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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l 16. 2022

이어도 시인

- 이어도공화국 3






이어도공화국 3

- 이어도 시인  



             

이어도라는 이름을 가진 섬은 세 개가 있어요

하나는 섬나라이고 둘은 암초라고 할 수 있어요

나도 어쩌면 하나의 섬이니 네 개라고 할까요

한국과 중국 사이에 아름다운 섬나라가 있어요

나는 바로 그 아름다운 이어도공화국에 살아요

그 이어도공화국 양쪽에 암초 두 개가 있어요

하나는 한국에 가깝고 하나는 중국에 가까워요

하나는 이어도종합해양과학기지가 세워져 있는데

또 하나는 아직도 물속에 잠겨 있어서 잘 몰라요

중국 사람들은 자신의 이어도를 아직 찾지 못해서

한국 사람들의 이어도를 자기 섬으로 착각하고 있어요

나는 가운데 섬나라에 오래 살고 있어서 잘 알아요

내가 사는 이어도공화국에는 설문대할망도 살고

영등할망도 살고 자청비도 살고 문도령도 살아요

내가 사는 이어도공화국은 사실 서천꽃밭이랍니다

꽃을 가꾸며 꽃으로 사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나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에 사는 이어도 시인

사람들에게 평생 로즈마리 향기를 나누어주는 시인

당신은 그런 이어도의, 이어도 시인을 알고 있나요

이어도공화국에서 범부채꽃으로 피어나고 있지요











범부채를 서양에서는 표범 꽃이라고 한다지. 호랑이나 표범이나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이 꽃은 호랑이나 표범 옷을 입었다는 이야기. 호랑이는 죽어서 호랑이 가죽을 남기고, 표범은 죽어서 표범 가죽을 남기겠지. 그런데 꿈을 부채처럼 활짝 펼쳤던 이 꽃. 죽어서는 무엇을 남길까? 늙기 싫다는 듯, 지기 싫다는 듯, 꽈배기처럼 젊음을 비틀어 짜내고 있네. 바람 속을 걷는 만행과, 하안거에 들어 참선까지, 용맹정진 수행 끝에 탁, 탁, 탁, 어깨에 떨어지는 죽비소리에, 깊은 한 소식 얻어 들은 듯, 마지막 가부좌를 깊이 틀고, 붉은 등신불처럼 아낌없는 소신공양으로 입적을 하는구나.


나는 늘 절에 사는 것도 좋지만 늘 절을 하고 싶다. 어둠 속 수국들이 벌써 시들고 있다. 가뭄에 이어 마른장마로 수국들도 갈증이 깊다. 산방덕이의 눈물이라도 얻어 마시려고 함께 간다. 머지않아 산방산 가는 길이 바다로 갈 것이다. 태고종 산방사와 원효종 산방산보문사 사이로 오른다. 돌계단이 어둡다. 오늘은 가로등이 모두 꺼져 있다. 용머리해안 쪽에서 올라오는 파도소리가 등을 밀어준다. 숲 속 풀밭에 반짝이는 것들이 있다. 반딧불이인가 싶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생두부에 꽂아진 향들이 불타고 있다. 염불소리가 가까워진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산방굴사 앞 돌바닥에서 절을 하는 20여 명의 사람들. 많은 사람들은 지금 누구에게 절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산방산일까. 산방덕이일까. 부처님일까. 돌부처일까.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것들일까. 


나는 통성기도를 잘 못하고 함께 하는 절을 잘 못한다. 나는 한쪽 구석에 앉는다. 앉아서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 관세음보살이 되지 못하고 관음증 환자처럼 쪼그려 앉아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는 염불소리 속으로 들어간다. 만장굴 같은 염불소리 속, 관세음보살이 살고 있다는 보타락산까지 따라서 간다. 보타락산에도 산방굴사 앞 소나무 같은 그루터기가 있다. 그루터기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많은 길들이 보인다. 뿌리처럼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더 깊은 곳을 향하고 있다. 


낯익은 길이 하나 보인다. 따라가 보니 이어도 가는 길이다. 파도소리 사이로 염불소리가 잔잔해지더니 서서히 멈춘다. 염불을 마친 스님이 절을 한다. 돌부처님께도 절을 하고, 뒤로 돌아서서 절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절을 한다. 돌계단을 올라가 산방덕이 눈물이라는 약수도 떠서 먹는다. 염불 하던 자리로 다시 돌아와 옷을 벗는다. 승복을 벗는다. 일행인 듯 두 사람이 가사로 막을 치고 장삼을 벗는다. 염불 하던 스님은 사라지고 등산복 차림의 여자가 나온다. 자정이 넘어서야 나는 겨우 산방덕이 눈물 한 잔 마신다. 부처님 눈에도 졸음이 가득하다.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온다. 부처님 앉아계신 자리에서 보니, 낙석방지용 철그물망이 앞을 가리고 있다. 바다와 하늘이 모두 그물에 걸려 있다. 나는 그물을 빠져나와, 해수관음상과 약사여래가 있는 적멸보궁에서 홀로 절을 한다.


다음날 나는 다시 산방산으로 간다. 요즘 아파트에 새 옷을 입힐 때, 밧줄 대신 고가 사다리차를 타고 하는 모양이다. 페인트 냄새 때문에 창문을 열 수 없어 길을 나선다. 어젯밤처럼 산방산으로 다시 간다. 밤에 보는 산방산과 낮에 보는 산방산은 다르다. 밤의 나와 낮의 내가 다르 듯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이 무더운 날씨에 모래를 지고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빈 몸으로 올라가도 땀이 홍수를 이룬다. 길이 막힌다. 능소화도 손에 밴 땀으로 자꾸만 미끄러진다. 포대화상을 기어올라가는 아이들도 미끄러진다. 낮에는 파도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뒤돌아보면 용머리도 송악산도 조용하게 침묵 속의 바다로만 간다. 


