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득

by 강산






불(佛)님이 오시기 전 날 불(火)이 먼저 왔구나

우리 시대의 38명 부처님이 등신불이 되었구나


내가 홀로 살고 있는 컨테이너 집에는 문화시설이 없어서 이제 겨우 끔찍한 사고 소식을 들었다.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로 생때같은 목숨들이 수장되었는데 4월 29일은 불쌍한 목숨들이 태워져 등신불이 되고 말았구나!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3년만 근무하고 그만두려던 발전소에서 33년을 망설이고 있다. 나는 어쩌면 결정 장애 환자 인지도 모른다. 함민복 시인은 과감하게 발전소를 그만두고 시인으로 성공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함민복 시인과 나는 어쩌면 지금껏 반대방향으로 걸어왔을 것이다. 함민복 시인은 나의 고등학교 선배이고 대학교 후배이다. 나는 대학에서 시를 공부하고 발전소에 들어왔고 함민복 시인은 발전소를 그만두고 대학에 들어와 시를 공부했다. 그리고 1988년 봄에 나는 시인이 되었고 함민복 시인은 1988년 가을에 시인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함민복 시인은 유명한 시인이 되었고 나는 잊혀진 시인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발전소를 과감히 뛰쳐나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시인의 길 또한 당당하게 걸어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나의 실패를 발전소 탓으로 돌리려는 아주 교활하고 얄팍한 변명에 불과할 것이다. 나와 함께 율도 인천화력발전소에서 근무했던 김인호 시인은 발전소에서 나보다 더 오래 근무를 하면서도 누구보다 아름답고 훌륭한 시인으로 잘 생활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분명 내가 시인으로 성공하지 못한 것은 발전소 탓이 아니다. 나는 나를 처음부터 다시 철저히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의 실패 원인은 더 오래전, 내 몸속에 사무쳐있는 가난과 결핍과 질병과 폭력의 씨앗이 욕망의 불씨로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번에 38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이천 물류센터 공사 현장 화재 참사는, 40명이 숨진 2008년 이천 냉동 창고 화재와 판박이다. 나도 어쩌면 지금껏 그래 왔던 듯싶다. 나의 잘못을 알면서도 그때그때 시정하지 못하고 지금껏 어물쩍거리는 바람에 지금의 이런 사태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과 노동절을 앞두고 발생한 물류창고 화재 소식을 듣고 나는 나를 다시 한번 깊이 돌아보고 있는 중이다. 나는 33년 동안 변함없이 불을 다루고 있다. 불 속에서 불이 되어 불을 만들고 있다. 화력발전소는 물을 끓여서 전기를 만드는 곳이다. 내가 지금 근무하는 제주도 남쪽 화력발전소에서는 물을 끓여서 540℃와 127㎏/㎠의 증기를 만들고, 그 고온 고압의 증기로 터빈 날개를 때려서 1분에 3600바퀴를 돌려서 전기를 만든다. 내가 근무하는 이곳은 기름을 사용해서 물을 끓이고, 얼마 전에 죽은 김용균 씨가 근무했던 곳은 석탄으로 물을 끓인다. 그것 외에는 비슷한 발전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또한 함민복 시인이 근무했던 원자력발전소는 기름이나 석탄 대신 우라늄의 핵분열 과정에서 발생한 열로 물을 끓이는 방식이다. 물을 끓이는 방식만 다를 뿐 증기가 생산된 이후에 전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모두가 거의 비슷한 발전방식이다. 그중에서,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화력발전소에서 처참하게 죽은 김용균 씨 이름을 따서 법을 만든 이후에도 이렇게 산업현장에서 안전사고가 줄어들지 않은 현실이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올해는 특히 이천 물류센터 화재와 부처님 오신 날과 노동절이 연달아 이어지면서 나의 사유의 깊이가 좀 더 복잡해지고 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코로나 19까지 겹치는 바람에 더욱 그렇다. 또한 5월에 전 국민에게 지급된다는 긴급재난기금까지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 앞에서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고성 산불과 김정은 위원장의 재등장 또한 그렇다.


