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HA

#11. movie sketch

by Yearn


곧 괜찮아질 거야



영화 <원데이>에는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작가를 꿈꾸며 식당에서 서빙을 하던 앤 해서웨이가 어느 날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이런 말을 합니다.


"나 요새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그 말을 들은 짐 스케더스는 말합니다.

"25살엔 누구나 그런 걸 느껴."


<프란시스 하>는 바로 그 시절을 보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생의 커다란 변화를 앞두고 잃어가는 것들에 대해 서글픔을 느끼는 때. 사회에 내동댕이쳐지는 바로 그 시기입니다. 프란시스는 절친한 친구 소피와 함께 한 집에서 생활합니다. 그녀의 꿈은 훌륭한 무용수가 되는 것이지만 딱히 재능도 없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일상을 함께하는 룸메이트 소피 덕분에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갑니다. 같이 살자는 남자 친구의 말에 헤어져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소피는 그녀에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1100004.jpg <프란시스 하>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상황도 바뀌고 상대의 마음도 언제까지고 나와 같지는 않습니다. 소피는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프란시스를 떠납니다. 혼자가 된 프란시스는 소피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잊고 있던 현실적 문제들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둘이 살지 않으면 월세도 낼 수 없을 정도로 벌이가 없고 무용단에서는 단 한 번도 주역을 맡아본 적이 없는 무용수입니다. 프란시스는 이 모든 것이 소피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피와 함께 살았던 날들을 아름답게 포장하며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죠. 반면에 소피는 프란시스의 곁을 떠나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더 이상 매일매일 어울려 다니며 멍청한 짓을 하려 하지 않습니다.



1100003.jpg <프란시스 하>



프란시스는 홍상수의 향기가 느껴지는 인물입니다. 자신의 지저분한 생활방식이 얼마나 룸메이트를 질리게 했는지도 모르고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아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에게는 있지도 않은 일을 자신의 근황으로 꾸미며 센 척을 하죠. 한마디로 눈치 없고 계획성 없고 솔직하지 못 한 우리의 열등감이 반영된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남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것.


다른 사람과 나의 인생을 줄 세워 순위 매기지 않고 순수하게 나의 인생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영화 중반부까지 프란시스는 점점 더 궁지에 몰립니다. 무용단에서 임시 해고되어 새로 구한 집의 월세도 내지 못하고, 소피에게는 서운한 마음에 심한 말을 해 크게 싸웁니다. 되는 일이 없는 와중에 자기를 좋다고 했던 남자 룸메이트가 예쁜 여자와 데이트하는 장면까지 목격하고 나자 다친 자존심을 추스르기 위해 프랑스로 여행을 떠납니다. 나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죠.



1100002.jpg <프란시스 하>



충동적으로 떠난 프랑스의 첫날밤. 시차 적응으로 불면에 시달리던 그녀는 늦은 오후가 돼서야 겨우 일어납니다. 카드빚으로 출발한 여행의 첫날을 그렇게 날리고 프랑스 친구와도 연락이 되지 않자 결국은 혼자 파리 근교를 어슬렁거리는 것으로 여행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날 카페에서 조촐한 저녁을 먹던 프란시스에게 소피의 전화가 옵니다.


영화에서 프란시스의 성장은 소피와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프란시스는 굉장히 의존적인 인물입니다. 소피가 떠나자 새로운 룸메이트에게 그다음에는 동료 단원에게. 새로운 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기대고 의지하며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런 그녀의 곁을 소피가 떠났기에 프란시스는 방황하게 되었던 겁니다.



1100005.jpg <프란시스 하>



처음으로 홀로 서기를 시도한 프랑스 여행에서 소피와 전화로 화해를 하고 난 후, 프란시스는 현실과 조금 타협합니다. 숙소를 제공하는 모교의 행사 아르바이트에 참가해 돈을 벌기로 하죠. 무용만을 고집했던 그녀가 처음으로 현실적인 문제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초라한 몰골로 파티에 참석한 소피를 만나게 됩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우연히 마주한 소피의 삶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블로그 속의 소피는 너무나도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소피는 불만에 가득 차 있었고 남편과의 관계도 엉망이었습니다. 희한하게도 매정할 정도로 혼자 잘 살아가던 소피의 삶 역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질릴 정도로 찌질 해 보였던 프란시스의 모습이 오히려 안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적어도 자기 자신을 속이지는 않으니까요.


오랜만에 만난 둘은 서로의 우정을 다시 확인합니다. 소피는 술을 통해 이성이 마비되어야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깍쟁이였던 겁니다. 아침이 되고 술이 깨자 소피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옷을 반듯이 접어 정리하고 토한 쓰레기통은 친구에게 맡긴 채 평소 그녀의 모습대로 프란시스를 떠납니다. 이 일을 통해 프란시스는 한 발 더 자신의 인생으로 나아갑니다. 소피와의 관계 회복, 헤어짐은 영화에서 프란시스가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그녀는 변화와 헤어짐에 적응하며 성장합니다.


누구에게나 가장 아름다웠던 소중한 순간이 있습니다. 영원하기를 바랐던 순간이 변해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찌질하게 매달리는 순진한 사람의 이야기. <프란시스 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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