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대 시인

- 강산 시인의 세상 읽기 &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32

by 강산




김주대 시인




나는 아직 김주대 시인을 모른다

나는 아직 김주대 화가를 모른다

그러나 나는 본다

김주대 시인의 엄청난 힘을본다

김주대 시인의 엄청난 사랑이다

김주대 시인과

류근 시인의 관계가 참으로 아름답다



* 김주대 시인의 사진과 그림 등 자료는 공부를 위하여 인터넷에서 빌려왔습니다



출생 1965 경상북도 상주

학력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 학사

데뷔 1991년 창작과 비평 등단




김주대 새 시집 '그리움의 넓이'

기사입력 2012.11.21. 오후 2:11

AKR20121121129300005_01_i_59_20121121141304.jpg?type=w647 창비. 144쪽. 8천원.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시인 김사인은 김주대의 새 시집 '그리움의 넓이' 뒷면에 "피는 뜨겁고 기상은 장했고 눈은 맑았다"고 적었다. 20여 년 전의 김주대에 대한 기억이다.


무크지 '민중시'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 김주대가 3년 만에 시집을 내놨다. 5년 전 17년 만에 '꽃이 너를 지운다'를 출간하고 나서 2009년에도, 올해도 부지런히 시집을 냈다.


시인은 "청춘은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지도 한장을 몸에 새기는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시 '지도를 찾아서')라고 고백한다. 시인은 눈보라 치고 동상을 남기는 청춘을 지나 올해 47세다. 시인은 이제 말대꾸하는 딸을 때리며 집 망한 사실을 털어놓고 우는 아비의 마음을 그러모은다.


"혈액처럼 몸속에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눈두덩에 눈물 같은 걸 올려놓지는 말아야 한다/ 아가리로 울면서 아가리로 밥을 처넣는 게 인생이라면/ 김밥이든 라면이든 밀어넣어 올라오는 울음을 틀어막고/ 농담처럼 또 쓰윽 웃는 거다/"(시 '먹먹한')


시 '영혼의 인간'으로 시집의 제목이 어디서 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지몽매 달려가 어느 끝에 다다르는 공격이 1차원 '선'의 세계라면 견딜 수 없는 갈망으로 천지를 두루 헤맬 때 2차원 '면'의 세계인 그리움이 완성된다.


3차원 '입체'의 세계는 슬픔이다. 그리움의 아득한 넓이를 가진 사람이 꿈으로 솟구치다가 수직으로 떨어져 고통의 구덩이에 빠질 때의 세계다. 꿈을 가진 이는 구덩이에서 4차원의 세계로 이동하는데, 영혼을 가진 인간은 이렇게 벼랑과 그리움과 슬픔을 모두 통과해 탄생한다.


시인은 시집 말미에 "세계는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나와 동일하게 나이가 들어갔다"면서 "나는 비록 생계의 낮은 벽에 납작하게 붙어 조금 비루했지만 높고 험한 벽을 넘어가던 지난여름 푸른 담쟁이들의 과장법을 질투하지 않았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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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의 옷과 윤석열의 옷 >


가난한 부모는 자식에게 몸보다 큰 옷을 사서 입히고, 부자 부모는 자식의 치수에 맞는 옷을 사 입힌다. 어린 시절 이재명의 깨끗하지만 몸보다 훨씬 큰 옷(옷깃을 보면 얼마나 큰 옷인지 알 수 있다. 옷깃이 얼굴만 하다. 어른이 입던 작업복을 밑단만 줄여 입힌 것일수도)에서 가난을 보았고, 윤석열의 딱 맞는 옷과 나비넥타이에서 부유함을 보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식이 다 자라도록 오래오래 입으라고 큰 옷을 사서 입힌다. 미래의 가난까지 걱정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아프고 아련한(희미한) 마음을 윤석열이 알 리가 없다.


윤석열이 氣를 살린다는 항문침인지 똥침인지를 맞고 다니는 모양인데 맞을 수도 있다.(심지어 항문침 시술자 이병환 씨를 수행원으로 데리고 다녔다고 유승민 후보가 밝힘. 참고로 말하면 똥구멍에 다이나마이트 박는 건 내가 전문이다.) 그러나 그런 민간요법에 지도급(ㅎ) 인사들이 기대게 되면 국가의 정상적인 의료체계가 무시당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의대생들이 단식투쟁을 해야하는데) 무속도 그렇다, 전통의 무속은 무척 매력적이고 훌륭한 정신의 산물이지만, 정치인이 ‘王’자나 손바닥에 새기고 다지면 국민의 뜻이 국가경영에 반영되지 못한다. 개인적인 신앙의 대상이나 비선실세가 국가를 운영하는 위험천만한 일이 발생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이 주인이지 신이 주인이 아니다. 그래서 그토록 손바닥왕을 경멸하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의 오방색이나, 이명박의 서울시 봉헌은 참으로 개탄스럽고 분노스러운 일이었다.


