염수까지 먹인다

태평양의 수평선이 트로이목마를 끌고 온다

북극곰의 신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바다와 하늘이 함께 뜨거워지고 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막내아들이

뜨거운 어머니 이마에 물수건을 올린다

유숙하던 노인성도 곁에서 돕는다

서천꽃밭 꽃감관도 불사화를 가져온다


용궁으로 가는 올레에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노랫소리 들려온다 하늘에는 서천꽃밭이 있고 땅에는 마고성이 있고 바다에는 이어도가 있다


어머니를 살리려고 노인성과 꽃감관도 떠나지 못한다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1940년 12월 윤동주)




2003년에 태어난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성인이 되었다. 인간들의 욕망은 바다에 쓰레기섬을 만들고 핵폐기물도 버린다. 서귀포시 도로명주소에 '이어도로'가 있다.


사실 윤동주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이 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제는 이 시 제목처럼 '병원'이었다고 한다. 윤동주의 사후에 고이 보관해 왔던 시들을 모아 세상에 내놓은 지인 정병욱은 당시의 그의 말을 이렇게 회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 인지 후에 시집의 제목은 우리가 익히 아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되어 출간되었다. (내가 홀로 추측해 보건대, 윤동주 시인은 아마도 처음에는 <병원>이라는 제목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마지막으로 '서시'를 쓰면서 책 제목을 바꾸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다. 책 제목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서시의 핵심 단어들을 나열해 놓은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즉,  책의 제목은 서시의 키워드만 뽑아서 나열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병원이다. 지금은 어디가 가장 아픈 곳일까? 지금은 우리들의 어머니인 지구가 가장 아픈 병원이다. 윤동주 시인이 지금, 우리 시대에 우리들과 함께 살아있다면 아마도 아픈 지구를 먼저 노래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늙은 의사는 아직도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옛날에는 사람만 병들고 자연은 건강했지만 이제는 사람들 때문에 자연까지 병이 들었다. 이제는 사람과 지구를 함께 구해야만 한다."




시의 씨앗


서랍



바다가 하늘의 서랍을 열었다

하늘의 서랍 안에는

하늘의 눈물이 가득 담겨있다

눈물과 함께 담겨 있을

하늘의 비밀문서를 찾으려고

오늘도 바다는 서랍을 열고 있다

정방폭포 서랍이 끝없이 열린다


하늘도 바다의 서랍을 열었다

바다의 서랍 안에는

바다의 어둠이 가득 담겨있다

어둠과 함께 담겨 있을

바다의 비밀문서를 찾으려고

오늘도 하늘은 서랍을 보고 있다

주상절리 서랍이 여러 곳에 있다


바다는 마래터널 서랍도 열어보고

하늘은 무등산 서랍까지 열어본다



우리는 이제 다 함께 힘을 모아서, 숨어 있는 서랍을 열어야만 한다. 숨어 있는 마지막 서랍을 찾아서, 우리는 이제 태평양을 건너가야만 한다.



송몽규의 술가락



송몽규의 술가락이 윤동주를 먹여 살렸다

이덕구의 술가락이 하늘 한 술 뜬다

하늘의 술가락이 바다 한 술 뜬다

정방폭포가 은빛 술가락으로 빛난다

하늘의 정방폭포 술가락이 크게 한 술 뜬다


요즘에는 술가락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

그럼에도 당신의 술가락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 작전명 <화려한 휴가> 공수부대, 광주에서의 열흘이 제주에서의 7년 7개월 계속되었다. <택시운전사> <서울의 봄> <그때그사람들> <남산의부장들>



벽과  그림자



몸이 무겁다

마음이 무겁다

그림자는 더욱 무겁다


벽을 짚고 겨우 일어설 수 있다

그림자는 벽을 많이 만나야

비로소 일어서서 잘 살 수 있다



* 나는 당신이 잃어버린 마을이다. 잃어버린 마을에서 나는, 무너진 돌담을 짚고 일어선다. 흔들리는 조릿대를 붙잡고 일어선다. 바람에 섞여있는 정방폭포 소리에 젖으며 일어선다. 멀리서 들려오는 당신의 향기로운 목소리가 나의 그림자를 일으켜 세운다. 당신의 무지개는 잊지 않고 잃어버린 마을까지 찾아온다.

  


서울의 봄



우리나라 군인들의 적은 누구인가

우리나라 군인들은 먼저

우리나라 시민들에게 총을 쏘았다

우리나라 군인은 계엄군이었다

제주에서 그랬고

여수에서 그랬고

서울에서 그랬다


12월 12일 우리나라 군인들은

우리나라 군인들에게 총을 쏘았다

5월 17일 전국으로 확대하여

5월 18일 광주를 향하여

화려한 휴가를 떠났다

우리나라 군인들은 그렇게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총을 쏘았다


알고 보면 북한도 우리 민족인데

우리 민족은 우리 민족에게 총을 쏘았다


사람들은 자주 사람들에게 총을 쏘았다



시집과 갈치의 가격



윤동주의 시집과 전집과

관련 책들을 읽다 보니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을 사야만 했다

제주도 도서관에는 한 권도 없다

3년이 더 지났으니

희망도서로 신청할 수도 없다


1999년에 발행된 시집이

5만 원이면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고

오후 산책을 나간다


윤동주 시인은 습작노트 2권과

자선 시고집 1권을 남겼다

윤동주는 송몽규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무렵부터

날짜를 명기해 가며 습작품을 보관했다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

『창(窓)』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월대천 징검다리에서 왜가리 한 마리

여울물을 바라보며 추위에 떨고 있다


왜가리의 삶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징검다리 건너지 않고 외도포구 지나

외도교 아래를 지나 대원암 쪽으로 간다


눈이 내리는 바다에는 바람까지 거세다

바다에 누워계신 관세음보살을 씻은 파도가

해안길까지 날아와 적신다

안경과 입술에도 소금맛이 스며든다


파도가 날아오르는 연대포구에서

청해수산 홍보영상을 촬영 중이다

통통한 갈치가 싱싱하게 빛나고 있다

파도처럼 바다로 뛰어들 것 같은 갈치가

한 마리에 5만 원씩이라고 한다

아, 갈치도 참으로 비싸구나!

하며 속으로 생각하며 돌아서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한 생명이 겨우 5만 원 이라니

한 시인의 삶이 겨우 5만 원 이라니



우물과 징검다리



김도수 시인께서 또다시 진메마을

징검다리 보수공사를 하셨구나

덕치면장님께서 징검다리 놓으셨구나


요즘에는 징검다리도

포클레인으로 놓는구나

징검다리 소식 듣고 보니

울력으로 징검다리 보수하던

연어의 종착역 기적소리 들린다


해마다 마을 공동우물 퍼내던

울력하던 날까지 생각이 난다

도르래 돌아가는 소리까지 들린다

그런 날에 언제나 나는 가장 어렸다

누워계신 아버지 대신 나가 울력을 했다

두레박을 타고 내려가

막힌 샘 물길을 새로 뚫어주곤 하였다


아직도 나는 가끔 꿈속에서

깊고 어두운 우물 속으로 내려가

꽉 막혀 있는 물길을 새로 뚫어주곤 한다

어느 때는 두레박 줄이 끊어지고

깊은 우물 벽이 미끄러워 올라가지 못하고

나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만 웅웅 거리고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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