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포매니악 vol.2

#09. movie sketch

by Yearn


1분을 위한 2시간


<님포매니악 vol.1>은 하나의 영화로 보기에는 조금 완성도가 떨어졌습니다. 아무리 시리즈 영화라고 하더라도 전반부까지도 못 가고 도입부에서 그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황한 배경 설명에 지나지 않았죠. 저번 포스트에 썼듯이 2편을 보지 않고는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 편의 영화가 아닌 다음 편을 위한 영화였습니다.


<님포매니악 vol.1>은 꽤 흥미로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성욕이라는 것에 이성적으로 접근해보려는 노력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2편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기대도 많이 했고요. 하지만 2편을 보고 난 뒤 솔직히 쫌 질렸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된 내용입니다.




님포매니악은 사랑과 욕망에 대해 다루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세상에 태어난 인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영화입니다. 마케팅이 엇나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홍보된 내용과는 많이 다릅니다. 신체의 은밀한 부위를 전부 공개하는 것은 사실이긴 합니다만 성기노출은 너무 잦아서 매번 놀라기 머쓱할 정도입니다. 평소에 잘 볼 일이 없는 신체부위의 클로즈업은 물론, 사람의 항문에 저렇게까지 털이 많은 거구나라는 깨달음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포스터의 "보여줄 수 없는 걸 보여주고 싶다!"라는 문구가 조금 색다르게 다가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정말로 볼 수 없는 추상적인 관념을 보여주겠다고 한 것이었나 싶어요.



0900004.jpg <님포매니악 vol.2>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원동력은 여자 주인공 '조'가 나는 님포매니악으로 태어났다.라고 주장하는 부분인데 오르가슴에 종교적 의미까지 더해가며 나름 위트 있게 사람은 타고난 성질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살롯 갱스부르의 기운 없는 연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왔다 갔다 하는 시간 대의 차이 때문일까요. 2편의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억지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특히 현재의 이야기에서 소재를 얻어 회상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장면들은 1편에서는 나름 신선하게 다가왔지만 2편이 되자 무리하게 끼워 맞춘다는 인상을 주고 심지어 왜 저런 설정을 택한 것일까? 하는 의문마저 듭니다. 조가 들려주는 과거의 이야기도 워낙에 맥락이 없다 보니 이음새가 헐거워질 무렵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억지로 연결고리를 만들고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에요.



0900002.jpg <님포매니악 vol.2>



영화는 누가 뭐래도 관념의 산물입니다. 게다가 정교하게 다듬어진 결과물이죠.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그 어떤 창작물보다도 추상적인 생각의 잔가지를 많이 거두어낸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시간, 자본, 인력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다듬어진 계획 없이는 잘 만들기는커녕 끝까지 완성하는 것조차 무리일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다 보면 만든 사람의 상태가 드러난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님포매니악>은 머릿속이 복잡한 감독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타고난 본성에 대하여 이런저런 견해를 드러내지만 중구난방에 엉망진창입니다. 그 절정을 드러내는 것이 마지막 장면인데요. 마지막은 굉장히 강렬합니다. 님포매니악의 이야기를 다 들은 셀리그먼(동정의 남자)은 당신의 이야기 주인공이 남자였다면 그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이 여자라는 이유로 더 큰 고통을 받은 것이다라고 말하며 뜬금없이 영화 전체를 성차별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그 장면은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그 장면 이전의 모든 내용이 그것과 상관이 있었을까? 싶어서 당황하게 됩니다. 특히 vol.1에서 우마 서먼이 등장하는 장면을 말하면서 그 상황도 당신이 남자였더라면이라고 하는데 도통 무슨 소린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돕니다. 그렇게 억지스러운 마무리가 끝나고 나면 셀리그먼은 자신의 침실로 돌아가고 조는 자기반성과 함께 희망찬 내일을 꿈꾸며 침대에 눕습니다. 그때 하의를 벗은 셀리그먼이 성기를 드러내며 다시 방에 들어와 조를 강간하려 하죠. 조는 사람을 죽이지 않아 너무 다행이라고 했던 (자신의 후계자와 사랑에 빠진 전 남편을 죽이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그 총을 꺼내 들어 셀리그먼을 향해 쏩니다.



0800001.jpg < 님포매니악 vol.1>



굉장히 인상적인 엔딩이었으나 뜬금포인 것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 장면 하나를 위해 그 지루한 시간을 견뎌 온 것인가 싶어 허탈하기도 했고요. 굳이 두 편으로 나눌 필요는 있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쓰고 나니 최악의 영화인 것 같기도 한데 사실은 영화 내에 좋은 장면들도 많습니다.


특히 저는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과 조가 자신의 나무를 발견하는 장면이 가장 좋았습니다. 한쪽으로 잔뜩 치우쳐져 있는 나무를 보며 균형 잡힌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었던 조의 인생이 느껴졌어요. 나무도 빛과 그늘, 다른 나무들의 가지를 피해 여러 모양으로 자라듯이 사람도 그냥 수많은 나무 중 하나처럼 그렇게 조금 휘어버린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0900003.jpg <님포매니악 vol.2>



조의 인생을 보고 있자면 답답하고 짜증 나기도 하지만 의외로 싫지는 않습니다. 그건 아마도 그녀가 허영과 허세는 있을지언정 위선이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모자란 자신의 모습까지 받아들이려 하는 모습에서 묘한 감동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욕망을 채워야 하는 명확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 약점이네요.


그럼에도 끝나고 드는 혼란스러운 기분만큼은 그 어떤 엔딩보다도 강렬합니다. 영화 만듦새의 문제이기도 하고 엔딩 장면 자체의 강렬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혼란스러운 건 영화 속 두 인물에 대해 영화가 끝난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두 편에 걸쳐 그들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한 순간에 그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엔딩의 신선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vol.2를 보고 나서 영화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졌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라스 폰 트리에의 도련님 노선이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특정 장면에서 아프리카 계열 흑인 두 명과 관계를 맺은 이야기가 끝나고 흑인을 니그로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정치적이라느니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느니 자신의 극단적인 세계관을 과시하며 민주주의를 운운합니다.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는 알겠지만 (민주주의를 사용하기에 인간은 너무 멍청하다는 이야기도 백번 공감합니다.) 그 부분만큼은 칸에서 경솔하게 나치 발언을 내뱉었던 라스 폰트리에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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