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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Feb 11. 2021

먹쿠실낭*(수정중)

- 강산 시인의 꿈삶글 16






먹쿠실낭*

- 강산 시인의 꿈삶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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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날 아침에 가슴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다

제주4.3평화재단에서 발행한 4.3과 평화를 펼쳐 보았다

열두 살에 4.3이 지나갔다는 강순아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영아 오빠는 한림국민학교에서 총살당해 여드랑밭에 묻히고

영보 오빠는 여드랑밭에서 일하다 끌려가 섯알오름에서 죽고

두 아들을 가슴에 묻은 어멍은 밭에서 웃통을 벗고 훌떡훌떡 뛰고

나보다 가슴이 더 깊이 아픈 사람들을 생각하며 돌아오는데

멀구슬나무가 자꾸만 나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가슴처럼 쭈글쭈글 해진 열매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총알처럼 단단한 알맹이로 염주를 만들어 기도하기 시작하니

불탄낭처럼 속이 타버린 가슴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나고 있다


#


"먹쿠실낭에 올랑 오라방 죽는 거 봐도 어멍안틴 못골안" 한림읍 84세 순아삼촌 말씀 들은 뒤부터 멀구슬나무를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멀구슬나무 열매들이 자꾸만 총알로 보인다. 새들이 쪼아대는 모습이 순아삼촌 가슴을 쪼아먹는 말씀으로 들린다. 난리통에 부모형제 다 잃고 방직공장에 갔지만 재봉틀소리가 그날 운동장에 묶여있던 사람들 쏘아대던 총소리만 같아서 일을 할 수 없었다는 순아삼촌, 우리들의 봄이 죽었다는 그 말씀, 우리들의 삼월이 죽었다는 그 말씀, 사삼은 사(死)삶이고 사(思)삶 이라는 그 말씀, 스스로 손 뻗어 가슴팍에 박힌 총알을 아무리 빼 내어도 잎 돋고 꽃 피는 시절은 없었다던 그 말씀, 복수초 피고 매화 피고 변산바람꽃은 또다시 피어나고 있는데 가지마다 매달려있는 멀구슬나무 저 노오란 열매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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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늙은 내 몸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난다

내가 업어서 키운 소녀는 벌써 할머니가 되었다

열두 살 소녀는 더 이상 나에게 업히지 않았다

감저공출 절대반대 보리공출 절대반대를 외치며

3.1절 만세를 부를 때에는 아직 미쳐 알지 못했다

관덕정 쪽에서 총을 맞고 봄이 쓰러졌다고 하였다

총을 맞은 붉은 동백꽃들이 뚝뚝 떨어졌다고 하였다

나도 그때는 그냥 뭣도 모르고 만세를 따라 불렀다

푸른 잎들과 보라색 꽃들이 하늘을 뒤덮을 때였다

새들의 둥지를 품고 밤낮으로 젖을 물리던 때였다  

나는 직박구리들과 까치들의 화수분 식량 창고였다

아이들의 호주머니에도 푸른 구슬들을 가득 채워주었다

그러던 어느 맑은 날 나는 차마, 끝내, 보고야 말았다

한림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총을 맞고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와 외삼촌이 여드랑밭에 막내 오빠 묻는 것을 보았다

바람에 밭담이 무너져서 무덤이 없어지는 것도 보았다

그 여드랑밭에서 일하다 끌려간 셋째 오빠가 섯알오름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총을 맞고 죽어 묻혔다는 소문도 들었다

양쪽 가슴에 두 아들을 묻고 겨우 살아가는 어머니를 보았다

검질을 매다가 아들 생각이 나면 웃통을 벗고 훌떡훌떡 뛰었다

그러다가 끝끝내 마을들까지 불태워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동쪽 어느 마을에 아직도 빈 가슴으로 살아간다는 불탄낭처럼

가슴속이 새카맣게 타버린 나는 아직도 그때를 잊을수가 없다

그러나 아, 내가 업어서 키운 열두 살 소녀가 겨우 돌아왔다

재봉틀소리도 총소리로 들렸다는 그 소녀가 다시 돌아왔다

내 몸으로 염주를 만들어 나를 어루만지며 기도를 하고 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다시 따뜻한 피가 돌며 또 다른 내가 돋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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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숲의 특징은

곶자왈 숲이다

어떤 척박한 땅에서도

숲을 이루며 산다 


제주도 나무의 특징은

맹아의 나무들이다

아무리 목을 잘라도

또 다시 맹아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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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공화국에 멀구슬나무가 너무나 많다

큰 나무 하나에서 떨어진 열매들이 숲을 이루었다

숲이 되어버린 밭을 되살리려고 베어내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나무들이 싹을 내밀고 잎을 내더니

자주빛 꽃들을 펑펑펑 터트리며 내 마음을 흔들었다

자줏빛을 좋아하는 시인을 생각하며 자줏빛 하늘이 되었다

내가 자주 가는 머그낭 식당 앞에도 큰 멀구슬나무가 있었다

머그낭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먹쿠실낭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말구슬나무, 구주목, 구주나무, 머쿠슬낭, 머쿠실낭....,

사람들마다 나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제 흔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 같은 세상에서도

나는 이제 조용히 염주알을 어루만지며 기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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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날에 가슴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나보다 가슴이 더 아픈 할망이 있었다

