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movie sketch
가장 작은 게
가장 큰 것
데미안 감독의 신작 <퍼스트 맨>은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에 관한 내용이자 '상실'에 대해 탐구하는 드라마입니다. 우주를 소재로 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광활한 풍경보다는 개인의 내면을 깊게 관찰합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로 바라본 우주는 더 신비롭고 넓게 느껴집니다. 보통 우주영화는 사람들이 가본 적 없는 곳을 보여주기 위해 공간을 표현하는데 집중하지만 <퍼스트 맨>은 조금 다릅니다. 이 영화는 대기권 밖의 풍경보다는 그걸 바라보는 인물의 감정으로 우주를 경험하게 합니다. 어떤 관객에게는 이런 방식이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가짜 우주를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생동감 있게 느껴졌습니다.
우주선 내부의 좁은 화면과 실제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흔들리는 화면 그리고 내부의 굉음은 굳이 4D로 관람하지 않아도 충분히 우주비행에 참여하는 느낌입니다. 데미안 감독은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당시 우주비행사들이 겪은 상황을 체험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무모하고 허술하게 우주로 쏘아 올려진 그들의 고독과 공포를 전달하고 싶었던 거죠. 그것도 아주 담백하고 경제적인 방식으로요.
감정선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퍼스트 맨>이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도 그럴게 주인공인 닐 암스트롱은 가벼운 소시오패스라고 해도 될 만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입니다. 영화 속에서 암스트롱의 아내는 학창 시절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안정적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그는 2차 대전에 참전했었고 어린 딸을 잃었으며 많은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안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너무 많은 죽음을 경험해 슬픔에 무뎌진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암스트롱은 상황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탐구하는 모범생형 인물입니다. 첫 번째 도킹 비행에서 실패한 그는 말합니다. '어디서 실수했는지 모르겠어.' 그 대사는 주인공이 평생의 트라우마로 안고 있는 딸의 죽음에 관해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는 딸의 병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분석했습니다. 딸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죠. 하지만 딸은 죽고 그는 삶을 더 높은 관점으로 바라보는 데 집착합니다. 그건 아마도 딸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깊은 상실감은 삶에 의문을 갖게 합니다. 영원히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 실수하지 않았는데도 비행에 실패한 것처럼 삶에는 이유 없는 불행이 찾아옵니다. 무엇 때문에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뭘까.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캐릭터 닐 암스트롱은 그가 겪은 상실감을 새로운 관점으로 극복하기 위해 우주비행에 집착합니다.
<퍼스트 맨>에 <그래비티> 같은 우주 영화를 기대하면 보는 내내 맘이 편하진 않습니다. ‘도대체 우주는 언제 나오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우주를 소재로 한 드라마입니다. <퍼스트 맨>에서 관객이 경험하는 건 <그래비티>와 같은 우주가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을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서 생생하게 느끼는 경험입니다. 60년대 분위기를 살린 자글거리는 화면과 유명 사진작가의 작품을 보는 듯한 조명, 홈비디오처럼 흔들리는 촬영 방식은 누군가의 지난 삶을 보는 듯합니다.
우주전쟁 시대에 어떻게든 달에 가야 했던 미국의 정치적 입장과, 희생의 결과를 봐야만 했던 암스트롱의 복잡한 감정은 묘한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그리고 달착륙 프로젝트가 커질수록 영화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달로 가고자 하는 암스트롱이 아니라 그를 보내고 남아야 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요. <퍼스트 맨>은 결국 인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달에 가야 했던 사람들과 그 무모함을 바라봐야 했던 가족들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되죠. 암스트롱 아내 자넷이 나사에 찾아가 당신들은 아마추어라며 화를 낼 때나, 달 비행을 떠나는 남편에게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리고 가라며 외치는 장면은 당시 우주에 집착했던 무모한 도전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합니다.
철저하게 남성 위주였던 아폴로 계획과 가정을 지켜야 했던 아내들의 이야기는 달 착륙 과정을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데미안 감독은 당시 아폴로 계획을 지켜봤던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여줍니다. 세금낭비에 불과하다는 사람과 차마 우주까지는 상상해 보지도 못했던 빈곤 속의 사람들, 실제 그 일 때문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까지.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무모했던 도전을 응원합니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달 장면은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더 큰 감동을 줍니다. 저는 아이맥스로 관람했는데 화면 비율이 바뀌는 타이밍과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숨죽이고 보게 되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었습니다. 거기다 그곳에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과 실패가 있었는지를 알기에 마냥 기쁘지만은 않을 주인공의 심정이 느껴졌죠. 그리고 그 지점에서 영화는 다시 작은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암스트롱이 달에 도착했다고 해서 딸을 잃은 커다란 상실감이 해소되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새롭게 내디딘 한 발자국은 다른 변화를 불러올지도 모릅니다. 달착륙이 성공하자 세상의 분위기는 바뀝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부정적인 시선은 사라지고 칭찬 일색의 국민 영웅 대접에 지구로 돌아온 암스트롱은 애매한 표정을 짓습니다.
<퍼스트 맨>은 달착륙이라는 커다란 사건을 개인의 삶을 통해 이해하며 관객에게 묻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도 이 일이 가치 없게 느껴지십니까? 데미안 감독은 언제나 개인의 무모한 열망을 응원합니다. 그게 타인에게는 아무 의미 없고 잘못된 일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말이죠. 나와 전혀 상관없게 느껴지는 커다란 이야기도 사실은 아주 작은 한 사람의 삶이 들어있습니다. 암스트롱의 개인적인 삶으로 바라본 아폴로 계획은 전혀 다르게 보일 뿐 아니라 그곳에 가야 했던 이유도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퍼스트 맨>은 이 영화과 지닌 일관된 톤과(건조하지만 따뜻한 분위기) 놀라운 하모니를 보여주는 배우들의 연기, 데미안 감독 특유의 음악 사용까지 완벽한 영화적 체험이 가능한 작품이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인간에 관한 거라는 걸 걸 떠올리게 해 줬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