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서 중간에 먼저 떠났다.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다.
섬진강 문학기행 세부일정 / 이어도 촌장 / 04.09.16 08:43
김도수 명예이장님께서 추천해주신 섬진강 문학기행 2박3일 코스
진뫼마을에서 하동포구까지 섬진강 강줄기를 따라 가는
1. 일정표
■ 첫째 날(10/16, 토요일)
▷ 제주 출발(08:40분) → 광주공항 도착(09:25) →광주공항 출발(09:40) →진뫼마을 도착(11:20)
■ 둘째 날(10/17, 일요일)
▷ 진뫼마을 출발(09:00) → 천담, 구담마을(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 장구목(요강바위) → 남원 대강 → 곡성읍 → 구례구역 → 구례 운조루 → 하동 화개장터(쌍계사, 점심식사) → 악양 평사리(박경리 소설 ‘토지’ 무대) → 광양 청매실 농원 → 순천만 갈대 숲(김승옥 소설 ‘무진기행’ 무대) →저녁 식사 및 숙소 이동
■ 셋째 날(10/18, 월요일)
▷ 벌교(소설 ‘태백산맥’ 무대) →낙악읍성 → 선암사(소설가 조정래씨 태어난 절 :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 촬영지 → 화순 → 광주호 소쇄원 → 식영정 → 광주 공항(18:100 → 제주도 귀가
2. 답사 세부내용
○ 진뫼마을(1박)
- <섬진강 푸른물에 징검다리> 저자와의 대화
고향, 당신에게는 무엇입니까?
○ 섬진강을 따라 걷는 오지 길(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
-천담, 구담마을(정자나무에서 바라본 가을 섬진강), 장구목(요강바위)
○ 화개장터(점심식사)
-쌍계사
○ 토지 문학관(박경리 소설 ‘토지’ 무대)
-하동 악양 평사리
○ 광양 청매실 농원(홍쌍리, 신 지식인 전남 1호)
○ 순천만 갈대 숲(순천 2박)
○ 선암사, 벌교 ‘태백산맥’ 무대
○광주 소쇄원, 식영정(제주도 귀가)
※ 여행지 답사는 가능한 준수하되 사정에 따라 조정 될 수 있음
3.참조사항(여행지 입장료)
-운조루 : 2000/인
_쌍계사 : 3500/인(주차료 별도)
-낙악읍성 :1500/인(주차료 별도)
-선암사 :1500/인(주차료 별도)
* 답사 여행지 자료 준비(인터넷)
1.구례 운조루
2.화개장터, 쌍계사
3.악양 평사리(토지 문학관)
4.청매실 농원(홍쌍리)
5순천만 갈대숲
6.벌교 태백산맥
7.낙안읍성
8.선암사
9.소쇄원
10.식영정
11.섬진강(김용택)
12. 김도수
http://www.jeonlado.com/v2/ch01.html?&number=2870
http://www.jeonlado.com/v2/ch03.html?number=7129
13.요강바위와 구담마을
http://www.jeonlado.com/v2/ch02.html?&number=1453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no=26849&rel_no=13
*광주 공항에서 진뫼마을 오는 길
1안) 광주공항→ 광주 시내 경유 → 남해고속도로(서광주, 동광주 IC) → 88고속도로(담양,대구 방향) → 순창IC(광주에서 약 40~50분 소요) → 임실, 전주방향 진입→ 순창읍에서 약 15분 정도 달리면 ‘회문산 자연 휴양림’ 간판 나옴 → 휴양림 사거리에서 우회전(진뫼마을 표석 있음) → 5분 달리면 진뫼마을
2안) 광주공항 → 남해고속도로(서광주나 동광주 IC에서 진입) → 순천 방향 → 옥과IC →순창 → 임실, 전주방향 진입→ 순창읍에서 약 15분 정도 달리면 ‘회문산 자연 휴양림’ 간판 나옴 → 휴양림 사거리에서 우회전(진뫼마을 표석 있음) → 5분 달리면 진뫼마을
※ 두 방향 모두 거리는 비슷함. 혹 국도를 타도 되는데 광주-담양-순창-이하 동일.
