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 출발 05화

3. 시인동네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by 강산

좋은 시인이 되려면

좋은 고향이 있어야 한다

시인동네는

시인들의 좋은 고향이다

나도 이제는

시인동네에서 살고 싶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았던 시대에는 인생 후반전을, 길에서 살거나 절에서 살았다고 한다. 자식이 성년이 되면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구도자의 길을 가거나 수행자가 되었다고 한다. 나도 이제 순례자가 되기 위해 순례를 준비하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에게서 우편물 하나가 왔다.


배영옥 시인의 유고시집을 보내준 사람은 고영 시인이다.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고영 시인을 잘 모른다. 배영옥 시인뿐만 아니라 고영 시인도 나는 만나본 기억이 없다. 나는 전생에 한때 시인이었지만 시인들을 잘 모른다. 고영 시인이 나에게 배영옥 시인을 보낸 이유를 아직도 나는 알지 못한다. 아직도 나는 물어보지 못했다. 나는 누구에게라도 말을 잘 하지 못한다.


나는 요즘 ‘이 뭣꼬?’ 화두를 붙들고 앉아있다. 이어도에서 출발하여 마라도를 지나 가파도를 지나 산방산 앞에 도착하였는데, 산방굴사에서 나는 잠시 머물고 있다. 산방산과 월라봉을 거닐며 ‘방하착’을 연습하고 있다. 진정한 참선은 좌선뿐만 아니라 발걸음 하나, 숨 쉬는 숨결 하나에도 집중하는 행선이 필요하다. 좌선과 경행을 잘 하려면 무엇보다도 호흡명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나는 제주도 순례와 여수 순례와 광주 순례와 서울 순례와 백두산 순례와 몽고 순례와 인도 순례와 부탄 순례를 계획 하였었는데, 그 먼 순례는 잠시 잊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로 한다.


배영옥 시인과 고영 시인과 나는 1966년에 이 지상으로 여행을 온 것만 같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처럼’ 이 지상에서 인연을 맺은 것만 같다. 우리들은 모두 말로 태어났는데 나는 아직도 제주도조랑말로 살고 고영 시인은 서울 시인동네에서 살고 배영옥 시인은 저승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지만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는 듯하다.


배영옥 시인의 유고시집에는 「암전」이라는 작품이 들어 있는데 그 부제가 ‘고영 시인에게’이다. 그러니까 고영 시인을 만나면 배영옥 시인에 대하여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언젠가는 꼭 한 번 만나서 물어보아야만 하겠다. 그리고 시인동네에서 제주도조랑말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도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월간 <시인동네>는 내 친구 김충규 시인이 씨를 뿌려서 생겨난 동네라고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교실에서 공부했던 김충규 시인이 만든 계간 <시인시각>을 고영 시인이 이어받아 키워온 동네다. 처음 씨를 뿌렸던 김충규 시인은 아마도 저승에서 환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다. 황망하게 떠난 내 친구 김충규 시인을 웃게 만들어준 고영 시인에게 나는 한없이 고맙고 또 고맙다.


지금 내 곁에는 월간 <시인동네> 12월호가 있다. 잘 성장한 80호가 있다. ‘더 불행해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일까? ‘당신도 모르는 당신의 배후가 되겠습니다’ 라는 말 속의 당신은 과연 누구일까? 그 당신이 혹시 내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뒤집어보니, 누워있었던 백비가 세워져 있다. 배영옥 시인이 일어나 촛불로 타고 있다. ‘하나의 초, 어차피 타고 없어질, 그저 꼿꼿하기만 한 하나의 초, 그 한 가닥의 흰 등뼈 같은 시들,’ 이 다시 활활 타오르고 있다.


나는 토성에서 배를 타고 왔다. 나를 처음 발견한 부모님은, 그리하여 나를 배진성 이라고 불렀다. 진성은 토성의 다른 이름이다. 처음 발견했을 때 나의 몸은 흙이었다. 그리하여 내가 토성에서 왔음을 알았다. 나는 토성에서 온 이방인 이었으므로,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밤새 별빛을 만들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하니, 참 좋은 지구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긴 세월 그 고마운 친구들 덕분에 잘 살았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강으로 흐르다가 산으로 머물고 싶다. 잠시 지구에 여행 왔던 나는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가슴 덕분에, 푸른 지구에 평생 머물러 살게 된, 최초의 토성인, 강산 시인이 되었다.


