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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사 Sep 14. 2023

남편이 3박 4일 제주도로 떠났다

리사의 love yourself

남편이 처음으로 우리 가족을 두고, 혼자서 무려 3박 4일 여행을 떠났다. 이렇게 혼자 길게 간 적은 처음이다. 다. 가족 중심주의로 살던 남편이 이제 혼자서도 아주 잘 논다. 내심 남편이 부러우면서도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 말을 새기고 정신 승리를 한다. 나는 부럽지 않고, 아주 뿌듯하다. 아주 남편이 잘 컸다.


우리는 고3에 만나 연애를 해서 우여곡절 끝에 스물여덟이라는 나이에 결혼을 했다. 우리가 마흔둘이니, 세월로 따지면 이십여 년의 세월을 서로 알고 지냈다는 것이다. 가까웠다 멀어졌다를 반복했는데 결국 부부의 연이 되어 결혼까지 골인했으니 아마도, 예사 인연은 아닐 것이다. 남편 말로는 전생에 자신이 나에게 진 빚이 많아 그 빚 갚는 중이라 한다.


이 말은 평생 고생을 많이 하신 우리 친정엄마가 아빠에게 했을 법한 얘긴데, 나는 그런 말을 남편을 통해 듣는다. 하지만, 나 또한 남편이 쉽지 않았다. 이는 우리의 MBTI를 봐도 알 수가 있다. 극강의 반대편에 서 있는 ESTJ, INFP.  E와 I는 다소 중간 어딘가에서 왔다 갔다 한다. 그런데 문제는 STJ, NFP 성향이다. 둘 다 막대그래프가 정말 대척점에 가 있다. 극과 극을 달리는 성향. 그래서 안 맞으면서도 잘 맞다 한다.


나와 다른 사람이 잘 맞는 사람이다. 나는 참 특이하게도 나와 반대의 성향에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 그래서 그도 내게 끌렸을까? 연애 초창기엔 그게 매력적이다. 그런데 우리 부부처럼 장기적으로 넘어가면, 정말 그야말로 '꼴 보기 싫은' 서로의 이해되지 않는 모습들이 계속 발견된다. 사소한 하나하나가 급기야 대폭발을 하는 시기를 맞게 되기도 한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나에게 남편의 분석적이고 팩트 중심의 사고는 늘 분노를 일으킨다. 남편은 '팩트 폭격자', 나는 '물음표 살인마'가 되어 서로 으르렁대는 시간을 참 오래 가졌다. 삶의 의미를 묻고, 아름다움에 대해 자주 감탄하며 공감받고 싶은 나는 팩트에 늘 초점이 가 있는 남편에겐 지옥이다. 이렇게 타인은 지옥이 되기도 한다.


오늘은 이렇게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가 어떻게 한 지붕아래 잘 살아가게 되었는지 고찰해 본다.(고찰이라고 하고 싶다. 고된 일이니까) 결국, 내 마음공부의 스승님이 된 우리 남편. 만약 내가 우리 남편이 아닌, 내가 그렇게 칭송해 마지않던 '공감형 천사표 남편형 남편'을 만났더라면, 오늘의 작가가 된 나'란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마음 작용에 깊이 들어간다. 저 인간은 왜 저런 말을 하고, 왜 저렇게 밖에는 행동하지 않나? 에서, 나는 왜 이런 말을 하고, 왜 이런 행동을 하나? '세계적 영성가'이자, '깨달은 자'인, 바이런 케이티 식의  'turn around' 말의 대상을, 주어와 목적어 등을 바꿔 본다.


자꾸만 바꿔서 말하고 생각해 보니 남편의 관점에서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아.. 그럴 수도 있지. 이런 입장, 저런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이해가 되는 것이다. 조금씩 분노하던 내 안의 감정은 이해와 관용으로 따스함이 피어났다. 남편이 있는 그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 말은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모든 화와 분노가 한순간에 사그라 들 수는 없어도, 적어도 안다.


남편도 나 만큼이나 나랑 사는 것이 힘들었겠구나. 서로가 마찬가지니까. 그렇게 나는 진심으로, '역지사지'를 나이 마흔이 넘어 처절하게 깨우치고 있다. 오늘 남편이 제주도로 떠나서 친구들과 즐겁게 놀다 오는 시간을 사랑한다. 왜냐면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힘들었고, 삶을 버티고, 견디며 해냈기에 오늘의 달콤한 보상을 누리고 즐거워할 자격이 충분하다.


나도 훗날 친구들과 그렇게 3박 4일을 떠날 것이다. 그때도 그가 나처럼 기분 좋게 나의 여행을 응원하리라 믿는다.(반은 협박)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철이 들고, 열아홉 꽃다운 나이의 그와 나는 신중년(요즘 신조어)이 되었다. 신중년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남편에게 집착하며 살지 말고 자기만의 삶을 즐겁게 살아요!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 대로 그렇게 자신에게 충실하고 즐거우면 둘이 함께도 좋고, 따로도 좋으면 그 사이 아이들도 행복하고 모든 것이 다 편안해진다.



#글루틴 #팀라이트 #마티니 #김리사에세이 #김리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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