섬진강 문학기행(10/16 ~ 10/18)
동그라미 / 04.11.06 15:54
일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에 이번 여행에 적극 참여키로 했다. 2박 3일 동안 집을 떠나는 여행에 시원찮게 대답해 주는 남편을 뒤로 하고, 제주에서 비행기를 탔다.
광주공항에 도착해 보니 김도수 선생님이 사모님과 함께 마중 나와 있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진뫼 마을로 향했다. 진뫼 마을 입구에 도착 하면서부터는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라는 책에서 보았던 벼락바위, 정자나무, 까마귀바위, 징검다리, 허락바위 등을 상상하며 찾아봤다.
김 선생님의 별장에 도착해 보니 그야말로 농촌풍경이다. 사람이 살지 않음으로 해서 쌓인 먼지를 닦아 내고, 점심준비로 북적대다가 앞산을 바라보니 내 눈길을 끄는 게 있다. 산비탈을 오르고 있는 감나무들. 가을산의 감빛은 내 눈을 유혹한다.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바쁘게 점심 준비하던 손을 놓고 따라 나선다. 개울건너 도착해 보니 손에 잡힐 듯 하던 감은 나무 위에 데롱데롱 매달린 채 나 보란 듯이 내려보고 있다. 같이 간 일행들과 합작해서 감나무를 흔들어 대니 서 너 개의 감이 떨어진다. 얼른 주워 한 입 깨물어 보니 많이 떫다. 떫은 감은 입에서 단맛도 많이 났다. 떫으면 어쩌랴! 하고 먹었는데 이게 내 목을 통과하지 않으려 한다. 목이 꽉 메여서 숨을 못 쉴 정도였다. 그 때 나무를 흔들던 일행이 홍시도 있다면서 땅에 떨어져 박살난 감을 내민다. 목이 메여 있던 참이라 얼른 홍시를 받아 먹고 메여 있던 목을 쓸어 내렸다. 그 자리에서 뱉어 버리지 않고 그걸 미련스럽게 삼키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길 내내 체한 듯이 속이 더부룩 했다. 제주에서는 가위를 사용해서 귤을 따는데 감을 따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온몸을 바쳐 딴 감은 열 개 정도는 됐다. 집에서 부지런히 식사준비 하는 이들을 위해서 누구의 감 밭 인지도 모르고 서리해 왔는데 김 선생님과 배 선생님은 그 감은 떫어서 못 먹는단다. 곶감은 만들어서 먹든가 아니면 가만히 두었다가 홍시가 되서 먹으면 겁나게 맛 난단다.
점심 먹고,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촬영장소였던 곳으로 갔다. 섬진강 굽이 길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데 장관이었다.
다음은 장군목으로 옮긴다 여기는 특이한 게 요강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서울까지 갔었다가 임자를 만나지 못하고 도로 돌아왔다고 한다. 30톤이나 되는 이 바위를 서울까지 옮긴 것이 놀랄 만한 일이다. 여자의 성기를 닮았다고도 하고, 어머니의 자궁을 닮았다고도 하는데, 둥그렇게 우물같이 파여 있는 바위였다. 우리가 갔을 때는 가물어서 물이 고여 있지 않았다. 그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아이가 없는 이들에게 신기하게도 아이가 생긴다는 전설이 담겨 있는 바위란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일행은 한 번씩 들어갔다 나왔다. 내 차례가 되어서 그 바위 안으로 들어가니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이다. 근데 나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밖에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나오지 못할 것 같다. 혼자 와서는 절대 들어가지 말아야 될 곳인 것 같다.
