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movie sketch
완벽하게 영화적인 순간
모든 예술의 시작은 아마도 사랑이야기였을 겁니다. 사랑이야기만큼 매력적이고 넓게 공감을 살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긴 여운을 남기는 멜로 장르의 종합세트 같은 작품입니다. 마치 <라라 랜드>가 모든 뮤지컬 영화의 계보를 이었듯, 멜로 영화의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의 전형적인 요소가 전부 스며들어 있습니다.
떠나는 기차와 한정된 시간 : <비포 선라이즈>
두 연인 사이의 나이 차이 : <연인, 캐롤, 로리타>
인물들이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 : <화양연화, 브로크백 마운틴>
그 외에도 비밀공간, 자연풍경과 물의 이미지, 10대의 첫사랑 등등. 클리셰의 총집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익숙한 것들을 정교하게 다듬어 깊이 있는 감정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인물들이 조금씩 가까워지며 천천히 관계를 쌓아갑니다. 어떤 감정이 발생하기 직전에는 오히려 사건을 지연하며 감정을 억누르죠. 긴 기다림은 관객에게 더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고 영화를 우아하게 만듭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예쁜 영화입니다. 배우, 음악, 풍경, 미술, 촬영 모든 요소가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단순히 예쁜 영화들은 많습니다. 특히 디자인에 능한 일본에 예쁘장한 영화는 차고 넘치죠. 하지만 미장센이 이야기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인위적인 영화가 됩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단지 예쁘기만 한 쁘띠 영화에 그치지 않고 강렬하게 관객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현실과 철저히 담을 쌓았습니다. 아들의 사랑을 아들보다도 더 이해하는 아버지와 상처를 준 엘리오가 슬퍼하자 따뜻하게 위로하는 여자 친구까지. (<몽상가들>의 루이스 가렐 여동생이라고 합니다.) 모든 인물들이 배려심과 애정이 넘치고 적극적으로 주인공의 사랑을 돕습니다. 이건 현실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저게 말이 돼?'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관객을 이야기 속에 완벽히 가둡니다. 완벽한 영화 경험을 하고 나면 관객은 이 작품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건 '갈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흔히들 첫사랑이 가장 강렬하다고 하죠. 아마 처음으로 타인을 간절히 원한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겁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첫사랑 영화의 마스터피스라고 불립니다. 누군가를 간절하게 원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다른 말로는 동경, 욕망, 열정 또는 미숙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퀴어무비는 멜로 장르와 잘 맞습니다. 멜로는 언제나 두 주인공의 결합을 어렵게 만드는 강력한 장애물이 필요한데 퀴어 무비는 그게 저절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막장드라마 속의 알고 보니 이복동생 같은 장치가 사용되는 건 사실상 남녀 멜로 장애물이 더 이상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내지 못해서입니다. 요즘 같은 자유연애 시대에 어떤 사연으로 젊고 예쁜 두 남녀의 결합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이 영화가 퀴어와 사회의 갈등을 다룬 내용은 아닙니다. 장애물은 단지 멜로 장르의 기본 조건을 갖추었을 뿐,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은 누군가를 갈망하는 소년의 바람이 꿈같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순간을 아름답게 그린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작품이 왜 그렇게 좋았을까 생각해 보니 두 인물이 무척 행복해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영화 속 두 인물이 끌리는 과정은 보편적인 사랑이야기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만큼 나를 좋아하는 상황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구나가 겪는 감정도 아니고 인생에서 한 번쯤 있을까 말까 한 순간이죠. 엘리오가 올리버의 언저리를 서성이는 방식, 가까워지기 시작했을 때의 행복, 길고 간절한 기다림. 끝나는 행복에 대한 두려움까지. 그래서 이들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은 이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엘리오 아빠의 대사처럼 그 순간들은 기꺼이 고통을 견딜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느끼게 하니까요.
아무래도 영화가 예민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보니 불편한 시선도 존재하는 거 같습니다. 무엇이든 다양한 의견과 이야기가 나오는 건 좋은 일이지만, 무결점인 인물이 나와 도덕책에 나올 법한 행동을 하는 건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불편한 시선이 나오는 건영화와 비슷한 현실 상황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위에도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너무도 현실감이 없습니다. 물론 대중문화는 영향력이 있지요. 하지만 아트관에서나 겨우 개봉하는 영화의 영향력이 얼마나 될까요? 일반 대중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평생 이 영화의 제목도 모를 겁니다. 영화는 이야기로 어떤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현실 미화라기보다는 이상향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상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꼭 필요하죠. 이 영화는 꿈꾸는 사람들에게 꽤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