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산 Jul 27. 2022

고구마꽃

― 이어도공화국 15






고구마꽃




고구마꽃이 피었다

고구마꽃이 젖을 물리고 있다

꼬리박각시나방이 젖을 빨고 있다

고구마가 땅 속에서 젖을 준다

땅 속에서 어머니는

아직도 나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창작실《곡성》 



전국에 있는 빈 집들 수리를 하여

가난한 작가들 창작실로 써도 좋고

지친 사람들 무료 쉼터로 써도 좋고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으로 써도 좋고

여러가지 활용방안을 생각해 봅니다

저도 늘 비어있는 집이 하나 있습니다



     





전남 곡성군 삼기면 원등리 957번지

제가 중학생 시절까지 살았던 집이 있는 곳입니다

바로 집 앞에 삼기천(섬진강으로 이어짐)이 있고

징검다리가 있고

호남고속도로가 있고

제가 태어난 월경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오랫동안 이 곳에 가지 못했습니다

도저히 갈 수 없었습니다

2013년 6월 3일

겨우 용기를 내어 갈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저를 가장 슬프게 하는 글 입니다

이 글은 어머니의 마지막 글입니다

아마도 병원을 몰래 빠져 나오셔서

고향집에서 농약을 마시고

그 농약이 온 몸으로 퍼지는 순간에 쓰셨을 것입니다

신음소리가 새어나갈까봐

수건을 입에 물고

치아가 다 으스러지도록 입을 앙다물고 쓰신 듯 합니다

자식인 저는 평생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사망 진단서 대신

시체 검안서를 읽으며 온 몸으로 울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2006년 2월 26일 20시 54분



2007년 04월분 전기요금 고지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께서 떠난 이후에도 전기는 한동안 들어왔나 봅니다

어머니는 머리카락이 엉덩이까지 내려왔었다고 하셨습니다

오빠와 언니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은 막내딸 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딸막 이라고 하셨습니다 



맨 앞에 보이는 슬라브 건물은 오랫동안 구멍가게였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집도 없어서

빨래비누, 세수비누, 바늘, 동정, 검은고무줄, 애기고무즐, 이태리타울, 비누곽 등등

커다란 미원박스에 생활용품들을 담아 이고 다니시며 팔아야만 했던

도붓장수 였습니다

그러다가 새마을운동 일환으로 마을 회관에 함께 지었던 구판장을 하다가

구판장을 못하게 되자

화장실 자리에 슬라브 집을 짓고 구멍가게를 하시다가

바로 그 가게 방에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집을 비워 방치해 두었더니

대문은 멀쩡한데

집 안의 물건들은 누군가 다 털어가버렸습니다



빈 집에도 이렇게 새 이름표가 붙어 있습니다



옆집도 다 헐리고

쭈욱 늘어선 정자나무 무성한 놀이터였던 자리에

정자나무는 늙고 새로운 정자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집 바로 앞에 있는 정자에는 텔레비젼까지 갖추어져 있습니다



가게 건물 옆

아래채 벽이 위험해 보입니다



아래채 옆

창고 벽은 이미 무너져 있습니다

빨리 정리를 해야 할 듯 합니다



슬라브집 지붕에서 본 본채 지붕입니다

집터가 워낙 좁아서

마당이 너무 좁고

텃밭 없는 것이 흠입니다



슬라브집 지붕에서 본 정자 지붕입니다

구멍가게 지붕과 정자 지붕이 닿을 듯 가깝습니다



가게 건물 내부 모습 입니다

앞에 보이는 작은 탁자는

가게방 앞에 있었던 것입니다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는 술상입니다

주 안주는 김치와 기름소금이었습니다

주로 아버님께서 술을 마시던 술상입니다

저물녁이면 늘

아버님의 얼굴로 붉은 해가 떠올랐습니다

다행히 술상은 돈이 되지 않았는지

고물장수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가게 바닥에 전기요금 고지서가 있었습니다



형제들도 저와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1년 넘게 전기 들어오다가 지쳐서 끊겼나봅니다



광주에 살고 계신 누나와 함께 집을 둘러보고 알아본 결과

아직도 집은 어머니 앞으로 있었습니다

누나와 형님들과 동생에게 연락하니 나에게 관리를 하라고 합니다

그냥 아무 조건 없이 내 앞으로 상속을 하고 내 마음대로 쓰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큰형님 앞으로 가야할 것 같아 큰형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냥 저에게 쓰라고 합니다

그래서 형제들 모임 총무인 막내와 의논한 결과

부모님을 위한 형제들 모임 통장으로 5백만원 입금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형님들과 누나들은 돈 받는 것을 극구 사양하시지만 그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저도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 것 같습니다 



곡성군청에 갔습니다

곡성군 기차마을에서 장미축제가 있었습니다

22세기 약속의 땅 곡성군

기차마을이 있는 곡성군

심청이 마을과 섬진강이 있는 곡성군

여기에서 저는 다시 문학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너무 멀리 돌아서 온 것 같습니다



