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1년 뒤에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 미시간주에 도착해서야 우리가 실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모든 게 서툴렀다. 아빠는 대학원을 합격했지만 영어를 하실 줄 모르셨다. 엄마 또한 영어를 못하셨기에 과외도 하시지 못하셨다. 원래부터 활발한 성격의 언니들은 급 소심하게 바뀌었다. 우린 적응기에 들어섰고, 그 시기에 우린 문화 차이에 데이고, 차별에 상처 받고, 가난에 익숙해졌다. 무엇보다 나의 부모님은 5명이라는 대가족을 먹여 살릴 생각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견디셨다. 우리 가족은 대학원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나중에 아빠에게 듣기로는 가족과 같이 기숙사에서 사는 건 학교에서 원래 금지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옛날에 아빠가 왜 그렇게 우리를 엄격하게 조용히 시키고, 왜 나가실 때 책상 램프만 켜놓아야 한다고 당부하셨던 그 마음을 이해했다. 그럼에도 우린 그 좁은 한 칸만 한 집을 내 집처럼 행복하게 지냈다. 적어도 어렸던 나는 행복했다. 다행히 그 과정 속에 우린 은혜를 많이 받아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빠는 신학교를 다니시다가 만난 여러 목사님들의 도움 속에 일을 하실 수 있게 되었고, 우리 가족은 기숙사를 탈출할 수 있었다.
사는 동네가 바뀌면서 우리 엄마는 나를 유치원에 보내셨다. 그 유치원은 신학생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유치원으로, 기독교에 기초된 유치원이었다. 이 유치원은 바로 옆에 초등학교가 붙어있어서, 유치원을 졸업하고 바로 옆 초등학교를 다니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 유치원으로 첫 입학 날, 난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 같다. 유치원에 도착하기 전에 아빠는 겨울이라 춥다며 내복 같은 바지를 세 겹이나 입히셨다. 그 덕분에 평소 걸음걸이가 느리던 나는, 두배로 느려졌다. 이미 걸음을 다 뗀 지가 꽤 되었는데도, 나는 아기처럼 아장아장 걸으며 유치원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엄마가 떠나자 난 목청이 터지도록 울었고, 그걸 달래주신다고 선생님은 오렌지 주스팩을 내 왼쪽 손에 쥐어주셨다. 선생님이 무릎을 굽히시면서 내 눈높이에 맞추어서 따뜻하게 웃음을 보이자, 나는 울음을 뚝 끊었다. 울음이 멈추고 둘러보니 꽤 괜찮은 내부였다. 교실은 넓었지만 어디 하나 따뜻하지 않은 구석은 없었고, 바닥은 빨간 카펫, 교실 뒤쪽엔 아이들 그림들이, 교실 중간엔 작은 미끄럼틀이 달린 놀이터가 있었고, 무엇보다 맘에 들었던 건, 뒤쪽엔 작은 무대가 있었고 그 옆엔 의상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뭔가 공주놀이를 제대로 하라고 제공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오렌지 주스를 너무 많이 마셔서인가, 기분이 이상했다. 아래쪽이 간지러운걸 보니 오줌이 마려웠던 것이다. 화장실을 급하게 찾았다. 그땐 영어를 할 줄 몰랐지만 엄마는 몇 가지 필수단어를 내게 가르치셨고, 그중에 하나가 bathroom이었다. 나는 선생님께 급하게 달려가 '베쓰룸'만 외치면서 한 손에는 선생님 다리를, 다른 손으론 바지 주머니를 움켜잡았다. 그제야 눈치채신 선생님은 급하게 날 화장실로 데려가 주셨다.
이제야 살겠다고 생각하고 바지를 벗었는데, 바지가 또 있었다. 이때 식은땀이라는 존재를 처음 경험한 것 같다. 진짜 오줌이 나올 것 같은걸 꾹 참고 떨리는 손으로 바지를 또 내렸는데, 바지가 또 있었다. 절망스러웠다. 그때 뜨거운 무언가가 나온 걸 알았다. 싼 것이다. 허무하고 창피했다. 하필 입학식 날에 바지에 오줌이라니. 냄새보다도 더 걱정스러운 건 시선이었다. 이제 누가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누가 나와 그림을 그리고, 놀이터에서 놀고, 의상을 입고 제대로 공주놀이를 같이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빨개진 채로 그대로 나왔던 것 같다. 다행히 선생님은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나를 보시더니 조금 놀라셨고, 금방 웃으며 나에게 손바닥을 보이시더니 잠시 어디로 가셨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신 것 같아 그대로 얼어있었다. 잠시 뒤에 선생님은 의상들 중 하얀 원피스를 가져오셨다. 그리고 내게 건네주셨다. 난 너무 감격스러웠다. 그런데 입고 보니 더 감격스러웠다. 원피스 뒤에 요정처럼 날개가 달려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펄럭였다. 게다가 날개는 여러 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반짝이는 재질의 날개였다. 그래서 움직일 때마다 날개의 무지개색이 햇빛에 반사되어 내 얼굴을 칠했다. 기분이 급 좋아졌다. 그런 기분으로 난 자신감을 얻었고, 무작정 애들한테 돌진해 놀이에 참여했다. 애들도 요정 옷을 입고 아시안인 나를 보고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금방 나와 같이 놀았다. 그렇게 유치원 생활이 평탄하게 흘러갔고 어느새 초등학교를 입학할 시기에 다다랐을 때, 그리고 같은 유치원 동기들과 초등학교를 올라간다고 안심했을 때, 우리 가족은 또 한 번 이사를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