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전체로 느껴질 때
리사의 love yourself
잠시 깨달음의 문으로 들어갔다 나왔을까?
마음공부를 하다 보면 분리된 개체가 아닌 우리는 온전한 하나, 전체로 존재한다고 한다. 모든 인간의 고통과 괴로움은 이 분리감에서 온다고 하는데, 오늘은 신기하게도 전체라는 감각이 잠시 나를 찾아왔다. 물론 짧았지만 말이다.
지금도 그 여운이 남아 정말 그야말로 행복하다. 행복이란 이런 온전한 느낌, 전체로 내가 받아들여지는 감각인 것 같다. 아침 햇살, 바람 느낌, 아침 수업 온 사람들의 표정, 웃음, 영어 발음, 걷는 감각, 운전을 하며, 대화를 하며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없이 통으로 그 모든 것과 하나가 된 것 같았다.
아... 이렇게.. 이렇게 매일을 매 순간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아무 일 없이,아무 문제가 없는 삶의 자리가 있다. 있는 그대로, 아무것도 더하고 덜하지 않아도 온전하다. 살을 빼지 않아도, 영어를 더 잘하지 않아도, 더 사랑받지 않아도, 뭔가를 더 추구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전체가 되어 바라보는 세상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이러려고 내가 지구별에 왔구나. 이거 느끼라고. 이렇게 행복하라고 말이다. 모든 것은 생각에서 온다. 마음이라는 광활한 공간에서 펼치는 에고의 생각이 나를 사로잡는다. 잘해야 하고, 돈을 더 벌고, 더 큰집을 갖고, 더 여행을 다니고, 더 인맥을 늘리고, 더 가지고.. 더 더 더.. 그 모든 부족하다 느끼는 감각은 에고의 분별이다.
그러나 잠시 본 그 깨달음의 자리에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 심지어 그냥 그대로 삶이 끝나고 정지가 되어도 아쉬울 것이 없는 삶의 그 순간, 그 공간. 그것이 바로 본연의 우리의 모습, 진리, 허공성, 하느님의 품, 부처님의 자리.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뭐라고 일컬어지든 그 모든 가운데는 현존감각이 자리한다. 아무 문제가 없다. 지금 이대로, 있는 그대로 우리에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나를 사로잡던 그 모든 걱정과 생각들은 망상이다. 걱정하던 그 모든 일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고, 과거라 명명하며 후회화 자책을 거듭하던 그 순간들은 한 장의 이미지, 생각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로 돌아오면 내가 있다는 그 존재가 감각이 있다. 삶은 그저 존재 감각이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오늘의 글은 써야 해서 쓰는 글이 아닌, 정말 마음이 시켜서 쓰는 마음의 소리와도 같다. 내 첫 책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에 내게 물었다. "어떻게 그런 책을 썼나요?" (나의 첫 에세이는 자전적 치유에세이다). 나는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쓰지 않고서는 살 수 없어서요." 그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때론 삶이 나를 낭떠러지 앞으로 밀어붙인다. 이걸 하던지, 아님 저 아래로 떨어지던지, 이렇게 절벽 끝에 서 보면 안다.
지금 내가 해내야 할 삶의 미션이 무언지 말이다. 오늘은 책 쓰기라는 거대한 미션보다는 이 순간의 황홀감을 글로 쓰는 일이었다. 누군가가 또 물어 온다면, 오늘도 마찬가지로 대답하고 싶다. "쓰지 않고서는 이 기분을, 이 느낌을 어쩔 수 없었어요."
어느 순간 가득 주던 힘이 빠지고, 삶이 수월하게 순풍에 돛 단 듯이 흘러갈 수 있을까? 바로 오늘처럼, 억지로 글 쓰는 자리에 앉지 않아도 그저 자연스럽게 글이 나라는 통로를 통해 흘러나올 수 있을까? 몇 되지 않는 기쁨의 순간을 글로 붙잡아 본다. 나는 이 모든 세상 만물과 연결되어 있음을 분명히 안다. 어쩌면 그 모든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그들을 것일지도 모른다. 내 것과 그들의 것이 함께 흐르며 나는 지금 여기 머문다.
또 어떤 것을 삶이라는 현존이 내게 가져다줄까? 두 팔 벌려 모든 것을 환영하겠다. 어제 느낀 두려움과 슬픔마저도 환영하려 한다. 그것이 있어 오늘의 환희가 있는 것이라는 걸 아니까. 힘을 빼고 여여히, 그렇게 오늘도 나는 이 자리에서 풍요롭게 하루를 획득하고 누리고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