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새로운 출발이길 희망하며
나의 새로운 다짐은 보름을 넘기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라며 조금씩 게을러지는 마음과
더 이상 이대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마음이 부딪히며, 잔잔한 물결처럼 내 안에 일렁였다.
나는 아직은 덜 말라 꿉꿉한 빨래 더미를 어깨에 이고 가는 마음으로 출근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집을 나와 늘 가던 길목을 따라서 지하철 역사 안의 늘 서던 위치에서 지하철을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동시간대에 출근하는 타인들이 시선 안으로 들어온다. 서로 모르지만 나는 어느샌가 그들을 ‘출근길 동지’라 여기게 되었는데, 이는 알 수 없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의 표정 없는 얼굴과 서있는 모습만 봐도 얼마만큼 피곤한지가 느껴졌고, 나 또한 그럴 때가 많았다.
지하철 안에서 업무 매뉴얼을 익히던 중년의 아저씨, 책을 읽는 사람들, 자격증 공부를 하던 최소 간부급 이상은 돼 보이던 시니어, 그리고 훔치듯 살며시 시선을 던지며 그 모습들을 찬찬히 바라보던 나.
순간 ‘나만 이 시간을 못 견디는 건가’ 싶다.
이런 회색빛 출근 풍경에서도 내 숨통을 탁! 틔게 해주는 순간이 있다. 유일하게 컬러 화면으로 전환되는 지점, 바로 지하철 바깥의 자연풍경이다.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다가도 이 구간만 다가오면 나는 바깥을 바라볼 준비를 한다. 비 오는 날엔 온통 안개로 뒤덮여 강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한파에는 강이 꽁꽁 언 모습을, 맑은 날에는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새들이 보이고 하늘도 청아하게 얼굴을 내민다.
가끔씩 운이 좋아 앉은 채로 창가에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이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엉겨 붙었던 감정들도 다림질하듯 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출근은 즐겁지 않은데, 출근길 풍경이 마음에 드는 아이러니한 일이란.
부디 이 풍경만큼은 내게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랐다. 무뎌지지 않기를 소망했다. 매일의 자연풍경이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듯이, 나의 매일 하루도 그저 어제와 같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이내 환승역에 다다르면 침묵을 깬 신호탄이 탕! 하고 울리는 것만 같다. 모두 다 내딛는 발걸음이 너도나도 지체 없다. 각자만의 가야 할 방향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발걸음 속에서 가끔 나처럼 어처구니없이 갈등하는 이들도 있다. 나도 모르게 짧은 순간에 멈칫하면서 내 발걸음이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여지는 순간은 당혹스럽다.
'어느 쪽으로 가야 더 빨리 갈 수 있을까?' 그래 봤자 출구는 두 갈래뿐이다.
'저쪽 에스컬레이터는 사람들이 몰리고, 이쪽 계단은 멀지만 사람들은 적으니 난 이쪽으로.' 이렇게 선택해봤자 도착하는 시간은 어차피 동일하다.
하지만 결국은 나도 그들과 함께 그 발걸음을 함께 하며 어쨌거나 저쨌거나 걸어간다. 어딘가 모르게 닮은 서로의 모습들 속에서 이상한 위로감을 받으며, 숨을 고르며 안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