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아이의 상처를 마주하며

내면 아이 돌보는 법

by 김리사

내면 아이라는 단어를 들어 본 것은 서른이 넘어서였다.


"내면 아이? 그게 뭐야? 내 안에 아이가 있다는 거야?"


나는 이십 대까지는 마음공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여느 이십 대의 대학생처럼 연애하고, 여행하고, 공부하며 살았다. 다만 연애 후 찾아오는 이별에 과하게 고통을 느꼈던 것 같다. 심지어 그깟 이별이 뭐라고 남자친구와 헤어지면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왜 그렇게 힘든지 모른 채 감정에 휩쓸리며 살았다. 훗날 30대가 지나고 극심한 우울을 앓고 나서야 제대로 마음공부를 하고 내면아이를 알게 되었다.


이런 이십 대부터의 불안정한 정신세계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더 심해졌다. 임신과 출산으로 호르몬도 불안정한 데다가 내가 하는 일도 공부방 선생님, 출강 강사라는 수입이 불안정한 프리랜서였다. 그 시절, 남편은 8년 동안 다니던 회사가 사정이 좋지 않아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는 등,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서른 초반의 나이에 어린 두 아이를 둔 엄마였던 나는 다시 우울함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든 것이 두렵고 무서웠으며, 아이들 둘을 보는 일에 점점 지쳐갔다.


나의 삼십 대는 지금 돌이켜 보아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힘들고 어두운 혼돈의 시간이었다. 가장 무거웠던 것은 아빠의 투병과 이별이다. 어른이 된다는게 뭔지도 모른채, 모든 게 처음이고 낯설었던 그때, 아이 둘을 양가 부모 도움도 없이 맞벌이를 하며 키웠다. 어린 아이 둘을 앞뒤로 아기띠에 메어 안고 많이도 울었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을 그룹으로 하던 과외 수업은 상상 초월로 내 에너지를 뺐어갔다. 내 아이들도 어린데, 초등아이들의 그 활발한 기운을 다 잡아서 이끌어 가려니, 매일 눈물이 나던 시절이다. 꾸역꾸역 일을 하며 수시로 내 안에 어른이 아닌 아이가 있어, 같이 그 초등아이들과 트러블을 일으킨단 생각을 한 것이 그때다.


"내 안에 아이가 있구나. 이것은 어른의 행동이 아니다. "

처음 내면의 아이를 알게 되면서, 나는 점점 마음공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도대체 이 마음이 무엇이며, 나는 누구이길래 이토록 다양하게 얼굴을 바꾸며 사람들을 대하는가.. 무엇이 나를 이토록 아이같이 굴도록 만들까. 특히 연인이나 배우자 관계에서 심리적 문제가 터졌다. 그 지점에서 아이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아빠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온전히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꼴을 발견했다.


그때 내가 사람들속에서 하고 있던 것이 바로 내 부모와의 관계의 '투사'였다. 아빠와의 관계를 비추어 사람들 속에서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사랑을 구했다. 아빠의 슬픈 내면아이가 내 안에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음도 알았다. 무기력하게 엄마가 아빠에게 당하고 사는 모습이 내 안의 무기력을 일깨워 내기도 했다. 그 많은 시간 속에 내 내면에 상처받은 아이는 자기 목소리를 잃은 채 쭈그러져, 마음 어느 곳에 버려진 채 있었던 것이다.


수용받지 못한 감정은 무의식에 억눌려 슬픈 현실을 창조한다. 내가 창조한 슬픈 현실은 계속 버림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고 그럴 때마다 사라져 버리고 싶은 충동이었다. 내면아이를 만난다는 것은 그 내면의 목소리를 알아 봐 주는 시간이었다. 그 마음을 하나씩 만날 수록 나는 더 많이 짐승처럼 울었으며, 또 한편 홀가분하고 기뻤다. 내면 아이의 슬픈 장면이 찾아올 때마다 용감하게 마주하던 나는 결국 해냈다.



나는 첫 책 <사라지고 싶은 너에게>를 통해 내면에 가득 억눌린 마음 보기에 진심을 다했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했고 그 아이를 끌어 안았다. 해낸 끝에는 다시 마음공부가 시작이다. 이제는 내 슬픈 내면아이의 상처를 돌보는 일이 아닌, 타인을 향한 마음공부와 깨달음으로 간다. 나 스스로를 돕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이 잘 이뤄졌을 때 비로소 남을 돕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값진 교훈을 얻게 되었다. 삼십 대의 치열하고 어둡던 시간은 조금더 성숙한 사십대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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