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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l 28. 2024

거리에서


윤동주 시인의 『나의 습작기(習作期)의 시(詩) 아닌 시(詩)』가 첫 번째 시작 노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습작노트 이전에 다른 습작노트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이 습작노트의 목차(目次)를 보면 다른 곳에 적었던 시들을 옮겨서 적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은 1934년 12월 24일 <초 한 대>, <삶과 죽음>,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를 썼다. 그래서 『나의 습작기(習作期)의 시(詩) 아닌 시(詩)』의 맨 앞에 이 세 편의 시가 실려있다. 그런데 네 번째로 실려있는 시는 <거리에서>가 아니고 동요 <조개껍질>이다. <조개껍질> 은 1935년 12월에 쓴 작품이고 <거리에서>는 1935년 1월에 쓴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 시작노트에 직접 쓴 시들이라면 작품을 쓴 순서에 맞게 <거리에서> 작품이 네 번째 자리에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네 번째로 쓴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는 <거리에서>와 <공상> 작품은 한참 뒷부분에 실려있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나의 습작기(習作期)의 시(詩) 아닌 시(詩)』도 윤동주 시인의 자선 시집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 『창(窓)』,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세 권 모두가 윤동주 시인의 자선 시집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의 시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 순서에 따르기보다는 시를 쓴 순서에 맞추어서 읽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조개껍질> 등의 동요보다 먼저 <거리에서>를 읽는다.


거리에서



달밤의 거리

광풍(狂風)이 휘날리는

북국(北國)의 거리

도시(都市)의 진주(眞珠)

전등(電燈) 밑을 헤엄치는,

쪼그만 인어(人魚) 나.

달과 전등에 비쳐

한 몸에 둘셋의 그림자,

커졌다 작아졌다.


괴롬의 거리

회색(灰色) 빛 밤거리를

걷고 있는 이 마음,

선풍(旋風)이 일고 있네.

외로우면서도

한 갈피 두 갈피,

피어나는 마음의 그림자,

푸른 공상()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_ (1935.1.18. 윤동주 19세) 

 


이 시는 1935년 1월 18일 습작한 시로, 윤동주가 은진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시절에 남긴 작품으로, 연희전문 시절에 남긴 <간판 없는 거리>와 일본 유학 때 남긴 <흐르는 거리>와 함께 소위 '밤거리 3부작'으로 불리는 시다. 이 시를 통해 내면에 간직한 푸른 공상인 화자의 꿈과 괴롭게 느껴지는 회색빛 밤거리라는 현실이 대비되는 모습을 통해 화자의 내적 고뇌가 투영된 시다.


이 시는 고종사촌 친구(형?)이자 같은 은진중학교 동기생인 송몽규가 <술가락>이라는 작품으로 1935년 1월 1일 자 동아일보 신춘문예 콩트 부분에 당선이 된 이후 지은 작품이다. 또한 윤동주 시인은 이 시점부터 자신의 습작노트에 쓴 작품들의 창작 연월일을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이와 같은 사실은 송몽규의 신춘문예 당선에 큰 자극을 받은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문학에 대한 꿈이 구체적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한편 창작연월일이 1934년 12월 24일로 기록된 윤동주의 3편의 작품 역시 송몽규의 당선 이후 날짜를 기재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작품 속의 거리는 어느 거리일까. 직접 본 거리일까. 상상 속의 거리일까. 어수선한 밖의 상황이 그려지고 있다. 의식을 움츠러들게도 하고 내뻗게도 한다. 뚜렷한 의식에의 눈뜸이 엿보인다.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라 스스로 안일한 자세를 버리고 거리의 광풍 속으로 뛰어드는 기개와 투지가 넘쳐나 보인다.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모진 구석을 아프게 체험하고 괴로움에 동참을 해야만 한다. 그것을 깨달은 의식에의 눈뜸이 이 시를 있게 했을 것이다. 도대체 안정이 없고 불투명한 생존의 환경 속에서 심리적인 불안은 고조된다. 종잡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꿈과 희망이 쉽게 성취될 것 같지 않다. 환경의 자극과 충격을 받아 마음이 갈피를 못 잡게 스산해진다. 거리는 삶의 현장이다. 비정한 바람이 분다. 때때로 마음의 동요가 일어남도 당연하다. 거리의 현실은 곧 자신의 현실이다. 푸른 공상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음이 불안한 때문이다. 안과 밖의 관계, 그 관계가 퍽이나 심화되어 있다. 나 또한 요즘 안과 밖에 대하며 많은 생각을 한다. 정말 무서운 것은 내 안의 적이다. 내 안의 적은 보이지 않아서 더욱 무섭다.  

 

'달밤의 거리 / 괴롬의 거리', '한 몸에 둘셋의 그림자 / 한 갈피 두 갈피 피어나는 마음의 그림자' 등 대구법이 많이 사용된 시다.

'푸른 공상'은 '부푼 꿈'을 시각화한 표현이다.


* 원문표기

- '쪼그만' -> '쪽으만'

- '달과 전등' -> '달과뎐등'

- '커졌다 작아졌다.' -> '커젓다 적어젓다'

- '괴롬' -> '궤롬'

- '걷고 있는' -> 것고있는'

- '선풍이 일고 있네' -> '선풍이닐고 있네.'

