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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r 02. 2022

이어도공화국 일기 2

삼일절에 평화를 생각한다




이어도공화국 일기 2



오늘은 3.1절 103주년


한라산 위에는 아직도 겨울인데

한라산 아래는 벌써 봄이 찾아왔다


아침부터 조금씩 비가 온다

땅이 젖기 시작한다

흙이 축축해지기 시작한다


전쟁중인 우크라이나를 생각한다

침공중인 러시아를 생각한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왜 전쟁을 감행했을까?

일절 아침에 그의 말을 들어본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생각한다



강산10시간


삼일절 백삼주년

감귤나무 심고

지붕도 만들고

오후 늦게 돌아 오는데

평화로가 깜깜하다

평화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평화로에는 벌써

고사리 장마가 시작되었다




문 대통령 마지막 삼일절 기념사, '연합정부' 의미 짚었다 (naver.com)

문 대통령 마지막 삼일절 기념사, '연합정부' 의미 짚었다

입력2022.03.01. 오전 10:58

수정2022.03.01. 오전 11:18

"항일독립운동의 큰 줄기는 통합"... 일본엔 "이웃나라 상처 공감 때 신뢰받을 것"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서울 서대문구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에서 열린 제103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5번째 삼일절 기념사는 '한반도 평화'에 초점이 맞춰있었다. 문 대통령은 3.1

독립운동의 의미를 "민족의 대동단결과 통합"으로 짚으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다양한 세력이 동참한 "좌우 통합 연합 정부"였음을 강조했다.


'평화' 단어만 14번... "우리는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국민"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진행된 제103주년 3.1 절 기념식에서 "우리가 더 강해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한반도 평화"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45년11월 고국으로 돌아온 임정요인들은 분단을 막기 위해 마지막 힘을 쏟았다. 그 노력은 이제 우리 몫이 됐다"면서 "우리가 이루어야할 것은 평화"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대북 강경책이 아닌, 외교를 통한 '대화 지속'이 그 해법이 돼야한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의 평화는 취약하다. 대화가 끊겼기 때문이다"라면서 "평화를 지속시키기 위한 대화의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화와 외교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연설에선 '평화'라는 단어가 총14번 사용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지난 5년의 성과를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국민이다"라면서 "국민 모두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임기가 다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언급하면서, "방역의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경제 성장률 4%를 달성했고 1인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 시대를 열었다"며 "지니계수, 5분위 배율, 상대적 빈곤율 등 3대 분배 지표가 모두 개선돼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공식도 깰 수 있었다"고 제시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경제 위기에 대한 해법은 '한국판 뉴딜'로 제시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발한 전쟁 상황을 '신냉전에 대한 우려'로 표현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위기의 한복판에서 시작한 한국판 뉴딜은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전략이 되었다"면서 "디지털과 그린 뉴딜로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고 더 나은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본을 향해서는 '미래를 향한 협력'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여러 어려움이 많은 지금 가까운 이웃인 한국과 일본이 한때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를 딛고 미래를 향해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웃나라 국민의 상처를 공감할 수 있을 때 일본은 신뢰받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항상 대화의 문을 열어두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래는 기념사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마침내 국민 곁에 우뚝 서게 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에서 개관과 함께 103주년 3·1절 기념식을 열게 되어 매우 감회가 깊습니다.

지난 100년, 우리는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가 꿈꿨던 민주공화국을 일궈냈습니다.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며 억압받지 않는 나라, 평화롭고 문화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위대한 유산입니다. 민주공화국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리는 일은 오늘의 민주공화국을 더 튼튼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저는 취임 첫해 광복절 기념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을 약속한 데 이어, 그해 중국 방문 때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경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찾아,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을 선열들께 다짐했습니다. 그 약속과 다짐이 드디어 이루어졌습니다. 3·1독립운동의 정신과 임시정부의 역사, 자주독립과 민주공화국의 자부심을 국민과 함께 기릴 수 있게 되어 매우 뜻깊습니다.