불교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진리를 찾아가는 철학이며 수행이라는 생각, 우리 시대의 부처이며 근로자인 38명의 노동자가 하필이면 부처님 오신 날과 근로자의 날을 앞두고 떠났다는 생각, 나는 나의 몸과 나의 마음을 너무 혹사시켰다는 생각, 이제는 좀 쉬어야만 하겠다는 생각, 요즘에는 일을 잘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잘 놀고 잘 쉬는 것이 누구보다 잘 사는 것이라는 생각, 나 자신부터 존중하고 나 자신을 잘 접대하고 나 자신을 환대하여 나 자신부터 사랑할 줄 알아야 비로소 이웃을 사랑하고 인류에 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어제의 북두칠성과 오늘의 북두칠성이 다르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 사람임을 자각하고, 오늘 지금 당장의 나의 행복을 찾는 것이 불교라는 생각, 따라서 인도 불교와 중국 불교와 한국불교는 다르다는 생각, 사람마다 각자의 불교를 찾아 실천해야만 한다는 생각, ‘광년’이라는 단위가 참 재미있고 많은 것들을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생각, 오늘 내가 보면서 북두칠성이라고 생각하는 별빛들은 아주 먼 옛날 각각 다른 시간에 출발한 별빛들의 떨림이라는 생각, 그 각각의 별들은 지금쯤 없어지고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주 빠르다고 생각하는 빛의 속도에 대한 생각, 그런 빛이 1년도 넘게 달려왔다는 광년이라는 단위에 대한 생각 ……


'광년'은 천문학에서 사용하는 거리의 단위로서 빛의 속도로 1년이 걸리는 거리이다. …… 가장 가까운 별로 알려진 ‘센타우르스 자리 프록시마 별’까지의 거리는 4.25광년이라고 한다. 그럼 도대체 우리들이 오늘 밤 비로소 보고 있는 별들은 얼마나 멀리, 얼마나 먼 과거에서 온 별빛이란 말일까? 오늘 밤 내가 보는 별빛이 오늘의 별이 아니라니! 현실이 글쎄, 현실이 아니고 오늘 당도한 과거의 별빛이라니! 그 먼 과거와 그 먼 거리가 나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기계와 함께 살거나 자연과 함께 살았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자연인으로 살거나 엔지니어로 살았다. 그리하여 나는 결정적으로 사람을 잘 모르고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일에 너무나 서툴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의 관계에 대하여 나는 너무나 모른다.


나는 오늘 나의 길이 잘 보이지 않아서 동쪽에 있는 4.3 평화공원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몸 전체가 검은 까마귀들을 만났고, 마음까지 모두가 검은 나를 보았고, 검은 무지개를 보았고, 하늘로 올라가는 검은 길을 보았다. 그리고 위패봉안실 입구 안쪽 천정 가까이, 카메라 위에 젖은 흙으로 집을 열심히 짓고 있는 제비 두 마리를 보았다.


행방불명자들의 묘지를 오래도록 산책하며 그날을 생각하고, 거친 오름과 한라산과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크기와 형태가 다른 각각의 수의 다섯 벌을 병풍 형태로 형상화한 ‘귀천’상을 보았고, 계단을 내려오는 물소리와 함께 천상의 계단을 걸어 내려와 둥그런 물에 한 번 더 젖어보기도 하고, 녹이 슬고 있는 ‘이젠’이라는 조각상을 보기도 하고, 드론으로 촬영을 하는 어느 감독을 만나보기도 하고, 갈옷을 입은 여자가 연기를 하고, ‘비설’ 조각상을 하늘에서 드론으로 항공촬영을 하고, 나는 그들의 연기를 지켜보다 '웡이자랑' 자장가를 읊조리며 돌담을 따라 들어가 달팽이 모양으로 만들어진 검은 돌담 안에서 비설 조각상(변정생 조각상)을 아프게 다시 한번 만나고, 평화공원 문설주에 전시된 시화들을 다시 한번 읽고, 돌담이 속삭이는 붉은 동백의 숨소리를 다시 한번 들어보고 돌아왔다. 코로나 19 때문에 실내 전시장은 돌아볼 수 없었고 따라서 내가 좋아하는 백비도 만나보지 못했다. 야간근무 끝나고 가는 바람에 피곤하여 거친 오름도 올라보지는 못했다.


