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movie sketch
촘촘하고
허무한 결말
크리스토퍼 놀란은 현재 가장 핫한 감독 중 한 명입니다. 그 증거로 아직도 필름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이죠. 예전에 어떤 영화감독이 예능에 나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영화판에는 절대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는데 한쪽은 상업영화 한쪽은 예술영화라는 겁니다. 그리곤 <똥파리>를 만든 양익준 감독을 보며 저분은 상류에 계신 분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했죠. 어느 쪽이 상류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그 말에 상당히 공감했습니다. 영화처럼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데다 여럿이 만드는 종합 예술에 상업성이나 예술성 100%인 경우가 어디 있겠냐만은, 듣고 보니 처음 뿌리내린 곳을 벗어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비율이 조금씩 달라질 순 있겠죠. 하지만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걸 추구하는 창작자 특성상 강을 건널 정도로 성향이 바뀌진 않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양쪽 강을 왔다 갔다 할 뿐만 아니라 현재는 강 위에 서있는 것처럼 보여요. 흥행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 투자자와 평론가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희귀한 감독이죠.
놀란 영화가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중간지점에서 두 조건을 다 충족하는 건 강 건너 전혀 다른 두 관객을 모두 만족시키기 때문입니다. <다크 나이트>나 <인셉션>은 흔한 팝콘 영화처럼 소비되기도 하고 철학적인 주제로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것도 가능합니다. 놀란의 영화는 언제나 기존의 통념을 전복시키는 주제를 지녔고 그걸 단순한 서사와 복잡한 구조로 표현했습니다. 놀란을 작가주의 감독이라 부르기 망설여지는 건 그가 개성을 드러내는 방식이 서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이야기로 매끄럽고 세련된 감정을 보여주는 데 특화된 감독은 아니죠. 그의 작품이 일관된 맥을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일반적인 영화에 비해 완성도가 상당히 높다는 겁니다. 연출, 연기, 촬영 어디 하나 빠지는 데가 없는 작품을 선보입니다. 그런데 <프레스티지>를 처음 봤을 땐 이 작품이 그의 필모 중 눈에 띄게 완성도가 낮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한창 <식스센스> 열풍으로 반전이 유행하던 시절, <메멘토>로 연출력을 입증한 놀란의 반전영화 <프레스티지>는 주목도가 높은 기대작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죠. 반전 영화는 오프닝부터 결말까지 모든 씬이 반전을 완성하기 위한 재료입니다. 영화의 90% 이상이 마지막 5분을 위한 복선이죠. 하지만 <프레스티지>의 반전은 좀 더 특이합니다. 영화 끝부분에서 이야기가 완성되는 독특한 구조 때문에 마지막 장면을 보기 전까지는 주제가 무엇인지 감독이 뭘 말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알기 어려워요.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이 복선이지만 결말을 알기 전에는 그게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프레스티지>를 보는 관객은 어두운 동굴 밖으로 나가기 위해 스스로 벽을 짚어가며 출구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구조를 치밀하게 설계한 영화지만 보는 과정이 어렵고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거죠. 저는 이 영화를 한번 더 보고 나서야 놀란 감독의 계획을 알 수 있었습니다.
<프레스티지>는 촘촘하게 짜인 플롯으로 이루어진 영화입니다. 영화는 테슬라의 부지 앞에 복제된 모자들과 새장 속의 새들로 시작하죠. 이 두 가지는 주인공 보든과 엔지어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마술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접근 방식은 각각 달랐죠. 보든은 새장 속의 새처럼 보이고 싶어 했고, 엔지어는 복제된 모자들 중 하나가 되는 걸 택했습니다.
<프레스티지>는 젊고 야망 넘치는 인물의 드라마이자 예술가의 태도를 탐구하는 메타 영화입니다. 어떤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예술가의 집착은 때론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갑니다. 혈기왕성하고 경쟁심에 사로잡힌 두 사람은 최고가 되기 위해 상대방의 공연을 방해하고 트릭이 적힌 수첩을 훔치며 서로의 비밀을 알고자 합니다. 보든이 가장 뛰어난 마술사가 되는 자기 욕망에 집중했다면, 엔지어는 보든을 이기고 최고가 되는 경쟁관계에 집착했습니다. 영화는 욕망에 사로잡힌 두 예술가를 통해 진짜 같아 보이는 것, 즉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잃을 정도의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영화에서 가장 현명한 인물은 장비 책임자인 커터입니다. 커터는 처음부터 보든 마술의 비밀을 알았고, 엔지어의 욕망이 실체를 보지 못하고 망상을 불러일으킬 거라는 것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엔지어가 자기 망상을 실현시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엔지어는 보든을 이기기 위해 영혼을 팝니다. 예전에는 예술을 위해 손을 더럽혀야 한다는 '희생'에 회의적인 그였지만, 부인이 죽고 복수심에 사로잡히자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여자 조수를 스파이로 보내고, 보든의 측근을 납치해 땅에 파묻고, 결국엔 보든도 죽이고 말죠. 엔지어는 승리합니다. 그의 망상은 보든은 상상도 못 한 방식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엔지어는 보든을 죽이지 못합니다. 보든 마술의 비밀은 새로운 경지에 오르기 위해 트릭을 개발하거나 과학기술을 사용한 게 아니라 실제 두 사람인 쌍둥이가 한 명을 연기한 것이었기 때문이죠. 보든이 택한 건 정공법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는 물론 가족까지 희생시켜 가며 자기 삶 전체를 마술에 바쳤습니다.
깜깜한 동굴을 더듬어 나간 끝에 마주한 반전은 짜임새 있게 앞뒤가 잘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황당합니다. 일반적인 반전영화가 관객에게 뒤통수를 맞은 듯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면 <프레스티지>는 깊은 허무함을 안겨주거든요. 관객이 엔지어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거죠. 사실 영화의 반전은 이야기의 구조에 딱 맞아떨어집니다. 엔지어가 욕망에 눈이 멀어 있지도 않은 허상을 쫓다가 현실을 마주하는 그런 이야기이니까요. 그 허무함이 영화의 주제이자 철학이지만 그렇다 하기에 마지막 반전 장면은 너무나 감정적입니다. 영화를 완성해야 할 마지막 한 조각이 작품과 상관없이 홀로 삐져나와 반전을 위한 반전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클라이맥스로 느껴졌어요. 앞서 말했듯이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는 건 놀란 감독의 장기가 아닙니다. 완벽하게 구성된 영화에서 가끔 비치는 투박한 감정은 그의 전작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죠. 가장 최근작 <덩케르크>에서 마지막 5분이 별 하나를 빠지게 만든 것처럼요. 그래서 <프레스티지>는 교과서 같은 플롯 구성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완성된 퍼즐은 매력적이지만 맞추는 과정이 즐겁지 않거든요. 하지만 영화를 한번 더 보게 된다면 모든 씬을 복선으로 사용하는 연출 방식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명배우 크리스챤 베일은 한 명 같은 두 명의 쌍둥이 역을 완벽하게 표현합니다. 반전을 알고 영화를 보면 그가 나오는 대부분의 씬에서 누가 팰런이고 누가 보든인지 알 수 있어요. 상황상 알게 되는 것도 있지만 배우가 미세한 연기로 힌트를 주거든요. 두 번째 본 <프레스티지>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지만 감독의 명성에는 충분히 걸맞은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