기념관 건립에 오랜 시간 애써 오신 임시정부 기념사업회와 김자동 회장님, 기념관 건립위원회와 이종찬 회장님, 광복회와 독립유공자, 독립유공자의 후손들, 소중한 자료를 기증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은 서대문독립공원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늘, 고난에 굴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와 선열들의 영혼이 임시정부기념관과 3·1독립선언기념탑, 순국선열추념탑을 기쁘게 맞이하는 듯합니다. 임시정부 기념관에는 3·1독립운동의 함성이 담겨있습니다. 풍찬노숙하며 나라의 독립에 한평생을 바쳤던 지사들의 애국심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뿌리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역사는 평범함이 모여 위대한 진전을 이룬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역사입니다. 1919년 3월 1일, 이름 없는 사람들이 모여 태극기를 들었습니다. 만세 소리 가득한 거리에서 자신처럼 해방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비폭력의 평화적인 저항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독립의 함성은 압록강을 건너고 태평양을 넘어 전 세계에 울려 퍼졌습니다. 북간도와 서간도, 연해주에서 하와이와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에서 만세 소리와 함께 태극기가 휘날렸습니다. 선조들은 식민지 백성에서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해 4월 10일, 서울과 만주, 연해주와 미주, 일본에서 온 민족 대표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상해에 모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임시의정원을 구성하여, 국민이 민주공화국의 주인이 되었음을 선언했습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 운동은 주권만 찾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 위에 모범적인 공화국을 세워 이천만이 천연의 복락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안창호 선생은 임시정부 내무총장에 취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1941년 임시정부 국무위원회는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발표하고, 광복 이후의 새로운 나라에 대한 구상을 제시했습니다. 정치·경제·교육·문화에서 균등한 생활을 누리는 민주공화국이 목표임을 다시 한 번 천명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100년, 그 목표를 하나하나 이루어 냈습니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은 청계천의 작은 작업장에서, 독일의 낯선 탄광과 병원에서, 사막의 뙤약볕과 전국 곳곳의 산업 현장에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흘린 땀방울로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외환위기를 비롯한 숱한 국난도 위기 속에서 더욱 단합하는 국민들의 힘으로 헤쳐 올 수 있었습니다. 부산과 마산에서, 오월 광주에서, 유월의 광장과 촛불혁명까지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도 평범한 국민들의 힘이었습니다.

우리 정부 역시 국민의 힘으로 탄생했습니다. 이름 없이 희생한 분들의 이름을 찾아드리고, 평가받지 못한 분들에게 명예를 돌려드리는 것을 당연한 책무로 여겼습니다. 지난 5년, 2,243명의 독립유공자를 찾아 포상했습니다. 그중에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여성 독립운동가 245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후손을 찾지 못해 훈장을 드리지 못한 독립유공자도 많습니다. 정부는 마지막 한 분까지 독립유공자와 후손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역에 묻혔던 독립유공자의 유해 봉환에도 힘썼습니다. 2019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 계봉우·황운정 지사 내외를 봉환했고, 2021년 광복절에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셔왔습니다. 정부는 생활이 어려운 독립유공자 자녀와 손자녀에게 생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국가유공자 명패를 자택에 달아드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까지 독립유공자와 국가유공자 46만 가정에 명패를 달아드렸고, 올해에도 10만 가정에 명패를 달아드릴 것입니다. 평범한 이웃이 독립의 영웅이라는 사실은 지역 사회에도 자긍심을 심어 줄 것입니다.

정부는 지난 5년 위기 극복과 함께 미래를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소재·부품·장비 자립화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위기 극복을 넘어 혁신과 성장을 이끄는 동력을 국민들과 함께 만들어냈습니다.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은 코로나 터널을 헤쳐 간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방역의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우리 경제는 4% 성장률을 달성했고, 1인당 국민소득 3만 5,000달러 시대를 열었습니다. 지니계수, 5분위 배율, 상대적 빈곤율 등 3대 분배지표가 모두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공식도 깰 수 있었습니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헌신해 주신 의료진과 방역진, 묵묵히 공동체의 일상을 지켜주신 필수노동자, 누구보다 어려움이 컸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일상의 불편을 감내해주신 국민들, 모두 위기 극복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어가는 주역입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국민들입니다. 국민 모두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임기가 다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이제 누구도 얕볼 수 없는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계가 공인하는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슴 벅찬 일은, 대한민국이 수준 높은 문화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3·1독립선언서에서 선열들은, 독립운동의 목적이 "풍부한 독창성을 발휘하여 빛나는 민족문화를 맺고", "세계 문화에 이바지할 기회"를 갖는 데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 선생도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까마득한 꿈처럼 느껴졌던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해내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예술은 전통과 현대 문화를 한국이라는 그릇에 함께 담아 새롭게 변화시켰습니다. 한 세기 전, 선열들이 바랐던 꿈을 이뤄내고 세계를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K-팝으로 대표되는 한류가 세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BTS 열풍을 두고 <포브스>는 "새로운 표준"이라고 했습니다.
영화 <기생충>은 칸과 아카데미를 석권했습니다. 게임, 웹툰, 애니메이션이 세계의 사랑을 받고 <오징어 게임> 등 우리 드라마가 연속 홈런을 치고 있습니다. 서양 클래식 음악과 발레 같은 분야에서도 한국인들의 재능이 세계의 격찬을 받고 있습니다. 각 분야 문화예술인들의 열정과 혼이 어우러진 결과입니다. 우리 문화예술을 이처럼 발전시킨 힘은 단연코 민주주의입니다.