이번 이천 화재 참사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샌드위치 패널’을 생각하니 내가 살고 있는 컨테이너의 안전이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우레탄폼을 주입하는 작업을 하다가 불꽃이 옮겨 붙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번 화재 참사는 값싸고 간편하게 만들 수 있어서 많이 사용되는 샌드위치 패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다. 내가 사는 컨테이너 또한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은 더 불편하게 혼자서 살아야만 한다. 왜일까? 왜 아직은 더 그래야만 할까? 안전하고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휴식이 있는 제주시의 집에 가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내가 다른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에 온몸으로 겪은 지독한 가난과 질병과 폭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혹시 나의 아버지처럼 폭력을 쓰지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과 가족을 미워하지 않을까 그런 염려 때문이다. 술 때문에 밤마다 밥상이 날아다니고 부엌칼이 날아다니던 그런 어두운 시절처럼 나의 아들도 나를 죽이고 싶어 질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 때문에, 내가 나의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던 것처럼 나의 아들도 나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너무 화가 나면 내가 혹시 아들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떠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집에 갈 수가 없다.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그 본성이 더 잘 드러난다. 도박중독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나는 언뜻 보았다. 폭력의 유전에 대한 불길한 낌새를 나는 문득 소름이 끼치도록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 폭력의 유전은 막아야만 한다. 이번 생에서 나는 폭력의 유전의 고리만은 분명하게 끊을 수 있어야만 한다. 아무리 힘들고 외롭더라고 그 악순환의 고리만은 반드시 내 손으로 끊을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어쩌면 이번 생에서 내가 실천해야 할 수행 목표가 될지도 모르겠다.


선천성 심장병 환자로 태어나 지금껏 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나는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해서, 너무나 가난해서 25년 동안을 남몰래 아픈 심장과 함께 홀로 쓰러지며 살았던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은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서른 살까지 사는 것이 꿈이었던 내가 이렇게 쉰이 넘도록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에 대한 존경과 환대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 숨어있는 불씨를 잘 조절하지 못한다. 가난과 결핍과 질병과 폭력의 씨앗이 욕망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다. 그 불꽃을 나는 임시 거처 같은, 가설무대 같은, 비가 새는 집에서 겨우 잠재우고 있다. 나는 젖어야만 비로소 살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어둠에 젖고 빗물에 젖어야만 나의 불꽃을 겨우 조절할 수 있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비가 새는 집은 엄밀히 말해서 집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집의 정의가 무엇인가? 집이란 비바람을 막아주는 건물인데, 비를 막아주지 못하면 집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름다운 우리 대한민국은 아직까지는 코로나 19에 잘 대처하고 있는 듯하다. 뉴욕 길거리에서 “악취 난다” 신고를 받고 살펴보니 트럭에서 부패된 시신 수 십구가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보니 우리나라는 확실히 미국보다는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너무 코로나 19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엉뚱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나 않은지 다시 한번 세밀히 살펴보아야만 할 것 같다. 나 또한 그렇다. 모든 집착은 어느 날 갑자기 망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세상에는 참 많은 길들이 있다. 내 안에도 참으로 많은 길들이 있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나는 어쩌면 과대망상증 환자가 아닐까, 나를 의심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고장 난 몸에도 아직은 불덩이가 살아있다. 제주도는 불의 섬이다. 거대한 화산 폭발이 있었고 4.3의 봉화불 폭발이 있었다. 아직도 거대한 불덩이가 물에 둘러싸여 있다. 어쩌면 이 불의 섬이 나의 병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과대망상증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시집 제목을 <병원>으로 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보다 병원이라는 제목이 나는 더 좋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참 재미있게 잘들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누추하고 옹색하고 궁상맞게 살고 있을까?

과감한 결단력 부족과 결정장애 때문이 아닐까? 불(火)을 잘 다스려야 불(佛)이 될 수 있다. 내 몸과 나의 마음속에 있는 불씨를 잘 키우고 밖으로 뻗으려는 불기둥을 잘 다스릴 수 있을 때 비로소 부처님이 될 수 있으리라.


