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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Oct 04. 2024

월라봉 단애와 박수기정

― 윤동주 시인과 함께 마지막 순례를 떠난다 004




월라봉 단애와 박수기정




1

월라봉 단애에는 박수기정이 있고

스스로 절벽을 뛰어내린 바위들은

파도와 바람의 숨결로 부활하였다


스스로 뛰어내린 목숨도 날아간다


화산폭발이 일어났던 

그때의 모습도 생생하게 보인다

수많은 재가 날아와 쌓이고


용암이 용암의 등을 밀고 내려온다 


2

나는 혼자 놀기의 달인이다

나만 아는 비경이 여럿 있다

나는 날마다 비경 속에 산다


이어도 공화국 베이스캠프 앞의

앞마당에도 숨겨둔 비경이 있다

파도와 바람이 조각한 야외전시장


세월로 조각한 미술전시장이 있다

외계인이 새겨놓은 상형문자도 있다

달빛이 빚은 항아의  돌침대도 있다


아침 여섯 시 낡은 카메라 들고 간다

나 혼자만 보기 미안해서 들고 간다

비경은 어쩌면 숨어있어서 아름답다


카메라를 들고 온 내가 미워졌는지

입구에서부터 나를 한 번 쓰러뜨린다

꼭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라, 사정한다


속살은 감추고 속옷만 보여주라 한다


3

월라봉 단애에는 박수기정이 있다

박수는 샘물이요 기정은 절벽이니

절벽에서 바가지로 먹는 샘물이다


바위 속에도 물길은 숨어 있다

바위 속에도 숨길은 살아 있다

어둠 속에도 살길은 뚫려 있다


세월은 절벽들도 조금씩 무너뜨린다

스스로 절벽을 뛰어내린 절벽도 있다

스스로 절벽을 뛰어내린 바위도 있다


스스로 절벽을 뛰어내린 목숨도 있다


그런 절벽 아래에서 살리는 것들도 있다

바람과 파도가 숨결을 다시 불어넣는다

바람과 파도의 손길이 다시 일으켜 세운다


칼날로 쪼개진 마음을 부드럽게 다듬는다

잃어버린 문자도 불러 모아 가슴에 품는다

잊어버린 약속도 되새기며 그리움 싹튼다


4

제주도의 돌들은 물을 만나면

더욱 검어지는 흑진주가 된다

검게 빛나는 눈빛은 더욱 깊어진다


망태버섯 같은 바위들도 있고

항아의 침대 같은 바위들도 있고

광개토대왕비 같은 바위들도 있다


기하학을 새겨놓은 병풍도 있고

별자리를 새겨놓은 마당도 있고

별빛들을 켜 놓은 눈빛들도 있다


지금도 유반석이 남아 있는 월라봉

유반석 아래 푸른 비둘기가 살고 있다

용왕의 아들 글 읽는 소리도 들려온다


용왕 아들은 난드르 서당에서 글을 읽고

용왕은 물소리 막아주는 방음벽을 세운다

창고천의 물소리를 병풍으로 막아준다


몽고로 말을 실어 보냈다는 대평 포구

아직도 월라봉을 내려오는 말 발자국소리

용왕이 밀집시켜 놓은 거인들이 보인다


좁은 유치장에 갇혀있는 양민들도 보인다


사람들이 형제섬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형제섬을 바라보는 섬들을 본다

지금도 끊임없이 닦이는 바위들을 본다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고 오직 여기에만 있는

오직 나 혼자서만 볼 수 있고 나만 쓸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시 한 편 쓰려고 오늘도

낡은 카메라 하나 들고 아침 길을 나선다


어느 외계인이 써 놓고 간 듯한

비석이 하나 누워 있다 나는 

비문을 해석하기 위하여 탁본을 한다 


검은 석탄 덩어리 같은 바위들도 있다

흑진주 같은

먹돌들의 검고 어두운 아우성 소리 들린다


5

유튜브 전문가들은 자극적인 어그로를

동원해서 조회수만을 올라라고 하지만

화려한 썸네일로 유혹을 하라고 하지만


나는 오직 나를 위하여 나의 생각을 찍고

내가 본 의미 있는 장면들을

그냥 조용히 올려두고 조용히 사라진다


신들이 만든 이런 많은 조각품들이

시멘트 아래  묻히는 것도 보았다

바람과 파도의 숨결로 빚은 조각품

바람과 파도의 손길로 빚은 목숨들


배 하나가 수평선을 끌고 간다

수평선 끝에 매듭이라도 만드는 듯

방향을 틀어 형제섬을 한 바퀴 돌고

수평선 뒤로 들어가 사라져 버린다


나는 하늘을 한 번 깊이 올려다보고

다시 내려와 바닷속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하늘의 길이 보이고 바닷속 길이 보인다