차별하고 억압하지 않는 민주주의가 문화예술의 창의력과 자유로운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주었습니다. 첫 민주 정부였던 김대중 정부는 자신감을 가지고 일본문화를 개방했습니다. 우리 문화예술은 다양함 속에서 힘을 키웠고, 오히려 일본문화를 압도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영국 월간지 <모노클>은 우리의 소프트파워를 독일에 이은 세계 2위에 선정했습니다.

우리 문화예술의 매력이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높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순방외교 때마다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것'은 역대 민주 정부가 세운 확고한 원칙입니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안에서 넓어지고 강해집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전진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 문화예술은 끊임없이 세계를 감동시킬 것입니다. 우리에게 큰 자부심을 주고 있는 문화예술인들과 문화예술을 아껴주신 국민들께 한없는 경의를 표합니다.

국민 여러분, 코로나 위기 속에 국제질서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디지털과 그린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기술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힘으로 패권을 차지하려는 자국중심주의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신냉전의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폭력과 차별, 불의에 항의하며 패권적 국제질서를 거부한 3·1독립운동의 정신이 흐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 경제 대국, 글로벌 수출 7위의 무역 강국, 종합군사력 세계 6위, 혁신지수 세계 1위의 당당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3·1 독립운동의 정신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주도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새롭게 도약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위기의 한복판에서 시작한 한국판 뉴딜은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전략이 되었습니다. 디지털과 그린 뉴딜로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고 더 나은 일자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휴먼 뉴딜로 고용안전망과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지역균형 뉴딜로 국가 균형발전시대를 열며 혁신적 포용사회로 확실한 전환을 시작했습니다.
 
경제가 안보인 시대, 글로벌 공급망의 어려움도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우리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이 글로벌 공급망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다자주의에 입각한 연대와 협력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이 생겼습니다. G7 정상회의에 2년 연속으로 초대받을 만큼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아세안을 중심으로 한 신남방정책, 유라시아 국가들과의 신북방정책, 중남미와 중동까지 확장한 외교로 경제협력과 외교·안보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세계 최대의 FTA, RCEP이 지난달 발효되면서, 우리는 세계 GDP의 85%에 달하는 FTA 네트워크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경제영역이 그만큼 넓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더 강해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한반도 평화입니다. 3·1독립운동에는 남과 북이 없었습니다. 다양한 세력이 임시정부에 함께했고, 좌우를 통합하는 연합정부를 이루었습니다. 항일독립운동의 큰 줄기는 민족의 대동단결과 통합이었습니다. 임시정부 산하에서 마침내 하나로 통합된 광복군은 항일독립운동사에 빛나는 자취를 남겼습니다.

1945년 11월, 고국으로 돌아온 임정 요인들은 분단을 막기 위해 마지막 힘을 쏟았습니다. 그 끝나지 않은 노력은 이제 우리의 몫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3·1독립운동의 열망처럼 그날의 이름 없는 주역들의 아들과 딸들 속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함성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이루어야 할 일은 평화입니다. 한국 전쟁과 그 이후 우리가 겪었던 분단의 역사는, 대결과 적대가 아니라 대화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출범 당시의 북핵 위기 속에서 극적인 대화를 통해 평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평화는 취약합니다. 대화가 끊겼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지속시키기 위한 대화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전쟁의 먹구름 속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기를 꿈꾸었던 것처럼 우리가 의지를 잃지 않는다면, 대화와 외교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반드시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100년 전의 고통을 결코 되풀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평화를 통해 민족의 생존을 지키고, 민족의 자존을 높이고, 평화 속에서 번영해 나갈 것입니다.

한일 양국의 협력은 미래세대를 위한 현세대의 책무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3·1독립운동 선언에서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을 극복하고 동양의 평화를 위해 함께하자고 일본에 제안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도 같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은 지금, 가까운 이웃인 한국과 일본이 '한때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를 딛고 미래를 향해 협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일 관계를 넘어서, 일본이 선진국으로서 리더십을 가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본은 역사를 직시하고, 역사 앞에서 겸허해야 합니다. '한때 불행했던 과거'로 인해 때때로 덧나는 이웃 나라 국민의 상처를 공감할 수 있을 때 일본은 신뢰받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지역의 평화와 번영은 물론 코로나와 기후위기, 그리고 공급망 위기와 새로운 경제 질서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 과제의 대응에 함께하기 위해 항상 대화의 문을 열어둘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분들을 임정 요인이라 불러왔습니다. 임정 요인이라는 단어에는 우리 후손들의 존경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국민 모두는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각자의 자리에서 소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도국가라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 길에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임정 요인과 같습니다. 모두가 선구자이며, 모두가 중요한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누구도 대한민국을 흔들 수 없습니다. 이제 누구도 국민주권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이제 누구도 한 사람의 삶을 소홀히 대할 수 없습니다. 이곳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은 평범함이 이룬 위대한 대한민국을 기억할 것이며, 국민들에게 언제나 용기와 희망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독립의 열기로 뜨겁게 타올랐던 1919년의 봄, 고난과 영광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 마침내 우리 모두의 위대한 역사가 된 선열들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 푸틴 연설 (2022.2.24)


