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산 시인의 꿈삶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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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시'는 일명 '똥돼지간'으로서 '돝통시'라고도 하는데 측간 아래쪽의 분뇨 저장공간에 돼지우리를 둔 뒷간이다. 오늘날 제주도나 지리산골 주변의 오지 마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돝통시는 사람들에겐 배설의 공간이지만 돼지들에겐 즉석요리를 시식하는 훌륭한 식당(?)이다.
사람들이 미처 소화하지 못한 음식찌끼를 돼지가 마저 먹고 맛좋은 똥돼지로 변해 사람들에게 훌륭한 고기를 선사하니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자원재활용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 정육점에서 파는 백돼지의 맛과 이 똥돼지의 맛은 비할 수 없다. 우리나라 토종의 흑돼지 중에서도 통시에서 기름기 없는 사람 똥을 먹고 자라는 똥돼지야말로 비계도 거의 없고 돼지 특유의 누린내도 나지 않으니 육질면에선 단연 최고로 손꼽힌다. 더구나 앞서 소개한 똥개처럼 외국산 재료로 만든 사료와 달리 우리네 사람들의 똥을 먹기 때문에 우리의 식단과 신체 구조에 맞는 맞춤형 돼지고기라 할 수 있다.
돝통시의 기본 구조는 2층 누각 구조로서 아래층엔 돼지우리가 있고, 위층에 뒷간이 있어 계단이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게 되어 있다. 통시 안에 들어가면 안에는 기다란 장대가 있어 볼일을 볼 때 돼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배고픈 돼지가 돌진하는 사태(?)도 막고 인분 세례를 맞은 돼지가 몸이라도 흔들면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이렇듯 뒷간의 형태와 분뇨처리 방식이 독특한 돝통시가 제주도나 지리산 같은 깊은 산골에 주로 분포하는 지역적 연원은 무엇일까?
인류가 농사를 지으며 정착생활을 하기 이전의 주거형태는 동굴 아니면 나무 위였는데, 볼일을 보는 곳도 자연스럽게 나무 위였다고 한다. 인류의 시조라 할 원숭이나 침팬지의 경우에도 나무 위를 주거지로 삼으면서 대소변을 나무 위에서 보았다. 채집과 수렵생활을 했던 당시의 인간들은 동굴이나 나무 위에서 살면서 짐승들의 습격으로부터 자기 몸을 보호했다. 이런 상황에서 뒤를 보려면 재빠르게 보거나 나무 위 같은 은신처에서 보는 방법밖엔 없었을 것이다. 볼일 볼 동안에 짐승이나 독사, 독충들이 공격하면 꼼짝없이 당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파푸아뉴기니의 오지에 사는 종족들은 걸어다니면서 대소변을 보는데 그 이유가 수목이 우거진 정글에서 볼일을 보자면 그 냄새를 맡고 독충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로 볼 때 짐승과 독사, 독충들로부터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가 제일 먼저 택한 측간은 '나무 위'가 가장 유력하다. 하지만 인간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정착생활을 하게 되자 고정된 주거지에서 분뇨를 처리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분뇨처리 공간을 지을 때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우선 짐승이나 벌레, 외부 침입자들로부터 신변을 보호하고 주변을 감시할 수 있는 망루 구조여야 한다는 점, 둘째로는 분뇨의 처리가 용이해야 하는 점이 아마도 제일 먼저 고려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착생활을 하는 농경민족 중에서 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주거지에 치명적인 해를 주는 독사나 독충에 절대적으로 강한 돼지를 아래층에 키우고 위층은 주거와 뒷간으로 구성되는 마루 구조의 살림집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겨울이 돌아오는 지방의 사람들은 마루 구조와 난방집을 같이 두되 뒷간을 마루 구조로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을 해보는 것은 실제로 집(宀) 내부에 돼지(豕)를 키우는 것이 집[家]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경우에는 뱀이 많아 그 피해가 많았다. 제주도의 가시리 일대에는 아직도 뱀 신당을 모실 정도로 뱀이 많은데, 뱀에게 노여움을 안 사야 뱀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독사에게 가장 강한 짐승은 바로 돼지였다. 돼지는 지방살이 두꺼워 어떠한 독도 혈관을 뚫지 못하기에 독사에게 가장 무서운 천적이었고 또한 독사는 돼지에게 좋은 영양식이었다. 그래서 돼지를 집집마다 키워 뱀의 가택 침입을 막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토양이 매우 척박하여 돼지에게 먹일 사료가 충분치 않았던 제주도였기에 인분을 돼지사료로 삼았던 것이다.
제주도의 통시 구조는 대부분 누각 구조가 아닌 수평 구조로 되어 있다. 즉 부출 밑이 돼지우리와 연결되어 있는데 부출의 높이는 돼지가 머리를 들고 들어와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로 되어 있다. 보통 다른 지방의 경우 부출을 나무로 까는 것이 일반적이나 제주의 경우에는 '팡돌'이라고 하는 넓적하고 긴 돌멩이 두 장을 부출로 깔아놓고 쓴다. 따라서 제주의 돝통시에서는 팡돌이 '부출' 겸 '부춛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팡돌 두 장이 놓인 변소와 돼지막(돼지우리)이 수평적으로 연결된 구조가 제주의 돝통시다.