나도 이제

돌아가는 길이 더욱 아름답기를 바란다

나도 이제는 돌아갈 날이 멀지 않았다


이제는 길이 잘 보인다

마음도 느긋하여 편히 앉아서

바람결 다라 파도와 함께 춤을 춘다


출발할 때 드러나 있던 넓은 빌레도 가라앉고

내가 미끄러져 넘어졌던 바위도 숨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신의 숨결로 하루를 시작한다


6

단애라는 말과 난간이라는 말의 말을 생각한다

절벽이라는 말고 낭떠러지라는 말을 생각한다

월라봉 단애와 박수기정이라는 말을 생각한다


7

월라봉 단애 아래 자연이 조각한 야외전시장이 있다

월라봉 절벽 아래 파도가 조각한 바다전시장이 있다

박수기정 낭떠러지 샘물 먹고 태어나는 목숨이 있다


8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야외 조각공원을 감상하며

절벽이라는 말과 벼랑이라는 말을 생각한다
벼랑이라는 말과 낭떠러지라는 말을 생각한다
단애라는 말과 난간이라는 말을 생각한다
비슷한 말이지만 절벽은 벽이라는 말 때문에
수직 절벽 아래에서 더 잘 어울리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가장 낮은 바다 길을 걸으며
월라봉 단애 뿌리에서 절벽을 올려다본다


9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 곁에

월라봉 단애가 있다.

월라봉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있다.

흔히, 사람들이 박수기정 절벽이라고 말한다.

절벽 위로는 올레길이 있다.

박수기정이란 팻말 앞에서 보는

바다 풍광이 절경이다.

마라도와 형제섬이 보이는 바다 풍경을 보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하지만 여기는 위험한 구간이다.

바로 곁이 수직 낭떠러지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여기가

그렇게 위험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사진을 찍다가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

80미터가 넘는 수직 낭떠러지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한 발짝 때문에 바로 사망할 수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바로 여기에서 실수로 죽은 사람도 있고

스스로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으니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월라봉 단애는 낭떠러지

위로 걷는 일도 위험하지만

절벽 아래로 걷는 일도 위험하다.

절벽 아래는 길이 없고 바위들로 가득하다.

또한 바닷물이 들어오면

바위 위로도 잘 다닐 수 없다.

그래서 큰맘 먹고 이 길을 가려면

반드시 조수간만의 차와

조간대 시간을 반드시 확인하고

들어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황개천과 대평포구 사이에서

갇히는 불상사가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길 바란다.

그리고 가능한 나처럼 혼자 가지 말고

누군가와 함께 가길 바란다.

그래야만 혹시 발을 삐더라도

무사히 구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래도 우리 집 앞마당이라서

혼자서도 잘 갈 수 있다.

나는 사람이 빚은 조각품보다

자연이 빚어놓은 조각품들이 더 좋다.

어쩌면 여기는 나를 위한 전용

전시장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저마다의 아름다운 전시장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당신의 전시장에서 살고 싶다.

당신의 가슴속에서 숨 쉬는 영혼이고 싶다.




*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 곁에 월라봉 단애가 있다. 월라봉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있다. 흔히, 사람들이 박수기정 절벽이라고 말한다. 절벽 위로는 올레길이 있다. 박수기정이란 팻말 앞에서 보는 바다 풍광이 절경이다. 마라도와 형제섬이 보이는 바다 풍경을 보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하지만 여기는 위험한 구간이다. 바로 곁이 수직 낭떠러지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여기가 그렇게 위험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사진을 찍다가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 80미터가 넘는 수직 낭떠러지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한 발짝 때문에 바로 사망할 수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바로 여기에서 실수로 죽은 사람도 있고 스스로 떨어져 죽은 사람도 있으니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월라봉 단애는 낭떠러지 위로 걷는 일도 위험하지만 절벽 아래로 걷는 일도 위험하다. 절벽 아래는 길이 없고 바위들로 가득하다. 또한 바닷물이 들어오면 바위 위로도 잘 다닐 수 없다. 그래서 큰맘 먹고 이 길을 가려면 반드시 조수간만의 차와 조간대 시간을 반드시 확인하고 들어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황개천과 대평포구 사이에서 갇히는 불상사가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길 바란다. 그리고 가능한 나처럼 혼자 가지 말고 누군가와 함께 가길 바란다. 그래야만 혹시 발을 삐더라도 무사히 구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래도 우리 집 앞마당이라서 혼자서도 잘 갈 수 있다. 나는 사람이 빚은 조각품보다 자연이 빚어놓은 조각품들이 더 좋다. 어쩌면 여기는 나를 위한 전용 전시장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저마다의 아름다운 전시장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당신의 전시장에서 살고 싶다. 당신의 가슴속에서 숨 쉬는 영혼이고 싶다.


https://youtu.be/-gkj5YQNFzs?si=uJco9Ne8ywDvFGS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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