러시아 국민 여러분 그리고 친구 여러분!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러시아 국경으로 동진하는 나토와 끝없이 협상을 시도하고 인내해 왔습니다. 그리 부탁을 했어도 돌아온 것은 냉소, 사기, 거짓말, 공갈과 협박이었습니다. 막무가내로 이제는 국경까지 와 버렸네요. 소련이 해체하니, 자기가 무소불위의 절대 강자인듯 도취에 빠진 서구의 수뇌부입니다. 교양도 없는 것들이 오만하기도 해서, 오로지 자기들 만을 위해 의사를 결정하고 일을 추진합니다.


미국과 나토는 유럽 중앙의 평화로운 베오그라드에 쳐들어가 미사일과 폭격기로 몇 주 만에 도시들을 초토화했지요. (ref. 1999년 유고슬라비아 공습) 그래도 유엔 안보리 제재를 받지 않았습니다. 안보리의 모든 결정을 무시하고 리비아에 군사를 투입했지요. 나라를 박살내고 국제 테러를 저질렀습니다. 몇 년 동안 나라를 내란에 휩싸이게 했지요. 리비아 주변도 흔들어 거대한 난민 행렬을 만들었습니다. 시리아 정부 허락도 없이 들어가 전투를 벌였어요. 이라크는 불법 천지였지요. 국무장관이라는 사람이 세계가 보는 앞에서 흰색 가루 병을 흔들며 화학무기라 했죠. 모든 것이 미국과 유엔 수뇌부가 꾸민 가짜였고, 톡톡히 창피를 당했습니다. 그 많은 인명 손실과 파괴, 테러에 테러가 더했습니다. 미국이 들어간 모든 곳에서 피를 흘렸고 국제 테러가 벌어졌고 극단주의가 횡행했습니다.


미국과 나토는 이런 인간들입니다. 동유럽으로 1인치도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하더니 우리를 속였습니다. 우리를 가지고 논거죠. 네, 압니다. 정치란 더러운 공작이지요. 하지만 지금처럼 이리 더럽게 굴 수는 없는 겁니다. 국제관계 뿐만 아니라 도덕과 윤리를 훨씬 벗어난 사기(con-artist)를 친 겁니다. 공개적으로 러시아를 적으로 삼으면서도 이들은 어떤 욕도 먹지 않았습니다. 이럴 수는 없는 법입니다.


미국 정치인, 과학자, 기자들은 거짓의 제국(Empire of lies)을 세웠습니다. 미국의 똘마니들은 의무적으로 미국에 굽신거리며 미국을 모방하고, 명령이 떨어지면 가차없이 달려갑니다. 우리는 2021년 12월 미국과 그 똘마니들에게 유럽의 안전을 지켜주고 나토를 더는 확대하지 말라고 다시금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소용없었습니다. 러시아 문제를 러시아와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우리가 어찌 되든, 제 욕심만 추구합니다. 나토 수뇌부는 최근 "러시아 국경으로 더 빨리 동진해야 한다"고 했어요.


지금의 우크라이나 영토의 나토 베이스 설치, 군대 배치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물론 나토 자체만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 외교정책의 도구이니 더 문제인 거죠. 역사적으로 우리 영토였던 우크라이나가 이제 반-러시아 적대국으로 다듬어졌네요. 이 나라가 지금 외세에 푹 빠져, 나토를 끌어들이고 첨단 무기를 얻으려 갖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나토는 지금 선을 넘어버렸습니다.


이들은 2014년 우크라이나에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고는 창피한 선거를 치렀습니다. 평화롭게 갈등을 해결하기를 포기한 거죠. 지난 8년 간 일을 평화롭게 해결하려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사는 수백만 시민이 학살의 공포에 절어, 오로지 러시아만 의지하고 러시아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돈바스 공화국 독립을 승인한 이유입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와 극단 민족주의자들을 밀어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러시아 합병을 선택한 크림 주민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돈바스에서 그리했듯이, 크림으로 몰려가 사람들을 죽일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도 그리할 것이고요. (cf. 2014년 5월 2일 네오나치가 오데사에서 불에 태워 죽인 42명의 친러시아 국민 상기. 실제로,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진군하면 범인들을 찾아 처벌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미 체포 리스트가 만들어졌으며 범인들은 네오나치에서 아직도 활동 중이다.)