구미마을 구미리의 남원 양씨 보물이 있는 곳으로 갔다. 흙집에 창호지로 문을 바르고 살려면 구경하는 우리들은 눈요기이지만 생활하는 이들은 어떨까? 옛날집 그대로 보존하며 살고 있는 이들은 조상을 잘 섬기는 것 같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열매들이 탐스럽게 매달려 있는 은행나무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숙소인 김 선생님의 별장으로 돌아와 보니 해가 조금 남아있다. 감 밭으로 가서 감따기 체험을 원했다. 비탈진 곳이어서 감을 따러 올라가는데 등산을 하는 기분이다. 감을 따는 건 엄두도 못 내고 김 선생님이 감나무를 베어 줬다. 중간 중간에 가지치기를 하듯 감나무를 베어 주면 그 가지에 매달린 감을 따냈다. 근데 그 감을 따려면 그 곳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그것도 힘들었다. 감을 따서 모아두려고 조금만 움직여도 감이 데굴데굴 하고 밑으로 굴러 내린다. 그 경사진 곳을 김 선생님이나 배 선생님은 잘 걸어다니셨다. 감을 따면서 홍시감도 몇 개 만났다. 서로 돌아가며 두 개씩은 먹은 것 같다 . 감 밭에 직접가서 따 먹는 감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집으로 와서 저녁을 지어먹고, 김 선생님의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준비해 온 이들의 발표가 있고 문학에 대해 논했다.
이 별장에는 두 가지 불편한 게 있었다. 하나는 휴대폰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위가 온통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인지 휴대폰이 안테나가 잡히지 않는다. 겨우겨우 문자 메세지만 집에 있는 남편에게 보내고 휴대폰을 아예 꺼 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는 화장실이다. 불편하면 리 사무소에 있는 화장실을 쓰라고 해서 그 곳을 사용했다. 그 곳도 재래식인 건 마찬가지였다.
한밤중에 화장실을 가야하는데 리 사무소 있는데 까지 가기가 싫어서 별장에 있는 화장실로 가 봤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창고였다. 평평한 곳에 두 발을 얹을 수 있는 돌판 두 개 놓고 볼일을 본다. 그런 다음 쌀겨와 대변 본 것을 버무린 다음 두엄 위로 올린다. 김 선생님이 올 때 한 말이 생각났다. 시원하게 골프연습도 하게 된다고 했다. 이것들은 농사 지을 때 거름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 곳은 화장실 보다도 냄새가 나지 않았다. 대변 찌꺼기 들이 가득 쌓여 있는데도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게 신기하다. 두 번째 화장실을 갈 때는 볼일을 보면서 화장실 안을 살펴보니 창고같은 분위기다. 갈쿠리, 망태등 농사지을 때 사용하는 연장들이 걸려 있다.
다음날 아침을 지어먹고 10시쯤 집을 출발했다. 주말농장식으로 된 이 집을 떠나기 위해서 어제 준비해 온 반찬들이랑 밥솥들을 모두 정리했다. 고추장이며, 채소들까지 모두 챙기고 다닌다고 해서 떠날 준비를 마친다.
심청 축제하는 곳을 지나 곡성군 미니기차를 구경하러 갔다. 마침 기차가 출발 할 시간에 도착한 우리는 기차를 타고 섬진강 줄기 따라 청소년 수련관까지 갔다. 그 사이 김 선생님은 렌트카를 타고 기차를 따라왔는데 시속 20KM를 달리는 기차를 따라 오며 쉬엄쉬엄 차를 세워서 손을 흔들어 주는데 황홀한 기분이었다.
섬진강의 내력을 미니기차에서 설명해 줬다. 두꺼비 섬에 나루터 진 이란다. 두꺼비가 나루터에서 헤엄을 친다. 은혜 갚은 두꺼비이야기. 도깨비이야기. 소년 마천봉 이야기.
소년 마천봉이 고기를 많이 잡고 싶어서 어살을 놓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 이 궁리 저 궁리 하며 돌아다니던 중 눈에 띄는 돌을 발견하고는 그 돌을 집에 가지고 왔다. 그 날 밤 도깨비들이 찾아와서 '그 돌은 우리 대장님이니 제발 돌려 주세요'라고 부탁한다. 그 때 마천봉은 조건을 건다. 어살을 놓아서 고기를 잡고 싶은데 도와 달라고 하니 기꺼이 도깨비들이 도와줘서 고기들이 잘 잡혔다는 전설이다.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를 둘러보았는데 그 날은 장이 서는 날이 아니어서 장 구경은 하지 못하고 점심때가 되어서 식당에 들려서 옛날 임금님 수랏상에 올랐다는 참게탕을 먹었다.
