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내가 지금 까지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해 온 것이 아니라 삶이 그저 내게 펼쳐 보여준 것은 아닐까. 요즘 참 차분하고 명료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래도 괜찮은 순간을 만난다. 신기한 일이다. 늘 뭔가를 분주하게 해야 했는데 하면 하는대로 하지 않는 날은 있는 그대로 나쁘지 않았다.
자책감, 수치심, 죄책감 등이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 마음들은 살짝 올라 왔다가 이내 사라졌다. 내가 무장을 해제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도 좋을까 늘 불안하고 조급했다.
뒤쳐질까, 인정받지 못할까, 사랑받지 못할까 늘 불안했는데 탁, 하고 내맡기니 그것도 괜찮다 한다. 그 목소리가 말이다. 한번도 완전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한다.
신기한 일이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나라도 아무렇지 않게 괜찮을수 있다는 마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필사를 하고, 확언을 하고 늘 나를 만들어 갔는데 책을 좀 내려 두어도, 확언을 쓰지 않아도 여기 이 모든 것을 의식하는 나는 늘 나와 함께 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또 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억지로가 아닌 하고 싶어서.
느낌이 이끄는 대로, 마음이 가는 곳으로 그렇게 다가오는 인연에 삶을 내맡기는 자세로 산다. 지금 이대로 나는 아무 문제가 없다. 오직 분별만이 나에게 문제를 만들어 줄 뿐, 나는 처음부터 아무 문제가 없던 것이다.
괴테의 <내맡김의 힘>을 필사해보며
다시 내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리고, 나는 다시 버려지고 혼자가 되더라도 그 모든 것을 의식하는 그 근원의 존재감은 나와 영원히 함께 일 것이다. 지금 이대로 영원히 나는 외롭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거대한 안도가 든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