이번 군사행동의 목적은 키에프 정권에 의해 지난 8년 간 죽고 고통받아온 시민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탈 군대화, 탈 나치화 할 것입니다. 영토는 점령하지 않을 것이고 규율을 강요하지도 않을 겁니다. 유엔헌장 1조가 그렇거든요. 그래서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2014년에 여러분 스스로 나치라고 불렀던 이들로부터 크림 주민을 지켜주어야 했습니다. 주민들은 역사적 조국인 러시아를 선택했지요. 우리는 바로 그분들만 상관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 알립니다. 당신들은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충성한 것이 아닙니다. 독재 정권에게 충성을 한 겁니다. 범죄에 동참하지 마세요. 무기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세요.


우리나라와 국민을 공격하거나 위협하는 사람들은 들으세요. 당신들은 역사에서 한 번도 대면하지 못할 결과를 맞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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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2021.12.17 르몽드지. 푸틴이 위에서 말한 대로 미국과 나토를 향해 나토 확대를 중단해 달라는 요구를 담은 협약 제안을 했다는 기사.  미국은 이들의 제안에 침묵으로 대응함.


우) 러시아 주변을 둘러싼 미군 기지들 (전세계에 총 800개)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sug.top&where=nexearch&query=%EC%9A%B0%ED%81%AC%EB%9D%BC%EC%9D%B4%EB%82%98+%EB%9F%AC%EC%8B%9C%EC%95%84+%EC%A0%84%EC%9F%81+%EC%9D%B4%EC%9C%A0&oquery=%ED%8E%98%EC%9D%B4%EC%8A%A4%EB%B6%81&tqi=hm0JKdp0Yihss6vicEGssssst04-126000&acq=%EC%9A%B0%ED%81%AC%EB%9D%BC%EC%9D%B4%EB%82%98&acr=2&qdt=0









https://www1.president.go.kr/articles/9981


제102주년 3·1절 기념사


2021-03-01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3·1독립운동이 시작된 역사의 현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3·1독립운동 기념식이 열리게 되어, 참으로 뜻깊고 감회가 큽니다.


102년 전 오늘, 이곳 탑골공원에서 민족의 회복과 도약이 시작되었습니다.


천도교, 기독교, 불교가 종교의 벽을 넘어 한마음이 되었고, 학생들이 민족대연합의 선두에 섰습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한 청년이 팔각정에 올라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낭독이 끝나자 만세 소리가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비폭력운동, 3·1독립운동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자유와 독립의 외침은 평범한 백성들을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 태어나게 했고, 정의와 평화, 인도주의를 향한 외침은 식민지 백성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함성이 되었습니다.



3·1독립운동은 식민지배의 수탈로부터 민족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 온 국민이 함께한 운동이었습니다.


3·1독립운동으로 우리는 식민지 극복의 동력을 찾았고, 민족의 도약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역경을 헤쳐 나가며 대한민국 역사의 반전을 이룬 자랑스러운 선조들께 깊은 존경을 바칩니다.




국민 여러분,



100년의 긴 세월이 흘렀지만, 국난에 함께 맞서는 우리 국민들의 헌신과 저력은 한결같습니다.


한 해를 넘긴 코로나의 위협에 우리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년, 국민들은 방역의 주체가 되어 대한민국을 지켜주셨습니다.


방역 요원과 의료진은 직업적 책임감을 뛰어넘는 놀라운 헌신과 희생을 보여주었습니다.



3·1독립운동 전 해, 일제의 무단통치와 수탈에 신음하던 1918년에도 ‘스페인 독감’이라는 신종 감염병이 우리 겨레에 닥쳤습니다.


당시 인구의 40%가 넘는 755만 명의 환자가 발생해 14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콜레라’ 역시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치명률이 65%에 이르렀고, 1920년에만 만3천500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일제는 식민지 백성을 전염병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방역과 위생을 구실로 강제 호구조사와 무조건 격리를 일삼았고, 1920년 당시 의사 1인당 담당 인구수가 무려 만7천 명에 달했습니다.


그와 같은 척박한 의료 현실 속에서 의학도들은 3·1독립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경성의전과 세브란스의전 학생들이 탑골공원의 만세시위를 주도했고,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들과 세브란스의전 간호부 학생들 역시 붕대를 가지고 거리로 뛰쳐나와 동참했습니다.