오월의 꽃들이 나온다. 사월의 뿌리에서 출발한 꽃들이 어둠 밖으로 나온다. 올해는 예년보다 좀 늦게 나온 듯싶다. 지독한 꽃샘추위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지난해 동지부터 준비한 꽃 들일 것이다. 해가 길어지면서 하루에 한 발자국씩 뿌리에서부터 기어올라왔을 것이다. 그래서 꽃망울은 새알을 닮았으리라. 동지팥죽의 옹심이를 닮았으리라. 그리하여 꽃들은 저렇게 꽃망울을 터트려 새알에서 서둘러 나오고 있는 것이리라. 나도 이제는 나의 뿌리에서 출발한 꽃들이 어둠 밖으로 나올 때가 되었으리라. 나의 마음속에서 나의 어둠 속에서 다투어 밖으로 나올 때가 되었으리라. 나는 꽃이 핀다고 말하지 않고 나온다고 말한다. 나의 꽃들도 지금쯤 기둥에서 가지로 옮겨가고 있을 것이다. 나의 겨드랑이가 가려운 것을 보니 나의 꽃들이 머지않아 나의 가지 밖으로 나올 것만 같다. 그리하여 나도 이제는 비로소 병실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이제는 재발을 염려하지 않고 퇴원해도 될 만큼 회복이 될 것을 믿는다.














참고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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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인류의 생활에서 주요한 수단이 되어 왔다. 석기(石器)의 사용과 함께 불의 사용은 원시시대의 인류를 다른 영장류로부터 구별되게 하였으며, 불의 사용에 의해서 인류는 자연적인 거주지역이었던 열대지역을 떠날 수가 있게 되었고, 또 여러 상태의 환경을 만들어내어 진화와 발전을 촉진시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인류는 자연 속에서 불이라는 강대한 에너지를 얻게 됨으로써 온난함과 조명(照明)을 취득하였고, 음식물을 조리하고 도구를 만들어냈으며 금속에 대한 지식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간은 불의 덕택으로 자연의 준엄한 제약으로부터 비로소 해방되어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문명사회를 구축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불로 인한 화재는 특히 오늘의 문명사회가 짊어진 커다란 사회문제이기도 하여 불이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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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이천 물류센터 공사 현장 화재 참사는, 40명이 숨진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와 판박이다. 사고 원인, 피해 상황, 공사 업체의 안전 규정 위반 등 여러 면에서 너무나 유사하다. 2008년 사고에서 교훈을 얻고 확실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만들어 시행했다면 피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30일 관계장관회의에서 “공사 현장에서 대형 화재가 되풀이되는 것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 있어야 한다”며 “다시는 이번과 같은 대형 화재가 반복되지 않도록 실질적 처방이 절실하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소방당국의 조사 내용을 보면,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져 화재 위험이 큰 건물에서 우레탄폼을 주입하는 작업을 하다가 불꽃이 옮겨 붙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레탄폼과 샌드위치 패널은 가격이 싸 물류창고 등을 지을 때 단열재로 많이 사용되지만, 연소가 빠르고 유독가스를 내뿜어 화재 발생 때 ‘화약고’가 된다. 비용만을 따져 인화성이 강한 단열재를 쓸 수 있게 한 것이 참사 반복의 원인이라면 이번 사고를 계기로 건축 자재의 안전성과 관련한 특단의 조처가 나와야 한다. 국민 생명이 더는 경제성에 밀려 희생되어선 안 된다.


공사 업체의 안전 법규 위반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천만다행으로 사고 현장을 빠져나온 노동자들은 “작업 전에 안전교육이나 피난 경로 안내를 받지 못했다”라고 증언했다.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은 화재 예방과 피난 교육을 하도록 돼 있는데 지키지 않은 것이다. 또 공사 업체가 제출한 ‘유해위험 방지 계획서’를 심사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화재 위험성을 판단하고 지난 1년 동안 6차례나 개선을 요구했으나 어물쩍 넘어갔다.


