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Butler Yeats) 시인1865∼1939.
예이츠는 영국계 아일랜드인으로 더블린 샌 마운트에서 법률가이자 유명한 초상화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화가가 되려고 미술학교에 다니기도 했지만, 곧 문학으로 진로를 변경하였고, 1923년에는 작품<환상>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아일랜드 문예부흥을 이끌어간 20세기 영미 시단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극작가이며 민족주의 정치가로도 활발히 활동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글 쓰는 일에만 전념한 것이 아니라, 평생 사랑했지만, 사랑을 얻지 못하고, 그의 시의 원동력이 된 여인인 Maud Gonne과 함께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하며 힘썼다. 그리고 아일랜드가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는 아일랜드 자유국의 원로원 의원(1922∼1928)이 될 정도로 정치에도 깊은 관심으로 반했던 시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그를 처음으로 주목받도록 도와준 시집이 있다.
바로 "<오이신의 방랑기>(The Wandering of Oisin and other Poems1889)"이라는 작품이다. 이 시집에서는 켈트족 고유의 상징적인 정서를 그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신비주의적 영감을 작품에 잘 녹여내었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캐서린 백작부인>이라는 극에서도 역시 시적인 감상을 환상적으로 잘 표현해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 외에도 그는<1899년 초연>을 비롯하여 몇 편의 뛰어난 극작품을 발표하였고, 1899년 에는 아일랜드 국립극장을 더블린에서 창립하게 된다.
그의 주요시집으로" 책임(Responsibilities)", "오이진의 방랑기(The Wanderings of Oisin and Other Poems), "쿨호의 백조(The Wild Swans at Coole)", "탑(The Tower)", "마지막 시선(Last Poems)", “나선층계 (The Winding Stair)”등이 있다.
그는 기독교의 전통성을 거부하고 신비사상이나 민담, 심령술과 신플라톤 사상을 탐구하는 독특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라파엘의 영향 아래, 스펜서, 셸리 및 블레이크로부터의 영향도 받아 낭만적인 주제에 심취해 바위, 백조, 호수, 숲, 바람과 구름 등 자연 속에서 소재를 선택하여, 노래하듯 낭만주의 향기를 듬뿍 담아 그려내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연보다 우월한 예술의 세계를 믿으며 꿈꾼다.
이러한 배경 아래 여성스럽고 부드럽고 따뜻한 정서로 감겨 있던 그의 초기의 작품은 중기에 들어서면서 몽환적인 낭만적 세계와 反인격적인 아름다움에서 탈피하고 열정적이고 자의식 있는 정체성을 추구하기 시작하였으며, 후기에는 자연(자아)의 세계와 자연 부정(예술) 세계와의 상극적인 모습에 대한 극복을 고뇌하는 모습을 취하게 된다. 더불어 남성적이고 딱딱한 건조한 문체를 드러내게 되는 게기가 된다.
시인을 비롯하여 예술가는 삶을 치열하게 산다. 현재와 현재를 사는 자신을 포함한 인간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면서 말이다. 문학가 예이츠가 그랬고, 미술가 고흐가 그랬고, 철학자 니체가 그러했다.
사유라는 것은 언제나 자아에서 시작하지만, 생각의 고리는 곧 자신과 연관된 사회 전체 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늘 아름답고 서정적”이라는 예이츠의 대표 상징으로 보이는 이러한 시의 특징도 단순하게 표현된 기술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그의 목가적인 부드럽고 평온한 시의 뒷면에는 자신의 슬픔을 읊고, 사회의 아픔을 읊고, 더 나아가 인류의 풀리지 않는 숙명적 과제의 무거운 짐을 잘 녹여 표현해내었기에 그의 입술과 그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모든 노랫소리가 아름다운 명화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자아에서 걸어 나온 길은 또 다른 새로운 길을 다지며 다음 사람의 발걸음을 안내하는 지표를 내어주며 지표는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의 길을 꿈꾸게 한다. 치열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