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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an 27. 2021

경운기

- 강산 시인의 꿈삶글 6





경운기

- 강산 시인의 꿈삶글 6





" 들판에서는 늘 보리타작 하는 소리 들린다

들판에는 들짐승 같은 경운기 한 마리 산다 "


지게에서 손수레

손수레에서 경운기

경운기에서 트랙터

트랙터에서 이앙기

세상은 자꾸만 변한다

쟁기는 경운기에 밀려나고

경운기도 이제는

트랙터에 밀려나고 있다

그래도

내 마음 속에 경운기 한 마리 있다

나는 이제 뿌리까지 쟁기질을 한다

세상에도 경운기 한 마리 필요하다

세상을 갈아서 엎는 경운기 한 마리

이제 막 우리들 곁으로 돌아서 온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본다. <일포스티노>를 본다. <변신>을 읽다가 잠이 든다. 나는 요즘 꿈을 많이 꾼다. 내가 꾸는 꿈은 나의 삶이다. 그리하여 나는 꿈과 삶을 함께 쓴다.    


그레고르 잠자야, 이제 잠에서 깨어나라.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는 갑충이 아닙니다. 저는 바퀴가 없는 바퀴벌레입니다. 너는 바퀴가 없는데 어찌하여 바퀴벌레라고 하느냐? 요즘 사람들은 바퀴를 굴리지 않고 바퀴를 타고 다니며 삽니다. 저는 바퀴가 아니라 나비입니다. 저는 카프카를 모르는 나비입니다. 카프카는 몰라도 까마귀는 알지 않느냐? 아닙니다. 까마귀 본 지 오래 되었습니다. 까치들은 많은데 까마귀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한라산 윗세오름까지 올라가야만 볼 수 있습니다. 나비야, 이제 그만 일어나라. 아닙니다. 저는 나비가 아니고 고양이입니다. 성진아, 이제 그만 꿈속에서 나와 인간의 삶을 살아라. 아닙니다. 석가모니부처님, 저는 아직 인간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만 꿈속에서 걸어 나와 눈을 뜰 시간이다. 알 수 없는 따뜻한 손길에 눈을 떠보니 석가모니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께서 이제 막 떠나시려고 준비를 하고 계신다. 나는 부랴부랴 옷자락을 붙들고 큰 절을 올리며 간청한다. 저는 하늘을 찌르는 히말라야산맥입니다. 저의 하늘이 되어주십시오. 저는 폐쇄공포증 환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버스를 타도 의자에 앉지 못하고 버스 지붕 위에 엎드려 불안하게 가야만 합니다. 부처님께서 저의 하늘이 되어 저의 지붕이 되어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달리는 버스 지붕 위에서도 편안해질 것 같습니다. 허허허 웃으시며 떠나는 부처님의 뒷모습에 아들의 모습이 언뜻 보인다.     