봉개동에서 오셨다는 순아삼촌을 만났다 

고향은 한림읍 명월 하동이라고 말씀 하셨다 


"먹쿠실낭에 올랑 오라방 죽는 거 봐도 어멍안틴 못골안" 이 말을 나는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1937년생 강순아 할머니 말씀을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제주도 사람으로 30년을 살아도 나는 아직 제주도 사람이 되지 못했다. 열두 살에 사삼을 격으셨다는 할머니, 감저공출 절대반대! 보리공출 절대반대!로 시작되었다는 한림국민학교 운동장에서의 기억들, 사삼은 4월 3일이 아니라 3월 1일에 시작되었다는 그 말씀, 사삼 민중항쟁이 아니라 삼일절 만세운동이었다는 그 말씀, 사삼은 삶이 죽어버렸다는 그 말씀, 우리들의 삼월이 죽었다는 그 말씀, 우리들의 봄이 죽었다는 그 말씀, 그 말씀들이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삶, 사삼은 사(死)삶이요 사(思)삶 이라는 그 말씀, 그리하여 나는 아직도 사삼이라 말하지 않고 삼일절발포사건이라고 말하는 그날의 일들, 우리들의 봄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기고 우리들의 봄을 쓰러뜨려 피를 흘리게 만들었던 그날의 총소리. 아, 바로 그 운동장에서 막내오빠가 총살당하는 것을 멀구슬나무 위에서 지켜보았다는 강순아 할머니, 열두 살 소녀의 눈으로 직접 보고도 어미니에게는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는 순아삼촌,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밤 아홉시가 넘어 돌아오는 바람에 죽었다는 막내오빠, 그때는 그렇게 밤 9시만 넘으면 무조건 총살이었다는 순아삼촌 말씀,  아버지와 외삼촌이 오빠 시체를 가져와 여드랑밭에 묻었으나 무덤까지 잃어버렸다는 순아삼촌 말씀, 친구집에 놀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잡혀가 죽는 바람에 셋째 오빠는 겁이나서  산으로 들로 숨어다녔다는 말씀, 고자질쟁이들이 많아서 친척도 무섭고 형제간도 무서웠다는 그 시절, 그러다가 흰 헝겁을 나뭇가지에 매달고서 귀순했다는 셋째오빠, 하지만 6.25가 터지자 여드랑밭에서 일하던 오빠를 잡아갔는데 6년만에 모슬포 섯알오름에서 시체를 찾았다는 셋째 오빠, 그때 같이 찾은 시체들과 함께 갯거리오름 곁에 묻혀 있다는 셋째 오빠, 결혼하려고 색시도 다 구해다 놓고 있었는데 결혼도 못하고 죽었다는 셋째 오빠, 둘째 오빠는 일본에서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첫째 오빠는 너무 일찍 죽어서 얼굴도 모른다는 강순아 할머니, 그 난리통에 부모 형제 다 죽고 고아 아닌 고아로 살았다는 강순아 할머니, 서울로 달아나 방직공장에 다녔으나 재봉틀소리가 그날 운동장에 묶여있던 사람들에게 쏘아대던 총소리 같아서 일을 할 수 없었다는 강순아 할머니, 남편마저 5년만에 연주창에 걸려 죽었다는 강순아 할머니, 그녀의 어머니는 밭에서 검질을 매다가도 죽은 아들 생각에 가슴에 열불이 나서 웃통을 홀딱 벗고 훌떡훌떡 뛰었다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끌어안고 함께 엉엉 울었다는 강순아 할머니, 애기는 죽으면 어머니 가슴에 묻는다는 말처럼 자기도 결혼하고 첫 애기를 잃어버리니 알겠다며 어머니처럼 웃통을 벗고 훌떡훌떡 뛴다는 강순아 할머니, 오죽했으면 생초목에 불이 붙었다 했을지 갈기갈기 심장이 찢어지고 마디마디 창자가 끊어지고 애가 타다 못해 재가 되어버린 그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나에게 자꾸만 되물어오는 강순아 할머니, 


멀구슬나무 위에서 모두다 지켜보았다는 강순아 할머니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나는 자꾸만 멀구슬나무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멀구슬나무 열매들이 자꾸만 총알로 보이기 시작했다. 새들이 쪼아먹는 모습을 보고도 강순아 할머니 가슴을 쪼아먹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 할머니의 어머니 가슴에 깊이 박혀있는 총알로 보였다. 강순아 할머니보다 더 많은 것들을 지켜보았을 멀구슬나무를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런 나무가 어찌 멀구슬나무 뿐이랴, 오래된 팽나무도 그렇고 오래된 소나무들도 눈 빤히 뜨고 모두 다 보았을 것이다. 그날의 아우성과 그날의 울부짖음과 그날의 피눈물을 모두 다 지켜보았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자꾸만 멀구슬나무를 바라보는데 벌써 변산바람꽃이 피었다고 꽃소식을 전해주는 바람이 있다. 복수초가 피어나고 매화가 피어나고 변산바람꽃이 피어나도 우리들의 봄은 아직도 붉은 목숨들이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들의 계절을 살고 있구나.



* 먹쿠실낭 : 멀구슬나무










#멀구슬나무














田家晩春 / 다산 정약용, 1803


비 개인 방죽에 서늘한 기운 몰려오고
멀구슬나무 꽃바람 멎고 나니 해가 처음 길어지네
보리이삭 밤사이 부쩍 자라서
들 언덕엔 초록빛이 무색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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