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 오브 워터

#28. movie sketch

by Yearn


사랑의 원형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야심작 <셰이프 오브 워터>는 환상적인 이미지로 개봉 전부터 화제였습니다. 그의 최고작이라 생각하는 <판의 미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비주얼에 강한 감독입니다. 환상의 세계를 완벽하게 재현함으로써 현실성을 획득합니다. <판의 미로>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면을 해피엔딩이라고 느낄 수 없게 만들었죠. <셰이프 오브 워터>는 <판의 미로>와 조금 다릅니다. <판의 미로>가 동화를 가장해 참혹한 진실을 이야기했다면 <셰이프 오브 워터>는 적극적으로 현실을 피해 가는 어른을 위한 동화입니다.



2800009.jpg <판의 미로>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우주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청소부입니다. 그녀의 유일한 친구는 옆방의 중년 게이와 직장동료 젤다뿐입니다. 어느 날 연구소에 정체불명의 생물체와 그것을 감시하는 관리자가 들어오고 우연히 괴생물체와 마주친 그녀는 소문과 달리 순수한 그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2800003.jpg <셰이프 오브 워터>



<셰이프 오브 워터>는 영화의 부재(사랑의 모양)처럼 물의 이미지로 사랑을 표현하려 합니다. 물은 형태가 없기에 컵에 담으면 컵의 모양이 되고 병에 담으면 병의 모양이 되죠.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무한 가능성의 세계이자 신비로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엘라이자는 새로운 생명체와의 만남을 통해 세상의 기준이 아닌 진짜 나의 모습에 눈을 뜨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2800005.jpg <셰이프 오브 워터>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흔히 그러하듯 로맨스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남녀 간의 사랑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며 스스로 의미를 한정시켜버립니다. 괴생명체가 성기가 달렸네 어쩌네 하는 장면에서는 사실 쓴웃음이 나옵니다. 판타지를 통해 다른 종끼리의 사랑까지 가능하도록 해놓고 어째서 다시 작은 사랑의 관념으로 영화의 주제를 끌고 들어오는지 의아할 뿐이에요. 그래서 엘라이자의 헌신은 다소 감동이 떨어지고 필연적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2800006.jpg <셰이프 오브 워터>



또 하나의 영화를 방해하는 요소는 주변 인물들이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보안 관리자부터 박사, 도움을 주는 청소부 동료까지 그들은 오랜 기간 보아온 뻔한 인물들을 연기하고 있고 감정적인 교류 없이 기능적인 캐릭터로만 사용됩니다. 보안 관리자는 엘라이자가 괴생명체를 탈출시키고 난 후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때를 기다리는 건가 싶기도 했으나 실제로 그가 행동하기 시작했을 때 일이 얼마나 싱겁게 이루어졌는지를 떠올려보면 왜 영화가 뒤로 갈수록 힘을 잃는지 알 수 있습니다.



2800007.jpg <셰이프 오브 워터>



환상적인 이미지, 사랑의 원형을 보이고자 하는 아름다운 주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제대로 끌고 가지 못하는 서사의 부족함이 아쉬웠습니다. 빛을 잃어가던 영화는 마지막 아가미 탄생 장면으로 그나마 숨통을 틔워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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