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movie sketch
다 된 밥은
그냥 두어주오
<시카리오:데이 오브 솔다도>는 감독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하지 않았었습니다. 전작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장기가 발휘된 영화였기에 1편의 성과만을 쉽게 이용하는 완성도 낮은 영화가 될 것이라 예상했어요. 근데 막상 보게 된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는 본편의 매력과 퀄리티를 그대로 살린 영화였습니다. 감독의 정보를 알지 못했더라면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해도 믿었을 만큼 1편의 톤과 분위기를 유지해냅니다. 저는 드니 빌뇌브가 크리스토퍼 놀란과 유사한 감독이라고 느낍니다. 두 감독 모두 영화의 스케일이 크고, 촬영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플롯 구성을 통해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내기 때문에요. 그리고 둘 다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전편 <시카리오>에서 드니 빌뇌브는 마치 <덩케르크>의 마지막 5분을 넣은 크리스토퍼 놀란처럼 영화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 알레한드로(베니 시오 델 토로)의 개인사를 거칠고 짧게 집어넣어 이야기를 완성시켰습니다. 보통은 결말이 가장 중요하죠. 하지만 두 영화 모두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작품들이었습니다.
<시카리오>는 스릴러에 충실한 장르영화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의 민낯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국가로 군림해온 미국은 히어로 물을 통해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정의의 사도로 스스로를 포장하고 싶어 했으나 아는 사람들은 알죠. 미국은 가장 거대한 깡패국가입니다. 미국이 세계질서에 참여하고자 할 때는 미국에 이익이 되거나, 다른 문제를 감추어야 할 때뿐입니다. 영화는 그 민낯을 너무나도 잘 아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킴으로써 굉장히 시니컬한 톤을 지닙니다.
극의 분위기를 한 번에 보여주는 장면은 아래와 같습니다. 알레한드로(베니 시오 델 토로)는 작전을 위해 카르텔의 딸을 납치합니다. 무료하게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던 요원들은 때가 되자 느릿느릿 복면을 쓰고 밖으로 나가 창을 깨고 들어옵니다. 눈에 붕대가 감긴 아이는 경찰 인척 하는 알레한드로에게 구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전의 목표는 카르텔과의 전쟁입니다. 하지만 매수된 경찰로 국가 간의 문제가 되어버리자 미스 선샤인은 작전을 중단하려 합니다. 화가 난 팀장이 여기서 멈추면 변화는 없다고 하자 그녀는 말하죠. '우리가 변화를 위해 이 짓을 하고 있는 거 같아?' <시카리오 2>는 진짜 미국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알레한드로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개인사를 지니고 있는 인물입니다. 1편의 그는 그 누구보다도 냉혈안이었지만 2편에서는 이자벨과의 동행으로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게 됩니다. (1편의 알레한드로였다면 청각장애 가족은 그가 집을 떠날 때 이미 죽어있었을 겁니다.) 다행히 그의 변화가 영화 분위기를 좌지우지할 만큼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카르텔의 세계에서 자란 이자벨을 보며 죽은 자신의 아이를 떠올린다는 점이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문제는 영화의 끝부분에 가서 등장하는데...
아마도 3편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영화는 포로가 되어 총에 맞은 알레한드로를 무리하게 살려냅니다. 그는 분명히 얼굴에 총을 맞았습니다. 발사된 총알은 관통해서 나가게 되어있죠. 얼굴 부분을 맞았기에 총알이 어디로 나가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겁니다. 감독도 그게 신경은 쓰였는지 볼에 맞은 총알이 반대편 볼을 뚫고 나갔다는 설정을 제시합니다. 알레한드로가 살아날 때부터 차의 거울에 양 볼의 뚫린 구멍을 확인하는 장면까지 실소가 멈추지를 않습니다. <007> 시리즈나 탐 크루즈가 나오는 블록버스터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황량한 멕시코를 배경으로 하는 이 시니컬한 영화에서 이건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엔딩에서는 양복을 빼입고 돌아온 알레한드로가 신참 신카리오를 키우려 하는 마블식 엔딩까지 선보입니다.
영화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기에 100% 자유를 보장받기 어려운 예술이죠. 상업적 이유로 억지 해피엔딩을 만들어낸다던가 <월드워>의 펩시 PPL처럼 투자자의 기쁨을 위한 장면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시카리오:데이 오브 솔다도>는 도대체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정이 없었다면 그건 그거대로 놀랍습니다.) 잘 나가던 영화를 망쳐내는 방법도 참 다양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시카리오>3편이 나온다면 이 큰 희생이 가치 있는 결정이었다 싶을 정도로 재밌는 영화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