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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arn Jun 14. 2018

컨텍트 : Contact

#20. movie sketch 


낯선 것을 향한
우리의 자세



영화를 통해 얻는 것은 다양합니다. 총싸움과 액션씬으로 쾌감을 얻을 수도 있고 잔인한 장르적 특성을 지닌 영화로 내면의 파괴 욕망을 해소하기도 합니다. 로맨스 영화를 보면서 잃어버린 연애 세포를 채우기도 하고 믿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허구의 세계를 통해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드물고 미래지향적인 영화는 체험의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VR시대를 맞이하여 극장가는 3D, 4D로 좀 더 리얼한 경험을 선사하고자 합니다. 1인칭 시점 영화로 화제를 모았던 <하드코어 헨리>는 매 순간 관객이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한다고 합니다. 스크린에 나오는 모든 장면이 관객인 '나'에게 말을 걸고 내가 영화 안의 설정에 참여하여 총격전도 하고 옥상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사랑도 이루어 나가는 그런 영화라지요.


이 진짜 같은 체험의 끝이 목표로 하는 것은 포르노라고 합니다. 집에서 VR기계와 TV 화면만으로 섹스가 가능하다니 이 얼마나 확장 가능성이 무한한 시장입니까. 안타까운 이야기죠. 그래서 저는 단순히 진짜 같은 경험만으로 어필하는 것은 영화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마치 있는 것 같은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지 어트렉션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었으면 합니다. <컨택트>는 전자에 포함되는 영화입니다. 잘 짜인 내용으로 정말 외계인을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해 줍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내용과는 조금 다른 체험의 영화입니다. (예를 들어 <그래비티>나 <스페이스 오디세이> 같은)



<컨텍트>



이 체험은 강한 설득력과 공감을 바탕으로 합니다. 강력한 동일시로 주인공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컨택트>는 초반부 외계인이 지구에 찾아왔다는 것을 관객이 느끼게 하는 일에 긴 시간을 투자합니다. 시작부터 꼴뚜기 모양의 외계인들이 지구를 활보하고 화려한 비행선이 상공을 가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외계인이 정말로 나타나 버렸다.'라는 상황에 인물들이 겪는 혼란, 공포, 경계심 등을 세밀하게 전달합니다. 



<컨텍트>



국가에서는 외계인의 언어를 해석하여 그들이 온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두 명의 전문가를 캠프로 불러들입니다. 지구의 지식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처음 본 외계 생물체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 이해란 의외로 간단합니다. 


적이냐 아니냐. 


이 영화가 SF보다 드라마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결국엔 소통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루이스가 외계인 앞에서 보호복을 벗는 장면은 자신을 먼저 드러내야만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보편적 진리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소통은 불신을 바탕으로 멈추어버립니다. 



<컨텍트>



<컨택트>에서는 언어학을 빌려 사용하는 언어대로 사고하고 행동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만약에 외국어를 오랜 기간 공부한다면 사고 역시 외국 문화를 기반으로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새롭게 등장한 외계 생명체에 대해 인간의 방식으로 밖에 대응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낯선 것의 등장은 언제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죠. 그것이 인간이 사고하는 방식이기에 햅타포드의 언어를 습득하지 못한 이들은 외계 생물을 이해하지 못하고 점점 적대적인 감정을 키워갑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을 뿐인데 말이죠. 



<컨텍트>



영화의 원제는 <Arrival> 도착입니다. 내용을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나라마다 제목을 다르게 개봉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컨택트> 일본에서는 <메시지>로 바뀌었다고 해요. 원제 <Arrival>이 매우 좋은 제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그래도 원제가 가장 적합한 타이틀이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새로운 생명체의 도착 후에 벌어지는 내용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그 도착에 새로운 연결을 이루어 내는 이도 있고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무책임한 일을 저지르는 대위 같은 인물도 있습니다. (대위의 행동은 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결정과 행동인 것 같아요)


<컨택트>는 체험의 영화입니다. 가상의 외계 생명체를 만나는 듯한 충격적인 경험이 가능합니다. 특히 햅타포드가 언어를 사용하는 장면에서는 온몸에 전율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컨택트>는 결국엔 새로운 것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 가를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생을 새롭게 이해하고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화합에 다다르고자 하는 메시지를 지닌 영화입니다. 



<컨텍트>



<컨텍트>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영화를 한 번 더 보시면 전체적으로 깔려있는 디테일한 복선들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말을 알고 보면 루이스라는 인물을 새롭게 이해하게 됩니다. 영화이론 중에 그런 게 있죠. 같은 표정의 인물을 어떤 상황에 놓으냐에 따라 보는 사람이 표정을 다르게 읽는다고 하는 '쿨레쇼프 효과'. 같은 표정의 얼굴을 놀이동산 뒤에 놓으면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보이고 폭력적인 장면의 뒤에 놓으면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읽힌다는 겁니다. 루이스의 표정이 당혹감과 그리움 두 가지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 감독의 뛰어난 연출이자 배우의 훌륭한 연기라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 인생도 더 높은 사고를 하는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르게 읽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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