용머리해안은 제주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땅이다. 곁에 있는 송악산은 최근에 생겨난 젊은 화산이다. 최초의 세 번의 화산 폭발이 용머리를 만들었고 네 번째 화산 폭발이 산방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먼 훗날 한라산이 태어났고 여러 오름들이 다투어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니까 제주도의 가장 큰 형님이 용머리와 산방산이다. 송악산과 비양도는 가장 최근에 생겨났으니 그야말로 막내인 젊은 청춘이다.


사람들은 자꾸만 재미있는 전설을 만들고 싶어 한다. 먼 옛날 한 사냥꾼이 사슴을 사냥하러 갔다가 한라산이 높아 실수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건드렸다. 화가 난 옥황상제가 한라산의 봉우리를 뽑아 저 멀리 던져버렸다. 그렇게 던져졌던 봉우리가 산방산이고 그때 뽑혀 패인 자리가 백록담이 되었다고 한다. 백록담과 산방산이 조면암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들이민다. 산방굴사 입구에는 보살님과 처사님이 나란히 앉아있다. 처사님은 너무 깊이 기도를 하시느라 움직임도 없고 보살님은 요즘 손님이 너무 없다며 나를 붙들고 한참을 하소연한다. 수호신이었던 소나무가 잘리고 천장에서 바위가 떨어진 후부터 믿음이 깊었던 신자들의 발길은 뚝 끊기고 떠돌이 관광객들만 가끔 온다고 투덜거린다. 산방굴사는 소속이 없으니 누구라도 기도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낮에는 먼저 자리 잡은 처사님과 보살님을 먹여 살리시고 밤에는 스님이나 무속인들이 자기 신자들을 데리고 함께 올라온다고 한다. 산방굴사 앞에서 600년을 지켜준 소나무가 몇 년 전 떠나고 이제는 아예 산방굴사 안으로 들어와 지키는 나무 한 그루. 흙 한 줌 보이지 않는 바위를 뚫고 나온 천선과나무 한 그루. 오늘도 부처님 곁에서 바람의 염불을 하고 있는 저 나무 한 그루. 협시불, 관세음보살일까. 대세지보살일까. 아니면 지장보살일까.


나는 산방굴사에서 엉뚱하게 시인에 대하여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은 시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인이라는 직업은 참으로 좋은 직업이다.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직업이다. 그런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시는 돈이 되지 않아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직업이다. 어쩌면, 그 지독한 가난 때문에 아름다운 직업인지도 모른다. 시(詩)는 언어()의 사원()이며 사원()의 언어()라고 말을 할 수도 있다. 사찰의 범종소리거나 풍경소리가 될 수도 있고 염불소리나 목탁소리도 시가 될 수 있다. 기도소리뿐만 아니라 절 마당을 지나가는 바람소리도 시가 될 수 있고 절을 감싸주는 숲이나 절 마당의 하늘과 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이나 그림자도 시가 될 수 있다. 신들은 참으로 많은 곳에 시를 보물처럼 숨겨두었다. 자연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아름다운 시들을 숨겨두었다. 우리들의 보물 찾기는 영원히 끝이 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시를 써서 먹고사는 시인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인들은 시를 쓰기 위하여 가난을 밥으로 먹으면서 평생 가난의 자식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 많은 시인들 중에서 나는 오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희덕 시인을 만났다. 포도주를 좋아하고 우유를 싫어한다는 나희덕 시인. 우유를 좋아하고 포도주를 싫어하는 이어도 시인. 나희덕 시인은 말을 참 따뜻하게 잘한다. 이어도 시인은 말을 참 못 한다. 나는 예쁘고 똑똑하고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나희덕 시인을 참 많이 좋아한다. 그는 나에게 친구라고 말을 하지만 나는 그를 존경한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시인 친구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 존경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며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늘 나를 말없이 가르치는 사람들이 좋다.


요즘에는 육지에 사는 시인들이 제주도에 많이 오는 것 같다. 제주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한 것 같다. 내가 제주도에 처음 들어올 당시에는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시인들 뿐만 아니라 참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좋아하고 제주도에 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세상은 이렇게 늘 변하고 사람들 마음 또한 세월에 따라 많이 변하는 것만 같다. 아마도 이정록 시인도 내가 사는 화순리에 온 것만 같다. 화순리 곶자왈에 온 것만 같다. 이정록 시인의 페이스북에서 짧은 멘트와 함께 쓰러진 시 팻말을 세우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그 짧은 글과 사진을 보면서 이정록 시인도 참 마음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덕분에 화순곶자왈에 시 팻말을 세우고 곶자왈에서 시 낭송을 하던 옛날이 떠올라서 엷은 미소가 번지기도 하였다.  


이정록

"화순곶자왈에서 땅바닥에 스민 핏물과 한숨을 들이키던 김남주 시 팻말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간혹 스스로를 칭찬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 쓰리고 짠한, 다음입니다. 처음 저 시를 고르고 준비한 마음을 기리고 싶습니다."


강산

"마음 쓰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도 자주 가서 보는데 안타깝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자꾸 일으켜 세웠는데, 한 편의 시가 곶자왈 나무들의 거름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요즘에는 그냥 두었습니다. 좋은 기회가 다시 오면 습기 많은 화순곶자왈에 잘 어울리는 시화를 다시... , "







https://cafe.daum.net/sanbangsan/P72o/177


20110903 - 오후, 곶자왈 생태숲 시화 전시 (daum.net)


20110904 - 아침, 곶자왈 생태숲 시화 전시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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