제주 통시의 위치는 주로 바깥 돌담에 덧붙여 놓는데 사람 키 정도를 가릴 만큼 돌담을 두르고 한켠에는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지붕을 덮어주었다. 뒷간은 지대가 약간 높은 곳에 팡돌 두 장을 깔아놓았는데 대부분 지붕이 없다. 대체로 통시의 모양은 열쇠구멍 모양처럼 둥그런 돼지막 한쪽 귀퉁이에 뒷간이 쑥 들어가 있는데, 칸막이가 없어 돼지는 팡돌 밑과 돼지막을 자유롭게 왔다갔다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① 왼쪽 앞에 옆으로 가지런히 놓인 팡돌 위에 앉아 뒤를 본다. 그 뒤로 보이는 곳이 돼지들이 잠도 자고 비도 피할 수 있는 돼지막이다.
② 통시의 마당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는 똥돼지들. 이들에겐 집안 식구들의 인분만으론 먹잇감이 부족하므로 따로 사료를 주는 구유통이 있어야 한다.
역시 돝통시가 많은 지리산 자락의 산골마을은 어떠한가? 깊은 산골에다 수풀이 우거진 이곳에선 측간이 짐승과 벌레로부터 안전한 누각 방식이 선호되었다. 특히 지리산골같이 깊은 산골이나 뱀이 많은 지역은 돼지를 많이 키웠다. 산골마을의 경우 경작지가 부족하여 돼지에게 먹일 사료도 마땅치 않으니 인분으로 키우는 똥돼지가 제격이다.
물론 인분만으로는 사료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음식찌꺼기나 농산물찌꺼기를 함께 주는데, 인분을 직접 퇴비로 쓰지는 못하지만 돼지우리 바닥에 짚이나 마른풀을 깔아두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인분이나 돼지똥, 채소찌꺼기 등이 돼지발에 밟히면서 자연스레 함께 섞여 두엄이 된다. 이런 두엄을 '쇠두엄[廐肥]'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거두어내어 두엄간에 쌓아두면 양질의 천연퇴비가 되는 것이다.
지리산의 통시 구조는 두 가지 형태로 나뉘어 있다. 대체로 산밑의 평지마을에서는 평지에 2층으로 짓고 사다리를 놓아 오르내리는 식이 많고, 산골의 경사진 곳은 해우소식으로 비탈 위에 놓아 전면 1층, 후면 2층의 구조로 지어져 있다.
똥돼지간은 전국적으로 거의 사라졌는데, 지리산 인근 마을에는 아직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경남 산청군 구평리의 뒷간이나 신등면 평지리의 통시는 평지에 위치한 까닭에 돌계단이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게 해놓았다. 구평리의 통시는 돼지우리 전체를 2층 누각으로 올렸으며, 평지리의 통시는 돼지우리 한켠에만 다락식으로 올렸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의 똥돼지간은 경사가 급한 산골마을이라 해우소식으로 지었다.
① 왼쪽 돌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2층 누각형 구조. 아래쪽이 돼지우리다.
② 2층 안이 넓어 창고를 겸하고 있으며 한켠에 부출이 깔려 있다.
③ 우리 안에 똥돼지가 식사를 마치고 기분좋은 듯 낮잠을 즐기고 있다.
① 왼쪽의 나무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통시의 좌우쪽에 다른 건물칸이 붙어 있어 채광과 통풍을 위해 돼지우리 전체에 부출을 덮지 않고 한켠에만 설치하여 다락처럼 꾸몄다.
② 부출 사이로 똥돼지들이 보인다. 사람이 2층으로 오르면 뭐 먹을 게 안 떨어지나 하고 돼지들이 부출 밑으로 모여든다.
③ 똥을 잘 먹는 똥돼지는 우리나라 토종 돼지인 흑돼지다. 몸집이 작고 빨리 안 자라 거의 멸종되어가다가 최근 똥돼지의 육질이 서양 두룩돼지와 비할 바 아니라는 것이 사람들의 입맛을 통해 증명되면서 조금씩 수요가 늘고 있다.
① 지리산 칠선계곡이 마주 보이는 산자락에 구양리 마을이 있다. 이 마을 뒷간은 대부분이 통시다.
② 비록 뒷간의 외벽은 시멘트로 발라 개량화시켰지만 내부구조는 옛날식 통시다. 1층은 돼지우리이고 2층의 한켠은 부출, 한켠은 창고로 만들어 쓰고 있다.
③ 부출바닥에 타일을 입히고 하얀 타일변기를 달아 나름대로 깔끔하게 내부 시설을 꾸미려 했다.
④ 부출 가운데 변기구멍에 돼지 얼굴이 보인다. 역시 떨어질 먹이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⑤ 아래층 돼지우리의 내부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