나는 요즘 잠을 많이 잔다. 잠을 많이 자면 꿈을 많이 꾼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꿈속에서 많이 일어난다. 나는 내가 꾸는 꿈도 나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꾸는 꿈들이 오히려 내가 쓰는 시보다 더 좋은 시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쓰는 소설보다 오히려 더 좋은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꾸는 꿈들이 오히려 나의 삶보다 더욱 현실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내가 꾼 꿈들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그 많은 꿈들을 모두 기록할 수는 없어도 가끔이라도 기록해보려고 한다. 특히, 꿈을 깬 다음에 오래도록 생각나는 꿈들을 위주로 기록해보려고 한다. 내가 꾼 꿈들과 내가 사는 모습을 함께 기록하면서 진짜 나의 참 모습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렇게라도 하여 나는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아보고 싶다. 요즘 세상에는 글들이 너무 많다. 너무 비슷한 글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오직 나만 아는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모내기 하는 모습을 잘 볼 수 없다. 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논이 있어도 모내기를 하지 않고 직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직접 씨를 뿌려서 벼농사를 짓는 경우에는 물이 부족한 경우에 주로 하는 농사법이다. 모내기를 하지 않고 직접 파종하여 농사를 지으면 모내기를 하는 농법에 비하여 좀 더 쉽지만 그만큼 소출이 적은 단점이 있다. 내가 어릴 적에 우리 집에는 모내기 할 논이 없었다. 그래서 아주 작은 밭에 볍씨를 뿌려서 벼농사를 짓기도 하였다. 우리 가족은 시골에 살면서도 논이 없었다. 밭도 없었다. 먼 거리에 있는 산밭을 일구어 밭농사를 조금 지었을 뿐이다. 심씨 문중의 심산을 개간하여 ‘띠야굴’이라는 곳에서 밭농사를 지었는데 일 년에 한 번씩 그 심산 주인에게 ‘밭수’라는 이름으로 일정량의 곡물을 주어야만 했다. 그 밭수가 아까워서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의 밭수를 대신 받아주는 일을 하여 우리네 밭수는 면제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반월산 아래 할아버지 산소가 생기면서 작은 밭이 만들어졌는데 그곳을 ‘댓등밭’ 이라고 불렀다. 그리하여 나는 논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하다못해 집안에 감나무라도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논뿐만 아니라 우리 집에는 감나무 하나 심을 수 있는 마당도 없었다. 참으로 가난한 시절이었다. 지금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 이지만 그나마 감나무도 심고 살구나무도 심을 수 있는 밭이 있어서 참 좋다.      


나는 가끔 모내기 하는 사진을 꺼내서 본다. 한쪽에서는 소로 써레질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모를 심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다. 다랑이 논 하나 갖고 싶었던 내 어린 시절의 꿈을 꺼내서 본다. 어머니께서 다른 사람 논에 모내기 하러 가시면 점심때쯤 꼭 나를 부르시곤 하셨다. 새참을 얻어서 먹이려는 어머니의 사랑이 깃든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우리 집 형편을 잘 아는 주인집 아주머니도 반갑게 맞이하며 아낌없이 밥을 퍼 주셨다. 그러면 나는 밥값을 한다고 못줄도 잡아주고 못단도 던져주고 때로는 모를 함께 심어주기도 하였다. 그럴 때 마다 다리에 거머리가 붙어서 내 피를 빨아먹곤 하였다. 나는 거머리가 붙은 지도 모르고 한참을 있다가 거머리를 발견하곤 하였다. 그러면 나는 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혹시 내가 발견하지 못한 거머리가 핏줄 속으로 들어가 내 몸 속에서 평생 살아가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하며 내 핏줄을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모내기 하는 풍경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대부분 기계를 이용하여 모내기를 할 것이다. 그래도 내 마음 속에는 여전히 모내기를 떠올리면 소와 어머니와 거머리가 함께 따라 나온다.     


