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힘으로 책 한 권 쓰기
사십여 년간 나는 몹시도 두꺼운 가면을 쓰고 살았다.
그 가면의 이름은 "나는 괜찮아."였다.
그런 가면을 쓰고, "나는 괜찮아!"라며, 내 인생 곳곳의 장면에서 반복했다.
친구들이 나를 배려하지 않고 저희들의 마음대로 일을 해나갈 때도,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있었지만 딴마음음은 없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놨을 때도, 뱃속의 아이일로 슬픔이 터져 나오기 직전일 때에도, 아빠가 극심하게 생과 사의 시간에 고통받던 순간을 목도했을 때에도.. 내가 나를 기만하고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던 순간에도, 말로 다 할 수 없을 그 모든 일들 앞에, 나는 괜찮았다.
나는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은 것이라고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한 것이다. 그것이 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무시당하고 버림받고, 차별당하는 느낌을 견딜 자신이 없었기에..
오랫동안 내가 나를 속이며, 진심으로 '나는 괜찮은 줄' 알았다.
'괜찮다'는 말로 내리누르던 나의 권위적인 자아에게 반란을 일으키며, "나는 괜찮지 않아"라는 자아가 전면으로 나오며 삶이 극심하게 요동쳤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는 이 몸뚱이와 마음이라는 것에서 존재 그 자체로, 의식하는 그것으로 재편되고 있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고, 아플 때마다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그 마음을 알아주고 나니, 삶이 달라졌다.
그렇게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라지고 싶은 너에게>라는 책 한 권을 쓰면서, 가면을 벗어던지고 나니, 세상은 자유였다.
그 어떤 마음이 올라와도 괜찮다.
그 마음이 곧 나 자신과 동일하지 않음으로.
마음은 그저 지나가는 기차일 뿐, 나는 근원적으로 기차역이 되어 머문다.
기차를 붙잡아 타고 가지만 않으면 된다.
그동안 어리석게도 나는 기차역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그것들을 타고 가버렸다. 수없이 이 기차, 저 기차를 타고 가버리니 내 존재는 사라지고 혼란만이 남았다.
'도대체 나는 누구지? '
'이 마음이 나일까, 저 마음이 나일까. '
그렇게 나를 찾아 떠돌다가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진정한 내 존재가 무엇인지 아는 일은 마치 맹인이 눈을 뜬 것 같은 축복이었다.
가면을 쓰던 삶에서 내려와 진정한 내가 되어 살아간다.
어떤 색깔의 기차가 오든 그저 반갑게 맞아 주고, 떠나보낸다.
있는 그대로 머물러도 괜찮다.
슬픔도, 기쁨도, 우울도, 불안도 모두 모두 있는 그대로 괜찮다.
나는 한 번도 기차였던 적이 없으므로, 그 기차의 색깔에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기차역은 오늘도 기차라는 손님을 반갑게 맞는다.
삶은 그렇게 대자유로 흐른다. 어둡고 무겁던 두꺼운 가면을 벗고,
오늘도 투명하고 맑은 존재 그 자체로 머문다.
나의 이름은 'Being, 존재함'이었다.
그 무엇도 더 할 것이 없이 있는 그대로 충분하고 아름답다.