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도공화국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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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마다 아주 생생한 꿈을 꾼다
그 생생한 꿈은 과연 누구의 삶일까
장자도 어쩌면 나처럼 꿈을 많이 꾸었을 것만 같다. 장자의 나비의 꿈이 어쩌면 나의 이어도의 꿈이 될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꿈속의 이어도를 꼭 이 지상으로 옮겨 놓아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내 필생의 삶이고 나의 유일한 꿈이다. 지금 이어도공화국 베이스캠프에 장자의 나비가 날고 있다. 이어도는 나의 꿈과 나의 삶을 이어 줄 것이다.
강산 2021년 7월 22일
태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늘도 없었고 땅도 없었고
하느님도 없었고 말씀도 없었다
물론 태초라는 말도 없었다
빛도 없고 어둠도 없는 허공에
아무도 모르는 씨앗 하나가 생겼다
그 작은 씨앗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었다
처음은 그렇게 하나로 시작되었다
하나의 껍질을 벗으니 둘이 되었고
둘은 다시 하나가 되어 넷이 되었다
어느 날 느닷없이 하늘이 생겨났다
하늘은 텅 빈 없음이니 없음이
자꾸만 무엇인가를 낳기 시작했다
먼지를 낳고
바람을 낳고
어둠을 낳고
별과 달과 지구를 낳고
뜨거운 태양을 낳았다
하나가 둘이 되면서 빛과 어둠이 생겼고
둘이 넷이 되어 동서남북을 낳아 길렀다
그렇게 세상은 생겨나서 팔방으로 퍼졌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뜨거웠다
너무 뜨거운 세상에
구름은 물이 되어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물과 흙은 생명을 낳았고
생명들은 물에서 흙으로
흙에서 허공으로 퍼졌다
세상에 태어난 것들은
따뜻함을 중심으로 모였다
손에 손을 잡고 돌기 시작했다
따뜻함은 가득한 사랑이니
사랑은 사랑을 낳아 길렀다
세상은 그렇게 사랑이 되었다
사랑은 시간을 만들고
시간은 인간을 낳았다
인간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신들을 낳았다
공간이 만든 신들은 죽고
인간이 만든 돈이 빛났다
신들의 시대는 지나가고
인간의 시대도 지나가고
화폐의 시대도 지나가고
지구는 병이 깊이 들었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제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거나
메타버스를 타고 가상공간으로
너나 나나 서둘러 떠나가고 있다
인간이 만든 신은 죽었고
스스로 신에 등극한 돈은
아직도 인간을 지배한다
하지만 나는 다시
신과 사람과 동물과 식물과 풀과 나무와
삶과 죽음이 함께 사는 생명의 나라를 만든다
내가 오래도록 꿈꾸던
이어도공화국이 드디어 첫 발을 내딛는다
인간들만 모여 사는 도시를 떠나서
숲으로 간다
신과 사람과 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숲이 되어 숲으로 살아간다
강산 2018년 7월 22일
나는 나무 심을 때
가장 행복하다
복숭아나무와 사과나무 심었다
젖꼭지나무 곁에 심었다
죽은 나무를
화분에 심어서
겨우 살려낸 나무들이다
이제 다시 자리를 잡아주었다
올 봄에 씨앗 뿌린 야자수 싹이 많이 나왔고
몇 년 전에 한라수목원에서 받아온
구상나무는 아주 천천히 자란다
부디 잘 살아주면 좋겠다
나무를 심고
곁에 있는 해수욕장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돌아왔다
화순 물은 여름에도 너무 춥다
월라봉 단애
낭떠러지 아래
혹은
벼랑 아래
파도와 함께
길을 걷는다
절벽이라는 말
바위를 깎아세우는
서늘한 물줄기
나를 일으켜세우는
당신의
시원한 말 한 마디
백합
해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