수원지검이 검사 15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125명 규모의 수사팀을 각각 편성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화재 원인과 공사 업체의 관련 법규 및 안전 규칙 위반 여부 등을 철저히 조사해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만약 이번에도 공사 업체에 벌금 2천만 원을 물린 2008년 냉동창고 화재 때처럼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면 앞으로도 같은 비극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명 피해를 유발한 중대 재해를 일으킨 기업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법 개정도 뒤따를 필요가 있다.


노동절을 하루 앞두고 발생한 이번 사고의 사망자 대부분이 하청업체 소속 일용직 노동자들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산업 현장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힘없는 이들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희생자 유족에 대한 보상과 배상, 부상자 치료와 지원에도 한치의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긴급 대책회의에서 “우리 정부 들어 화재 안전 대책을 강화했는데 왜 현장에서는 작동되지 않았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다시는 이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정부는 비상한 각오로 관련 제도와 법규를 보완하고 엄격히 시행해야 한다.


"4월 30일(부처님 오신 날)부터 시작되는 황금연휴, 하루 전 날인 4월 29일 오후 1시 32분쯤, 이천시 모가면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공사현장 지하 2층에서 나기 시작한 불이 건물 전체로 옮겨 붙었다가 화재 발생 5시간여 만인 오후 6시 42분 정말 진화됐다. 이 사고로 총 38명이 사망하고 10명(중상자 4명, 경상자 6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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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난 곳은 연면적 1만 1000㎡규모의 지하 2층·지상 4층짜리 물류창고 공사현장으로, 사망자 중 29명은 지문으로 신원을 확인했고 나머지 9명은 지문 확인이 불가능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을 확인 중이다.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 대부분은 전기·도장·설비 등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인 것으로 파악됐다. 사망자 중 신원이 확인된 29명 가운데 중국인 1명, 카자흐스탄 2명 등 외국인도 3명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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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길거리서 “악취 난다” 신고… 트럭에서 부패된 시신 수십구 발견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부패한 시신이 가득 실린 트럭들이 발견됐다. 코로나 19 사망자가 폭증한 뉴욕에서 영안실은 물론 장례식장, 화장시설까지 포화된 상태라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건은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악취가 난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알려졌다. 뉴욕경찰(NYPD)은 브루클린 유티카 애비뉴에 세워진 두 대의 트럭에서 악취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경찰은 트럭 안에서 부패한 시신들이 시신 보관용 가방 안에 담긴 채 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트럭은 앤드루 T. 클래클리 장례식장에서 사용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장례식장은 밀려드는 시신을 감당하지 못하고 트럭을 빌려 그 안에 얼음과 함께 시체를 보관 중이었다고 BBC가 전했다. CNN은 최대 60구의 시신들이 4대의 트럭에 보관돼 있었다고 했고, 폭스뉴스는 시신 40∼60구가 트럭뿐만 아니라 장례식장 바닥에도 놓여있었다고 보도했다. 최소한 트럭 한 대에는 냉장 기능이 없었고, 일부 시체는 얼음 위에 놓여 있었다고 CNN이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뉴욕시는 시신 보관용 냉동 트럭 한 대를 현장에 보냈으며,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발견된 시신들을 냉동 트럭으로 옮겼다고 BBC가 보도했다.

인근의 한 주민은 최소한 몇 주 전부터 트럭에 시신이 보관돼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인근 건물주는 “(장례식장이) 승합차와 트럭에 시체들을 보관하고 있었고, 차량은 시체 보관용 가방으로 가득 차 있었다”라고 말했다.


NYT는 “최소 1만 4000명이 코로나 19로 사망한 뉴욕시에서는 영안실, 장례식장, 화장시설 등이 포화상태이고 업계 노동자들이 밀려드는 시신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또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병원과 요양원에서 시신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를 제때 매장하거나 화장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며 “대낮에 번화한 브루클린 거리에 세워진 트럭에서 뉴요커의 시신이 썩어가고 있는 현실은 9.11 테러 때보다 5배나 많은 사람이 코로나 19로 사망한 뉴욕시가 직면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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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연휴를 앞둔 29일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로 근로자 38명이 목숨을 잃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가연성이 높은 우레탄폼 발포제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2개 이상 작업을 진행해 화재 예방에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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