오늘 밤에도 일찍 잠이 들었다. 기이한 꿈을 꾸고 일찍 일어났다. 밤하늘을 보며 생각한다. 중천에 떠 있는 달도 생각에 잠겨 있다. 다시 한 번 생각하니 아들이 부처님으로 보인다. 아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달을 보며 생각하니 부처님이 보인다. 아들이 보인다. 내가 보인다. 이렇게 문득 깨닫고 다시 보니 저 달도 나처럼 며칠을 굶었다는 생각이 든다. 배가 홀쭉하다. 배가 고프니 오히려 마음이 부르다. 달의 문도 환하게 보인다. 달의 뒷모습까지 환하게 보인다. 저 달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의 길도 환하게 보일 것만 같다. 그렇게 오래도록 배고픈 달을 바라보니 나의 문도 서서히 열린다. 그 문 틈 사이로 나의 새로운 길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이제 비로소 나의 길을 찾아서 걸어가기 시작한다. 길을 떠나기 전에 아들에게 긴 편지를 쓴다. 아들과 나는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좀 더 깊이 알고 보면 사실은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달을 보니 달이 보인다. 달을 보니 거울이 보인다. 달을 보니 해가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는 달이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지 않는 해도 보인다. 달을 보니 내가 보인다. 달을 보니 네가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는 내가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지 않는 네가 보인다. 달을 보니 문이 보인다. 달을 보니 나의 문이 보인다. 달을 보니 너의 문이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는 것들이 보인다. 달을 보니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나는 이렇게 달에 도착한다. 나는 이렇게 문에 도달한다. 나는 이렇게 나에게 도착한다. 나는 이렇게 너에게 도달한다. 나는 이렇게 달이 되고 거울이 되고 해가 된다. 나는 이렇게 내가 되고 네가 되고 또 하나의 길이 된다. 너는 아마도 나보다 더 배가 고플 것이다. 너는 아마도 저 달처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너는 아직도 꿈도 없이 잠들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모내기 하는 모습을 잘 볼 수 없어도 보리밭은 가끔 볼 수 있다. 가파도 청보리밭과 내도 알작지 곁의 보리밭이 나는 참 좋다. 그리고 내가 사는 화순을 비롯하여 많은 곳에서 보리밭을 볼 수 있다. 보리밭도 많고 밀밭도 많다. 그리고 특히 맥주보리밭이 많다. 가파도 청보리 축제가 유명하다. 가파도에서 제주도 본섬을 바라보는 감회도 새롭고 아름답다. 하지만 나는 가파도에는 자주 가지 못한다. 내도 알작지와 내도 보리밭은 나의 주요 산책코스여서 자주 가는 편이다. 보리밭을 보면 나는 마냥 기쁘거나 아름다운 추억만을 떠올리지 못한다. 보리밭에는 나의 어린 시절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보리는 가지런한 벼와 달리 마구 뿌려져서 빽빽하게 자란다. 이모작을 하는 논에서는 벼를 수확하고 늦가을에 보리를 파종한다. 보리는 물이 없는 밭에서도 경작할 수 있다. 겨울에는 어린 보리들이 추위를 견디며 더디게 자란다. 자란다기 보다는 차라리 견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어린 보리 싹들은 서로 몸을 비벼대며 추운 겨울밤을 뜬눈으로 견뎌야만 한다. 가난한 흥부의 자식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잠을 청하듯 그렇게 힘겨운 밤을 견디며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겨울을 넘겨야만 한다. 날씨가 추운 관계로 벌레들도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 따로 농약을 뿌리지 않아도 병충해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 좀 살아보니 사람도 그렇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도 가난을 알고 추운 겨울을 온몸으로 겪어본 사람들이 더욱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봄이 되어 날씨가 풀리면 보리밭 밟는 일을 많이 했었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잔디밭도 그렇고 다른 작물들을 밟으면 혼이 나는데 왜 보리밭은 일부러 밟아주는 것일까? 농촌봉사활동 한다고 전교생이 몰려가서 보리밭을 밟아주기도 하고 심지어 크고 무거운 쇠바퀴를 굴려 보리밭을 밟아주기도 하였다. 겨우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들뜬 뿌리를 다시 땅에 밀착시켜서 보리 뿌리의 활착을 돕기 위해서 밟아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도 이렇게 가끔 자신의 들뜬 마음을 밟아줄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 요즘이다.




                                                                                                           

내도 알작지에서 이호동까지 해안도로가 뚫렸다. 요즘도 공사중이다. 아직 자동차는 다닐 수 없고 걸어서만 다닐 수 있다. 길 확장공사 때문에 알작지의 몽돌들이 길 밑에 많이 묻혔다. 해안선 또한 단조롭게 변했다. 언제까지 주민들에게 불편함을 감수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으리라. 이 길이 뚫리기 전에는 주위에  있는 마을들에 비하여 많이 낙후된 것이 사실이었다. 길이 좁아서 자동차가 들어가지 못하니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나는 옛날 모습이 더 좋았다. 하지만 주민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필요도 있으리라. 무엇보다도 세월에 따른 변화와 조화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옛날 것들이 더 좋다. 천성이 촌스러워서 현대적인 것들보다 옛스러운 것들이 더 좋은 촌놈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모든 것들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나의 길을 조용히 만들어 갈 뿐이다. 물론 자연은 훼손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 특히 요즘 제주도 자연이 많이 파괴되고 있다. 유입 인구의 급증으로 제주시는 거의 서울을 닮아간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머리를 맞대고 좋은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그렇다고 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다. 비무장지대의 자연보전을 위하여 통일을 하지 말자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밝은 눈이 필요하고 현명한 정책들이 요구된다. 나는 내가 살기 위하여 내 몸까지 뜯어고친 사람이다. 심장에 칼을 들이대고 급기야 심장 안에 금속판막까지 설치한 기계인간이다. 이런 내가 어찌 무작정 개발을 반대 할 수 있겠는가?



