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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과 함께 64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by 강산





윤동주 시인과 함께 64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는다고 죄가 지워질까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는다고 네가 지워질까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바람은 뼈가 다 보인다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뼈가 다 보인다


바람에 살을 다 내어주고 뼈만 남은 제주도 가슴

해안가에서 보아도 검은 뼈들만 어루만지고 있다


아직도 뼈를 찾아 다 맞추지 못한 제주도 사람들

잃어버린 뼈를 찾아 먼저 고개 내미는 고사리들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어둠을 닦아보는 사람들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세월을 닦아보는 물음들




조정래 작가와 함께 6

― 태백산맥 1-1. 일출 없는 새벽


6

정 사장은 아들이 좌익에 미친 것은 악귀가 씌운 탓이라며 굿을 요구해왔었다. 소화는 오랜 정리 때문에 차마 거절하지를 못하고 굿을 하긴 했지만 그 굿이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었다. 그때 굿을 했다기보다는 자신은 정하섭이란 남자를 그리워하고, 무사하기만을 빌었던 것이다. 자신의 머릿속에는 몇 년 전 통학열차에서 만났던 기억만이 그리움의 눈물과 체념의 아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당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순천에서 넘어오다가 정하섭과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검은 학생복을 단정하게 입은 정하섭은 눈길이 마주친 순간 멈칫하는 것 같다가 이내 똑바로 다가왔다. 자신은 금방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아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가슴이 쿵쿵 울리고 있었다.

"이렇게 만나다니 반갑소. 일행이 있소?"

굵은 듯하면서도 맑은 소리였다. 자신은 고개만 저었다.

"잘됐소. 저쪽으로 갑시다."

끌리기라도 하듯 정하섭의 뒤를 따랐다. 정하섭이 걸음을 멈춘 곳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열차의 맨 뒤칸 문 밖이었다. 기차가 달리며 일으키는 바람으로 황급히 치마폭을 여며야 했고, 머리카락도 수습을 할 수 없도록 나부꼈다. 정하섭도 어느 틈엔가 모자를 벗어 구겨쥐고 있었다. 사방의 경치가 바르게 도망질치고 있었고, 두 줄로 뻗어나간 철길도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도망가고 있었다.

"어디 갔다 오시오?"

정하섭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순천에 볼일이 잠 있어서요."

"굿이오?"

정하섭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아니구만이라, 딴 일이구만요."

자신은 고개까지 저으며 다급하게 대답했다.

정하섭은 말이 없었다. 그의 눈길이 자신에게로 쏟아지고 있는 것을 느끼며 도망치는 두 줄기 철로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지러워 속이 메슥거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정하섭은 말이 없었다. 어지러움을 면하려고 눈을 감았다. 자신에게 황금빛으로 익은 비파 두 개를 내밀던 어린날의 정하섭의 모습과, 그것을 하나씩 나누어먹었던 기억이 어제의 일인 듯 선연하게 떠올랐다. 알 수 없는 슬픔이 울컥 목을 채웠다.

"나 대물림굿 하는 것 봤소."

"야아?"

자신은 너무 놀라 얼결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바로 눈앞에 정하섭의 화가 난 것 같은 얼굴이 있었고, 그 눈이 불이라도 붙은 듯한 뜨거움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눈길을 받아낼 수가 없어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왜 무당이 됐소?"

"......"

"엄니가 시켜서 그랬소?"

"......"

"되고 싶어서 그랬소?"

"......"

눈물을 참느라고 목이 메었다. 정하섭은 또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자신은 눈물을 넘기고 또 넘기며 '니같이 이쁜 애가 워째 무당딸이 됐는지 몰르겄다' 했던 어린날의 정하섭의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답답하게 그러고 있지 말고 왜 무당이 됐는지 대답 좀 해보시오."

정하섭이야말로 정말 답답한 말을 묻고 있었다. 그럼 나더러 어찌하란 말인가...... 자신은 입술을 깨물며 대답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것이 지 운명이구만요."

"운명......운명......운명"

정하섭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바람에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은 새로운 눈물로 젖고 있었다.

"소화가 무당딸만 아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하섭은 그런 말과 함께 자신의 손을 덥석 잡았다.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빼려 했지만 빠지지 않았다. 자신이 또 한 가지 놀란 것은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이름만 가졌지 그건 좀체로 누가 불러주지 않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그저 '무당딸'이었을 뿐이다.

"그래요, 우리 두 사람의 운명도 저 레일 같을 거요. 저 레일은 두 줄로 뻗어갈 뿐이지 영원히 만나지도, 합해지지도 못하게 돼 있소."

정하섭이 손을 잡은 채 한참 만에 한 말이었다. 그 말이 너무 황감하면서도, 마디마디가 돌멩이가 되어 가슴을 쳤다.

언제 손이 풀렸는지 기억이 없었다. 뻣뻣이 굳어버린 듯한 팔에 오롯이 남은 그의 뜨거운 체온을 간직한 채 기차를 내렸고, 역을 나오면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되어 헤어졌다. 그리고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떠나갔던 것이다.

