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삶을 살기로 한 후
첫 책 출간을 시작으로 나는 평생 글 쓰는 삶을 살기로 선택했다. 글쓰기를 좀 훈련하다가 책 쓰기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의 일인데 나의 경우는 좀 순서가 뒤바뀌어 책을 한 권쓰고 글쓰기 세계로 입문했다.
죽고 싶은 마음을 달래려 쓰기 시작한 첫 책은 글쓰기를 잘 모르던 나에게 엄청난 기적을 가져다주었다. 적어도 내 한 목숨을 살려 낸 것이므로 그 값어치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글을 쓰며 좋아하진 점들은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먼저, 전에 비해 외로움을 적게 탄다. 그전에 나는 늘 외로웠다. 내 마음이 가 닿지 않아서 사람들을 만나고도 오히려 헛헛한 적이 많았다. 나를 충분히 이해해 줄 한 사람이 늘 없었고 나는 그런 사람이 어디 없을까 날 위로해 줄 사람을 찾아 헤맸다. 그런데 글을 쓰게 되니, 글 속에서 위로를 받는다. 누구보다 글이 나를 위로하고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다 받아준다. 어떤 말을 해도 통하고 받아 줄 비밀 친구를 하나 얻은 것 같은 통쾌한 느낌이랄까.
두 번째로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적어졌다. 늘 미래가 두려웠다. 프리랜서라 불안정한 소득에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평생 할 일이 생겼다는 안도감과, 글쓰기가 더 많은 수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도 갖게 되었다. 글쓰기를 하는 모임으로 수익을 올릴 수도 있고, 치유 글쓰기 코칭 일로 돈을 벌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책을 써서 펄스널 브랜딩을 할 수도 있고, 하고 있는 영어 업에서 가져오자면, 영어 교재를 만들어 팔 수도 있겠다. 한마다로 무궁무진한 영역이 열린 것이다.
세 번째로는 일상에서 오는 다양한 희로애락을 감사히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좋은 일만 감사하고 힘든 일이 닥치면 왜 하필 나에게 그런 일이 오는가 한탄을 했었다. 그러나 글을 쓰면 그 모든 힘든 일들마저 신선한 글감이 된다. 사악한 사람을 만나 고생을 하게 되는 일이 있으면 묘한 희열이 있다. 내 글에 저 사람을 어떻게든 녹여내어 그 듣지도 보지도 못한 캐릭터를 살려 두고 싶은 욕구가 치민다. 나름대로의 복수인 것이다. 그런 삶에 대한 관점이 더 하루하루를 즐겁게 한다.
이 밖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더 자비롭고 관용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점과, 예전보도 언변이 늘었다는 것 등이 있겠다.
그럼에도, 오늘 글의 주제는 글의 흐름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이런 글쓰기 예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수시로 동굴로 들어간다. 나의 사람에 대한 예민함이 때론 너무 고통스럽고, 사람들에게 기대하고 실망하는 일도 여전하며, 스스로를 바보처럼 바라보며 책망도 한다. 다이어트를 한다면서 저녁엔 허기를 참지 못하고 폭식하는 나를 한심히 여기기도 하고, 날씨가 너무 좋은데 사랑하는 이가 없다는 생각에 슬픈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이 모든 예민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하지만 사랑한다.
나를 그녀로 두고 관찰자시점으로 관망한다. 수시로 혼자이고 싶고, 어제 사랑하던 친구가 오늘 이내 미워지는 그녀를 보며, 나는 빙그레 웃는다. 감정이 이렇게 활화산처럼 역동적인 그녀라서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예민함이 때론 무기가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섬세한 감정 끝에 처절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나온다. 비극을 가장한 일종의 선물인 것이다. 그래, 이것은 필시 선물이다. 선물이 맞다.
선물이라고 볼 수 있는 작가의 눈이 생기기까지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돌아왔다. 하마터면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 버릴 뻔했던 어린 그녀의 내면 자아는 자라고 자라 이제 있는 그대로 온전해졌다. 그 모든 그녀의 섬세한 촉수가 선물임이 이제 안다.
동굴로 들어갔다 나오면 한층 밝아져 있는 그녀.
그녀의 섬세한 감정의 촉수를 사랑한다. 여전히 내 안에는 '나와 그녀의 어린 자아'가 함께 공존한다. 그 누구의 글이든 모든 것이 그녀이며 나이고, 오늘은 그 동굴 속에서 외로움에 사무쳐 슬피 울던 그녀를 소환해 가득 사랑을 줘 본다.
괜찮다.
그녀의 예민함을 예찬하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