고양이들도 요즘에는 세월이 변해서 쥐를 잘 잡지 않는다. 아니, 쥐를 잡고 싶어도 예전처럼 쥐가 많지 않다. 사람들과 친해지거나 사람들이 버린 음식으로 연명하는 고양이들이 많다.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바뀌고 가옥 구조가 바뀌면서 쥐가 없어졌으므로 어쩔 수 없이 생존전략을 바꾼 것이리라. 짐승들도 그러는데 하물며 사람들이야 당연히 변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해안도로가 뚫려서 가장 좋은 점은 이호해수욕장과 도두항까지 산책하기 좋아졌다는 것이다. 이호해수욕장은 특히 겨울에도 파도타기 좋은 곳이다. 시내에서 가장 가까울 뿐만 아니라 파도타기에 적당한 파도가 언제나 일렁이고 있다. 나는 아직 회복이 덜 되어서 직접 타지는 못하지만 보는 것만으로 시원하고 속까지 다 후련해지는 느낌이다. 파도를 탄다는 것은 세상을 탄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다가 있어야만 한다. 바다와 파도는 어떤 관계일까? 파도는 바다의 호흡이다. 파도는 바다의 숨소리다. 바다가 얼마나 열심히 호흡을 하는지 알아야만 한다. 바다는 살기 위해서 한 시도 호흡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쓰레기를 토해내고 빛나는 햇빛을 빨아들인다. 요즘은 주체하지 못하게  많아진 괭생이모자반까지 토해내느라 참 바쁘다. 제주도의 유명한 음식인 몸국 재료인 모자반과 비슷한데 괭생이모자반은 골칫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 또한 하루 빨리 좋은 방안을 찾아야만 하리라. 



파도는 모래를 안아주기도 하고 쓰다듬어주기도 한다. 파도는 모래를 때리기도 하고 눈물 나게도 한다. 뺨을 후려치기도 하고 등을 두드리며 달래주기도 한다. 먼 훗날 저 모래들은 오늘의 손길을 기억하리라. 더욱 야위어 날개를 달고 먼지가 되기도 하리라. 눈물이 마르면 그리움의 집을 짓거나 세월의 강을 건너는 다리를 놓을 것이다. 그 다리 위에는 여전히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별이 반짝일 것이다.



이호동과 도두동 사이에 붉은왕돌할망당이 있다. 본향당에는 팽나무와 보리수 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오색천이 바람에 흔들리며 신비로운 기운을 내뿜는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제주의 맨 얼굴일 것이다. 제주도는 그야말로 신들의 땅이 아니었겠는가? 지금도 1만 8천 신들이 거주하는 거대한 신전이 아니겠는가? 이 아름다운 신화의 땅에서 우리들이 가야할 길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신과 인간이 함께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 것인가? 나는 그 아름답고 의미있는 길을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제주시에 와야만 한다. 내 몸 속의 피를 뽑아서 피의 농도를 측정하고 약을 조절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반 년에 한 번씩 반드시 서울에 가야만 한다. 내가 수술받은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고 약도 받아와야만 한다. 덕분에 나는 정기적으로 제주시 구경도 하고 서울 구경도 할 수 있다. 


나는 1990년 6월 8일에 1차 심장수술을 받았고 2017년 12월 22일에 2차 심장수술을 받았다. 선천성 심장병 환자로 태어났던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기적일 것이다. 내가 서울대학교병원 안혁 교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어린시절 30살까지 만이라도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하지만 나는 참으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지금껏 살고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고 너무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우선 나의 심장 속에 조직판막이 아니라 금속판막이 들어있음을 밝힌다.





