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시인의 꿈삶글 1
강산 시인의 꿈삶글 1
김도수 시인의 글을 읽으면
연어의 종착역이 보인다
언어의 종착역이 보인다
내가
연어의 종착역을 말하면
시인은
언어의 종착역을 말한다
언어와 연어가 이렇게 만난다
나는 이제
연어를 따라서
언어의 종착역으로 간다
나는 너무 멀리 돌아서
왔다 이제 다시
그 종착역에서 출발한다
김도수 시인의 글을 읽고 연어의 종착역이 보인다고 썼더니 언어의 종착역이 아니냐고 묻는다. 아, 나에게 연어의 종착역은 김도수 시인에게 언어의 종착역이었구나. 언어와 연어가 이렇게 만나는구나. 나는 문득 크게 깨닫고 비로소 나를 뒤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연어를 따라서 언어의 종착역으로 간다. 내가 지금껏 크게 잘 못 살았음을 깨닫는다. 나는 어디에서부터 잘 못 산 것일까? 그 원인이 나는 더욱 궁금하다. 나의 꿈과 나의 삶과 나의 글을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겠다. 나의 삶이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하루라도 더 일찍 반성하고 하루라도 더 일찍 더욱 아름답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50세면 지천명(知天命)이요 60세면 이순(耳順)이라 하였다. 하지만 나는 55세에 비로소 나를 보기 시작한다.
그의 첫 번째 산문집《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를 먼저 읽는다
알면 알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이 있고
알면 알수록 더 싫어지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중에 어떤 사람일까 생각한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알면 알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 김도수 형님이 있다. 몸과 마음이 통째로 고향인 사람이 있다. 그 형님께서 자신의 책 한 박스를 보내주셨다. 예전에 진뫼마을 형님댁에서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남도기행을 했던 독서회 사람들과 함께 돌려가며 읽어보라고 보내주셨다. 이것도 다 인연인 듯 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첫 번째 산문집《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를 먼저 읽는다. 이 책이 발행되기 전부터 나는 그의 찰지고 구수한 글들을 인터넷에서 많이 읽었다. 아마도 전라도닷컴 사장님 가슴도 나의 가슴처럼 따뜻하게 데워준 것 같았다. 전라도닷컴 사장님을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김도수 형님 말씀에 의하면 참 좋은 사람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다 인연과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것일 것이다.
산문집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전라도닷컴)는 2004년 7월 19일 1쇄를 찍었고, 2007년 1월 1일 2쇄를 찍었다. 광주에 있는 작은 지방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 이렇게 인기를 얻은 것은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의 고향을 향한 징글징글한 사랑의 기록이 세상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하여 썼고 또한 이 책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여러 방송에도 출연하고 유명해졌기 때문에 내가 따로 쓰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어쭙잖은 글을 쓰는 것은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함일 것이다.
한때 농사를 짓고 살겠다는 겁도 없는 꿈을 꾸고 있었다는 박남준 시인, 대학을 졸업하고 돈 한푼 없던 박남준 시인에게, 교편을 잡고 있던 후배가 13만 원을 빌려주어, 그 돈으로 임실의 진뫼마을 빈집 한 채를 사서 일년을 살았다는 박남준 시인, 그 인연으로 이 책의 추천글을 쓴 박남준 시인은 김도수 시인의 고향 사랑을 두고 <강가의 작은 마을을 지키는 징글징글한 사랑의 이야기가 여기 있네. 여기 불이 꺼진 마을에 다시 들어와 따뜻한 불을 밝힌 사람이 있네>라고 말한다. 김도수 시인은 1959년 생이고 박남준 시인은 1957년 생이다.