체포된 학생들 가운데 경성의전 학생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가족과 이웃, 공동체의 생명을 지킨 것은 3·1독립운동으로 각성한 우리 국민 스스로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의료인들은, 독립운동으로 탄압받는 민족의 구호를 위해 상해에서 대한적십자회를 설립했고, 1920년에는 ‘적십자 간호원 양성소’를 세워 독립군을 치료할 간호사들을 길러냈습니다.



콜레라가 유행하자 전국 곳곳의 청년·학생들은 청년 방역단을 조직하여 무료 예방접종과 소독 등의 방역 활동을 벌였고,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열세 개 동, 3천여 가구가 연합 자위단을 조직해 콜레라에 맞섰습니다.


효자동을 비롯한 여덟 개 동 주민들은 전염병 병원 설립을 위한 조합을 결성했고, 1920년 9월 4일, 마침내 최초의 사립 전염병 격리병원 ‘효자동 피병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조선인이 지은 병원에서 조선인 의사와 간호사, 한의사가 전력을 다해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오늘의 코로나 상황에서 보면, 우리 스스로 우리 환자를 돌보려 했고, 우리 스스로 의료체계를 갖추려 했던 선대들의 노력이 참으로 가슴 깊게 다가옵니다.


오늘 우리가 코로나를 이겨내고 있는 힘이 100년 전 우리 의료인들의 헌신과 희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국민 여러분,



100년이 흐른 지금, 우리 보건의료 체계는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소득층은 언제든 연간 80만 원 이하의 자부담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중증환자 보장률도 80%까지 올랐습니다.



우리 의료는 대장암과 위암을 비롯한 각종 암과 뇌졸중 치료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고, 기대수명과 영아 사망률, 암 질환 생존율 등 주요 지표에서 OECD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놀라울 정도로 발전한 보건의료 체계와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이 K-방역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100년이 흘렀지만 한결같은 것이 또 있습니다.


서로를 돌보고 의지하는 ‘포용’과 ‘상생’의 마음입니다.


이야말로 어떤 위기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우리 국민의 힘입니다.


우리는 국민의 힘으로 많은 위기와 역경을 이겨왔고, 지금도 코로나 위기를 이겨내고 있습니다.



3·1독립운동은 민족지도자들이 시작했지만, 온갖 탄압을 이겨내며 전국적인 만세운동으로 확산시킨 것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이웃을 위해 매일 아침 마스크를 챙겨 쓰는 국민의 손길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국민들의 가슴 깊은 곳에도 국난 극복을 위해 함께한 3·1독립운동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을 위해 인내하고 희생해온 국민들과, 지금 이 순간에도 격리병동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의 노력으로 코로나와의 기나긴 싸움도 이제 끝이 보이고 있습니다.


충분한 물량의 백신과 특수 주사기가 확보되었고, 계획대로 접종이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끝까지 방역에 최선을 다하며, 국민 한 분 한 분이 모두 코로나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 때까지 백신 접종에 만전을 기할 것이며, 다음 겨울에 접어드는 11월까지 집단 면역을 이룰 것입니다.



코로나 방역에 있어서 정부가 시종일관 지켜온 제1의 원칙이 투명성입니다.


정부는 방역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항상 투명하게 공개해왔습니다.


백신 접종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신 접종의 전략과 물량 확보, 접종 계획과 접종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고, 언제나 국제기준을 따르고 있습니다.


국민들께서, 백신 불신을 조장하는 가짜뉴스를 경계해주시고 백신 접종에 적극 협력하여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1946년, 해방 후 처음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임시정부 국무위원 조소앙 선생은 “우리 동포를 자유민이 되게 하고, 정치적 권리를 갖게 하고, 의식주 걱정 없는, 진정한 광복을 이루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건국이념으로, 우리 스스로 힘이 있을 때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 평등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삼균주의’를 공표했습니다.


소박하지만 원대한 꿈이었고, 우리는 이 꿈 위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뤘습니다.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로 성장했고, 세계 7대 수출 강국이 되었으며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열었습니다.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 우리의 첨단 IT 제품이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5G 상용화에 이어,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 미래차에서도 앞서가고 있습니다.


소재·부품·장비 산업에서 자립을 이뤄가고, 시스템반도체와 바이오산업의 성장 속도도 자랑할 만합니다.


우리 청년들의 고등교육 이수율도 OECD 국가 중 가장 높습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지식을 쌓은 우리 국민의 저력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우리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힘으로, 코로나 위기 속에서 방역과 경제의 모범을 만들어왔고, ‘K-방역’의 성과와 경험을 세계와 공유하고 있습니다.


