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꿈삶글

배진성 시인의 꿈삶글 0008

― 서시(序詩)

by 강산

배진성 시인의 꿈삶글 0008

서시(序詩)




2024년 12월 3일 23시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2024년 12월 10일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어도에서 윤동주 시인과 함께 마지막 순례를 준비하던 나는 급하게 이어도에서 여의도로 달려가야만 했다 위험에 처한 나라부터 우선 구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어도와 여의도는 멀지만 가깝다 이어도와 여의도는 결코 멀지 않다 너와 내가 멀지만 결코 멀지 않듯이,


나라를 걱정했던 수많은 시민들은 여의도로 달려가, 촛불과 응원봉 불빛으로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구했다 빛의 혁명은 그렇게 느닷없이 어두운 밤에 시작되었다 2024년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깨어있는 시민들의 위대한 시민혁명이 잠시 승리하였다


하지만 내란세력의 준동으로 우리 사회는 해방정국의 혼란 속으로 급속히 빠져들고 말았다 그때 척결하지 못한 친일파 세력들과 남몰래 숨어 지내던 민족반역자들이 일제히 얼굴을 드러내고 반격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산들과 국민들의 가슴에 대형 산불이 일어나 큰 피해를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8대 0, 만장일치로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하였다 하지만 지금도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니다 나는 다만 전쟁과 폭력과 독재를 반대한다 권력은 또 다른 권력으로 부패를 예방할 수 있다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장단점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독재를 막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심 있는 시민들이 언제나 깨어있어야만 한다 정치가 직업인 사람들은 늘 독재를 꿈꾼다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독재가 가장 무서운 적이다 모든 정권들은, 십 년에 한 번쯤은 갈아주어야만 한다 고인 물은 썩는다


윤동주 시인의 문학정신과 한강 작가의 문학정신과 조정래 작가의 문학정신이 만나서 함께 순례를 떠난다 우리 사회의 갈등의 원인, 갈등의 뿌리를 찾으려고 길을 떠난다 숲을 살리려면 나무를 살려야만 한다 나무를 살리려면 뿌리를 살려야만 한다 뿌리를 다시 살리기 위하여 배진성 시인의 세상 읽기와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를 시작한다 윤동주 시인과 함께 한강 작가와 함께 조정래 작가와 함께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점에서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



*


우리 사회의 대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내란 위헌정당도 해산시키고 내란 잔당들과 잔불도 진화하여 새롭고 건강한 보수정당과 새롭고 건강한 진보정당이 필요하다 검찰개혁뿐만 아니라 사법 입법 언론 기타 모든 분야에서의 개혁과 혁신이 필요하다 그 중심에 휴머니즘과 애민정신이 뿌리를 내려야만 한다 사랑과 자비의 마음에 바탕을 두어야만 한다 부와 권력자 중심이 아니라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부터 배려할 수 있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회가 되어야만 한다 혼자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잘 사는 나라,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따뜻하고 아름답고 은혜로운 나라가 되어야만 한다




서시(序詩)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_ (1941.11.20, 윤동주 25세)

115. 서시(序詩)(시) _ 육필자선시집, 초판, 중판, 삼판

* 처음에는 제목이 없었으나 후대 사람들이 붙인 제목임










알프레드 노벨 [ Alfred Bernhard Nobel ] (1833.10.21 ~ 1896.12.10)


스웨덴의 발명가, 화학자, 노벨상의 창설자. 고형 폭약을 완성하여 다이너마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과학의 진보와 세계의 평화를 염원한 그의 유언에 따라 스웨덴 과학아카데미에 기부한 유산을 기금으로 1901년부터 노벨상 제도가 실시되었다.


183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출생한 후 4세 때 핀란드로 이주하였다. 8세 때는 다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고 이곳에서 초등교육을 받았다. 1850년 미국으로 유학하여 4년 동안 기계공학을 배웠다. 크림전쟁 후 스웨덴에서 폭약의 제조와 그 응용에 종사하고 있던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 폭약의 개량에 몰두하였다. 1863년 소브레로가 발명한 니트로글리세린과 중국에서 발명한 흑색화약을 혼합한 폭약을 발명하고, 그 이듬해 뇌홍(雷汞)을 기폭제로 사용하는 방법을 고안하여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이의 공업화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1864년 9월 공장이 폭파되어 동생과 조수 4명이 희생되었다.

여기서 그는 니트로글리세린이 바로 액체라는 점에 위험의 원인이 있다고 인정하고, 1866년 이것을 규조토(硅藻土)에 스며들게 하여 안전하게 만든 고형(固型) 폭약을 완성하여 이것에 '다이너마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 1887년 니트로글리세린·콜로디온면(綿)·장뇌(樟腦)의 혼합물을 주체로 하는 혼합 무연화약(無煙火藥)을 완성하였다. 노벨의 공장은 스웨덴·독일·영국 등에서 연이어 건설되어, 1886년 세계 최초의 국제적인 회사 ‘노벨다이너마이트트러스트사’가 창설되기도 하였다.

그동안 그의 형인 로베르트와 루트비히는 카스피해(海)의 서안에 있는 바쿠의 유전개발에 성공하여 대규모의 정유소를 건설하고 세계 최초의 유조선 조로아스타호(1877년 취항)를 사용하여 세계 최초의 파이프라인(1876)을 채용함으로써 노벨가(家)는 유럽 최대의 부호가 되었다. 노벨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으며 자식도 없었다. 1895년 11월 자신의 재산을 은행 기금으로 예치토록 하는 유서를 작성하였으며 1896년 12월 10일 6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과학의 진보와 세계의 평화를 염원한 그의 유언에 따라 스웨덴 과학아카데미에 기부한 유산을 기금으로 1901년 이래로 세계의 평화, 문학, 물리, 화학, 생리·의학, 경제 분야에 노벨상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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