밤새도록 별빛을 만들고 돌아온다. 쉬지 못하고 이어도공화국에 집을 짓는다. 저물녘에 제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간다. 길이 막힌다. 평화로 끝에서 갑자기 통증이 온다. 엊그제 위내시경 검사를 하며, 조직검사 한다고 떼어 낸 자리 같기도 하고, 금속판막으로 교체한 대동맥 판막 자리 같기도 하다. 겁이 덜컥 난다. 심장에 통증이 오면 언제라도 즉시 큰 병원 응급실로 입원하라는 주의사항이 떠오른다. 지체 없이 개복수술을 다시 하여 삽입된 금속판막을 교체해야 살 수 있다는 말을 했었다. 그러니까 나는 어렵게 생명을 연장한 대신 내 몸 속에 시한폭탄을 품고 사는 것이다.


장례식장에 조문 하러 갔다가 잘못되어 도리어 조문을 받게 되는 불상사는 없어야 하겠기에, 장례식장 가는 것을 포기 하고 외도로 간다. 회복기를 보냈던 월대천변으로 간다. 내가 다시 태어난 부활의 동굴로 간다. 거의 기어서 계단을 올라가 방에 편히 눕는다. 천천히 통증이 가라앉는다. 한 숨 자고 일어나니 한결 가볍다. 그런대로 견딜만하여 그렇게 하룻밤을 지낸다. 다음날에도 약간의 통증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오후에 병원에 간다. 우선 내가 다니는 심장전문 병원에 간다. 혹시, 위내시경 검사 때문에 3일간 끊었던 와파린 때문이 아닐까 의심되어 혈액응고검사를 받는다. INR 수치는 2.09로 양호하다. 의사는 청진기로 심장소리를 들어보고 심장상태는 양호하다고 말한다. 그래도 천만 다행이다. 염려했던 심장의 이상이 아니어서 그래도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위내시경 검사 결과 확인은 월요일에 예약되어 있으니 그때까지 참아보기로 한다. 심장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위에 문제가 생긴 듯하다. 멀쩡하던 위가 내시경 검사 하고 나니 오히려 문제가 생기다니. 통증이 올 때는 너무 심하게 쑤셔댄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그래도 괜찮은데 움직이면 엄청 아프다. 이런 아픔은 처음이다. 혹시 위에 구멍이 생긴 것은 아닐까 의심스럽다. 아니면 위 안에 상처가 생겨서 출혈이 있을 수도 있으리라. 항응고제 와파린을 먹는 나는 작은 상처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만 한다. 멍이 들어도 면밀히 관찰하여야만 한다. 그래도 나는 심장 이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을 만 하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많은 것들을 다시 공부한다.


느닷없이 찾아온 통증 때문에, 갑자기 받은 경고장 때문에 나는 나를 다시 한 번 뒤돌아볼 수 있었다. 가끔은 경고장을 받을 필요도 있겠다. 와파린을 깜박 잊고 먹지 않거나 복용량이 적으면 피가 진해져서 피떡이 생긴다. 그러면 그 혈전이 뇌의 핏줄을 막아 뇌졸중으로 쓰러질 확률이 많아진다. 기계판막은 조직판막에 비하여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구조적 특성 때문에 혈전이 생기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래서 남은 일생동안 항응고제인 와파린을 먹어야만 한다. 그런데 문제는 와파린을 너무 많이 먹으면 피가 너무 묽어져서 지혈이 되지 않는다. 나는 이제 남은 삶을 INR 수치 2~3을 유지해야만 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의 수치가 1이라고 하니 나는 이제 두 배에서 세 배정도로 더 묽게 살아야만 한다.

 





월대천변을 걸을때마다 나는 저 초승달 모양의 달월(月) 글씨가 마음에 든다. 저 글씨 같은 사람이 생각난다. 그 좋은 사람은 어쩌면 나의 씨앗일 것이다. 언젠가 내 마음 속에서 새싹으로 돋아날 것이다. 그리하여 끝끝내 죽어서라도 나란히 서서 자라는 나무가 되리라. 바람이 불면 손도 잡아보는 나무가 되리라. 그렇게 손을 잡다보면 뿌리부터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


오늘도 나는 월대천에서 출발하여 알작지를 지나 이호해수욕장을 지나 도두동 도두항 요트 선착장까지 다녀오며 자연과 신과 인간에 대하여 생각한다. 돌아오는 길에는 보리밭에서 한라산과 바다를 보면서 한라산 같은 사람을 생각한다. 바다 같은 사람을 생각한다. 그리고 보리밭 같은 푸른 가슴을 생각한다. 또한 아직은 잘 알지 못하고 익숙하지 않은 이 브런치 글쓰기에 대하여 생각한다.