5년
어제 밤에 대설주의보처럼 꿈을 꾸었다
부처님과 예수님과 주치의 선생님께서
나에게 남은 생명이 5년이라고 말씀 하셨다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말씀 하셨다
5년의 시한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만 할까
꿈속에서 고민을 하는데 저절로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이제 막 새해가 열리는 밤이었다
책상 위에는 어제 낮에 받아서 읽다가 잠든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가 놓여있다
다시 읽기 시작하니 섬진강이 보이고
진뫼마을이 보이고 반월산이 보이고
연어의 종착역이 보이고 징검다리가 보인다
어제 눈이 많이 와서 한라산을 넘지 않고
이어도공화국에서 해를 넘기고 있는데
어둠 속으로 새해가 열리듯 방문이 열리더니
반월산에 누워 계신 부모님께서 들어 오신다
아직, 내가 등을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어야 할 흰 소는 보이지 않는다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에 수록된 글과 사진들은 박남준 시인의 말처럼 징글징글한 사랑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나의 시선을 더욱 오래도록 붙잡아 두는 글과 사진들이 있다. 김도수 시인의 고향 임실의 진뫼마을과 나의 고향 곡성의 연어의 종착역은 참 많이도 닮아 있어서 많은 이야기들이 나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그 중에서 나는 <추억의 등교길>이 가장 좋다. 나에게 가장 많은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한 나로 하여금 가장 많은 반성을 하도록 깨우쳐주고 있다. 이 이야기는 추석 연휴 첫날, 초등학교 다니는 딸과 아들에게 김도수 시인이 다녔던 초등학교 등교길을 체험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딸 가애와 아들 민성이가 책보 둘러메고 아버지의 어린 시절 등교길을 체험하는 이 이야기는 나 자신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덕치초등학교로 가던 강변 등교길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김도수 시인이 다녔던 길과 그의 딸과 아들이 손 꼭 잡고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따라서 걸어가는 모습이 내 눈에는 참으로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리고 그런 딸과 아들 뒤를 따라서 점심 도시락을 싸서 따라가는 김도수 시인과 그의 아내 박은자 형수님도 보인다. 그리고 농사일을 하다가 뒤늦게 운동회가 열리는 학교로 달려가는 김도수 시인의 어머니 월곡떡도 보인다. 그리고 운동장 앞쪽 모서리에 서 있는 쌍벚나무 아래서 점심을 먹는 김도수 시인과 그의 형과 그의 어머니가 함께 점심을 먹는 모습도 보인다. 또한 김도수 시인과 그의 아내 박은자 형수님과 그의 딸 가애와 그의 아들 민성이가 함께 모여서 점심을 먹는 모습도 보인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리고 나는 < 75년 여름 진뫼마을 톱뉴스>에서는 나의 아버지를 보았고 <어머니 사랑비는 언제나 세울까>에서는 나의 어머니 메산이댁을 보았고 <진달래 먹고 놀던 내 친구 현철이>에서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언젠가는 나의 아버지 이야기와 나의 어머니 이야기와 현철이처럼 살았던 나의 이야기는 새롭게 다시 쓰여질 날이 있으리라. 그리고 <어서 고치집 좀 짓거라>에서는 누에 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나의 기억과 좀 달라서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 내 기억에는 일년에 한 번 누에치기를 하였다. 뽕나무가 일 년에 한 번 자리서 나는 일 년에 한 번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봄과 가을 이렇게 두 번 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봄 누에와 가을 누에가 있다고 나온다. 우리집에서도 누에치기를 많이 하였는데 어머니께서 약 한 달가량 고생을 참 많이 하셨다. 밭에 있는 뽕이 부족해서 산에 들어가 꾸지뽕을 따다가 먹인 기억이 선명하다.
고향집 바로 앞에
연어의 종착역 표지석이 있다
나는 연어가 되어
참으로 먼 길을 거슬러 돌아왔다
나도 이제는
붉은 알을 낳아야만 한다
시집 한 권이 왔다. 검은 관 하나가 도착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서 나에게 왔다. 생전에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왔다.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왔다.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왔음이 분명하다. 아직은 따뜻한 어느 시인이 왔다. 비석 같은 시집이 왔다. 나를 갑자기 찾아온 사람, 처음으로 나를 만나려고 온 사람,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온 사람, 죽어서 겨우 인연이 된 사람, 죽음의 길을 가다가 다시 살아온 사람, 나는 이제야 비로소 시인을 만난다. 운명처럼 만난 그 시인의 따뜻한 숨결을 통하여 그와 나를 함께 읽기 시작한다.
‘백날을 함께 살고 일생이 갔다’는 그는 나에게 ‘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며 쿠바도 보여주고 애인도 보여준다. ‘뭇별이 총총’한 밤하늘까지 모두 보여준다. 나는 그가 보여주는 것들을 차례대로 보면서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깊이 뒤돌아본다. 그리고 나는 그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시인의 길을 찾아서 새롭게 출발한다. 그의 종착역은 이제 나의 출발역이 된다.
