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달밤의 거리
4.2 달밤의 거리
달밤의 거리에 달이 보이지 않는다
달밤의 거리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보이지 않지만 달은 있었다
당신 보이지 않아도 가슴에 있듯이
달도 언제나 저 하늘에 있을 것이다
당신이 언제나 내 가슴속에 있듯이
달도 해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있다
달도 해도 언제나 하늘 가슴에 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밤에는 달도
홀로 해를 생각하며 땅콩을 까리라
땅콩처럼 좁은 방에서 입을 맞추고
아무도 모르게 사랑을 볶고 있는데
벌교꼬막 무침을 잘한다는 소화가
정하섭을 가슴 가득 품어주는 동안
나는 홀로 생땅콩을 까며 김범우를
생각한다 염상진, 염상구 생각한다
달이 보이지 않아도 달은 떠오르고
태백산맥은 하늘에도 흘러가고 있다
착하지 않아도 돼.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너의 절망을 말해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투명한 조약돌 같은 비가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가지.
초원들과 울창한 나무들.
산들과 강들 위로.
그러는 동안에도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을 높이 날아
다시 집으로 향하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지.
저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흥겨운 소리로 너에게 소리치지-
세상 만물이 이룬 가족 안에 네가 있음을
거듭거듭 알려주지.
매사추세츠주 프로빈스타운의 숲과 바닷가에서 메리 올리버는 은자의 삶을 평생 유지했다.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를 노래한 노르웨이의 시인 울라브 하우게도 그러했고, 우리나라의 이문길 시인도 그러했다. 그들은 자연과 신체를 같은 공명통이라고 생각한다. 울라브 하우게와 이문길 시인은 과수원을 경작했다는 것과 이름을 알리는 데 전혀 관심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 사람은 겸손한 관찰자이다. 자연에 대한 경이와 경외를 바탕으로 자신과 주변에 대하여 섬세한 시를 썼다. 그들의 시는 자연의 귓속말이자 번안이다. 처음 주술을 통해서 자연과 소통했던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신탁과 다를 바 없다. 은자들이 보여주는 자연의 바탕은 연대와 행복이다.
기러기
당신은/ 살아가면서/ 이보다 더 경이로운 걸/ 본 적이 있어?// 해가/ 모든 저녁에/ 느긋하고 편안하게/ 지평선을 향해 떠가서// 구름이나 산속으로,/ 주름진 바다로/ 사라지는 것-/ 그리고 아침이면// 다시금/ 세상 저편에서/ 어둠으로부터 미끄러져 나오는 것./ 한 송이 붉은 꽃처럼
메리 올리버 『기러기』
새해다. 새해라고 새 해가 뜨는 건 아니지만, 새해라고 믿고 싶은 이들은 해맞이하러 간다. 해를 보러 가지만, 사실은 희망을 보러 가는 거다.
자연에 대한 경외로 넘치는 메리 올리버의 시집 중 새해 아침에 읽을 만한 시를 찾았다. 인용한 시의 제목은 ‘해’다. 생각해 보면 새해 아침에 새 해가 뜨듯, 매일 아침에도 새 해가 뜬다.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고, 그렇게 매일 무언가 죽고(일몰) 또다시 태어나면서(일출) 끊임없이 생명이 이어지는 자연이란 얼마나 신비로운가 말하는 시다.
올리버의 대표작은 역시 ‘기러기’다. 찬찬히 읽어본다. ‘착하지 않아도 돼./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너의 절망을 말해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투명한 조약돌 같은 비가/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가지./ 초원들과 울창한 나무들,/ 산들과 강들 위로./ 그러는 동안에도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을 높이 날아/ 다시 집으로 향하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지.…’
착하지 않아도 돼.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너의 절망을 말해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투명한 조약돌 같은 비가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가지,
초원들과 울창한 나무들,
산들과 강들 위로.
그러는 동안에도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을 높아 날아
다시 집으로 향하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지,
저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흥겨운 소리로 너에게 소리치지-
세상 만물이 이룬 가족 안에 네가 있음을
거듭거듭 알려주지.
-메리 올리버 시선집 '기러기' 중
2019년 83세로 세상을 떠난 메리 올리버는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그는 생의 대부분을 매사추세츠주 프로빈스타운에서 살며 야생의 경이와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그의 시 142편을 엄선해 수록한 시선집 ‘기러기’가 민승남 번역으로 국내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