개도국과 보건 취약 국가에 대한 지원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100년 전, ‘파리평화회의’의 문턱에서 가로막혔던 우리가, 이제는 G7 정상회의에 초청받을 만큼 당당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올해 G7 정상회의 참여로 우리가 이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성취 위에서 ‘선도국가, 대한민국호’가 출발하는 확실한 이정표를 만들겠습니다.



우리는 국제사회와의 협력 속에서 성장해왔고, 앞으로도 세계와 함께 회복하고 도약할 것입니다.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이곳에서 인류 평등의 대의와 함께, 독립선언의 목적이 일본을 미워하고 배척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라 간의 관계를 바로잡아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이루고자 함에 있다는 것을 선포하고, 비폭력 평화 운동을 선언하였습니다.



우리는 100년 전의 선조들로부터 나라 간의 호혜 평등과 평화를 지향하는 정신을 물려받았습니다.


1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코로나에 맞서 연대와 협력, 다자주의와 포용의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절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힘이 지배하는 일방적인 세계 질서 속에서, 식민주의와 전쟁으로 인류 모두가 불행해지는 시대를 넘어섰습니다.


우리는 글로벌 공급망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으며, 백신의 조기개발을 위해 세계 각국이 협력해야 하고, 세계적인 집단 면역을 위해 개도국과 백신을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것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세계는 공존과 새로운 번영을 위해 연대와 협력, 다자주의 정신을 되살려야 합니다.


코로나 극복은 물론, 기후변화 대응 같은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해 다자주의에 입각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다자주의에 입각한 연대와 협력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도 생겼습니다.


지난해 12월 우리는 미국, 중국, 러시아, 몽골과 함께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를 출범시켰습니다.


일본도 참여를 검토하고 있으며, 나아가 북한도 함께 참여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국들과 협력할 것입니다.


코로나와 같은 신종 감염병과 가축 전염병의 초국경적인 확산은 한 나라의 차원을 넘어 다자주의적 협력에 의해서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도 변함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전쟁불용, 상호안전보장, 공동번영이란 3대 원칙에 입각해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동북아 방역·보건협력체’ 참여를 시작으로 북한이 역내 국가들과 협력하고 교류하게 되길 희망합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상생과 평화의 물꼬를 트는 힘이 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일본과 우리 사이에는 과거 불행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불행했던 역사 속에서 가장 극적이었던 순간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그 역사를 잊지 못합니다.


가해자는 잊을 수 있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 한일 양국은 경제, 문화, 인적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이웃이 되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한일 양국은 일종의 분업구조를 토대로 함께 경쟁력을 높여왔고, 한국의 성장은 일본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일본의 성장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넘어야 할 유일한 장애물은, 때때로 과거의 문제를 미래의 문제와 분리하지 못하고 뒤섞음으로써, 미래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면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과거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 길입니다.


한국은 과거 식민지의 수치스러운 역사와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던 아픈 역사를 결코 잊지 않고 교훈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대로 해결해 나가면서 미래지향적인 발전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언제나 피해자 중심주의의 입장에서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것입니다.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협력과 미래발전을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양국 협력은 두 나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동북아의 안정과 공동번영에 도움이 되며, 한·미·일 3국 협력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함께 준비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이웃나라 간의 협력이 지금처럼 중요한 때가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3·1독립선언서는 일본에게, 용감하고 현명하게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이해를 바탕으로 우호적인 새로운 관계를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우리의 정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정부는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머리를 맞대면 과거의 문제도 얼마든지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한일 양국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며 함께 걷고 있습니다.


올해 열리게 될 도쿄 올림픽은 한·일 간, 남·북 간, 북·일 간 그리고 북·미 간의 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할 것입니다.


나아가 한일 양국이 코로나로 타격받은 경제를 회복하고, 더 굳건한 협력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질서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지금 우리 곁에 계신 생존 독립유공자는 스물네 분에 불과합니다.


모두 아흔을 훌쩍 넘기셨습니다.


독립유공자들은 온몸으로 민족의 운명을 끌어안아 오신 분들이며, 독립유공자들께 명예롭고 편안한 삶을 드리는 것은 국가의 무한한 책임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독립유공자를 위해 찾아가는 재가복지서비스 특별기동반을 운영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포함하여 모두 4만4천여 가구에 코로나 긴급구호 물품을 전해드렸고,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병원에 모시고 다녔습니다.


해외 독립유공자와 후손들께도 마스크 등 방역물품을 지원했습니다.



정부는 이달부터 독립유공자들의 자택으로 직접 찾아뵙는 ‘한방 주치의 제도’를 시행할 예정입니다.


12월부터는 독립유공자를 비롯한 국가유공자들께 ‘자율주행 스마트 휠체어’를 지급하고, ‘인공 망막’, ‘스마트 보청기’ 개발도 본격적으로 착수할 예정입니다.