나는 오래 전부터 달의 뒷면을 보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뒷면이 늘 궁금했다. 그리하여 나는 산문(山門)을 드나들 듯 달문을 드나들고 싶었다. 내가 그런 달문 이야기를 하니 존경하는 김종순 박사님께서 나에게 달문moon을 열어주셨다. 직접 작명을 하셨다는 <달문moon>이란 이름을 나에게 주셨다. 명상카페 이름으로 쓰라며 하사 하셨다. 내가 늘 사용하던 ‘달문’ 옆에 ‘moon’이 나란히 앉으니 의미가 더 깊어지고 확장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달문moon>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다.
달문moon은 ‘달’ 하나를 의미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달은 달이고 문은 moon을 한글로 표현한 말이고 moon 또한 우리말로는 달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달문moon’은 그냥 ‘달’이라고만 써도 된다. 하지만 나는 그 의미를 좀 더 확장하고 싶다. 그리하여 나는 달문을 한자로 바꾸어서 생각해본다.
‘달’이라는 글자는 한자로 여러 얼굴이 있다. ‘달’을 생각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달마대사와 ‘도달하다’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達’이라는 글자의 뜻은 통달하다, 통하다, 이르다, 달하다, 전하다, 통용되다, 현달하다, 이루다, 갖추다, 대범하다, 정하다, 능숙하다, 드러나다, 드러내다, 마땅하다, 방자하다, 촐싹거리는 모양, 어린 양, 등의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문’이라는 글자는 한자로 더 여러 얼굴이 있다. ‘문’을 생각하면 나는 개인적으로 門, 文, 問, 聞, 紋, 蚊, 吻, 등이 먼저 떠오른다. 문과 글과 입과 귀와 문양과 모기와 입술이 먼저 떠오른다. 사람마다 그 의미는 각자의 처지에 따라서 많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moon’이라는 글자는 나에게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상형문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어쩐지 문과 달을 형상화 해 놓은 듯,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상의 모든 문자는 직선과 곡선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도 좋아하지 않고 영어도 좋아하지 않지만, ‘moon’이라는 글자만은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달문’은 달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될 수도 있고 달이 드나드는 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날마다 월라봉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본다. 사람들은 날마다 다른 모양의 달을 보지만 달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날마다 보고 있는 달의 모습은 어쩌면 달의 문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달이 조금씩 더 많이 열었다가 날마다 다시 조금씩 닫고 있는 달의 문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떠오르는 달을 보고 월문(月門)으로 읽지 않고 달문(達門)으로 읽거나 달문(達文)으로 읽는다. 그리고 나는 보름달보다 반달을 더 특별하게 생각한다. 내 고향 뒷산 이름이 반월산이다. 그 반월산 아래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나란히 누워계신다. 나도 어쩌면 언젠가는 그 곁에 누워 긴 잠을 잘 것이다. 나도 그렇게 반달 아래서 반월산이 될 것이다.
나는 이제 문 앞에 서 있다. 나는 지금 글 앞에 앉아 있다. 내 몸 안에서 반달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들의 심장 속에도 반달이 있다. 대동맥판막은 반달 세 개로 이루어져 있다. 신께서 조직으로 만든 반달 세 개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 금속으로 만든 반달 두 개에서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구조적으로 완전히 열릴 수 없는 반달문에서는 피가 엉긴다. 째깍째깍째깍 반달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나를 깨운다. 아무리 항응고제인 와파린을 잘 먹어도 피가 자꾸만 엉겨 핏줄을 막는다. 아직은 확실히 신이 인간보다 한 수 위다.
나는 이제 문이 가장 무섭다. 어느 날 갑자기 닫혀버릴 문이 무섭다. 길의 문이 무섭다. 핏줄의 문이 무섭다. 달의 문이 무섭다. 달이 열고 닫아주는 달문이 무섭다. 나는 아마 뇌졸중으로 나의 문을 닫을 것만 같다. 어머니의 문을 열고 나오면서 함께 간직했던, 선천성 비후성 심근증 때문에, 돌연사를 염려했던 나는 이제 뇌졸중을 더 걱정하게 되었다. 인간이 금속으로 만든 반월판막이 나의 목숨을 겨우 살렸지만, 덕분에 나는 앞으로 평생 묽게 살아야만 한다. 성형수술을 한 승모판막까지 염려하면서 더욱 묽게 살아야만 한다.
