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ves Saint Laurent

#10. movie sketch

by Yearn


축제가 끝나고 난 뒤


영화 <이브 생 로랑>을 보게 된 계기는 순전히 예전의 기억 때문입니다. 예전에 한 패션 영화제에서 이브 생 로랑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다큐멘터리는 1부와 2부로 나뉘어있었는데 1부에서는 이브 생 로랑의 전기를 간략하게 보여주고 2부에서는(당시 살아있던) 노년의 이브 생 로랑이 패션쇼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1부는 평범한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지인들이 젊은 시절의 이브 생 로랑을 회상하며 핸섬하고 수줍어하는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했고 영화에 나오는 모든 내용이 간략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문제는 2부인데....


이렇게 진실한 다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연출자의 개입이 없었습니다. 이브 생 로랑이 디자인을 점검하는 작업 과정을 다루면서 상황 설명에 대한 자막이나 내레이션, 배경음악 한 번 없이 고요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뻗치기 촬영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편집도 거의 없었기에 삼십 분쯤 지나면 내가 그 공간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기분까지 들게 했습니다. (생생한 현장감이 있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참다못해 영화관을 나가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니 짐작이 가십니까. 다만 노년의 이브 생 로랑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젊은 시절의 모습과는 좀 달랐습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저택의 안락한 의자에서 한 손에 술잔을 들고 앉아 자신만의 런웨이를 만끽했죠. 이것이 작업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실제 런웨이 같은 화려한 무대는 아닙니다. 그냥 옷을 몸에 맞게 피팅한 모델들이 정적 속에서 걸어 나와 다시 들어갈 뿐입니다. 대화도 없고 음악도 없었습니다.)


노년의 그는 뭐랄까 아무 표정이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무덤덤한 얼굴로 자신이 만든 의상들을 확인하다가 아주 가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곤 했습니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고마워', '수고했어', '훌륭하네' 같은 짧은 감탄사뿐이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다큐멘터리 1부에서 보았던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현재 지독하게 고독한 모습으로 늙어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브 생 로랑>을 보게 되었죠.



1000003.jpg <이브 생 로랑>



그 인생의 결말을 알기 때문일까요 영화 속 이브 생 로랑의 젊은 시절이 화려하고 희망에 찰 수록 보는 내내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극 중에서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의 패션쇼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수줍음 많고 예민했던 이브는 무대 뒤에서 안절부절못합니다. 한껏 날카로워진 채 어쩔 줄을 몰라하죠. 쇼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성공의 조짐을 보입니다. 기뻐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떠밀려 수줍게 무대 위로 나가는 이브 생 로랑의 뒷모습에서 인생의 화양연화가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쇼가 끝나고 그는 점점 더 성공을 거두지만 더욱더 혼란스러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1000001.jpg <이브 생 로랑>



이브 생 로랑의 사랑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동성 연인이자 인생의 반려자였던 피에르의 헌신적인 사랑은 감동적인 이야기이지만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말하는 데 있어 사랑을 빼놓을 수 없기에 영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죠. <이브 생 로랑>은 인생의 권태로움 앞에 절망하고 좌절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부와 명성을 젊은 나이에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하강곡선을 그리는 그를 보고 있자면 점점 더 서글픈 마음이 듭니다.



1000006.jpg <이브 생 로랑>



그도 그럴 것이 이브 생 로랑은 디자인을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눈부신 재능으로 예술작품을 만들고 디자인을 통해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자 했으나 중년이 되어서는 쇼가 열리는 두 계절에만 행복해지는 사람이 되어 버렸죠.


저에게 이 영화가 슬프게 느껴진 것은 이브 생 로랑의 인생이 결국은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영화로 만든다면 가장 눈부신 시기는 극의 초중반에 끝나고 영화가 끝날 때 까지는 권태로움을 견디고자 노력하는 애처로운 모습만 남게 되지 않을까요. 영화는 바로 그 부분을 훌륭하게 그려냈습니다. 배우들의 호연과 물 흐르듯 흐르는 우아한 연출에 힘입어 인생이라는 비극을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1000005.jpg <이브 생 로랑>



그리고 모든 비극에는 고뇌하기에 아름다운 주인공이 있기 마련이지요. 이브 생 로랑이라는 인물이 주는 강렬함은 영화를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조각 같은 외모에 평생 행복을 모르고 산뜻한 불행한 얼굴, 그 속에 가끔 보이는 아이 같이 순수한 미소는 그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남들은 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을 혼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물론 이 영화의 주인공이 실제 이브 생 로랑은 아닙니다. 하지만 배우 피에르 니네이가 이브 생 로랑과 쏙 닮은 얼굴로 섬세한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유약하고 불완전한 그의 삶을 간접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본 다큐멘터리는 꽤 훌륭한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생각하면 할수록 다큐멘터리의 1부와 2부가 완전한 그의 인생이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 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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