눈 먼 사랑 



바람처럼 지나간 사람이었다

딱 한 번 보았을 뿐인데

그는 그녀를 잊을  수 없었다

그는 그녀를 찾아 길  떠났다

바람처럼 흘러간 사랑이었다

그녀에게 그의 소식이 들렸다

그녀도 그를 찾아 길 나섰다

딱 한 번 만났을 뿐인데

바람처럼 스며든 인연 이었다

그녀가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는 이제 그녀를 볼 수 없었다

바람처럼 안아보는 발자국 소리 


이것은 꿈이더냐 생시이더냐 


바람처럼 지나갈 사람이었나

언젠가 몇 번 보았을 뿐인데

나는 너를 잊을 수가 없구나

나는 너를 찾을 수도 없구나

바람처럼 흘러갈 사랑이었나

너도 나의 소식은 듣고 있을까

너도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바람처럼 스며든 인연 있을까

너도 나처럼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 서로 만날 수는 없어도

우리 함께 안아볼 수 있을까

우리  함께 알아볼 수 있을까

바람에 실려오는 부드러운 향기

바람결에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꿈속에서 만나보는 너의 목소리

언젠가 언젠가는 좋은날 있을까




경운기



들판에서는 늘 보리타작하는 소리가 들린다

정미소 주인이셨던 아버지가

벨트에 물려 끌려가던 날부터 축이 헛도는

천장에서 다시 떨어지듯 우리 식구들은

빈 들판으로 내쫓겼다 발동기 같은 큰 형은

발동기를 뜯어 짊어지고 논둑길을 넘어다녔다

타맥기도 부서진 아버지 갈비뼈처럼 풀어

옮겨 맞추곤 했다 경운기들이

손쉽게 해치우고 들어가 쉬는 동안에도 우리는

들판에서 밤늦도록 이슬에 젖어야 했다

카바이드 불빛 아래서 카바이드를 녹이는 물처럼

우리식구들의 가슴은 애타게 들끓었다

불이 꺼진 뒤에도

카바이드 깡통 속에는 몸살나게 아름다운

사랑이 숨쉬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이면

보리 한 됫박 퍼내어 바꿔온 복숭아를

보리 창고에서 나눠먹곤 했다 큰 형 몸에서는

늘 기름 냄새가 났고 바뀐 논에 말뚝을 박을 때마다

우리들의 들판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함부로

골병들어 거덜 난 보릿대를 곁에 쌓는 작은 형

보리무덤에 검불을 쓸어내는 누이는

갈퀴와 고무래처럼 한없이 슬픔을 후볐다

가마니 한 장 크기의 그늘 속에서 조용히

기어 다니다 잠들곤 하던 나는 자연 숙제로 기르던

거꾸로 매달린 형의 무

그 속에서 싹트는 콩 거꾸로

자라던 허약한 순만 바라보며 그렇게 자랐다

그리고 많은 날들 다음으로 오는 오늘

털털털 탈탈탈 털털털털털 탈탈탈탈탈

들판을 온통 뒤집어 엎어버리던 경운기가

골목마다 들쑤신다

추곡수매 공판날 줄서가는 아침

하곡수매처럼 저 멀리 노인들이 손수레 밀고

끌고 오신다 빈 들판에 바람이 껍질을 벗고

지나간다 그 길가로 바람의 껍질이 차갑게 쌓여

있다 월경리 사람들의 깊은 사랑을 실어 나르는

경운기는 힘 센 들짐승이다 그러한 아침

나는 다른 계절 속으로 떠나 눈길에 경운기

발자국을 만들며 고향으로 가는 길을 걸어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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