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movie sketch - 슈퍼스타의 서막
이토록 사랑스러운
슈퍼스타
저는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한 번은 슈퍼스타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누가 뭐라 해도 미디어의 시대입니다. 일어나니 스타가 되어있었다는 말이 더 이상 놀랍지 않을 정도로 매일 같이 스타가 탄생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타를 동경하면서 동시에 우습게 여기기도 합니다. 너무 많은 데다 금세 빛을 잃고 사라져 가니까요.
그중에서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을 지닌 슈퍼스타의 조건이 무엇일까.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전 세계적인 인지도입니다. 그 사람의 얼굴이 박힌 티셔츠를 입었을 때 누구나가 아는 그런 유명세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슈퍼스타라고 한다면 조롱의 대상이 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치인들이나 범죄자들도 슈퍼스타가 되니 그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누구나가 인정하는 공로나 실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가수라면 음악성, 배우라면 연기력. 사람마다 평가의 기준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런 개개인의 사소함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전문성 말이죠. 마지막으로 그 실력으로 만들어낸 것이 얼마나 오랜 기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가. 이것이 슈퍼스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현재에도 슈퍼스타라 칭하기에 손색없는 별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노인이 되어 죽고 사라진 후에도 그들의 영화나 음악이 남을지는 장담할 수 없죠. 세대가 계속 바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비틀스는 몇 안 되는 손에 꼽히는 슈퍼스타입니다.
<The Beatles:Eight Days A Week - The Touring Years>는 목적성이 명확한 영화입니다. <다빈치 코드>와 <뷰티풀 마인드>의 론 하워드 감독은 유명한 비틀스의 이야기들 중에서도 실제 그들을 공연에서 볼 수 있었던 1963년부터 1966년까지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냅니다.
가장 젊은 시절의 비틀즈를 보여주리라.
그것이 감독의 목표입니다.
이 시절의 비틀즈는 아티스트보다는 슈퍼 아이돌로 군림했던 시기입니다. 어딜 가나 미친 듯이 열광하는 소녀팬들을 달고 다녔고 자국인 영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사랑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하루아침에 벌어진 벼락스타 중 하나였습니다. 영화 안에서는 그 인기의 원인을 베이비붐 세대에서 찾습니다. 10대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시대에 비틀즈를 향한 그들의 열광은 커다란 움직임이 되었습니다. 그 전 세대를 위협할 정도로 말이에요. 이처럼 폭발적인 반응은 이전에도 후에도 없었던 일이죠.
하지만 그 시간 동안 그들은 굉장히 피폐해져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당시의 비틀즈는 노래 제목처럼 일주일에 8일을 개처럼 일하는 혹독한 시절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몇 년간 쉼 없이 투어를 돌면서 사실은 마음속이 텅 빈 채로 무대에 올랐다고 합니다. 존 레넌이 부르는 <Help>는 실제로 그의 처절한 외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그들이 가장 즐거워했던 시간이 곡을 만들고 녹음하는 시간이었다는 사실은 비틀즈가 어떻게 시대의 아이돌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 뮤지션이 되었는지를 알게 해 줍니다. 코멘터로 등장한 프로듀서 중 한 명은 곡을 만든 숫자에 비례해 완성도를 따졌을 때 바흐 다름으로 훌륭한 곡을 많이 남긴 음악가는 비틀즈일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영화는 당시 비틀즈의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여주고 살아있는 멤버들의 인터뷰로 내용을 보충합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비틀즈의 팬이었던 유명 인사들이 코멘터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와서 비틀즈가 얼마나 유명한지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피 골드버그나 시고니 위버가 코멘터로 나와 비틀즈가 나의 삶에 준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스타의 스타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습니다.
비틀즈가 그들의 영향력을 사용한 방식을 보면 왜 그토록 사랑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공연장에 인종차별의 문제가 불거지자 비틀즈는 기자회견을 합니다. 만약 흑인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차별이 있다면 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죠. 코멘터로 나왔던 우피 골드버그 역시 자신은 흑인으로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었지만 비틀즈의 공연 안에서는 모두가 하나가 됨을 느꼈다고 인터뷰했습니다. 젊은 세대를 대신하여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주는 네 명의 청년에 전 세계가 반응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비틀즈는 큰 사랑을 받는 만큼 개인의 삶이 전혀 없는 시간을 보냈기에 서로를 의지하고 형제처럼 지냈습니다. 비틀즈 팬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것 중 하나는 아마도 굉장히 사이가 좋은 폴과 존 레넌의 모습일 겁니다. 네 명의 멤버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끈끈한 동역자이고 큰 재능을 발휘했던 두 사람이 거물이 되어 멀어지기 전의 모습은 결말을 알고 있어 더 슬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존은 자신보다 재능이 있는 폴을 멤버로 들이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폴보다 나이도 많았고요. 폴이 자신의 재능을 점점 발휘하기만 하면 되었던 것과 반대로 존은 치고 올라오는 폴에 대해 자신의 위치를 지켜야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서로가 하고자 하는 음악도 달랐고요.
폴은 인터뷰에서 존과 자신은 형제 같았고 서로를 굉장히 깊게 이해하는 사이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머니를 일찍 잃었다는 공통점에서 커다란 공감대를 지니고 있기도 했고요. 하지만 같은 리버풀 출신임에도 폴은 유복한 가정환경이었던 것에 비해 존 레넌은 그렇지 못했죠. 이것이 둘의 간극을 좁힐 수 없었던 원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 영화가 완벽한 하나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크레디트가 다 끝난 후 20분간의 스타디움 공연 실황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가장 찬란했던 시절의 비틀즈를 만나고 영화가 끝나 애수에 젖을 즈음 그 시절의 비틀즈가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비틀즈의 스타디움 공연은 지금 돔 투어의 기원이 된 최초의 돔 규모 공연이었습니다. 당시 음향시설의 부족과 관객들의 함성으로 반주가 들리지 않아 폴의 엉덩이 흔드는 박자에 맞춰 공연을 했을 정도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스타디움 공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비틀즈의 무대는 볼 수 없게 됩니다. 존과 폴의 불화를 시작으로 형제애를 나누던 사이좋은 비틀즈의 모습은 사라집니다. 막 피어나기 시작했던 젊은 시절의 비틀즈는 모두에게 사랑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그들이 왜 그토록 사랑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의 찬란한 시기인 젊음을 누린 이들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치열한 시절을 보냈던 슈퍼스타 비틀즈의 서막을 다룬 영화. <The Beatles:Eight Days A Week-The Touring Years>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