정부는 그동안 독립유공자 심사기준을 개선해 역대 최고 수준으로 독립유공자를 발굴 포상해왔습니다.


독립운동 사료 수집을 강화하고 공적심사 기준을 더욱 개선해 포상 대상을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3·1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학생들은 1926년 6·10만세운동,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3·1독립운동의 정신을 면면히 이어갔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6·10만세운동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고, 올해부터 기념식을 정부 주관 행사로 거행하게 됩니다.


3·1독립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과 함께 ‘3대 독립운동’ 모두가 국가기념일이 되어 매우 뜻깊습니다.



임시정부 요인 환국일인 올해 11월 23일,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이 드디어 개관합니다.


목숨을 건 무장투쟁과 의열활동, 필사적인 외교전, 마침내 이뤄낸 광복군의 좌우합작과 국내진공작전의 준비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27년의 위대한 대장정을 생생하게 되살릴 것입니다.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가 미래 세대에게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이 되길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3·1독립운동 이후 우리의 100년은 식민지배, 분단과 전쟁, 가난과 독재를 극복해온 100년입니다.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평화, 정의와 인도주의를 향해 전진해온 100년입니다.



우리는 지금 3·1독립운동의 정신과 민주주의, 포용과 혁신의 힘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으며, 세계는 우리의 발걸음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연대와 협력으로 소중한 일상을 회복할 것입니다.


인도주의와 다자주의, 상생과 포용의 정신으로 국제질서를 선도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곳 탑골공원에는 위기와 역경 속에서 역사의 반전을 이룬 선열들의 정신이 살아있고, 우리는 선열들을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함께할 때 우리는 더욱 강합니다.


더 높이 도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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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하루 앞두고…안창호 선생 막내아들 안필영 옹 별세 이강 기자 이메일 보내기 작성 2022.02.28 16:40 조회 105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크게보기 글자크기 작게보기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아들 안필영(미국 이름 랠프 안) 옹이 3·1절을 하루 앞두고 향년 96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안 옹은 현지시간 26일 밤 11시 11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눈을 감았다고 27일 현지 한인 단체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과 LA 한인회가 전했습니다. 그는 숙환으로 최근 병원에 입원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인은 안창호 선생의 셋째 아들로, 도산의 3남 2녀 가운데 현재까지 유일하게 생존해있던 핏줄입니다.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 안 옹은 1926년 LA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도산은 미국에 체류하며 해외 독립운동의 기틀을 닦았고 막내아들이 태어났을 때 활동 무대를 중국 상하이로 옮겼기 때문에 안 옹은 부친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한인역사박물관에 따르면 고인은 LA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을 졸업했고, 진주만 공습을 감행한 일본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미 해군에 입대해 복무했습니다. 2차 대전 종전 이후에는 독립유공자이자 한국계 미국인 배우로 활약했던 큰 형 안필립 선생의 영향을 받아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1950년대 영화 '배틀서커스', '미션 오버 코리아' 등에 출연했고 2000년대 중반까지 다양한 영화와 TV 드라마에서 한국계 배우로서 연기를 펼쳤습니다. 배우 생활을 중단했던 시기에는 교육학 전공을 살려 캘리포니아주 고등학교 체육 교사로 재직하며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고인은 특히 평생 안창호 선생과 가족의 뜻을 받들어 LA 한인사회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증언한 정신적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왼쪽부터)안필영, 안필립, 안수산 선생 도산의 장남 안필립 선생은 미국에서 일본의 한국 침략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고 1940년 10월 광복군 창설 축하식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한미친우회를 관리했습니다. 도산의 장녀 안수산(미국명 수전 안 커디) 여사는 신한민보와 흥사단, 3·1 여성 동지회 등에서 활동했고 2차 대전 당시 미 해군에 입대한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이었습니다. 안 옹은 형과 누나가 먼저 세상을 뜬 뒤 도산의 직계 자손으로서 최근까지도 3·1절과 광복절 기념행사 등에 빠짐없이 참석해 부친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렸습니다. 또 차세대 한인을 대상으로 역사를 가르치고 노인 건강을 관리하는 강사로도 활동하는 등 각종 봉사 활동을 펼쳐 한인 사회의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윤효신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 이사장은 "고인은 도산이 설립한 대한인국민회의 취지를 기려 각종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석했고 독립운동 사적지 보호에도 앞장섰다"며 "우리의 기둥이었다"고 애도했습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과 두 딸이 있습니다. (사진=흥사단 홈페이지 캡처, 국가보훈처 제공, 연합뉴스)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658323&plink=ORI&cooper=NAVER&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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