(우연히 두 개의 사진을 보았다. 국민은 문득 스친 순간의 감각으로도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게 한 표다. 만약이지만 본선에서 이낙연과 윤석열 혹은 홍준표가 붙으면 이낙연을 찍을 것이고, 이재명과 홍준표 혹은 윤석열이 붙으면 이재명을 찍을 것이다. 아울러 추미애 후보의 열성적이고 진지한 자세에 경의를 표한다. 큰일을 하실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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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사설·오피니언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폐허’의 삶/문인화가·시인

입력 :2021-10-05 17:58ㅣ 수정 : 2021-10-06 02:56

▲ 김주대 문인화가·시인


폐허! ‘방방곡곡 삶’을 찾아다니다가 가끔 마주친다.


흔히 버려진 곳, 삶이 중단된 곳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폐허 앞에 서면 폐허야말로 삶의 분명한 일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때 우체국 직원이기도 했던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인간의 상상력을 세균으로 보았다. 상상력은 영혼의 질병을 안겨 주어 인간을 고통스럽게도 하지만, 인간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만드는 주요한 미생물이다. 상상은 살균되지 않는 인간의 내부이자 내부의 타자다.


폐허에 서면 상상이 시작된다. 폐허(廢墟)에 와서 ‘아’ 하고 입을 벌린다.



황폐한 풍경들이 몸 안으로 바람처럼 몰려들어 오는 걸 느낀다. 상상한다. 몸 안의 여러 기관들이 일어서 팔을 벌려 반기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다. 흔들리지만 비로소 몸은 온전히 폐허의 풍경 속을 걷기 시작한다.


모국어로 몸과 몸 안의 상상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기쁘고 다행스럽고 슬픈 일인지. 몸이 폐허와 만나 나누는 대화.


오래전 태를 달고 어머니의 뱃속에서 익힌 소리들의 두근거림과 진동. 아버지와 어머니의 숨소리까지 배어든 모국어적 상상은 몸속을 서성거리다가 폐허에 와서 자음과 모음의 옷을 입고 외출한다. 그것이 폐허와의 대화이며 시의 시작이다.


폐~ 허~.


첫 음절 ‘폐’의 초성 무성파열음 ‘ㅍ’은 막혔던 입술이 터지면서 나는 소리다.


폐허의 터지고 밟히고 파괴된 흔적이 발음에 나타난다. 그리고 ‘허’의 초성인 ‘ㅎ’은 후음(목구멍소리)이다.


먹먹하게 벌린 목구멍에서 나오던 깜깜한 바람소리 ‘ㅎ’이 입 안에 잠시 머물다가 입 밖으로 새나오며 모음 ‘ㅓ’를 만나 ‘허~’ 하고 발음된다. 파괴된 곳의 허허로움이 ‘폐허’라는 말 속에 있다.


입술 모양과 목구멍 모양은 ‘폐허’의 자음 ‘ㅍ’과 ‘ㅎ’을 만들고, ‘폐허’의 모음 ‘ㅖ’와 ‘ㅓ’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바탕으로 만든 문자 ‘·, ㅡ, ㅣ’를 합자한 것이니 폐허라는 글자와 발음에서 이미 몸과 천지자연이 조화롭게 한 마을을 이룬다.


모국어는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기호이기 이전에 어머니의 몸짓을 담은 진동이고 태어난 땅의 바람과의 공명이다. 모국어로 시를 쓴다는 것은 어머니에게 받은 몸으로 말하는 것이고, 몸에 기록된 역사적 기억의 서술이며 행복한 관습이다.


보르헤스(아르헨티나 시인)는 그의 시 ‘시학’에서 “나날의 일상에서 인간이 살아온/유구한 세월의 상징을 보고/세월의 전횡을 음악과/속삭임과 상징으로 바꾸어라”라고 했다. 세월의 전횡을 속삭임으로 바꾸고 싶은 것은 비단 시를 쓰는 사람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세월의 전횡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고통스러운 자들의 목소리가 시이면 어떻고 음악이면 어떻고 건축이나 미술이면 어떻겠는가.


‘음악’처럼 흐르는 몸의 상상을 ‘그림’ 그리듯 모국어로 ‘건축’한 것이 ‘시’일 텐데. 그리하여 폐허도 삶이 된다.


필자는 졸시 ‘폐허의 노래’에서 “덩굴은 바람의 손/죽은 자가 깨어나 벽을 더듬고 있다/버려진 개들이 떠나지 못한 영혼처럼 남아/골목을 서성거리고/부서진 벽 녹슨 철근들은/핏물 빠진 핏줄처럼 튀어나와/바람의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다/깨진 창문이 밤낮 주인 없는 빈방을 들여다보는 곳/건드리기만 해도 울음이 쏟아질 듯 기울어진 지붕 아래/중력을 이기기 못한 영혼이/천장에서 쏟아져 합판을 잡고 펄럭거린다”고 폐허의 삶을 노래했다.


2021-10-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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