곡성군청이 정겹게 느껴집니다



등기소까지 들러 왔습니다

서류정리는 천천히 해도 된다고 합니다



아마도 저번 태풍에 창고 담장이 무너진 것 같습니다



집터는 좁아도 최대한 활용한 집이기 때문에

안쪽 내부는 상당히 넓습니다

방이 4개 이상 나올 것입니다

천천히 수리할 생각 입니다

가게방은 심야전기 난방설비가 잘 되어 있어

전기공급만 재개되면 바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방을 먼저 정리하고 도배해서 사용하면서

나머지도 고치면서 글을 쓸 생각 입니다



아마도 저는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창작 작업실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빌려줄 생각 입니다

또 누가 압니까

이 작은 창작 작업실에서 세계적인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을지......,

주위 여건으로 보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좋은 인연을 꿈꾸어 봅니다



집 바로 앞에 있는 정자도 잘만 활용하면 좋을 듯 합니다

저 뒤에 보이는 분들은 누나와 매형 입니다



정자 바로 앞으로 삼기천이 흐르고

옛날에는 흐르는 물도 많아서 징검다리가 있었습니다

징검다리 건너

뚝 너머에 우리집이 있었습니다

뚝을 넘으면 월경리 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어릴때부터 오리를 많이 길렀습니다

제 시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징검다리의 주요 배경이었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뚝이 넘쳐 회관으로 피난을 가야만 했습니다



불가피하게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다음에 혹시 사용하시고 싶은 분들은 저에게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비밀번호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곡성 창작실 상머슴 이어도 연락처  : 010-2693-5597





징검다리



하나


길이었다 덜 자란 몸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어머니는 방물을 파셨고 새벽 샛강의

입김 자욱한 안개 속으로 떠나시곤 했다

나는 담장 밑에 펼쳐놓은 꼬막껍질에

쑥국 끓이기 놀이를 하며 자랐다

노을만 어렵게 어렵게 감아 들이던

바람개비가 스스로의 바람결을 가늠할 수 있을 때

물오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파랑 간짓대 들고

오리 떼를 몰아내던 골목이 심하게 흔들렸다

어머니 뒷모습을 지우던 안개 속으로

하얀 꽁무니가 사라지고

나도 그 속으로 따라 날아가고 싶었다




할아버지 산소가 보이는 징검다리 사이로 햇살이

주검처럼 부서지며 흘러갔다 하류에서

한 몸으로 몸을 섞기 위해 취로사업 나가신

아버지가 무너진 둑에 묻히고 작업복이 천수답

허수아비에 내걸리던 날도 나는 그 저수지 뚝에서

삐비 꽃을 뽑아먹고 돌아오는 길

가로수 구멍 속에 몇 개의 돌을 더 던져 넣었다

어머니가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줄도 몰랐다

그 해 여름 장마는 담장의 발목을 적셨고

두꺼비 같은 우리 식구들은

한밤중에 회관으로 기어 올라갔었다




학교 앞 코스모스로 기다리기를 즐겼다

하학종소리 사이로 보이는 형의 검정고무신 앞은

발가락이 먼저 나와 있었고 생활 보호 대상자

가족 앞으로 달려오는 옥수수 빵과 건빵

나는 그것이 좋았다 우리는 뿔 필통 속 몽당연필로

흔, 들, 리, 며, 징, 검, 다, 리, 건, 넜, 다,

끈이 풀리는 소리로 흘러가는 여울물 소리는

우리를 다시 묶어주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징검다리를 잘도 건너다녔다




수수깡으로 안경을 만들어 끼고 기차놀이하던

우리들은 그 새끼줄 속에서 자유로웠다

우리들의 기차는 징검다리를 비로소 건너다녔고

오후의 서툰 기적소리 울리며

동구 밖까지 나가 놀던 소아마비 동생은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못했다 찾다가 찾아보다가

어린 집배원이 된 큰 형도

동생의 소식은 가져오지 못하고 한 떼

건너가는 동네 아이들만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다



다섯


여울물 소리는 끈이 풀리는 소리였고

또 다시 묶이는 소리였다 방직공장에 취직했던

누이가 파란 눈의 아이를 보듬고 돌아와

빨래터에는 방망이질 소리가 잠들지 않았고

헛발 짚은 어머니는 물 속에 더욱 자주 빠지셨다

……………… 배고픔과 어머니 ………………

들판에 흐드러진 달맞이꽃 사이로 그렇게 어머니는

젖은 보름달을 이고 늦게 돌아오시곤 했다






연어의 종착역


곡성 고향집 바로 앞에
연어의 종착역 표지석이 있다
나는 연어가 되어
참으로 먼 길을 거슬러 올라왔다
나도 이제는
연어알 같은 붉은 새끼를 낳아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릎과 팔꿈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