평사리의 최 참판 댁도 들렀다. 아흔 아홉간이나 되는 이 집은 그야말로 대궐같은 집이었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최 참판 댁의 전답이었다는데, 땅도 넓었지만 집도 그 못지 않게 넓고 멋있었다. 그 날은 촬영이 없는 날이어서 주위를 둘러보고 오는 걸로 만족했다.
호남의 명산 조계산에 자리잡은 한국적인 절의 옛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한 천년의 고찰인 선암사로 향했다. 승선교를 지나 보고 삼인교를 지나 책에서만 본 해우소를 찾았다. 스님들이어서 감출 것이 없는가? 툭 트여 있는 뒷간을 보니 내가 민망했다. 볼일을 보는데 사람이 드나드는걸 무시할 수는 없을 텐데... 해우소 앞의 소나무도 찾았다. 그리고 이 곳은 태고종 본사라고 한다.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에 위치한 낙안읍성 민속마을에 도착했다. 성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한 바퀴 돌아 왔다.
빡빡한 일정에서도 순천만을 꼭 보여 주고 싶다면서 도착해 보니 너무 시간이 늦었다. 어두워서 차의 해드라이트로 순천만의 갈대숲을 비춰 보았다. 넓은 순천만을 상상해 보며 갈대의 속삭임도 들어보았다.
이틀간 좋은 곳을 안내해 주던 김 선생님은 월요일에 출근을 해야 하니까 순천에서 작별을 고했다.
삼일째
아홉시에 만나기로 한 렌트카 기사와의 약속이 있어서 부지런히 아침을 챙겨 먹었다. 정확하게 시간을 맞춘 기사와 인사를 하고 전날, 김선생님께서 그토록 보여 주고 싶어하던 순천만을 먼저 가 보자고 했다. 밤에는 바로 코앞만 보이던 갈대밭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이어져 있다. 가운데로는 배를 타고 볼 수 있도록 호수로 이어져 있었다. 배를 타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는 사정으로 아쉬움을 뒤로 했다.
운주사로 향한다. 순천에서 운주사 까지 거리는 2시간. 2시간 동안 차에서 달리는 거리의 풍경을 보는 것도 새삼스럽다. 마당바위를 받치고서 있는 불상들은 이 절이 천불천탑으로 유명하다는 말을 굳이 설명 해 주지 않아도 알 만큼 각양각색의 불상들이 보인다. 불상들은 세월의 흐름을 보여 주는 것 같이 비바람에 깎이고 패인 곳들이 많다. 하룻밤 하루사이에 완성인지 미완성인지 모를 와불. 그 와불을 모시고 있는 듯한 형상의 머슴부처. 밑으로 내려 오다 보면 북두칠성보양의 바위들을 볼 수 있다. 이 곳에서는 일행 중 한 명을 찾지 못해서 애 먹었었다. 휴대폰도 안되고, 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이리저리 찾아 다니다 보니까 차에 돌아와 있었다. 일단은 안심이 되면서 다음 행선지로 옮긴다.
성산별곡의 터전인 식영정. 개인소유의 정원 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규모의 소쇄원. 이 두 정원의 중간에 위치한 가사문학관을 둘러보았다. 학교 다닐 때도 읽지 못해서 버벅거리던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 사미인곡, 이 외에도 허난설헌의 규원가, 면앙정가, 관서별곡등 이름모를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어깨 너머로라도 조금 배운 게 있었다고 서각으로 돼 있는 그림과 글들도 있어서 다시 한 번 더 되돌아보게 했다.
5.18묘지를 들렸다. 어린 아이들의 영정들과 10대. 20대들의 영정들을 보는 순간 목이 메였다. 그네들이 무엇 때문에 영정이 되어서 우리를 눈물나게 만드는가 하고 아쉬워 해 본다.
산방독서회에서 이번 문학기행을 계획 하느라고 노심초사 열과 정성을 아끼지 않으신 회장님과 총무님, 배 선생님, 도서관 관계자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은 있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던 나에게 좋은 사람들과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영광을 줘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