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movie sketch
각자의 옳음
각자의 현실
영화와 드라마는 비슷한 듯 하지만 만드는 과정, 보는 사람의 상황, 전달하는 장소 등의 차이가 있기에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 있어 다른 방식을 사용합니다. 드라마는 대사, 영화는 액션(일어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죠. 그래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영화는 배우들이 대사로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본 어떤 영화에서 제사상에 케이크를 올리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제사상에 웬 케이크?라고 생각하죠. 그 의문을 느끼자마자 배우가 입을 엽니다. "제사상에 웬 케이크예요?" "응. 살아생전에 어쩌고저쩌고." 다양한 표현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장면을 보며 영화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기에 스크린은 너무 크죠. 하지만 대화만으로 굉장한 몰입감을 주는 영화들도 있습니다. 대사가 엄청나게 자연스럽거나, 말하는 것과 하고자 하는 말이 전혀 다르거나, 대사와 상황이 합쳐져 다른 뜻이 생겨날 때 대화는 정보전달을 넘어 액션이 됩니다. <남한산성>은 그걸 해낸 보기 드문 한국 영화입니다.
위태롭던 인조의 조선시대, 영화는 남한산성에 고립된 무능한 국가의 모습을 대립하는 탁상공론으로 보여줍니다. 꽉 막힌 남한산성의 황량한 풍경은 영화의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죠. 인조와 대신들은 국가의 존폐가 걸린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남한산성>은 그 다툼 속에서 오고 가는 대화가 스토리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대화로만 진행되지만 시대극 특유의 돌려 말하기와 대신들 간 눈치싸움이 표면 밑에 숨은 의도를 품어 영화적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안타까운 점은 대화가 많아 캐릭터 의존도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주요 인물 다섯 명 중 세명의 캐릭터가 비슷하다는 겁니다.
<남한산성>의 캐스팅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라인업이었습니다. 특히 이병헌과 김윤석의 연기대결이 관심을 모았죠. 그런데 실제로 <남한산성>에서 돋보인 것은 박해일이었습니다. 그가 돋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주요 인물들 중 혼자 다른 캐릭터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났지만 각자 신분과 입장의 차이가 있는 것에 비해 캐릭터들은 비슷하게 표현되었습니다. 김윤석이 맡은 김상헌은 천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현실에 눈을 뜨고 유일하게 내적 변화를 일으키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남한산성>에서는 이 입체적인 캐릭터가 잘 기능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김윤석 -1로 느껴지는 무관 캐릭터가 둘이나 있는 데다 (송영창, 박휘순) 고수마저도 비슷한 성격이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남한산성>의 이병헌은 그가 왜 최고의 배우로 평가받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연기로 끌고 가는 영화에서 잘 나가는 배우들이 모이면 극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연기력을 과시하는 듯한 장면을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다 같이 연기 배틀을 시작할 때 한 번쯤은 나도보여 줘?라고 나설 법도 한데 이병헌은 그렇지 않습니다. 끝까지 인물에 맞는 연기를 선보이며 영화의 중심을 지킵니다. 이병헌이 맡은 최명길은 현실과 타협하려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상주의자입니다. 더 나은 미래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믿죠. 김상헌이 이 상황까지 오게 만든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야만 변화가 온다고 믿는다면 최명길은 수정을 통해 전진하고자 합니다. 바깥 사정도 모른 채 고집만 부리는 대신들 앞에서 그들을 훈계하거나 무능한 왕을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질질 끌어서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가려합니다.
그 절실한 마음에 이끌려 관객은 이병헌을 응원하게 되지만 사실 그가 본 현실은 제한적인 것이었습니다. 최명길이 본 현실은 그와 대신들 그리고 청나라의 모습이죠. 그는 김상헌이 접했던 것 같은 진짜 현실은 보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끝나도 천민들의 삶에는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요. 그래서 <남한산성>은 김상헌의 영화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연기로 끌어가는 영화가 끝나갈 때쯤 깨닫게 되죠.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이병헌이 연기하는 최명길이었구나. 온갖 스캔들에도 건재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