- '외로우면서도' -> '웨로우면서도.'

- '피어나는' -> '피여나는'

- '높아졌다 낮아졌다.' -> '높아젓다 나자젓다.'


*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 시작노트에 쓴 시들은 대부분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거리에서>는 갑자기 1년 이상 전에 쓰인 시라고 적혀 있다. 왜 느닷없이 1년 전의 작품을 이렇게 가져와서 여기에 기록한 것일까? 나로서는 아직까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혹시 다음 작품 <공상>을 쓰려고 하니 옛날 작품이 생각나서 다시 소환한 것은 아닐까. 혼자 그런 생각을 해본다.(이 글은  『나의 습작기(習作期)의 시(詩) 아닌 시(詩)』를 순서대로 읽다가 적은 메모이다. 이 메모를 하고 한참동안 고민을 하다가, 이 시를 앞으로 순서를 바꾸기로 하였다.)


 



내부로 침투한 적

적이 나를 살렸다


금속 판막의 반달

붉은 그림자 운다


오랜 적과의 동침

꿈도 검게 꽃핀다



* 추신, 사족, 뱀꼬리

적은 내부에 있다

적과 동침을 한다

적을 이길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적들


대한민국 정부는 규암 김약연에게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했다. 그의 어록비가 천안 독립기념관에 세워졌다. 명동학교에서 김약연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김약연에게 배운 소년들은 그 시간들을 의미 있게 살리고 자신을 갈고닦아 명동학교 응원가에 쓰여 있듯 "후일 전공"을 세운다. 윤동주 시인과 명동학교에서 육 년을 함께 공부한 문익환(1918~1994) 목사는 <태초와 종말의 만남>에서 명동마을과 김약연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북간도에서 동만의 대통령이라고 불린 김약연 목사님이 자리 잡고 계시던 명동이 바로 윤동주와 내가 자란 고향이다. 나는 그 명동소학교에서 동주와 육 년을 한 반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명동에서 삼십 리 떨어진 곳 용정에 있는 은진중학교에서 삼 년을 같이 공부했다. 우리는 교실과 강당과 운동장에서 태극기를 펄럭이며 '동해 물과 백두산이...., '를 소리 높여 불렀다. 일본 사람들에게 돈을 안 준다고 동경 유학 시절에 전차를 타지 않고 꼭 걸어 다녔고, 기차를 안 탄다고 용정에서 평양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 온 백발이 성성한 명희조 선생에게서 국사 강의를 들으며 우리는 민족애를 불태웠던 것이다. 하지만 동주의 민족애가 움튼 곳은 명동이었다. 국경일, 국치일마다 태극기를 걸어놓고 고요히 민족애를 설파하시던 김약연 교장의 넋이 어떻게 동주의 시에 살아나지 않았겠는가! 어떤 작품이던 조선 독립이라는 말로 결론을 내지 않으면 점수를 안 주던 이기창 선생의 얽은 모습이 어찌 잊히랴!


그런데, 아, 조선 독립이란 말로 결론을 내지 않으면 점수를 주지 않았다는 이기창 선생의 얼굴이 제주 4.3을 이끌었던 유격대 제2대 사령관 이덕구와 겹쳐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윤동주 시인처럼

― 윤동주 시인처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수 있으면 도시에서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시의 하늘에도

별들은 반짝이고 있습니다

도시 사람들의 가슴속에도

별들은 반짝이고 있습니다


도시가 너무 환해서 

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환한 사람들 곁에서는

별빛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불빛이 없는 깊은 숲 속에서는

도시의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한 도시의 동네 사람들을 만나보면

가슴속에서 반짝이는 따뜻한 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는 밤마다 서울 남산 순환도로 깊은 숲 속에서

별빛을 펜 삼아서 따뜻한 시를 받아 적었습니다

나는 서울역 노숙자들의 가슴속으로 걸어 들어가

환하게 반짝이는 별빛을 꺼내어 시노트에 적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 비행기를 타보면 알 수 있습니다

두꺼운 구름 위에는 비가 오는 날에도 환합니다

그대의 아픈 상처 속에도 환하게 피어나는 꽃이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과 함께 밝은 그대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많이 힘들어 보인다.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면 좋겠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이 보고 싶다는 젊은 영혼, 도시의 하늘이나 사람들에게서 별을 볼 수 없다는 젊은 영혼에게 반짝이는 별을 선물하고 싶어서 급하게 메모를 남겨본다.


https://youtu.be/vgc04I3e--Y?si=nELbiMErCwZkdg5F



https://youtu.be/ssWvQnb7_GE?si=jc0qTcQxrLk-jygm

https://youtu.be/ANkI0J07RfQ?si=xP4zOEKI6BkRKJhz

https://youtu.be/IQBS2mTGg7k?si=GhNVEtt2X0Lw-ZkZ

https://youtu.be/dOvjBYgf5Mc?si=GyTf9ZYvLOYvDDIk

https://youtu.be/0N_Ns13f7go?si=so8xfp74Y8uC8_PB

https://youtu.be/ny6niv4fv-g?si=s3cgEX1AUAjXf4w2

https://youtu.be/eE0mW0TLJ6M?si=8RI62iuqkifxInWd

https://youtu.be/gE397R8FA9Y?si=nnvofVrPSYEJI8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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