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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사 Sep 26. 2023

아무 문제가 없는 이 자리

리사의 love yourself

내 절친한 친구는 지금 암 투병 중이다. 4년 전, 대장암으로 시작해서 두해 후에는, 복막암 전이, 그리고 올해 간으로 암이 전이되었다. 전이암을 두 번 겪고 친구는 마음이 좀 달라진 것 같다. 좀 단단해진 것도 같고 생사를 초월한 것도 같고 최근 간암 수술을 장장 12시간 받고 나오면서 회복 중인 그녀이다. 글을 쓰면서도 실화인가 의심스러운 내 사랑하는 친구의 현재의 삶과 일상. 나는 그녀를 통해 자주 삶의 의미를 묻는다.


서로 사는 일이 바빠서 자주 못 보지만 한 번씩 나는 고향 친구들을 만나러 거제로 간다. 내 절친,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절친이 되어 준 친구들. 그 친구가 최근에 이사를 하고 새 보금자리를 가졌다. 아픈 와중에 이사할 계기가 생겨서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들어가보니 참 집이 포근하고 아늑하다. 3층 테라스 밖으로 나무들이 보이고 놀이터가 보인다. 초록 가득한 풍경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새 아파트라서 깔끔하고 좋다. 친구의 얼굴도 편안해 보이고 밝다. 물론 암 수술 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아직 몸이 좋지 않다. 가장 티가 나는 것은 장 상태다. 잘 먹고 잘 일을 보아야 편안한데 아직 장은, 수술 후 최적의 상태로 가기 위한 회복기간인 것 같다. 살을 좀 더 찌우고 다음 치료를 위한 몸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친구는 예전에는 남에게 폐 끼치고 싫은 소리 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데 이번에는 올 수 있으면 자신을 보러 놀러 오라고 나에게 어필을 하는 기분이다.



나는 가고 싶고 늘 마음이 그 친구와 닿아 있어서 이번에도 기쁘게 달려갔다. 누군가가 나를 찾고 나의 도움 혹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기분이 좋다. 사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항상 바쁜 줄 안다. 먼저 시간을 물어보고 보자고, 보러 오라고, 손을 내미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나도 이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익숙하고, 그런대로 행복하다. 그럼에도 나를 먼저 찾아주고 안부를 물어 오고 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은 만나면 기분이 나쁘지 않다. 사람들은 대부분 먼저 손을 내밀고 거절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라 대부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혼자인 것을 즐기는 지도.


어쨌는 요즘의 나는, 오픈 마인드다. 누군가 나에게 손을 내밀면 인연이라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인연에 응하고 그저 그에 맞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취한다. 오늘 친구들과 보내 시간도 어쩌면 그런 시간 중 하나였다.


암투병을 하지만 친구는 나를 필요로 하고, 오랜 친구들의 무리 속에서 나는 예전의 시간의 우리를 만나고 오늘의 우리와 다시 또 조우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마음은 여전하다. 소녀 같은 감성, 늙지 않는 그 어느 자리가 늘 거기에 있다. 친구의 암투병도 오늘은 존재감을 잃었다. 암 그까짓 것 너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암세포가 친구에게 있건 없건, 내 친구는 지금 우리 곁에서 그대로 그 모습대로 온전하고 아름답고 여전하다.


우리가 마음으로 지어내는 수많은 고통들은 결국 실재하지 않는 마음의 일이다. 마음으로 문제를 만들고 마음으로 아파한다. 결국 우리가 집중해야 할 현실은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있다는 것이다. 친구는 오늘 우리와 아무 일 없이 웃고 해맑고 행복하고 아늑했다. 왜 우리는 미리 미래를 걱정하며 아파해야 할까? 그렇게 다시 현존 감각이 우리를 제대로 살게 해 준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나도, 친구도 우리 모두는 똑같은 현실을 안고 산다. 지금 뿐이라는 것. 미래는 허상에 불과하고, 그 누구도 미래의 일을 알지 못한다. 마음이 이 모든 현실의 배경에 존재하고 그 마음이 우리를 울고 웃게 하니, 어떻게 살면 좋을까? 에 대한 질문의 답은


그저 오늘 여기 지금의 내 느낌에 감각에 집중하면 될 일이다.


아무 일 없다. 지금 여기엔


그저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했고, 웃었고, 즐거웠고, 감사했고, 살아있었다.


그 무엇도 지금은 필요가 없는 이 이 자리가 참 좋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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