"그렇소, 제대로 맞췄소. 내가 바로 빨갱이요."

정하섭은 의미 모를 웃음을 피식 웃더니 성냥불을 켰다. 아까와는 달리 여유있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 불빛에 드러난 남자의 얼굴을 소화는 빠른 눈길로 훔쳐보았다. 저리도 준수하게 잘생기고 서울에서 대학까지 다니는 부잣집 아들이 뭐가 모자라서 좌익을 하는 것일까. 좌익은 지주나 부자들을 원수로 삼고, 가난한 농부나 불쌍한 노동자를 한편으로 한다고 하지 않던가. 부잣집 아들이 좌익을 했으니 아버지를 원수로 삼을 것인가. 아니, 저 사람은 부자로 사는 것이 싫단 말인가.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만 같았다.

"당신은 빨갱이를 어찌 생각하시오?"

너무 뜻밖의 질문이었다. 소화는 대답 대신 고개를 들어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의 눈은 햇살처럼 부신 빛을 내쏘고 있었다. 소화는 눈이 부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대답하시오."

"잘 모르는구만요."

"이건 잘 알아서 하는 대답이 아니오. 경찰들처럼 빨갱이는 모두 총살시켜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것만 대답하면 되오."

"가난허고 불쌍한 사람들 편이라는디 나쁘기사 허것는가요?"

소화는 평소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라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게 정말이오?"

정하섭은 자리를 고쳐앉으며 되물었다. 그러면서 거점확보는 일단 성공 가능하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지 맘이 그런 쪽으로 가는구만이라."

어디쯤에서인지, 닭 우는 소리가 멀게 들렸다.

"됐소. 그럼 지금부터 내 말 똑똑히 들으시오."





3천여 명의 학자들이 성명서를 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즉각 윤석열을 대통령의 직에서 파면하기 바랍니다. 이번 재판에 대해 “각하”하거나 “기각”한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행위입니다. 민주시민이 지난 세월 동안 꾸준히 발전시켜온 민주주의를 퇴행시켜, 독재국가로 추락하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성의 있는 대응을 거듭 요구하는 바입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여러분께 드리는 교수연구자들의 간곡한 요청>


존경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여러분께,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학문과 연구를 통해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지켜온 교수·연구자로서, 이 역사적 순간에 헌법재판소가 헌법 수호 기관으로서의 소명을 다해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1. 이번 비상계엄은 명백히 위헌적이고 불법적이며 헌정 질서 파괴 행위입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적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입법·사법부의 기능이 마비될 뻔 했으며, 정당한 절차 없이 국정이 운영되었습니다. 헌법 제77조는 비상계엄 선포 요건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으며, 계엄은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는 극단적 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됩니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은 외부의 침략이나 내란 상태에 처해 있지 않았으며, 계엄 선포를 정당화할 법적 근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포고문에서 국회와 정당의 활동을 중지하고, 계엄령의 권한을 넘어서 헌법에 존재하지도 않은 절대군주의 권한을 참칭했고, 실제 국회에 병력을 보내 계엄 절차에 따른 국회 의결을 방해했습니다. 이는 명백한 헌정 질서 파괴이자 헌법을 무력화한 행위입니다.


2.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행위에 대한 탄핵인용은 헌법재판소의 책무입니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66조는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행위는 이러한 헌법적 의무를 심각하게 위반했으며, 오히려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여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단순한 권한 남용을 넘어 헌법을 유린한 중대한 위헌 행위이며, 형법상 내란죄의 구성 요건을 충족하는 중범죄입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최종적 해석 기관이자 수호자로서, 이와 같은 위헌적 행위를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를 인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헌법의 권위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며, 향후 대통령이 헌법을 무력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3.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상,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단순한 법률적 판단을 넘어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존속할 것인지, 아니면 권위주의적 퇴행의 길로 들어설 것인지를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법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지를 분명히 보아왔습니다. 193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은 사법부가 히틀러의 권력 장악을 견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973년 칠레의 군부 쿠데타 또한 법원이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몽테스키외는 "법이 침묵하는 곳에서 독재가 말한다"고 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이번 사안을 외면한다면, 대한민국은 헌법과 법치가 아닌, 폭력과 독재가 지배하는 나라로 전락할 것입니다.


4. 윤석열 탄핵 즉각 인용은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필수적인 결정입니다.


헌법재판소가 이번 탄핵을 인용하는 것은 단순히 윤석열 대통령 개인에 대한 판단이 아닙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법치주의 국가로 남을 것인지, 헌법이 권력을 견제할 실질적 장치로 기능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대한 판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이 갑작스럽게 취소되고, 극우 세력들이 헌법재판소를 향해 노골적인 위협과 공격을 가하고 있는 현 상황은 대한민국이 얼마나 큰 위험에 처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이번 탄핵을 기각한다면, 이는 내란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며, 법치주의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우리는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오직 헌법과 법치의 원칙에 따라 윤석열 탄핵을 즉각 인용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역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억할 것입니다. 정의로운 판결만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낼 것입니다.


2025년 3월 17일


윤석열 즉각 파면을 촉구하는 전국 교수·연구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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