나는 오래된 꿈이 하나 있다. 나는 아름다운 산을 하나 가꾸고 싶다. 그 산에 나무를 심고 나무를 가꾸며, 나무처럼 살고 싶다. 그 숲 속에 조촐한 집을 하나 짓고 싶다. 삶에 지친 영혼들을 위한, 작은 쉼터를 만들고 싶다. 그 쉼터에는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가끔 찾아오면 좋겠다. 절망이 너무 깊어서, 스스로 죽고 싶은 사람들이, 아주 가끔 찾아오면 좋겠다. 아무런 부담 없이, 누구라도,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그러면 나는 그들과 함께,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들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세상에 대하여, 너무나 분노한 사람들과, 한 때의 실수 때문에,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나는 그들과 함께, 그들의 나무를 심어주고 싶다. 산에 나무를 함께 심으면서, 그들의 아픈 가슴에도, 또 다른 희망의 나무를 심고, 사랑의 씨앗을 뿌려주고 싶다. 산 혹은 자연의 큰 거울 앞에서, 희망을 되찾은 그들이,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나는, 그들과 내가 함께 심었던, 그들의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안부 편지와 함께 가끔 보내주고 싶다. 세상으로 돌아간 그들은, 언제라도, 자신의 자라나는 나무를, 보기 위하여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직접 올 수 없더라도, 늘 가슴 속에서 함께 자라나는, 자신의 그 나무 때문에,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가 끝끝내, 함께 가야할 길, 겨울이 깊을수록, 더 잘 보이는 길, 실패한 사람을, 함께 이끌어주고, 넘어진 사람을, 함께 일으켜 세워주고, 억울한 사람의 억울함을, 우리들이 함께 풀어주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나는 정말 좋겠다.


나는 작년에서 올해로 건너오는 밤에, 어제에서 오늘로 건너오는 밤에, 밤새 겨울비에 젖었다. 차가운 컨테이너박스 안에서 겨울비 소리를 들으며 밤새 젖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도 이제 다시 시인동네에서 살고 싶었다. 아름다운 시인들이 살고 있는 시인동네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살고 싶었다. 진짜 시인으로 살고 싶었다.


고장 난 컴퓨터를 탁 한 번 쳐보니 모니터가 환해졌다. 나의 손가락은 자판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겨울 들판으로 말발굽 소리가 달리기 시작했다. 무엇엔가 홀린 것처럼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열흘 동안 나는 쉬지 않고 달렸다. 나는 이제 좀 쉬면서 나의 앞날을 천천히 준비해야만 하겠다.


배영옥 시인은 시집을 3년 이상씩 뜸을 들인 것 같다. 2007년 문예진흥기금으로 2011년에 시집을 발간하였고, 2014년 문학창작집발간지원사업으로 2018년에 시집을 발간하였다. 시인동네도 어쩌면 한 3년 쯤 뜸을 들이다가 나를 부를지 아직은 모르겠다.


※ 열흘 동안 몰아 쓴 시집 한 권 들고 시인동네를 찾아가려고 했다. 시인동네에 가면 고영 시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김충규 시인처럼 시인동네를 고영 시인이 만들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으로 주소를 검색해 보았다. ‘서울시 마포구 마포대로 11길 91, 3층 시인동네’ 4층 건물이 나왔다. 1층은 나들가게 대현마트가 있고 바로 옆 전봇대에는 전선과 통신선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또한 친절하게 마을버스도 문을 열고 서 있었다. 지도상으로 살펴보니 공덕역과 대흥역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불쑥 찾아가는 것 보다는 미리 연락을 하고 찾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사무실로 전화를 하였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알았다. 고영 시인은 사무실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고영 시인은 지방에서 산다고 하였다. 나는 참 세상을 모른다. 다시 한 번 생각하니 시집을 보냈던 봉투에 고영 시인의 주소가 적혀 있었던 것 같았다. 다시 봉투를 찾아보니 주소와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다. ‘문학동네시인선 122 / 배영옥 시집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 / 충북 단양군 적성면 도곡파랑로 178 / 고영 시인 전화 010-8943-**** 우편번호 27001’ 아, 그랬었구나! 시집의 봉투를 처음부터 고영 시인의 이름으로 인쇄를 하였었구나! 배영옥 시인의 유고시집은 고영 시인의 노력으로 탄생된 것이었구나! 그런데 왜 고영 시인은 시인동네에서 시집을 내지 않고 문학동네에서 시집을 발행한 것일까? 배영옥 시인을 조금이라도 더 배려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아직은 내가 모르는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일까? 자꾸만 생각하면 할수록 고영 시인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와의 인연은 좀 더 기다려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나는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한다.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세상의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는 조건들을 최소화하기로 한다. 내가 만드는 이어도공화국 안에 시인동네를 직접 만들기로 한다. 내가 만드는 시인동네를 ‘이어도시인촌’이라고 이름을 짓는다. 이어도시인촌에서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와 인연이 있는 시인들부터 천천히 불러 모아서 이어도시인촌을 함께 만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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