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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pence Jan 14. 2022

글쓰기, 이게 대체 뭐라고.

글을 쓰는 게 두려운 시기가 있었다. 생각을 표현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겁이 나는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날 향해 고개를 내미는 이 감정들을 조심스럽게 포장하듯 돌돌 말아놓았다.

“나라는 사람에게서 나온 단어와 문장들은 과연 타당하고 오류가 없는 글이라 할 수 있을까?” 

때론 이런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렇게 글쓰기로부터 슬그머니 한 발자국 물러날 듯 말 듯, 뒷걸음질 칠 듯 말듯한 상태로 머물렀다. 그러고선 이내 반항이라도 하듯 “내 쪼대로 쓸 거야!”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됐다고 그래.”라며 주구장창 똘기 있게 쪼대로 써재낄 요량이었다. 그러기로 마음먹으면 글을 앞뒤 안재고 뭐가 됐던 호기롭게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 나는 그렇지 못한 인간이었다. 날 것 그대로의 생각과 이야기들을 껍질을 까듯이 드러내고 싶다가도 ‘아니야. 정제되지 않은 글은 어설플 수 있어. 좀 더 다듬어야 해.’ 라며 멈추었다. 내 글이 주관적이거나 감정적이어서 반대로 객관적이고 나름의 논리가 있는지 없는지 나조차 모르겠을 때, 그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표현과 수식어에만 많은 신경을 쏟기도 했다.       


글쓰기, 이게 대체 뭐라고. 


'이렇게 글쓰기에서 멀어질 수도 있는 거구나.' 싶었다.      


종종 브런치 알람이 내 글의 안부를 물어올 땐 가슴이 뜨끔했다. 내 글을 못 본 지 무려 180일이 지났으니 내 시선이 담긴 글을 보여달라고 말이다. 알림이 괜스레 반가운 건 1초 정도였고, 나는 “작가의 시선이 담긴 글”이라는 문구에 눈길을 주다가 이내 무심히 앱을 닫았다.     


도망가는 일은 쉬웠다. 마치 내가 언제 글을 쓴다고 했냐는 사람마냥 지내면 되었다. 글을 쓰는, 오래도록 글을 쓰며 살고 싶은 소망이 처음부터 내게 없었던 듯 일상을 보냈다. 출퇴근길의 지하철 안에서 표현하고 싶은 단어를 찾아내려 고민하고, 좋은 문장을 만들고 싶어 애쓰던 시간들은 사라졌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오직 독자로서의 행위만 남는 듯했다. 




그런데 머릿속엔 글들이 계속 제멋대로 돌아다녔다. 방향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단어와 단어는 자기네들끼리 뭉쳐졌다가 증발했다. 이따금씩 문장으로 떠올랐다가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도 했다. 어떤 단어는 내 마음속으로 소리 없이 녹아들었다. 그럴 때마다 메모를 했다. 글로 쓸 것도 아닌데 메모만 열심히 해놓는, 생각의 꼬리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내 모습이 나조차 어리둥절하면서도 오래된 습관이라 순간순간 자동화되는 행동이었다.(역시 습관은 무섭다.) 


돌이켜보니 여기저기 흩어진 생각들이 모여지는 시간, 그 생각들이 모여 다시 내 안에 응축되는 과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피하려던 마음 앞에 겨우 나 스스로를 데려다 놓았다. 내가 쓴 글이 혹여나 비난받을 까봐 겁이 났던 건 그만큼 내 글이 많은 공감과 동의를 받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도 그렇듯이 글이라고 왜 사랑받고 싶지 않을까. 또한 내 생각이 타당하고 온전한가라는 질문은 나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쓰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 쓰여진 글, 좋은 글이란 건 어쩌면 애초부터 답이 없는 증명을 하는 일과 같이 완벽함을 가장한 불완전함 일지도 모른다.




오늘 아주 오랜만에 브런치에 접속했다. 연결 계정이 기억나지 않아 잠깐 헤매었고, 알람 글을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나의 시선이 담긴 글이라. 늘 나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 어디든지 허투루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그 시선은 곧 내 세계의 일부이기도 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 사물을 바라보는 나만의 방식, 생명이 있는 모든 대상들의 가치와 사라져 가는 존재들에 대한 응시, 그곳에 온전히 나의 마음이 있다. 이 마음에 생각을 더해보고 글로 담아내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고, 해 나갈 수 있는 글쓰기일 것이다. 글쓰기를 멀리했던 시간 내내 덮어둔 말이 있다.


“글을 계속 썼으면 좋겠어요.”  


이 말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채로 내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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