나는 이 지상에서 떠나기 전에 발자국 몇 개 남기려고 한다. 내가 명명한 <꿈삶글>을 쓰려고 한다. 내가 잠시 머물렀던 이 지상의 세상을 읽고 내가 늘 생각했던, 작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 하나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쓰는 글들은, 달문moon처럼 사람들마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언어의 종착역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언어의 출발역에는
또한 어느 누가
눈을 뜨고 있을까
나의 언어의 종착역과
나의 언어의 출발역에는
끝끝내 누가 살고 있을까
나는 몸으로 기억한다. 나의 몸이 어머니를 기억한다. 어머니는 나의 하느님이다. 그 기억을 더듬어 다시 한 번 그 따뜻한 길을 여행한다. 그 행복과 평화의 길은 나의 길이고 내 아들의 길이고 내 어머니의 길이고 우리들 모두의 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어머니'라는 이름이다. 나는 비록 끝내 어머니가 되어보지 못했지만, 그 따뜻하고 아름다운 길은 평생 잊을 수 없다. 그 숭고한 길의 힘으로 나는 오늘도 행복하게 살아간다.
나의 몸은 아직도 토성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토성(土星)을 진성(鎭星)이라 부른다. 토성은 목성에 이어 태양계에서 두 번째로 크며, 직경은 지구의 약 9.5배, 질량은 약 95배이다. 태양으로부터 14억k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약 9.7km/s의 속도로 공전하는데, 이는 지구 시간으로 대략 29.6년이나 걸린다.
나의 기억이 왜 토성에서부터 출발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나는 아직 모른다. 나는 다만, 어쩌면 나의 이름 때문에 기억이 재구성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날, 그러니까 그믐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토성은 30년 만에 지구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접근하였고 번쩍, 하는 불빛과 함께 우주비가 내렸다. 나는 그 5억 개가 넘는 우주의 빗방울 속에 있었다. 나는 무작정 토성에서 지구를 향해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지구에 도착하여 보니 어느 작은 시골이었다. 그믐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보름달을 이고 가는 도붓장수 여인이 있었다. 커다란 미원박스 안에 바늘, 실, 양말, 동정, 고무줄, 비누… 많은 생활용품들이 담겨있고 그 박스 아래는 생활용품과 물물교환 한 쌀, 보리, 조, 수수, 콩 등이 담긴 자루가 있고 또한, 그 박스 위에도 비교적 가벼운 물건들과 함께 이미 팔려나간 물건들 대신 수숫대 빗자루며 계란 등과 함께 손때 묻은 되가 있었다. 이 모든 물건들을 아주 큰 보자기에 싸서 이고 가는 여인이 있었다. 집을 나설 때에는 빈 헝겊 자루들이 똬리 역할을 했지만, 그 접혀 있었던 자루들이 불룩하게 다 채워지고 네모난 박스 위에도 묘지처럼 볼록해서 보름달이 되어야만 집으로 돌아가는 여인 이었다. 그 여인의 몸은 흠뻑 젖어 있었고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지천에 피어있는 참꽃들만이 바람결에 맞추어 몸을 눕히고 있었다. 나는 다행히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를 적셨고 무사히 그녀의 몸과 마음속으로 침투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나의 운명이었고 축복이었다. 나는 그렇게 천만 다행으로 그녀를 만났고 그녀는 나의 어머니가 되어가기 시작하였다. 어찌하여 나는 그녀를 젖게 했을까? 왜 나는 하필 그런 여인의 몸속으로 황급히 뛰어 들어갔던 것일까? 나는 어찌하여 그렇게 그녀의 아들이 되었던 것일까?
누군가는 저 다리를 건너
역사를 바꾸었고
누군가는 저 다리를 건너
도화낭자를 만났고
누군가는 저 다리를 건너가다
다 건너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자꾸만
다리 난간에 있는
거울 속 사내를 들여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