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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Oct 24. 2021

창세기 3장

- 이어도 공화국 9





창세기 3   



  


뱀은 손과 발이 없어도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뱀은 귓구멍이 없어도

듣지 못하는 것이 없다

뱀은 눈꺼풀이 없어도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뱀은 수 백 개의 갈비뼈로

온 몸과 온 마음으로

땅의 영혼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삼보일배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오체투지 같은 절실한 마음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동안거에 들어가 용맹정진하는 마음으로

큰 수술을 받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소신공양까지 불사하는 뱀들의 마음으로     


가장 낮은 자세로

기도하고 수행하는 뱀들의 마음으로

자신의 목숨을 연명할 만큼만 먹고

먼저 공격하는 법이 없는 평화주의자의 마음으로     


낮은 포복으로 엎드려 기어 다니다가

길쭉한 소주 됫병 속에서 비로소

몸 속 사리 같은, 마음 속 모든 독을 토해내고

비로소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서서 보는

뱀술 같은 뱀의 운명이여, 또 다른 나의 운명이여     


아, 내가 새롭게 만든 에덴동산, 서천꽃밭에

구렁이 한 마리, 나의 발가락 앞으로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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